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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관련자료 스크랩 말러 대지의 노래
오세효 추천 0 조회 110 09.02.17 16:1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죽음의 문턱에서 부르는 삶의 찬가
“대지의 노래”

과거에, 왜 음악을 듣냐고 누가 물어오면 음악이 내게 안식과 잠시나마 영혼의 고양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음악 감상에 있어서 강한 감동에 압도당하거나 몰아지경의 황홀경에 빠지기 보다는 잔잔히 다가오는 감동에 동참하고 싶은 쪽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그너의 음악은 애초에 음악 감상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첫 째는 바그너를 들을 시간에 다른 곡을 많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둘 째는 바그너 음악이 주는 감동이 너무 압도적(overwhelming)이었기 때문이다. 즉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 째는 곡은 차치하고라도 줄거리 자체가 편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난감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바그너를 모짜르트 만큼 좋아하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제일 좋아했던 소설이 불가해한 인생의 어두운 면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도스또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과 “악령” 등이었지만 적어도 음악에서는 늘 맑고 밝고 명료하고 합리적인 쪽을 좋아했다. 그리고 다 드러내 놓기 보다는 살짝 감추는 약간은 절제된 것을 좋아했다. 그 때의 나를 표현하자면 모짜르티안 또는 베토베니안(맑은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이라고 할 만 했다. 어차피 비엔나 고전주의악파의 음악은 평생을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까지가 주요 무대였다.

어느 날 지금은 없어진 르네상스 고전음악 감상실에서 우연히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당시의 예민한 감수성과 겨울 오후라는 특수한 상황과 어우러져 한동안 잊지 못할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사의 애잔함과 허무함, 금관의 공허한 울림, 우주 저편에서나 들릴 법한 황량한 현들의 움직임, 가끔씩 나오는 너무나 달콤하고 탐미적인 바이올린과 플룻 등이 범벅이 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other worldly) 같았던 이 곡은 그러나 내가 마치 저 세상에서 들어왔던 것 같은 친숙함으로 파고 들었다. 감동의 깊이와 강도에서 열 손가락에 들만한 사건이었다. 당시 들었던 판은 CBS지구레코드에서 출시된 Bruno Walter가 New York Phil을 지휘하고 Ernst Haefliger, Mildred Miller 협연한 연주였다(CBS지구레코드, KJCL 5312). 내게는 처음 듣는 “대지의 노래”였다. 그 전에도 말러는 가끔 들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취향으로 인해 그저 감정과잉의 작곡가 내지는 염세주의적 정서가 가득 찬 곡으로 생각하여 “건강하지 않은 음악”으로 규정하고 멀리 했었다. 또 하나 이유는 당시에도 말러리안이 있었는데 그들의 매니아적인 행태와 다른 작곡가에 대한 백안시가 내게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수학선생님이 싫으면 수학이 싫어지듯이. “대지의 노래”에서 점화된 말러 음악에 대한 정열은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교향곡 1번, 2번, 4번, 5번, 6번, 9번의 순환고리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내게 가장 말러적인 음악은 “대지의 노래”이다.

말러는 1860년에 보헤미아 지방에서 유태인 집안의 14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860년은 말러가 평생 동안 존경했던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뮌헨에서 초연하던 해이기도 하다. 말러의 아버지는 거칠고 야만적인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교양있고 참한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에게 학대받았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피로 그러나 삶에 대한 열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과민한 공포,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죽음에 대한 탐미적인 애착은 쇼펜하우어의 영향과 더불어 그의 성장시절과 맞물려 있다. 그의 남매 중 일곱 명이 어려서 죽었고 그 중 다섯 명이 말러의 동생들이었다. 말러보다 한 살 아래인 Ernst는 말러가 열세 살 되던 해에 오랜 병마 끝에 죽었는데 말러는 죽어가는 동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병간호를 하였다고 한다. 살아 남은 형제도 불우하기는 마찬가지여서 Alois는 나중에 미치게 되고,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Otto는 스물 한 살에 머리를 총으로 쏴 자살한다. 겉으로 보기엔 영원할 것 같았던 평범한 삶이 도둑처럼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얼마나 쉽게 균열되고 붕괴될 수 있는가를 말러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경험하였고 이 경험의 영향이 평생 그의 삶에 대한 태도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의 음악의 특징 중 하나인 “영원성에 대한 희구와 찰나성에 대한 불안”이 비롯되었을 것이다.

