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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사위 김병주 MBK 회장
김 회장은 미국 하버포드컬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김 회장과 박 명예회장의 막내딸 경아 씨가 만난 곳 역시 미국이다. 김 회장은 하버드대 재학 시절이었고 경아 씨는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유학 중이었다. 장래가 촉망받는 평범한 집안의 유학생과 대한민국 정·재계를 주무르는 아버지를 둔 막내딸의 만남과 결혼임에도 박 명예회장은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영문학도로서 극작가를 꿈꾸던 김 회장은 MBA 취득 후 투자은행(IB)업계에 뛰어들었고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살로먼스미스바니(현 씨티그룹)와 골드만삭스 등을 거쳐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인 칼라일에 입사하면서 김 회장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칼라일아시아파트너스 회장까지 지낸 김 회장은 2005년 국내 토종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MBK)를 설립했다. 2004년 정부가 토종 사모펀드 육성 방침을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MBK는 김 회장의 이름 ‘마이클 병주 김’에서 따온 사명이다.
김 회장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실 2000년 칼라일 재직 시절이다. 2000년 9월 김 회장의 주도로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김 회장이 주목받았던 것. 칼라일은 2004년 2월 한미은행을 되팔아 7000억 원대 차익을 거뒀다. 1963년생인 김 회장의 당시 나이는 만 37세. 젊은 나이도 그렇지만 김 회장이 박 명예회장의 막내사위로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MBK 설립 후 김 회장은 IB업계와 재계에 큰손으로 부상했다. 2011년에는 우리금융지주를 통째로 인수하겠다는 의욕을 보인 바 있다. MBK는 2006년 HK저축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2008년 C&M과 태크팩솔루션, 2011년 뉴차이나생명 등 지난해까지 모두 20여 차례에 걸쳐 M&A를 성사시켰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저축은행, 보험, 방송, 제약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식탐’을 과시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1월 코웨이(1조 2000억 원)와 일본 커피프랜차이즈업체 고메다(6000억 원), 4월 아웃도어업체 네파(1조 1200억 원), 12월 ING생명 한국법인(1조 8000억 원)을 잇달아 인수했다. 지난해 이들 업체를 인수하는 데 쏟아 부은 돈만 5조 원가량이다. 현재 MBK가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의 연매출은 2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산 규모는 32조 원에 달한다. 재계 10위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의 자산이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기준, 재계 12위인 두산의 자산 30조 원보다 많다.
또 국내에서 M&A 시장이 열릴 때마다 MBK는 늘 후보군에 포함되고 있다. LIG손해보험 인수전과 ADT캡스 인수전에서 MBK가 강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것이 대표적이다. 극작가를 꿈꾸던 영문학도가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한 후 불과 9년 만에 이뤄낸 일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든 성과다.
김 회장과 MBK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모펀드의 구조적 특성상 ‘저가 매입 고가 매각’을 통해 투자금 회수뿐 아니라 수익 창출과 펀드 청산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런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IB업계 관계자는 “MBK는 기업이 아니라 사모펀드다. 너무 많이, 급하게 먹어 배탈이 날 수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MBK는 2006년 인수한 HK저축은행 매각 작업을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MBK가 인수한 국내 기업의 인수 후 영업이익률이 11.9%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투자금 회수에 대한 압박은 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김 회장이 극복해야 할 문제다. 이는 박 명예회장의 맏사위 윤영각 회장도 마찬가지다.
박 명예회장의 셋째사위는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7일 한국 M&A(기업인수 합병)시장에 하나의 기록이 수립됐다. MBK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가 국내 유통계의 거물인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 7조2000억원은 국내 M&A시장에서 역대 최고가.
재계와 일반인이 이같은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킨 MBK파트너스의 행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만 한 거금을 움직일 수 있는 사모펀드가 국내에 있다는 것조차 사람들은 몰랐다. 여기서 주목받는 이가 MBK파트너스의 실질적인 사주인 김병주(53) 회장이다. 김 회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국무총리와 포스코 회장으로 일했던 박태준씨(2011년 사망)의 막내 사위라는 것 외에는 베일에 싸여 있다.
박태준씨는 딸 4명을 내로라하는 인사에게 결혼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철저하게 능력을 검증, 결혼을 성사시켜 ‘정략 결혼’의 표본이라고 재계에 회자될 정도였다. 박씨의 첫째 사위가 윤영각 전 삼정KPMG 회장이다. 윤영각씨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로 회계 업계에선 정평이 나 있다. 윤영각씨도 최근 사모펀드의 지분을 인수, 그쪽 분야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사위가 고시 3관왕으로 유명한 고승덕 변호사다. 고 변호사는 결혼 생활 20년이 안 돼 이혼했다.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한창일 때 그의 딸이 SNS에 올린 글로 파문이 일었다. 글을 올린 딸이 박 회장의 외손녀다. 결국 고씨는 교육감 선거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그 당시 고 변호사는 재벌가의 사위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간접 피력한 적이 있다. 셋째 사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다. 전 대통령 재임시절 결혼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들 부부도 오래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재용씨는 그후 탤런트 박상아씨와 재혼, 화제를 불러왔다. 재용씨와 결혼했던 3녀는 동일벨트 집안의 김형수씨와 재혼했다.
