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피아노 5중주
Piano Quintet in E flat Major, Op.44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슈만과 클라라>
1856년 7월 23일 슈만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브람스와의 여행에서 갓 돌아온 클라라는 서둘러 그를 찾았다. 클라라는 썼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그의 팔로 무서운 힘으로 나를 껴안았다. 그 때 그는 이미 팔다리를 전혀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어떠한 보물을 준다해도 나는 이 포옹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7월 29일 슈만은 눈을 감았다. 죽는 순간까지 몇 시간 동안 고통스런 경련 끝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곱게 죽지 못하는 그 심성, 그 격렬함, 그는 47세의 짧은 생을 그렇게 마쳤다. 그러나 저러나 그가 가는 마지막에도 있는 힘을 다해서 껴안았던 여인, 그렇게도 사랑한 여인 클라라는 도대체 어떤 여인일까.
Schumann: Piano Quintet in E-flat major, op. 44
Kotaro Fukuma and the Ariel String Quartet
소녀 시절의 클라라 비크
(Clara Wieck 1819~1896)
세기의 두 천재가 나이를 달리 하면서 아래 위로 세월을 나누며 사랑했던 여인 클라라. 브람스는 열네살이나 연하였다. 남편인 슈만은, 응큼해라, 클라라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 두었다가, 클라라가 성장한 다음에 클라라의 아버지인 비이크의 무서운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를 앗아왔다. 법정소송까지 불사한 불같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는 클라라보다 벌써 아홉이나 많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복을 많이 받은 여인이다. 그럴까. 아닐 것이다. 천재들의 사랑이 어디 간단하고 순진했을까. 모를 일이다. 후세의 우리들이 단지 이러쿵 저러쿵 하기 좋은 말로 떠들 뿐일까. 그녀 자신도 당대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으니 슈만 정도 아니면 누구라도 마음에 들었을까. 한창 무르익었을 나이에,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달랠수 있었을까. 또 그 때 나타난 젊은 천재 브람스의 뜨거운 열정을 그녀는 어떻게 소화했을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슈만은 19세기 전반 낭만주의가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그 자신이 위대한 낭만주의자로서 한 세상을 풍미한 천재다. 수많은 천재가 있지만 나는 슈만이야말로 진정한 천재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치솟아 오르는 감정의 분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악상. 미처 손으로 다듬을 수조차 없어 그냥 터져야만 했던 그의 천방지축의 악곡들. 그러면서도 후세의 모든 음악의 전범이 될 만큼 시도되었던 새로운 형식들. 그 뿐인가 필요하다면 달아오르는 격정을 휘어잡고, 그 격정을 틀이 꽉 잡힌 고전주의 형식에 끼워 맞출 줄도 알았던 사나이. 그리고 자기만이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천재를 한 눈에 알아보는 비범함. 멘델스죤은 슈만에 의해 인정이 되고, 쇼팡과 브람스는 슈만 덕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베르트도 그에 의해 새롭게 발굴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천재가 사랑을 썼다. 사랑을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에게 곡을 헌정했다. 바로 피아노5중주 op.44이다. 슈만이 1840년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클라라와 결혼하는데 성공하고, 두 해가 지나 한창 사랑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인 1842년, 이 곡은 작곡되었다. 이 해에는 현악4중주 세 곡과 피아노4중주 한 곡을 이미 작곡하고 있었고 피아노5중주는 마지막 작품이었다. 역시 사람이 행복할 때 최고의 걸작이 나오는가. 사랑도 앞서 이야기했던 브람스의 사랑과는 사뭇 다르다. 같은 여인을 두고 쓴 사랑이지만 하나는 이룰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쟁취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실패한 사랑이 아니라 성공한 사랑이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랑을 주고 또 그 사랑이 받아들여질 때 완전한 사랑이 되는 것이고, 그 때의 기쁨이야말로 진정한 환희다.
슈만의 피아노5중주에는 이러한 기쁨과 환희가 전곡에 넘쳐 흐른다. 그리고 이 작품이 더욱 걸작이 되는 것은 이러한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을 슈만답지 않게 고전적인 소나타형식에 엄격히 맞추어 넣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감정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잘 견디어 내며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곡도 역시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은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게 헌정 되어,
그녀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슈만은 젊은 시절 때때로 실내악 작품을 작곡하긴 했지만 184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장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해 6월과 7월 그는 세 곡으로 구성된 현악 4중주 Op.41의 작곡을 끝마쳤고 10월에는 피아노 5중주 E플랫 장조 Op.44를, 11월에는 피아노 4중주 E플랫 장조 Op.47을 작곡했다. 그리고 1843년 1월에는 후일 개정을 한 환상소곡집 Op.88과 안단테와 변주곡 Op.46의 초기 버전을 작곡했다. 이는 1839년부터 친구인 프란츠 리스트가 언젠가는 슈만이 피아노만으로 만족할 수 없으리라 예견하며 3중주, 4중주, 5중주, 6중주 혹은 7중주의 실내악을 작곡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에 고무된 것으로서, 이 시기는 가히 슈만에게 있어서 “실내악의 해”라고 부를 만하다.