말러는 또 영원한 이방인이기도 하다. 그는 늘 자신이 삼중으로 떠돌이라고 자조하였다. 말러가 태어난 곳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보헤미아 땅이었다. 그는 독일인이 선조인 오스트리아 인이었고 유태인이었다. 보헤미아 땅에서 태어난 조상이 독일인인 유태계 오스트리아인이 그의 정체성이었다. 그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 마다 “누가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였는고?- Who hath brought me into this land?”하며 대충 상황을 모면하였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정체성으로 고민하는데 천주교로 개종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에서 였다. 물론 결과는 실패였지만. 평생의 망명객 같은 그의 처지는 그의 음악 속에서 “갈등에 가득 찬 인간사와 영원한 안식처인 어머니 자연”이라는 대립항으로 나타난다.

말러의 음악이 철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의 음악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의 배경 외에도 그의 음악에 대한 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1907년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와 만났을 때, 교향곡의 매력은 형식적 간결함과 모티브를 연결하는 논리의 심오함이라는-what I admired in this medium is stylistic severity and profound logic that connects all the motifs- 시벨리우스의 언급에 말러는 “아니죠, 교향곡은 하나의 세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하죠- No, the symphony must be like the world. It must embrace everything”라고 응수하였다(Robert Layton저(1965), Sibelius, 2nd edn, J.M.Dent & Sons LTD). 말러는 신이 없어진 그 공허한 빈 자리를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발버둥 치던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였다.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는 그전이나 그 후처럼 기능인의 범주가 아니라 사제가 떠나간 자리를 메우는 “사제”였다. 무의미한 인생에 존재의 정당성(justification of existence)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니체의 선언도 바로 예술가의 위치를 짐작해 하는 발언이다.