막내딸이 이번에 이슈가 된 김병주 회장의 부인이다. 김병주 회장은 1963년 경남 진해 출생이라고 얘기된다. 그는 10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명문 하버포드칼리지 영문학과를 나왔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획득했다. 집안 내력이나 10살 때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월 발간한 ‘1조원의 승부사들’이라는 책에 김 회장에 대해 잠시 얘기가 나온다. 그 내용을 인용해 보면 그는 10세에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연히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무조건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요.” 그때부터 소년 김병주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러면서 문학도의 꿈을 꾸게 됐다. 평소에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책읽기’라고 말할 정도로 독서광이 됐다. ‘키 작은 동양의 아이’라고 놀림받고 소외되는 것이 싫어 운동도 열심히 했다. 중학교 시절엔 야구부에서 활약했고, 대학 농구팀에선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한때는 영화감독과 야구 구단주를 꿈꾸기도 했다.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대인 하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작가의 꿈을 꾸었지만 이루지는 못했다. 이 책에는 10살 때 왜 미국으로 혼자 갔는지가 나와 있지 않다. 단 사립 명문대학을 갈 정도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으로 봐 평범한 집안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 졸업 이후의 행보는 뚜렷해진다. 하버포드칼리지 졸업 후 첫 직장은 월가의 골드만삭스였다. 김병주 회장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시절을 “밤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다”라고 회상했다. “코피 흘린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죽도록 고생해 다시는 월가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힘들긴 했지만 20대의 그가 골드만삭스에서 얻은 경험들은 훗날 엄청난 자산이 됐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적대적 M&A의 방어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는 M&A 광풍의 현장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더 큰 도전을 위해 하버드대 MBA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 MBA를 마친 김 회장은 월가로 돌아왔다. 그것도 골드만삭스라는 친정으로의 복귀였다. 그 이후 뉴욕 본사와 홍콩 지사를 거치며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반을 더 일한 뒤, 33세이던 1996년 살로먼브라더스로 직장을 옮겼다. 살로먼에서의 생활도 3년을 넘지 못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명성을 날리던 칼라일그룹에 입사했다. 칼라일그룹 입사 후 그는 날개를 달았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에 놓여 있던 시기라 많은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이 외국계 사모펀드의 먹잇감으로 나와 있었다. 김 회장이 주목받은 것은 2000년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한 일이었다. 당시 나이 37세였고, 그의 장인인 박태준씨는 정부 주도의 기업 간 빅딜을 총책임지고 있었다. 박씨는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된다.
한미은행의 인수는 칼라일그룹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거래였고, 칼라일그룹 최초의 금융회사 투자이기도 했다. 입사 1년 만에 김 회장이 성사시킨 거래였다. 3억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해 7000억원을 벌어들여 원금 대비 2.3배의 수익을 칼라일그룹에 안겨줬다. 칼라일그룹 설립 이래 거둔 가장 큰 규모의 수익이었음은 물론이다.
칼라일그룹에서 제대로 공부한 그는 독립을 결심했다. 2005년 3월 1일이다. 하버드 동문인 윤종하 현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해 김병주 회장과 인척간인 부재훈 대표와 홍콩 헤드였던 케이시 쿵, 일본 헤드였던 겐스케 시즈나카 등 6명의 칼라일그룹 멤버들과 함께 아시아 지역 펀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달러짜리 ‘MBK 1호 펀드’를 만들어 사모펀드 시장에 데뷔했다. ‘MBK’란 이름은 김 회장의 영문명(Micheal Byungju Kim)에서 앞 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 MBK사모펀드가 만들어질 때 재계나 금융권에선 그 막대한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가에 의문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 칼라일그룹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았다고 하지만 재벌그룹 후손이 아닌 그가 40대 초반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박태준씨의 보이지 않은 후원 얘기가 그래서 당시 금융권에서 회자됐었다. 실제로 박태준씨는 작고할 때까지 MBK파트너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빌딩 사무실에 개인 사무실이 있었다.
김 회장의 가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돌았다. 유력 정치인의 자제라는 ‘뜬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들은 그야말로 소문일 뿐 확인되지는 않았다. 가족 관련해서는 김 회장이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
지금까지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기업들의 자산규모는 2013년 기준 32조원에 이르는데, 이 같은 규모는 단순 계산으로 재계 11위권에 해당하기도 한다. MBK파트너스는 한·중·일의 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키거나 가치를 높인 후 이를 되파는 방식으로 규모를 키워 왔다. 특히 최근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2012년 당시 이곳의 자산규모가 4조원가량으로 알려졌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 3년 새 두 배 이상 자산규모를 성장시켰다. 여기에 홈플러스 자산 5조6000억원을 합치면 13조9000억원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 이는 공정위 대기업 순위 20위인 동부(14조6270억원)보다는 낮고 21위인 현대(12조5660억원)보다 높은 수치다.
