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김씨 장군터와 물난리
조선 22대 정조 21년 정사년(丁巳年, 1797) 7월 23일 온양읍 남창리 현온양초등학교 자리에 고령김씨 공수파(公須派)가 집단적으로 살고 있었는데, 홍수로 물죽음 당한 날이다.
대운산 기슭(굴바우 뒤)장군터에 고령김씨 선영산소가 있었다. 당시 문중 원로 몇 명이 경북에 사는 앉은뱅이 지관을 불러 그 산소를 보이니 지관이 "이 산소를 보니 후손들이 큰 화를 면하기 어렵다"고 예언했다고 한다.
문중의 어른들은 지관의 말을 듣고 화가나서 지관(앉은뱅이)을 산에 버리고 하산했다.
일설에는 당시 운화리에 살고 있던 학성이씨가 이 지관을 업고 웅촌면 돌내까지 모셔다 주었다고 한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이 지관은 이곳에 학성이씨의 터전을 잡아주고, "자손 대대로 벼슬이 떨어지지 않을것이며 글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한다.
고령 김씨가 집단으로 사는 지금의 온양초등학교 자리 마을에 어느 날 쥐가 전부 산으로 올라가므로 스님 한 분이나타나 홍수가 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또 어떤 과객이 지나가면서 남창천에 서있는 저버드나무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겠다고 예언했다.
이후 큰 비가 와서 당시 하천가에 생활하고 있었던 고령 김씨들은 물을 피하기 위해 버드나무 위로 올라가서 목숨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워낙 비가 계속되고 대운산 못의 둑이 붕괴되어 버드나무가 뿌리 채로 뽑혀 떠내려 갔으므로 버드나무에 올라 물난리를 피하려고 한 고령 김씨의 많은 사람들은 화를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령 김씨 종손은 서당에 글을 배우러 갔기때문에 이 난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하며, 또 어떤구전은 외가에 다니러 갔기 때문에 이 물난리를 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