말러는 평생을 쇼펜하우어의 예술관과 니체의 예술관 사이에서 방황했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근본적으로 갈애(will)에 의한 고통으로 보았고 갈애의 소멸을 최고선으로 생각했다. 갈애의 소멸방법으로 자비(compassion)을 제시하였는데 불교적 세계관과 유사하다. 현상계 너머 본질에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을 그는 성(sex)과 예술이라고 생각했다(Bryan Magee저(2002), The Philosophy of Schopenhauer, Revised edn, ,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예술의 감동 속에 우리는 잠시나마 몰아적 차원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것이 예술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Shopenhauer저,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vol1, Dover). 몰아경을 통한 현실에서의 이탈(escape from reality) 그리고 궁극적인 “삶의 소멸”이 쇼펜하우어 철학의 일부였다. 말러는 브루노 발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쇼펜하우어 전집을 사줄 정도로 쇼펜하우어에 경도되어 있었다. 반면에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퇴영적이라 비판하고 삶의 의지(will)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신이 없어진 혼돈스러운 우주에 인간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목적 없는 세상에 인간 스스로 질서와 의미을 부여하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술, 그 중에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긍정하게 해주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교향곡에는 격렬한 고통의 응시와 달콤한 휴식(childlike paradise), 성숙과 퇴행, 긍정과 부정, 하찮은 인간사와 영원한 자연 등의 상반된 요소가 녹아 들어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교향곡은 모티브의 논리적 전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벨리우스가 삶에서 느끼는 기쁨이나 격정, 비탄, 우울, 멜랑콜리 등의 감정을 교향곡의 재료로 쓰기를 거부한 반면 말러는 다양한 감정의 편린과 사소한 유행가나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 등의 원재료를 마치 다 완성된 형태처럼 교향곡 내에 “배열”하였다. 음악을 들을 때 자연이 연상되는 것도 이 둘의 공통점이지만 시벨리우스의 자연은 신화의 광채 속에 작곡가와 완전히 동화된 외경스런(awesome) 자연인 반면 말러의 자연은 좀 더 사사롭고 개인적이다. 그러나 말러의 음악은 이런 경험들이 가공이 되지 않은 채 표현되어, 그 감정의 다채로움과 격함에 의해 유발되는 통렬한 감동은 훨씬 직설적이고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말러의 음악에 또 하나의 특징적인 것은 가장 심각해야 할 때 자조적이고 우스꽝스런 유행가 가락이나 춤곡 풍의 음악이 나온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말러 사후에 자신에게 부부간의 문제로 정신과 상담을 받은 말러에 대한 대강의 기억을 서간문으로 남겨놓았다.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말러의 아버지는 확실히 야만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네. 아내를 아주 함부로 대하였다고 하네. 말러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아주 고통스런 광경을 목격하였네. 소년은 참을 수 없어서 울면서 밖으로 뛰쳐 나갔는데 길거리에서는 “O, du lieber Augustin”라는 비엔나 풍의 유쾌한 음악이 손풍금으로 연주되었다고 하네. 그 이후로 말러의 마음 속엔 깊은 비극(high tragedy)과 가벼운 즐거움(light amusement)은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쌍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네. 하나의 감정은 예외 없이 다른 감정을 유발시켰다네.” (Johnson S, Gustav Mahler, BBC music magazine. Nov. 2002, p83). 프로이트가 기술한 심리적인 배경 외에 생각해 볼 것은 가장 비극적인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과 대비될 때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공포 영화에 가장 잔혹한 장면은 주로 평온하고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선율을 배경음악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이다.

대지의 노래는 9번과 미완성 10번 교향곡과 더불어 그의 마지막 시기의 작품이다. 삶의 언저리가 보이는 시점에 말러는 친구에게서 중국시 번역집(Chinese flute)를 선물 받는다. 이 책을 보자마자 이 곡을 착수한다. 9번이라고 명명하면 오래 못살 것 같다는 미신으로 교향곡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교향곡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6개의 악장으로 되어있으며 중국 풍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오케스트라는 규모가 훨씬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보다 더 정제되고 투명해졌다. 1907년에 작곡되나 초연은 말러 사후인 1911년에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뮌헨에서 초연되었다.

죽음에 대한 관념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에게 죽음은 평화로운 안식처(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로, 강렬한 삶의 의지에 의해 격퇴되어야 하는 끔찍한 악몽(1번, 5번, 7번 교향곡)으로, 또는 기독교적 믿음에 따른 영원한 삶을 위한 관문(2번, 3번, 4번, 8번 교향곡)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르러 그에게 죽음은 이제 관념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버렸다. 심장병이 악화되어 인생의 끝이 보이는 시기가 온 것이다. 육체의 쇄락과 함께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벌거벗은 죽음과 직면한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Deryck Cooke저(1960),Gustav Mahler; An introduction to his music, Faber).

영생이나 부활 등의 종교적 믿음의 외피를 벋어 던지고 냉철하게 죽음이라는 실체를 본 상태에서만 올 수 있는 소멸에 대한 고통스런 긍정, 그리고 온갖 살아 있는 것 들의 기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황홀함과 애착이 동전의 양면처럼 대지의 노래에 녹아 들어가 있다.
첫 곡인 “이 세상의 슬픔에 대한 취한 노래”에서는 아름다운 것들을 찬미하다 갑자기 소멸의 위협을 노래한다. 자연의 영원성과 인간의 찰나성의 대비가 너무나 아름다운 악상을 타고 나타난다.


“창공은 영원히 푸를 것이며,
대지는 장구하여 봄에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러나 너, 인간이여, 너는 얼마나 살겠는가?
대지의 썩어 문드러진 잡동사니 속에 기쁨이 백년도 가지 못하리”
는 이 악장의 심장의 심장이다.