MBK는 현재 1호, 2호, 3호 펀드를 운영 중이다. 1호 펀드를 통해 베이징보웨이공항지원, 루예제약(이상 중국), 한미캐피탈, HK저축은행, C&M(이상 한국), 야요이, 다사키(이상 일본),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 갈라TV(이상 대만)를 사들였다.
2호펀드로 사들인 기업은 두산테크팩, 영화엔지니어링, 금호렌탈, 웅진코웨이(이상 한국), GSEI, 뉴차이나생명(이상 중국),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인보이스(이상 일본)이다. 3호펀드는 한국의 네파를 2013년에 사들였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몇 년간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15억1400만달러 인수, 25억7100만달러 매각), 한미캐피탈(1억7320만달러 인수, 5억6010만달러 매각), 금호렌탈(2억3670만달러 인수, 4억1840만달러 매각), 루예제약(2억7800만달러 인수, 5억4600만달러 매각), 갈라TV(8390만달러 인수, 2억120만달러 매각) 등을 인수 후 매각했다. 이들의 투자 대비 자본회수율은 각각 290.8%, 453.4%, 183.0%, 183.7%, 310.4%였다.
이러한 수치만 보면 김병주 회장은 M&A의 귀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햇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기 마련이다. 사모펀드사들은 어떻게 비싸게 되팔까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엄청난 금액으로 판 홈플러스 역시 영국계 대주주에게는 천문학적인 투자 수익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물론 MBK파트너스는 향후 2년간 홈플러스에 1조원을 투자하는 한편 임직원 전원의 고용승계를 실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모펀드는 인수한 기업의 투자가치를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과 같은 생산성 향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때문에 MBK가 또 얼마의 이문을 남기고 되팔지 현재로선 장담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손해보고 팔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외국계 대주주의 ‘먹튀’를 도와주고 토종 기업들이 비싸게 사는 그런 그림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병주 회장의 MBK파트너스가 단순한 기업 사냥꾼의 행보를 보일지, 아니면 토종사모펀드란 이름에 걸맞게 국가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김 회장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병주는 MBK파트너스 회장이다.
자산규모 100억 달러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의 토종 사모펀드(PEF)그룹을 이끌며 인수합병(M&A)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롯데카드 인수전에서도 한앤컴퍼니에 밀려 고배를 마시는 듯 했으나 끝내 뒤집기에 성공했다.
1963년 10월8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10대 때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해버퍼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마쳤다.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하던 박태준 전 총리의 넷째 딸 박경아씨와 유학시절 만나 결혼했다.
골드만삭스 뉴욕본사와 홍콩지사에서 근무한 뒤 살로만스미스바니로 직장을 옮겼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의 40억 달러 규모 외평채 발행작업에 참여했다.
칼라일그룹에 입사해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사모펀드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모펀드회사인 MBK파트너스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대우정밀 매각을 시작으로 수많은 인수입찰에 참여했고 굵직한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비용 절감 등 단기적 처방으로 기업가치를 올려 되파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말도 듣는다.
◆ 경영활동의 공과
△MBK파트너스 1호 펀드 청산
2019년 5월 MBK파트너스는 2005년에 조성한 ‘MBK투자파트너스 1호’ 펀드를 청산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는 2005년 14억 달러 규모로 첫 펀드를 만든 뒤 HK저축은행과 한미캐피탈, 딜라이브 등을 사들였다.
MBK파트너스는 이번 펀드 청산으로 21억900만 달러를 회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막판 역전'으로 롯데카드 인수 코앞
2019년 초 MBK파트너스는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인수전에 모두 뛰어들었는데 5월 극적으로 롯데카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면서 인수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롯데그룹이 209년 4월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을 각각 매물로 내놓자 MBK파트너스는 본입찰에 모두 참여했다.
롯데카드 인수전에는 하나금융지주,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등이 도전장을 냈는데 MBK파트너스는 인수전 막판에 우리은행와 컨소시엄까지 꾸리면서 유력한 인수후보로 떠올랐다.
롯데손해보험도 패키지 매각방식으로 MBK파트너스가 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롯데지주는 롯데카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앤컴퍼니를, 롯데손해보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는 JKL파트너스를 각각 선정했다.
