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시119:105-112
- 이야기 설교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다.
천국에서 보니 천사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다.
무엇을 포장하고 있습니까? 물으니 - 사람들에게 줄 복을 포장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복이 사람들에게까지 잘 전해지도록 포장을 해서 세상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천사가 하는 말이 "사람들은 고난이라는 껍데기만 보고 그 안에 든 복을 알아보지 못하고, 원망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였다,
복을 포장하는 포장지는 고난아라는 것이다.
문제는 고난의 포장지 안에 담겨 진 복을 알지 못하고 고난을 싫어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당한다. 중요한 것을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복을 포장하는 포장지는 고난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저주를 포장한 포장지가 고난이라고 생각하는가?
고난의 포장지애 복이 싸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고난의 포장지에 저주가 싸여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성도 여러분!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고난을 당할 때 원망하고,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고난을 당하느냐고 갈등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인은 고난이 매우 심하여 고통을 받고 있었다.
107절 -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다는 말하는 것은 – 시인이 얼마나 큰 고난으로 고통을 맏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 자신의 힘으로 살아날 수 없는 죽을 지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난이 매우 심하고 죽을 지경에 놓인 것은 생명의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109절 -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난이 매우 심하고 죽을 지경에 놓인 것은 악인의 올무 때문이다.
110절 -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다는 것은 사람이 언제 올무에 빠질지 모르고 한번 올무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 여려분! 여러분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이 무엇인가?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원망하는 성도는 없는가?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죽을 지경에 놓인 성도는 없는가?0
생명의 위기를 만나고 악인의 올무에 빠져서 신음하는 성도는 없는가?
고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내 힘으로 벗어날 수 없어 몸부림치고 있는 성도는 없는가?
시인은 고난으로 죽을 지경에 놓였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다.
107절 -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인은 고난이 매우 극심할 때 –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고난으로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나를 살아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의 말씀이다.
1)주의 말씀은 살아나게 하는 말씀이다.
살아나다 (헬)하야 – 살다, 생명을 주다, 회복시키다.
“살다”의 반대말은 “죽다”이다.
모든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죽고, 병들어 죽고, 사고로 죽는다.
이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많고 죽을 일이 쌓여 있다.
죽을 일이 쌓여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 졸지에 죽을지 모른다.
항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
죽을 일이 쌓인 세상에서 누가 우리의 생명을 보장하고 우리를 살릴 수 있는가?
죽을 일이 쌓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병원인가? 좋은 보약인가?
아니다.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고 우리를 살릴 수 없다.
극심한 고난으로 죽을 지경이 놓인 사람을 살리는 것은 주의 말씀이다.
죽을 일이 쌓여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살게 하는 것은 주의 말씀이다.
행 5장에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 가옥에 갇혔다.
놀라운 일은 밤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옥문을 열고 끌어내면서 하는 말씀이 “가서 성전에 서서 샘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였다.
제자들은 박해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였다.
중풍병자를 살리고,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병들어 죽은 도르가를 살렸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다.
주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여 살리는 말씀이다.
죽은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었다.
2)주의 말씀은 나의 등이요 빛이다.
105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등과 빛의 반대는 어둠과 절망이다.
고난이 심히 극심하면 사람은 눈앞이 캄캄해 지고 절망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간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절망하는 존재들이다.(눅1:79)
어둠과 죽음의 그들에 앉아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빛이다.
예수님이 빛이고 주의 말씀이 빛이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에 빛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은 예수님이고 주의 말씀이다.
엡5:8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으로 고백하는 성도가 되자.
주의 말씀이 빛이 되어 여러분들의 어두운 인생을 환하게 밝혀 주고 힘차게 빛가운데 걸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은 고난을 당하며 산다. 이 세상에 고난을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로 인한 고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당하는 애매한 고난, 사랑하는 사람이나 이웃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 실패로 인한 고난, 예수님을 믿음으로 당하는 고난 등 수많은 고난을 당하며 살아간다.
고난은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고난당하는 사람에게는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고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해 주신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당하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
하나님이 보내 주신 고난의 포장지는 예수님이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인생은 고난이다.
저주와 질고를 담당한 고난, 죄를 사하는 고난,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위한 고난
사람들에게 멸시는 받고 십자가에 버림받은 고난, 채찍에 맞음으로 살찢기시고 피흘리는 고난,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죄를 짊어지고 고통당하시는 고난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은 고난의 포장이 안에는 복이 담겨있다.
예수님의 고난의 포장지 안에는 생명, 죄사함, 구원, 평화, 승리, 영광, 천국 등의 복이 있다.
벧전4:13 -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은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나의 정제성 –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을 살다』 장 칼뱅 지음
성도들은 고난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버티면서 진리를 경험한다.
그들의 힘만으로 고난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고난 중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능력의 공급하심을 경험한다.
그럴 때 그들의 소망이 점점 강해진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을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진리를 경험하므로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능력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므로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111절 -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주의 증거는 주의 말씀이다.
주의 말씀을 나의 기업으로 삼으면 주의 말씀이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된다.
고난을 받을 때 주의 말씀을 나의 기업으로 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고난 중에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고 내 마음에 즐거움이 된다.
1985년 5월 어느날,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철학박사 학위수여식에 낮선 동양인 한 사람이 감격적인 눈물을 흘리며 참석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전재경, 나이는 50세, 특별히 그가 눈길을 끈 것은 여는 사람과 달리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충남 부여에서 여섯째로 태어나 그는 정상적인 아이로 자라다가 7살이 되었을 때 당시 유행하던 안질을 앓다가 그만 실명하고 말았다.
실명을 한 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고통과 불행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원망하며 살던 그가 서울 맹아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건국대 역사지리학과에 입학하였다.
공부하던 중에 믿음이 좋은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아내의 도움으로 논문을 쓰고 철학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의 인생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것은 확고한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고난의 고통이 영광이 되고 즐거움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 떼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성경에서 찾았다.
시119:105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이 빛으로 고백한 그는 고난의 포장지에 담긴 복을 받았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스탈린 시대 러시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수년간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고난은 죽을 지경의 고난이었고,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고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주의 말씀을 지키므로 고난에 포장된 복을 믿고 살았기 때문이다.
“감옥아, 내 너를 축복하노라! 나는 거기서 내 영혼을 먹였으며, 주저 없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감옥아 내 너를 축복하노라, 내 인생에 네가 함께 있음이여!”
어떻게 감옥을 축복하며, 고난의 현장을 축복할 수 있는가?
주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을 믿은 그는 주의 말씀대로 살며 주의 말씀으로 축복을 하였다.
성도 여러분! 인생에는 고난이 있고,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을 당한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고난을 받고 있는가?
내가 받고 있는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난의 포장지에 복이 담겨 있음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고난의 포장지에 담긴 복을 믿는다면 – 주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하자.
106절 -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을 지키기로 멩세하고 굳게 정하자.
112절 -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주의 말씀을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을 마음에 결심하자.
어떤 고난을 받거 있을지라도 주의 말씀을 지키는 성도는 고난의 포장지 안에 담긴 복을 받는다.
고난의 포장진인 예수님 안에 있는 무한하고 엄청난 복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므로 내가 당하는 고난이 나에게 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