 

1악장의 삶과 죽음, 영구함과 단명함, 자연과 인간의 갈등의 테마가 전 곡을 관통하면 결국 마지막 악장에서 해소된다. 2악장 “가을에 외로운 자”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외로움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영원한 이방인이었던 말러의 자전적인 넉두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3악장 “젊음”과 4악장 “아름다움”은 약동하는 리듬을 타고 전반부의 무거운 분위기가 이완되면서 젊음과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그러나 약동하는 삶의 환희도 유보적이어서 4악장의 “그 중에 한 말이 즐겁게 히힝덴다…”에 서정적인 분위기가 갑자기 파행에 이르러 난폭한 리듬으로 교체된다.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후 곡은 다시 서정적인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5악장 “봄에 취한 자”는 이태백의 시로 도취적이고 나른한 정서를 보여준다.

“인생이 정녕 꿈이라면, 왜 수고스럽게 고민하고 애쓰는가?
나는 더 이상 마시지 못할 때까지 하루 종일 마시리라.”

“ 나는 깨어서 무엇을 들었는가? 들어라!
나무에서 새가 노래하고 있다.
지금이 봄인가 나는 물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구나.”
처럼 맨 정신에서 시작되었다가


“봄이 왔어요, 새가 지저귄다.
봄이 왔어요, 지난 밤에 왔어요.
놀라서 나는 들었다.
새가 노래하고 웃는다.”
의 꿈과 현실이 혼동되는 망아적인 경지에 이르다가 – 음악도 가히 도취적으로 아름답다.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을 때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겠노라.
봄이 내게 무슨 상관인가?
술이나 취하련다”
로 돌아온다.

6악장 “이별”은 1악장과 더불어 이 곡의 핵심 부분이다. 1악장을 통해 제시되었던 갈등이 중간 악장을 거쳐 6악장에서 해소된다. 두 개의 시를 묶고 마지막 행에는 본인이 가사를 붙인 악장으로 비극적이며 우울하되 달콤한(bitter sweet) 정서를 보여준다.

 

태양은 산 너머로 지고 은색 달이 떠오르며 차가운 밤이 온다. 어두움 속에 시냇물은 졸졸 흘러가고 꽃들은 석양에 비추어 창백해져 간다. 대지는 평안을 찾으며 모든 바램은 이제 꿈을 꾼다. 온 세상이 고요히 잠자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마지막 작별을 위해 소나무 밑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잔디가 보드랍게 덮인 길을 비파를 메고 외로이 서성인다. 친구가 도착하고 작별을 고한다.


“내가 어디로 가느냐고?
나는 가네, 산을 헤매겠네.
내 외로움 쉴 곳을 찾겠네.
내 쉴 곳 찾아 고향으로 간다네.
이제 먼 곳을 찾아 헤매지 않겠네.
내 마음은 고요하고 때를 기다리네.”


그리고 말러가 덧붙였다.
“사랑스런 대지의 곳곳에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잔디가 난다네.
곳곳에 그리고 영원히, 멀리까지 푸르게 빛나리라.
영원히…… 영원히……….”


죽음에 임하여 삶을 뒤돌아 보며 부르는 말러의 삶에 대한 작별인사 그러나 남아 있는 자에게 남기는 삶의 찬가로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을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관악이 특히 아름다운 말러의 모든 음악보다 이 악장은 관악의 달콤하고, 도취적이고, 쓰디 쓴 모든 것을 들려준다.