JKL파트너스는 롯데손해보험 인수를 위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데다 2016년부터 손해보험사 인수를 검토하며 전문성을 쌓았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MBK파트너스는 롯데카드를 인수하기 위해 상당한 ‘몸값’을 불렀지만 한앤컴퍼니가 입찰가격, 임직원 고용승계, 롯데그룹과 협력방안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승기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가 한앤컴퍼니에 밀려 체면을 구겼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가 온라인 광고대행사 엔서치마케팅을 KT 종속회사인 나스미디어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KT 새노조에게 검찰 고발된 점이 문제가 되면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순조롭게 통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KT 새노조는 한앤컴퍼니가 자본금 2억6천만 원에 불과한 엔서치마케팅을 영업권 등 회계 장부상 무형자산을 부풀려 공정가액보다 3배나 많은 600억 원에 KT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롯데지주와 한앤컴퍼니는 우선협상기한을 넘기면서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며 '계약 무산설'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결국 롯데지주는 5월21일 롯데카드 우선협상대상자로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을 재지정했다.
△홈플러스 리츠 상장 철회
2018년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빌린 2조3천억 원을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 홈플러스 매장 51개를 리츠(REITs, 부동산투자회사)에 담아 공모상장을 추진했다.
각 매장에서 받는 임대료와 자산 매각차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해주는 방식이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리츠 공모를 통해 1조5천억~1조7천억 원을 조달해 차입금을 상당 부분 상환하려했다.
그런데 2019년 3월 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하자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예상보다 관심이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로 조 단위를 넘는 공모 리츠였던 데다 리츠 상장이 투자자들에게도 낯설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홈플러스 자체적 상장도 공모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유통업계 업황도 좋지 않아 여의치 않은 만큼 MBK파트너스는 시장상황을 봐가며 상장을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앞줄 오른쪽)과 MBK파트너스 임직원들. |
△딜라이브 매각절차 지연
2008년 인수한 ‘씨앤엠(현재 딜라이브)’을 2019년까지도 매각하지 못했다.
MBK파트너스는 국민유선방송투자(KCI)를 통해 2008년 3월 케이블TV회사 ‘씨앤엠(현재 딜라이브)’을 인수했다.
국민유선방송투자는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MKOF)와 MBK파트너스 주도로 설립된 컨소시엄이다. 국민유선방송투자는 딜라이브 인수에 2조 원 이상을 썼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초부터 씨앤엠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매각에 번번이 실패했다.
씨앤엠이 수도권 케이블TV 가입자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지만 유료방송의 주도권이 인터넷방송(IPTV)로 넘어가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점이 매각 실패의 원인으로 꼽혔다.
MBK파트너스는 2016년 4월에 씨앤앰의 이름을 딜라이브로 바꾸고 모바일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딜라이브는 같은 해 11월 글로벌 동영상회사 넷플릭스와 제휴하는 등 콘텐츠사업을 키우는 데에도 힘썼다.
이에 힘입어 딜라이브 가입자가 계속 늘어나자 MBK파트너스와 채권단은 2017년 4월 딜라이브의 매각을 다시 추진했다.
당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혔지만 딜라이브 매각가격이 2조5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매각절차는 지지부진해졌다.
이 때문에 딜라이브의 최대주주인 국민유선방송투자는 2016년에 영업손실 594억 원, 2017년에 517억 원을 보면서 2년 연속으로 적자를 내기도 했다.
MBK파트너스와 채권단은 딜라이브의 분할매각을 결정하고 2017년 말부터 딜라이브의 자회사인 IHQ를 따로 떼어서 파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3월에 현대HCN에 딜라이브의 서초권역을 334억 원에 팔기도 했다.
2019년 KT에 딜라이브를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재도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1개 사업자가 케이블·위성·인터넷TV(IPTV) 등 전체 유료방송 시장의 33% 이상을 점유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다만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는 만큼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재도입되지 않는다면 MBK파트너스의 딜라이브 매각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점쳐진다.
△오렌지라이프와 코웨이 매각으로 투자금 회수
MBK파트너스는 한동안 국내에서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8년에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과 코웨이를 잇달아 매각하면서 투자금 회수에 성공했다.
두 회사 모두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매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던 곳들로 당시에 MBK파트너스가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김병주의 ‘투자의 귀재’ 명성도 흔들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오렌지라이프는 신한금융지주에게 넘겼다.
2018년 9월 신한금융지주는 MBK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던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지분 59.15%를 2조2989억 원에 인수했다.
MBK파트너스는 2013년 ING생명을 1조8400억 원에 인수한 뒤 배당(6139억 원)과 기업공개를 통한 일부 지분 매각으로 1조7천억 원가량을 회수한 만큼 신한금융지주로부터 받는 매각대금은 고스란히 수익으로 갖게 됐다.
MBK파트너스는 2016년 오렌지라이프 매각에 실패한 뒤 2017년 오렌지라이프 기업공개를 추진했다.
