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大靑峯/해발1708m]; 설악산의 주봉으로서 예전에는 청봉(靑峯) 또는 봉정(鳳頂)이라고 불렀다. 이 중에서 청봉이라는 이름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 됐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서 유래 됐다고도 한다.대청봉은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고, 남한에서는 한라산 백록담(1950m), 지리산 천왕봉(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공룡릉ㆍ화채릉ㆍ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ㆍ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 계곡ㆍ가야동 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한다.인근에 중청봉(1665m), 끝청봉(1610m), 소청봉(1581m)이 있다.설악산의 정상인 이곳 대청봉은 일출과 일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몸이 밀릴 정도의 강한 바람,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 있고, 6~7월이면 진달래ㆍ철쭉ㆍ벚꽃으로 뒤덮이며,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와 '1708m 대청봉'이라고 새겨진 정상 표지석이 있다.정상까지 오색 방면, 한계령 방면, 설악동 방면, 백담사 방면의 코스가 있는데, 오색에서 설악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5.0㎞(4시간)가 최단거리 코스이다.참고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금강산~향로봉~진부령~미시령~북주릉~공룡릉~소청봉~중청봉을 거쳐 이곳 대청봉을 지나 끝청봉~한계령~점봉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덕유산~지리산까지 연결된다.
[◈출처▶▶『위키백과』]
♣소청봉[小靑峯/해발1581m];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중청봉에 인접하여 위치한 봉우리로 실제로는 봉우리가 아닌 중청봉이 끝나는 지점의 언덕이다.원래는 외설악에서 바라보면 쌍봉처럼 보이는 2개의 묏부리를 대청봉과 소청봉으로 불렀다.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이들을 대청봉과 중청봉으로 부르고 내설악에서 보이는 이 봉우리를 소청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속초시 설악동 방면에서 시작되는 천불동 계곡 등산로와 인제군 용대리에서 시작되는 백담 계곡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으며, 여기서 중청봉을 거쳐 대청봉까지는 약 50분 거리이다.봉정암과 소청봉 사이에 현재 소청 대피소가 있다.
[◈출처▶▶『위키백과』]
♣마등령[馬等嶺];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강현면 사이에 있으며,태백산맥의 설악산(1,708m)과 북쪽의 마등령봉(1,327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하여, 한계령(935m)ㆍ미시령(彌矢嶺, 780m)ㆍ대관령(641m)과 더불어 설악산맥을 횡단하는 높은 고개이다.고개가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마등령이라고 한다. 또는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고 하여 마등령이라 부른다는 기록도 있다.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태백산의 지맥으로, 설악산의 주봉인 청봉 다음으로 높아서 고개 위에 오르면 내․외설악의 많은 봉우리들과 멀리 동해바다가 조망된다.동서 방향의 고개로 서사면은 소양강의 지류인 북천(北川)이 용대리에서 분기하여 남서쪽 계곡으로 통하고, 동사면은 속초시와 강현면의 경계에 있는 계곡으로 연결된다.이들 계곡을 따라 도로 소통이 되어 용대리에서 백담사(百潭寺) 사이의 도로는 다소 정비가 되었으나, 백담사에서 마등령을 거쳐 동해사면의 신흥사(神興寺)까지의 길은 등산객의 등산로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쪽 계곡에 산재해 있는 신흥사ㆍ와선대(臥仙臺)ㆍ비선대(飛仙臺)ㆍ금강굴(金剛窟) 등의 관광자원과 서쪽의 백담사ㆍ영시암 등을 연결하는 고개로 큰 구실을 하고 있다.설악산 아고산대인 설악산 북쪽의 황철봉과 귀때기청봉에서 대청에 이르는 서북 주릉 상에는 화강암류 기반암의 암괴원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암괴상에는 풍화쇄설물을 가지고 있는 나마(gnamma)와 그루브(groove)를 비롯한 많은 화학적 풍화에 의한 미지형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의 제4기 후반의 기후변화와 지형형성 영력을 연구할 수 있는 기후지형학적으로 중요한 연구지역이다.