Paul Kletzki가 Philharmonia orchestra를 지휘하고 Fischer-Dieskau와 Murray Dickie가 협연한 대지의 노래(EMI,EMX 41 2073 1, 1960년 녹음)는 여타 음반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Contra alto를 바리톤으로 대체했는데 여성 성악의 불안하고 높은 음보다는 바리톤 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음영이 인상적이다. 테너는 조금 실망스럽다. 너무 눌려 있다고 할까? 그러나 무엇보다 이 음반의 들을 만한 가치는 바로 관현악의 운용에 있다. 원래 이 곡은 유사 오음계를 씀으로써 중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게 의도되었다고 하는데 이 연주만큼 그 의도에 부합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필하모니아는 현part도 출중하지만 관악에 있어서는 견줄 데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슬픔에 대한 취한 노래”에서의 금관의 거친 파열음, 부드러운 악상에서의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의 부드러운 떨림, 대금과 피리를 연상케 할 만한 독특한 목관의 음색, 고즈넉하고 황량한 분위기의 현악, 솔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애절하고 달콤한 노래…! 그리고 “이별”에서 보여주는 오보에의 애절한 선율, 혼과 클라리넷의 멜랑콜리, 황혼과 밤의 구절에서 나오는 플룻 오블리가토, “친구를 기다리며”에 들리는 harp의 아름다운 비파소리, 말미부에 들리는 Glockenspiel과 celesta의 아련한 울림! 지금 까지 들었던 어느 대지의 노래보다 관현악이 투명하고 아름답고 중층적이다.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 곡을 듣는다면 페리어, 파작, 그리고 발터가 협연한 Decca판(Decca, LXT 5576, mono, 1952년 녹음)이 좋을 것이다. 페리어의 독특한 음색은 곡의 어두운 분위기와 일치하는데 “이별”에서 들려주는 애잔하고 쓸쓸한 분위기는 이 곡을 빌려 말하는 그녀 자신의 세상에 대한 작별인사이기도 하다. 그녀만의 음색(somber darkness)는 인후의 구조에서 기인 한 것인데 스승이었던 Roy Handerson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페리어의 목구멍은 중간 크기의 사과 하나가 충분히 들어 갈만큼 크다 – One could have shot a fair-sized apple right to the back of her throat without obstruction.” 금상첨화로 VPO의 반주 역시 이별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이 판은 나중에 historical recording으로 다시 나왔는데 음색이 많이 다르므로 나중에 나온 판을 듣게 되면 이 연주에 대해 오해할 수 있을 여지가 있다. 특히 목소리를 온전히 감상하려면 처음 나왔던 모노판을 구하는 것이 좋다. CD역시 복각이 날카롭게 되어서 이 연주의 부드러운 어두움을 감상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많이 추천되는 분더리히-루드비히-클렘페러의 EMI 판(EMI, SAN 179, 1967년 녹음)은 루드비히는 크게 감흥을 주지 않고 분더리히는 격정적으로 잘 부르지만 너무 투과적(penetrating)인 소리를 내서 이 곡의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파작이나 헤플리거의 약간은 말려들어간 어두운 음색이 잘 어울린다. 더구나 같은 필하모니아 악단인데, 클렘페러의 연주는 클레츠키의 연주에서 물씬 느꼈던 아우라를 느낄 수가 없다. 물론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으나, “대지의 노래”가 교향곡의 면이 강하다고 인정하고, 관현악의 아름다움이 더 우선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클레츠키의 연주는 결코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이 나올 때 모노판도 출시되었는데 모노판의 특성상 목소리는 더 가깝게 들리고 질감이 있으나 관현악은 스테레오보다 못하다. 염가 cd로도 구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대지의 노래”는 꼭 취해서 듣거나 듣고서 취하게 된다.

작성일자: 2004-10-17 07: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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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2.19 22:58

    첫댓글 지난 주말이였던가요 비와 바람이 흔쾌히 봄길 열던 날 '대지의 노래'전곡을 들었네요. 봄의 地神께 드리는 경배의식 같다고 느꼈습니다. 말러의 기사 반갑고 고맙습니다.^^

  • 작성자 09.02.20 09:00

    말러에 접근한다는 것은 장구한 음악적 사상과 경륜을 격어야 하는데 체은님은 역시 대단한 경지위에서 가슴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내재적 관념철학이 정립되어 있는 아주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시벨리우스도 그 중 하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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