상장한 생명보험회사들의 주가가 좀처럼 힘을 못 쓰고 있었던 만큼 2015년 미래에셋생명 이후 2년 만에 상장하는 오렌지라이프 기업공개가 흥행할 수 있을지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오렌지라이프는 고배당 매력과 독보적 재무건전성 지표를 토대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순조롭게 상장에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MBK파트너스는 오렌지라이프 3350만 주를 구주매출 형태로 공모해 1조1천억 원 규모의 자금을 회수했다.
오렌지라이프를 매각한 뒤 한 달 뒤에 또 다시 조 단위의 매각에 성공했다.
2018년 10월 웅진그룹과 스틱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MBK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는 코웨이 지분 22.17%를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금액은 약 1조6850억 원이다.
MBK파트너스는 2013년 1조2천억 원을 들여 코웨이 지분 30.9%를 사들였고 그 뒤 원금 회수를 위해 일부 지분을 매각했다.
코웨이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적극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혔던 곳이지만 MBK파트너스와 웅진그룹이 서로 소송까지 벌이며 갈등의 골이 컸던 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웅진그룹은 2012년 경영권 악화로 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팔면서 코웨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했는데 2017년 MBK파트너스가 지난해 5월 코웨이 지분 4.38%를 다른 기관투자자에 매각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8월 MBK파트너스는 웅진그룹의 코웨이 인수설이 불거지자 곧바로 “웅진에 코웨이 지분을 파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자금력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웅진그룹이 코웨이 인수 후보로 유력하게 언급되는 점도 최대한 비싼 값을 받고 팔아야 하는 MBK파트너스에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런데 코웨이가 시장에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찜’ 해놓은 곳이라는 인식이 퍼진 데다 코웨이 덩치가 워낙 커 다른 구매자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MBK파트너스는 오렌지라이프와 코웨이 매각, 두산공작기계 자본 재조정 등을 합쳐 2018년에만 4조 원 가까이 투자금을 회수했다.
△4호 펀드 설립
2016년 12월 41억 달러 규모의 4호 펀드를 조성했다.
50여개 국가의 연기금과 금융사로부터 투자금을 모집했는데 단일 펀드로는 아시아계 사모펀드 가운데 2위 규모이자 아시아 사모펀드 가운데 가장 짧은 기간에 대형 펀드를 모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MBK파트너스는 2005년 10억 달러 규모의 1호 펀드를 시작으로 2008년 15억 달러 규모의 2호 펀드, 2013년 26억7천만 달러 규모의 3호 펀드를 설립했다.
다만 1호~3호 펀드에 모두 참여했던 국민연금은 4호 펀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딜라이브 등 MBK파트너스의 투자 실패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됐다.
▲ MBK파트너스 운용자산 규모. |
△기업 인수전 실패와 성과
2005년 7월 MBK파트너스 설립 후 처음으로 뛰어든 인수전인 ‘대우정밀’ 입찰에서 효성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고배를 마셨다.
2006년 6월 MBK파트너스가 한국씨티은행의 자회사인 ‘한미캐피탈’을 인수했다. 씨티은행은 한미캐피탈 주식 535만5603주(지분율 35%)와 113억2500만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MBK파트너스에 넘겼다.
2006년 8월 MBK파트너스는 14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대만 최대 케이블TV업체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CNS)' 인수전에 뛰어들어 같은 해 10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 인수전에는 MBK파트너스 외에 KKR, CVC아시아퍼시픽, 칼라일그룹, TPG뉴브릿지, 맥쿼리은행, 골드만삭스 사모펀드 등 세계적 사모펀드들이 참여했다.
2008년 3월 국민유선방송투자(KCI)가 ‘씨앤엠(현재 딜라이브)’을 인수했다. 국민유선방송투자는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MKOF)와 MBK파트너스 주도로 설립된 컨소시엄이다. 국민유선방송투자은 씨앤앰 인수에 2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다.
2009년 5월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을 인수했다. 지분 인수금액은 14억 달러로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이뤄진 기업 인수합병계약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2009년 11월 ‘금호렌터카‘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며 우선협상대상자로 KT와 MBK파트너스가 구성한 KT-MBK컨소시엄이 선정됐다.
2010년 3월 KT를 상대로 금호렌터카 인수를 마무리했다. 인수금액은 3천억 원이며 KT와 MBK파트너스가 50대50으로 투자했다.
2012년 5월과 6월에 각각 ‘웅진코웨이’와 '하이마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웅진코웨이 우선협상자에는 GS리테일이 선정됐고 하이마트는 MBK파트너스가 인수 우선협상자에 선정됐으나 실사 후 포기했다.
2012년 7월 웅진그룹이 KTB사모펀드와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웅진코웨이를 1조2천억 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8월 MBK파트너스는 웅진코웨이 지분 30.9%를 전량 매입한다는 계약을 웅진그룹과 체결했다.