마등령은 백두대간에 해당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외설악의 마등령에서 희운각대피소 구간(5.10)은 공룡능선으로 탐방로가 개방되어 있는 구간이고, 내설악의 미시령에서 마등령 구간(7.50㎞)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마등령-미시령 일원의 10,500,000㎡ 구역은 야생식물군락지로, 중요 야생식물군락지를 보호할 목적으로 2026년까지 국립공원특별보호구 대상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참고문헌▶▶『한국지명유래집(韓國地名由來集):중부편(中部篇)』(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08)]
[◈참고문헌▶▶『설악산국립공원(雪嶽山國立公園)에서 발견(發見)되는 암괴원(岩塊原)에 관한 고찰(考察)』(박경)]
[◈참고문헌▶▶『설악산국립공원』 (http://seorak.knps.or.kr/)]
♣금강굴[金剛窟];설악산 중턱 해발 600m 지점의 암벽 한 가운데 있는 금강굴은 경사가 급해서 굴까지는 곳곳에 설치된 부교와 콘크리트 계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 굴의 크기는 7평쯤 되며, 굴 속의 토기 등 생활용구와 석불좌상으로 보아 고승이 도를 닦던 곳으로 짐작된다. 굴까지 오르면서 내려다 보이는 천불동계곡이 매우 아름답다.
[◈출처▶▶『대한민국구석구석』(http://korean.visitkorea.or.kr )]
♣비선대[飛仙臺];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방면의 설악산에 있는 너럭바위이다.외설악 지구의 천불동계곡 들머리에 있는 커다란 암반(巖盤)으로서 와선대(臥仙臺) 위쪽으로 약 300m 거리에 있다. 명칭은 와선대에서 노닐던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이곳에 와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천불동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이리저리 휘어지며 작은 폭포를 이루는 등 금강산의 만폭동(萬瀑洞)에 못지않은 경관을 빚어 설악산의 대표적 명승지로 꼽힌다. 설악동소공원에서 와선대와 비선대를 거쳐 귀면암~오련폭포~양폭대피소에 이르는 양폭코스는 6.5㎞ 거리에 약 2시간 50분이 소요된다.
[◈▶▶『두산백과 doopedia』 (http://www.doopedia.co.kr )]
♣신흥사[神興寺];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170번지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652년(진덕여왕 6)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라 하였으며, 당시 계조암(繼祖庵)과 능인암(能仁庵)도 함께 지었다. 이 때 자장은 구층탑을 만들어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였다고 하는데 이 구층탑이 어느 탑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향성사는 698년(효소왕 7)에 능인암과 함께 불타 버린 뒤 3년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701년에 의상(義湘)이 자리를 능인암터로 옮겨서 향성사를 중건하고 절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고쳤다. 이 때 의상은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의 3존불을 조성하여 이 절에 봉안하였다. 선정사는 1000년 동안 번창하였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구층탑이 파괴되었고, 1642년(인조 20)에는 화재로 완전히 타 버렸다.1644년에 영서(靈瑞)·연옥(蓮玉)·혜원(惠元) 등이 중창을 발원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이 소림암(小林庵)에서 나타난 신인(神人)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3재(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고, 선정사 옛터 아래쪽 약 10리 지점에 다시 절을 짓고 이름을 신흥사라 하였다.그 뒤 신흥사에는 수많은 불사(佛事)가 이루어졌다. 