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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없는 둥지}
소설/원영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주태의 세례명은 성 미카엘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었다. 1년생의 형은 성 베드로였다. 엄마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지라 또 비만인데다. 아이들이 보챌 때마다 두 아이가 빨던 우유병을 빨게 했으니 날마다 거미줄같이 찾아간 대형병원 생활이었다. 때로는 놀이터 있는 백화점에 가면 1시간에 1천5백 원씩 드려가며 아이를 그곳에다. 또는 아이한테 동전을 줘 가면 문방구 게임과 같이 커가게 했다.
그러던 어느 사채업자에게 쫓겨서 노을바람으로 따라갔다. 토요일 기도 날이 돌아오면 아빠는 미사를 가라고 헌금을 손에 줘주고 일터로 나가 확인을 해봤다. 한동안 잘 다니던 주태가 날짜가 갈수록 기도를 빼먹더니 헌금까지 꿀꺽했으며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혈은 자국이 되어서 온 아이였다. 아빠가 아이를 볼 때마다 싸움하는 애들은 바보짓을 하는 것이다. 혹시 때리면 그냥 맞아줘라 그때. 한숨 쉬는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빠가 때리면 맞으라고 해서 맞았어요.”
그때 쉬는 비번인지라 어둠의 둥지랄까? 주태가 옷이 찢기고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는 몸이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 형제를 불렀다.
“아빠. 왜 찾았어요.”
“선물을 줄 거야.”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반짝거렸다.
“태권도를 배우게 해줄까?”
“반 친구들이 다 배우니 싫어요.”
“그러면 뭐로 배울까? “
“검도를 배울래요.”
“그렇게 하자.”
“태권도를 지금 배우면 그네들한테 끌려 다녀요. 검도 수강료가 비싸니까 많이들 안 배워요. 우리 형제는 배울래요.”
둘째의 말에 따라 산골짜기 검도학원으로 팔을 붙잡고 계단을 따라 내려간 검도장문을 밀치자 참새소리를 들으시고 달려 나온 관장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이하나 운동할 수가 있나요.”
“형제를 운동시키세요. 작은 아이만 시키면 한 아이는 매일 운대요. 둘을 가르치려면 힘이 들지만 그게 좋을 거예요.”
관장 말씀에 따라 등록하는 과정에서 호구 이야기가 나왔다.
“호구가 어떻게 생겼나요.”
“예를 들자면 얼굴에 쓰는 망태죠.”
“비싸 건네요.”
“비싸기는 하나 한번 사두시면 오랫동안 사용합니다.”
“얼마인가요.”
“싼 걸로 한다 해도 둘이라 9십만 원이 들어요. 세트까지.”
“세트가 뭔가요.”
“말하자면 갑옷에 딸린 일체랍니다.”
그 소리에 안한다고도 말도 못하고 한다고도 말도 못하고 한숨을 내쉬는데 철없는 아이들은 관장님의 사업수단에-. 그만 마련해 주었더니 1년도 안 가서 단증을 따왔다.
어느 날 학원에 간 형제들은 인경인데도 연락이 없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더니 빗줄기가 갤 생각을 안 했다. 내 새끼들이 어디 있을까? 시계는 밤 12시 3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빠는 학원으로 연락을 해보니 멍텅구리전화였고 어디로 갔을까? 발만 동동 구르는데 진흙탕 강아지가 되어 돌아온 주태의 몰골마다 가죽제품 자국이 선연했다.
“어떻게 된 거야.”
“사부님께서 이유도 없이 때렸어요.”
“아니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을 거야. 안 그러야.”
휴식시간에 친구들과 배구공 놀이라는 불만으로 검도 하는 놈들의 짓으로 논다면서 운동시간이 끝났는데 나머지 청소를 시킨 후 42살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죽도록 맞으면서 이유를 좀 압시다. 어린놈이 말대꾸한다면서 안하무인으로 맞았어요.
“이번만 맞았느냐.”