2013년 1월 일본 3위 커피프렌차이즈업체인 ‘고메다(KOMEDA)’ 지분 100%와 경영권 양수도계약(SPA)을 체결했다. 그 뒤 고메다의 상장을 통해 투자원금의 6배를 넘어서는 수익을 올렸다.
2013년 1월 ‘네파‘의 지분 53%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대금은 5500억 원이었다.
2013년 5월 ING생명 인수전에 참여해 인수 우선협상자에 선정된 후 같은해 12월 1조8400억 원에 인수했다.
2013년 7월 국민연금이 사모투자펀드(PEF) 분야 운용사 3곳으로 MBK파트너스, 유니슨캐피탈, 보고펀드를 선정했다.
2015년 6월 SK그룹의 계열사인 ‘SK루브리컨츠’를 인수하기로 했다. MBK파트너스는 SK루브리컨츠 인수대금으로 2조5천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매각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SK루브리컨츠 인수는 무산됐다.
2015년 8월 ‘홈플러스’ 인수전에 참여해 9월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인수대금은 7조2천억 원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다.
2016년에도 MBK파트너스는 국내외의 여러 기업을 인수했다. 기업과 인수금액을 살펴보면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사업부 1조1300억 원, 홍콩 인터넷업체 워프T&T(Wharf T&T) 1조3천억 원 등이다.
△칼라일그룹 재직 시절
2000년 11월 김병주를 앞세운 칼라일그룹은 ‘한미은행’ 지분 36.55%를 4억1230만 달러에 사들였다. 칼라일그룹 사상 단일 규모로 가장 큰 거래이자 최초의 금융회사 투자였다.
김병주는 입사한 지 1년 만에 이 계약을 성사하며 국내 기업 인수합병시장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5년 3월 한국은행은 외국 투기자본 폐해의 구체적 사례로 칼라일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를 뽑았다.
당시 은행법에는 외국인이 금융기관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기 위해서는 외국 금융회사이거나 외국 금융회사의 지주회사여야 하는데 칼라일그룹은 자격이 없었다. 칼라일그룹은 미국계 투자은행 JP모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주주가 JP모건이 되는 조건으로 한미은행을 인수했다.
△골드만삭스 재직 시절
1994년 골드만삭스 재직 시절에 포항제철이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병주는 국내 기업들이 어려워하는 구조화금융 거래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해결사로 유명했다고 전해졌다. 구조화금융은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시장성이 높은 증권으로 바꾸는 업무다.
스스로 골드만삭스 시절을 “밤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던 시절”이라며 “코피를 흘린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고생했다고 한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고 세계 금융시장이 누구에 의해 요동치는지 등 돈의 흐름을 이해했다고 스스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비전과 과제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
2018년에 4조 원대 규모의 투자금을 성공적으로 회수한 만큼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롯데카드 외에 새롭게 투자할 대형 매물을 국내외에서 찾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네파, HK저축은행, 영화엔지니어링, 고메다(일본), 뉴차이나생명(중국) 등 MBK파트너스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도 시장상황에 따라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인수후보이자 매각자로서 국내외 인수합병시장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MBK파트너스는 2019년 2월 초콜릿기업 고디바의 아시아태평양사업부를 인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대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10억 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MBK파트너스는 현재 글로벌 산업용가스 제조회사 린데그룹의 한국 자회사인 린데코리아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넥슨 인수전에도 넷마블·중국 텐센트 등과 컨소시엄을 꾸려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잇달아 지분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만큼 MBK파트너스의 움직임도 한층 분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여곡절 끝에 승기를 잡은 롯데카드 인수전도 순조롭게 마무리지어야한다. 한앤컴퍼니와 달리 MBK파트너스는 오렌지라이프 등 금융회사를 인수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금융당국의 대주주적격성 심사 등은 별탈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우리은행과 컨소시엄을 맺고 롯데카드 인수전에 뛰어든 만큼 자금회수 자체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최근 카드업계가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및 간편결제 경쟁 심화 등으로 악화되고 있는 만큼 롯데그룹 및 우리은행과 함께 롯데카드의 수익성을 끌어올려 기업가치를 불리는 데 힘쓸 것으로 점쳐진다.
다른 투자처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데도 고삐를 죄야 한다.
MBK파트너스의 1호 블라인드펀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딜라이브 매각은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논의에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만 이 규제가 재도입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KT에 순조롭게 넘길 가능성이 높다.
MBK파트너스의 2호 블라인드펀드에 남아있는 아웃도어 의류기업인 ‘네파’도 투자금을 빨리 회수해야할 투자처로 꼽힌다.
MBK파트너스는 2013년 1조 원가량을 투자해 네파 지분 94.2%를 인수했다. MBK파트너스는 이 가운데 절반인 5천억 원을 인수금융을 통해 조달했다.
그러나 네파는 아웃도어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실적이 뒷걸음질하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홈플러스 리츠 상장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재추진 시기는 정하지 않은 채 당분간 롯데쇼핑 리츠 등 다른 리츠의 공모 진행상황을 살피며 숨고르기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 평가
김병주는 여러 건의 대규모 인수전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둬 '미다스의 손'이라 불린다.