1841년 11월 슈만은 아내인 클라라와 함께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환상곡에서 발전시킨 교향곡 1번과 전 해에 쏟아냈던 가곡들을 선보였고 이듬해 2월까지 브레멘과 올덴부르크, 함부르크도 방문했다. 당시 그는 아내의 피아노 연주를 보조하는 듯한 자신의 역할에 일말의 불만을 품었다. 그런 까닭에 3월에 클라라는 한 달 동안 코펜하겐으로 연주회 여행을 떠났고, 그 사이 슈만은 혼자서 라이프치히로 되돌아왔다.깊은 우울감에 빠져 작곡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대위법과 푸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공부했다. 특히 베토벤을 연구한 뒤 그는 보다 상징적인 음악형식에 자신감을 갖게 되며 실내악 작품을 본격적으로 작곡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순수 현악기를 위한 실내악 작품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슈만은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에 대한 열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피아노가 등장하지 않는 실내악 작품에는 주제나 변형부와 같은 대목에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등장하고, 피아노가 수반된 실내악에서 현악기들은 피아노를 모방하거나 뒷받침하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피아노 5중주와 4중주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실상 슈만의 실내악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서 이 피아노 5중주는 내용과 형식이 가장 이상적으로 화해를 이루고 있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음악적 내용뿐만 아니라 이 작품으로 인해 부부 사이도 다시금 화해를 이루게 되었다. 슈만은 잠시나마 부인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이 미안했던 탓인지 이 작품을 클라라에게 헌정하여 자신의 변치 않은 사랑을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차례 수정을 하여 1843년 1월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부인 클라라의 연주로 공개 초연(1842년 11월 29일 슈만의 집에서 먼저 연주된 바 있다)되었다. 급격한 개혁가였던 리스트는 이 작품을 “너무 라이프치히적이다”라고 평가하며 지나치게 고전적인 모습을 달갑지 않아 했지만, 이 작품의 대중적인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갔다.
<피아노 5중주는 피아노와 현악 4중주(바이올린2,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각기 다른 개념의 회화가 모여 있는 것 같다. 일반적인 고전주의적 실내악의 악장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이 각 악장이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네 개로 구성된 일련의 서정적인 세밀화를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창조적인 시성을 음악으로 환원하기에 이렇게 큰 규모의 형식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며 독립적인 세계를 환상적으로 이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위풍당당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 장송 행진곡의 2악장, 환상곡풍의 스케르초인 3악장, 열정적인 푸가토인 4악장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젊은 시절 피아노 작품인 나비나 유모레스크, 크라이슐레리아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적인 스토리-텔링에 비견할 만하다.
어찌되었던 슈만은 피아노와 현악 4중주가 함께 하는 피아노 5중주라는 실내악 작품을 처음으로 작곡한 위대한 음악가로서, 그의 피아노 5중주 E플랫 장조는 피아노가 가세한 실내악 장르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는 명곡임은 의심할 바 없다. 후일 브람스를 비롯하여 드보르작, 포레, 엘가, 레거, 쇼스타코비치 등등이 슈만의 피아노 5중주를 본받아 이 형식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Robert Schumann (1810-1856) Piano Quintet in E flat major, Op. 44
1. Allegro brillante
2. In modo d'una marcia. Un poco largamente
3. Scherzo: Molto vivace
4. Allegro ma non troppo
Performers: Igor Andreev (piano),
Mateusz Smól (violin), Flurina Sarott (violin)
Grigory Maximenko (viola)
René Camacaro (cello)
Arthur Rubinstein - Robert Schumann Quintet in E flat, Op. 44
Guarneri Quartet
Arnold Steinhardt, John Dalley, Violins
Michael Tree, Viola
David Soyer, Cello
1악장 알레그로 브릴란테(Allegro brillante)는 소나타 형식의 모범과 같은 곡으로서 두 개의 주제가 등장한다. 1주제는 E플랫 장조로서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는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이고 2주제는 관계조인 C단조로서 서정적이고 겸허하며 온화하다. 피아노는 이 두 개의 주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며 현악기들 위에 군림하는 주인공으로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2악장 행진곡 풍으로: 다소 느리게(In modo d’una marcia: Un poco largamente)는 슈만의 장송 행진곡으로서 실내악의 걸작으로서의 풍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분히 주제적인 성격인 세 개의 주요 악상(터벅거리는 듯한 음울한 리듬-조용히 침잠하는 낭만적인 선율-역경을 딛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빠른 선율)이 엄격한 형식을 통해 전개되며, 이러한 엄격함은 전체에 진지하면서도 비통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비극적인 아지타토를 거친 뒤 피아노의 간헐적인 리듬은 차츰 조용해지며 마침내 화음의 빛의 구름 속에서 영롱하게 해체된다.
3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Scherzo: Molto vivace)는 상승하는 활기찬 스케일과 이에 대한 거울로서 하강 스케일이 대비를 이루는 주제가 이례 없는 활력을 더하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ero ma non troppo)는 첫 악장의 주제를 다시 한 번 포착하여 모든 악기가 동원되어 열정적인 푸가토를 연주하는 악장으로서, 슈만 특유의 극도의 긴장상태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을 작곡한 뒤 고전형식에 자신감을 얻은 슈만은 보다 큰 규모와 장대한 내용의 작품, 즉 오페라에 눈을 돌리게 된다.
첫댓글 음악 듣기 아주 좋게 올려 놓으셨네요.
녹음 상태가 깨끗하고 연주도 참 좋았어요.
감상 아주 잘 했어요.^^
감사합니다.
둘러보시다가 혹시 문제가 되는 것(소리가 안나오거가 자료 오류 등) 있으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반짝반짝 빛남이 튕겨나오는 듯한 즐거운 곡입니다.슈만의 서정성이 더욱 드러난 곡인 것 같습니다....잠깐씩의 번민스러운 부분도 오히려 밝음을 더해 주는 듯합니다..
베토벤 만큼이나 인간의 도전과 열정이 느껴지는 슈만입니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아끼는 작품이에요
어릴적 교과서로만 들어온 이름들과 작품들을 즐길수 있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