1647년에는 대웅전을 건립하였고, 1661년(현종 2)에는 해장전(海藏殿)을 짓고 『법화경(法華經)』 등의 판본을 두었으며, 1715년(숙종 41)에 설선당(說禪堂)이 불에 타 버리자 1717년에 취진(就眞)·익성(益成) 등이 다시 중건하였다.1725년(영조 1)에는 해장전을 중수하였고, 1737년에는 명부전을 창건하고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였으며, 1801년(순조 1)에는 벽파(碧波)·창오(暢悟) 등이 용선전(龍船殿)을 짓고 열성조(列聖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813년에는 주운(周雲) 등이 불이문(不二門)과 단속문(斷俗門)을 세웠고, 벽파 등은 보제루(普濟樓)를 중수하였다.1821년에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을 중수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벽하(碧河)·명성(明成) 등이 16나한을 구월산 패엽사(貝葉寺)에서 해장전으로 옮기고 해장전의 이름을 응진전(應眞殿)이라고 고쳤다. 그 뒤 1909년에는 용선전이 헐렸고, 1910년에는 응진전이 불탔으며, 1912년에는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되었다.1924년에는 설선당 후각(後閣) 32칸을 중수하였다. 1965년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가 되어 양광·속초·강릉 등지의 사암을 관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절의 주지를 지냈던 성원(聲源)이 대소의 당우들을 거의 모두 중건 또는 중수하였고, 범종을 새로 만들었다. 최근 절이름을 ‘神興寺’에서 ‘新興寺’로 고쳐 부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명부전·영산전·보제루·천왕문·일주문·불이문·적묵당(寂默堂)·설선당 등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된 보제루가 있다. 이 가운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극락보전은 1644년에 세운 건물로 중앙의 공포(拱包: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들)와 단청이 지극히 아름답다.현재 봉안된 삼존불은 의상이 중건할 때 조성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보제루는 휴정(休靜) 등 고승 60여 인의 진영(眞影)이 안치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효종이 하사한 향로와 김정희(金正喜)의 진필(眞筆)이 있다. 절 일원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43호의 향성사지삼층석탑과 청동시루·범종,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인 경판 277매(枚), 사천왕상 등이 있다.청동시루는 순조의 하사품으로 벽파가 역대 왕조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것이고, 경판은 효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한자·한글·범어(梵語)가 혼합되어 있는 희귀한 것으로 가치가 크다. 경판의 종류로는 『은중경(恩重經)』 전질과 『법화경』 일부 등이 소장되어 있다.범종은 경내 보제루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 종은 1400여년 전 향성사의 종이라고 전한다. 향성사가 불탈 때 깨졌던 것을 1748년에 원각(圓覺)이 개주했으나 소리가 완전하지 못하여 1758년에 홍안(弘眼)이 다시 개주하였다. 이 종의 무게는 600㎏으로 6·25전쟁 때 총상을 입은 뒤 1963년에 수리하여 보존중이다. 사천왕상은 인도산 마디가원목을 사용하여 1981년에 조성, 봉안한 것이다.최근에는 1997년 10월 높이 14.6m로 세계 최대의 청동불좌상이 조성한 지 10년 만에 일주문 앞에 봉안되었다. 이 청동대불은 통일을 염원하며 세운 것으로, 일명 ‘통일대불’로도 부른다. 부속 암자로는 선정사의 옛터에 세워진 내원암(內院庵)과 655년에 건립한 계조암, 1785년(정조 9)에 창건한 안양암(安養庵) 등이 있다.
[◈참고문헌▶▶『신흥사사적(神興寺史蹟』]
[◈참고문헌▶▶『전통사찰총서(傳統使札叢書)』2-강원도 Ⅱ-(사찰문화연구원, 1992)]
[◈참고문헌▶▶『한국사찰전서(韓國史札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참고문헌▶▶『한국의 사찰(韓國의 使札』14-낙산사 부 신흥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7)]
첫댓글 사진보이 두분이서 달리셨네요~ 대청봉에서 일출 맞이하는 느낌은 좋았겠죠 ㅎ
무박 산행하신 모든분 수고하셨습니다^^
ㅋㅋ 전 못달리고 형님이 저땜에 기다리신다고 더 힘들었을꺼에요
수고많이 했슴당...
공룡은
잘있지요
함가야될낀데...
공룡한번 더 갑시당
대청봉 보러 함 가야되는데.....
가물가물합니다.
수고했습니다.
또 가요ㅎㅎ
멋진 사진이네요 가고 싶어요
갑시당..
@태풍(권영무) 언제요 날짜 뽑아 봅시당
@아침햇살 난 다녀왔으니 안가도 대구 가도 대구ㅋㅋ
날은 알아서 잡는걸로
@태풍(권영무)
멋짐 ~~~ 폭발!
저두 공룡이 아련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공룡은 기다리는데 사람이 안가서 그래요..가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