1조 원 이상의 대형 인수합병에 주로 베팅해 ‘규모의 경제’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MBK파트너스가 펼치는 수익성에 치중한 경영 때문에 ‘좋지 않은 손’이라 불리기도 한다. 인수합병을 주로 하는 사모펀드는 보통 ‘기업 사냥꾼‘이라 불리는데 MBK파트너스도 이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 단위의 기업을 인수하고 적당한 시기에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김병주의 판단력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냉철한 승부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는 회사의 가치를 파악한 뒤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하면 깊게 고민하지 않고 회사를 인수한다.
'MBK'라는 영문의 회사명은 김병주의 영문 이름인 ‘마이클 병주 김(Michael Byungju Kim)’에서 따왔다.
MBK파트너스는 설립 당시 “진짜 아시아계라 말할 수 있는 첫 기업 인수합병 펀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BK파트너스가 '반 외국자본' 정서로 한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면에 외국자본 비율이 높아 외국계 사모펀드로 취급받기도 한다. MBK파트너스는 국내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만 종종 ‘외국자본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김병주 스스로는 사모펀드 역사상 최초로 한국 중국 일본을 포괄하는 동북아 사모펀드를 목표로 MBK파트너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MBK파트너스의 투자전략은 대체로 경기 흐름을 덜 타는 내수기업 가운데 안정적 수익을 내는 소비재회사를 사들여 투자차익을 내는 것이다.
샌디 웨일 전 씨티그룹 공동회장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김병주를 놓고 “마이클(김병주)은 마땅히 성공해야 할 젊은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가 거느린 회사 수가 많아지면서 기업의 인수합병에는 강하나 되파는 데는 약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기업 상당수가 노사갈등을 겪었다. 이 기업들이 채택한 고배당정책도 비판에 대상에 종종 올랐다.
책읽기를 좋아해 어린 시절 문학도를 꿈꿨다고 한다. 취미를 물어보면 주저하지 않고 ‘책읽기’를 꼽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학을 간 데는 자녀교육에 열정적이었던 아버지의 뜻이 많이 작용했다고 한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았으며 대학 시절 미국대학 우등생들의 친목단체인 파이베타카파(Phi Beta Kappa) 멤버이기도 했다.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영어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2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역대 하버드대학교에 기부한 동양인 가운데 최대 금액으로 알려졌다. 하버드대학교는 그 돈으로 김병주의 아버지인 김기영씨 이름을 딴 ‘KYKIM빌딩’을 지었다.
2011년 12월 한국 리틀야구연맹에 3년 동안 기부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영관 한국 리틀야구연맹 회장은 박태준 전 총리의 장례식장을 찾아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막내사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함께 연간 1천만 원씩 3년 동안 리틀야구연맹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김병주의 차남 김재민군은 2014년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이 29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오를 때 큰 활약을 펼쳤다.
◆ 사건사고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
△홈플러스 노조와 갈등
2015년 9월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에 반대해 홈플러스 노조가 들고 일어났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홈플러스의 자산을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조는 또 김병주가 홈플러스 노조와 대화를 거부하고 최저임금에 따른 시급을 주려한다며 반발했다. 노조는 “단기적 투기자본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MBK파트너스는 당시 인수가 마무리되지 않았던 만큼 노조와 대화 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같은 달 김병주는 홈플러스 인수 건으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김병주는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홈플러스 노조는 2018년 4월25일 부천 중동점 매각에 반대하면서 서울시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시위하기도 했다.
노조는 “22년 동안 직원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부천 중동점을 노사 사이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매각하려는 MBK파트너스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고배당 논란
홈플러스는 2015년 영업손실 1490억 원을 보면서도 한국리테일에 200억 원가량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한국리테일은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하기 위해 세운 회사다. 인수기업이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도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배당금은 한국리테일에 우선주를 가지고 있는 연기금에게 돌아갈 뿐 MBK파트너스는 단 한번도 배당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연기금 등에 배당한 뒤 남은 배당금은 대부분 이자비용과 차입금 상환용도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코웨이에서도 배당금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졌다.
코웨이의 배당성향은 웅진그룹 계열사일 때 50%를 밑돌았지만 MBK파트너스가 2013년 인수한 뒤부터 배당성향이 60~80%로 높아졌다. MBK파트너스는 코웨이를 인수한 뒤 2016년까지 배당금으로 2552억 원을 받았다.
배당금 논란이 이어지면서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기업의 실적과 관계없이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자 부담을 줄이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씨앤앰 사태
2014년 7월 희망연대노조 씨앤앰 지부가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노조 측은 “씨앤앰의 진짜 사장인 MBK파트너스가 노동자 109명의 부당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씨앤앰은 종합유선방송회사인데 이후 딜라이브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4년 11월 씨앤앰 노동자 2명이 광화문 서울신문 옥외광고판 위에서 109명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외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노조 측 관계자 200여 명이 김병주의 집 앞을 찾아가 씨앤앰 사태 해결에 김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했다.
여론이 악화되고 정치권도 관심을 보이는 등 문제가 커지자 MBK파트너스는 신설 협력회사를 세워 노동자 90여 명을 복직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했다.
◆ 경력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왼쪽)이 2010년 MBK장학생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한 장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다. |
대학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서 2년 정도 근무했다.
골드만삭스를 그만두고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다시 골드만삭스로 돌아와 뉴욕 본사, 홍콩 지사 등에서 4년 반가량 근무했다.
1997년 살로만스미스바니로 직장을 옮겨 3년 정도 근무했다.
1998년 외환위기(IMF) 당시 한국 정부의 40억 달러 외평채 발행작업에 참여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사모펀드 운용사였던 칼라일그룹에 입사했다.
2000년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사모펀드(PEF)시장에서 주목받았다.
2005년 칼라일그룹에서 독립해 사모펀드회사 MBK파트너스를 설립하고 1조 원 규모의 1호 펀드를 조성했다.
2007년 MBK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2019년 현재 MBK파트너스의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 학력
미국 해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 가족관계
김병주는 박태준 전 총리의 막내딸 박경아씨와 결혼했으며 2명의 아들이 있다.
차남은 김재민군이다. 김군은 한국 리틀야구대표팀 소속이다. 2014년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이 29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오를 때 큰 활약을 펼쳤다.
김병주의 동서는 윤영각 전 파인스트리트 회장이다. 윤 회장은 박태준 전 총리의 맏사위다. 국내 대표 회계컨설팅업체 삼정KPMG를 20년 동안 이끈 후 물러나 2014년 사모펀드 회사인 파인스트리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 상훈
2012년 포춘코리아가 선정하는 '2012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에 선정됐다.
2015년 블룸버그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가운데 42위에 올랐다.
◆ 기타
2018년 포브스코리아의 한국 50대 부자 순위에 따르면 재산 1조1133억 원을 보유해 43위에 올라있다.
2013년 10월 국회에 따르면 김병주의 월 급여는 9억7200만 원이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116억 원이 넘으며 성과보수는 제외한 금액이다.
◆ 어록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각자 개인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주변의 누군가에게 자신이 받은 도움을 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MBK장학재단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스티븐 러는 아시아의 ‘스페셜시츄에이션 업계에서 전문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스페셜시츄에이션 분야 진출에 공동대표로 함께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아시아 사모투자 리더십 강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2017/09/25, MBK파트너스에 스티븐 러 전 도이치뱅크 채권·스페셜시츄에이션부문 공동대표를 파트너로 영입한 뒤 더벨 기사에서 소감을 밝히면서)
“아시아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답은 시장에서 나와야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망가졌다. 미국에서 자라는 풀을 꺾어 한국에 가져와 심는다고 그 풀이 자라날 순 없다. 싱가폴의 리콴유 총리가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닌 아시아식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아시아에선 아시아식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2009/06/18,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 세계경제포럼에서)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은 세계 10대 경제권에 속하는 지역이며 아시아-태평양지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경쟁이 비교적 적고 기업 가치는 낮게 평가돼 있다.” (2005/03, MBK파트너스를 만들며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한미은행 투자는 칼라일그룹의 전 세계 현금 투자액 가운데 가장 큰 액수였다. 한국 경제가 회복할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투자할 수 있었다.” “칼라일그룹은 미국 다음으로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미은행 매각대금을 아시아지역에 그대로 남겨둔 뒤 대부분 한국에 재투자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전히 한국은 매력적 시장이다.” (2004/02/23,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의 합병을 발표한 뒤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칼라일그룹은 한국 투자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칼라일 그룹의 아시아 본사는 서울에 있다. 칼라일그룹은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가장 유망한 투자처라고 생각한다." (2003/10/15, LG와 함께 하나로통신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기자회견장에서)
"지금 당장은 충격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01/03/30, 한미은행장 교체를 결정한 뒤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선진국에서는 이사회 의장도 중요한 자리다.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일을 한다. 독특한 시각인지 모르지만 서양 방식에는 분명 배울 것이 있다. 그렇다고 한국 현실을 무시하고 밀어붙이진 않을 것이다.” (2001/03/15, 한미은행장 교체 관련해 동아일보와 인터뷰 가운데)
“새 집의 주인이 된 지난 2주밖에 안됐다. 아직 새집을 제대로 둘러보고 흠집을 수선하는 일도 못했다. 또 다른 새집을 둘러보는 건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2000/11/29, 한미은행 인수 당시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합병만이 자산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합병을 반대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주주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 한미은행 인수 당시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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