“전에도 여러 번 맞았어요.”
“왜 예기. 안 했느냐.”
“사부께서 아시면 더 맞을까봐. 무서워서 부모님께 말씀을 안 했어요. 때리고 난 다음에 약 2천 원짜리 사주었어요.”
아이가 알려준 데로 전화를 걸어봤더니 술 취한 목소리 당연하다는 사부의 말에 분통이 터져버린 아빠는 112로 연락을 하자마자 5분 만에 사이렌 소리와 도착한 경찰관이었다.
“김주태 집인가요.”
“예. 맞아요.”
“어느 학교 몇 학년이지.”
“고목나무중학교 1학년이에요.”
“오늘은 너무나 늦은 시간이고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까 조서는 미뤄놓고 대형병원으로 데리고 가셔서 치료를 먼저 받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아빠와 아이는 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환자들 장터 골목마다 메아리 소리로 가득했다. 먼동 트인 아침을 맞자 발급받은 진단서 들고 관내경찰서를 찾아 신고를 했다. 며칠이 지난 후 나타난 사부랄까?
“왜. 비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까?”
“그 시간에 응급환자 취급병원입니다.”
“치료비 깎아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빵에 들어가 살겠습니다.”
“1백만 원 아까우시면 사세요.”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 7십만 원을 가지고와 합의서 용지다 도장을 그날 생각하면 빵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 아이의 부모가 없더라만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말씀으로 하세요. 나이를 보아하니 부모 자 되는 분께서.”
“사실 결혼을 못했고요. 노부모가 편찮아요. 한 푼이 아쉬운데-.”
“이번을 계기로 거울을 삶으세요.”
그런 일이 있고부터 검도장 측에서 폭력사부를 교체하므로 형제는 계속 운동을 이어갈 때. 관장께서 연락을 해왔다.
“주태의 운동신경이 좋으니 선수로 발탁하면 어떠신지요.”
“제안은 좋으나 아이 뜻이 어떨지 그때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며칠이 흐른 뒤 아이가 다가오더니.
“아빠.”
“왜.”
“친구네 가 하룻밤만 자고 올래요. 딱 1번 만요.”
“속으로 망설이다가 딱 1번 만이다.”
그 뒤로 쇠간이 되었다고 할까? 가출로 인한 노숙강아지 밖에서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미카엘이 나타나면 친구들이 벌벌 떤다나. 아빠는 아이를 불렀다.
“너. 사람을 때리라고 운동을 시킨 것이 아니야. 자신의 건강을 지켜내라고 시킨 것이지.”
“예.”
기러기아빠가 아이를 키우고 산다고 이웃 사람마다 기억하고 있었다. 막내를 첫 영성체 받기 위해서 십자가 성당을 찾아갔다. 부모들의 교리가 있는 마리아 교실에서 두리번두리번 하는데 정 자매님께서 다가왔다.
“미카엘 아버지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우리 아들이 미카엘한테 맞았어요.”
나를 붙들고 하소연함으로써 앞으로 주위를 시키겠다고 약속을 했다. 절대로 손을 못 대게 집에 와 아이를 타일렀다. 뜻밖에 전교사로부터 노을 질 무렵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님 되시죠.”
“네.”
“내일 아이와 같이 등교하세요.”
누구보다 교사는 우리 집의 사정을 잘 안다. 학생 기록부가 있으니 아침 8시 40분경 고목나무중학교 주태 안내를 받아 찾아간 교사의 집무실 담임의 안내로 의자에 앉았다.
“주태 한데 들으셔서 잘 아시겠지만 여기다 사인을 하세요.”
“그게 뭡니까?”
“가평수련회에 갔을 때 이 아이가 바닥에 과자를 떨어뜨리게 한 다음에 친구한테 혓바닥으로 먹게 했고 겨자를 입에 벌리고 먹였으니 한 건당 벌점으로 5점씩 합산해서 15점이니 사인을 하시죠.”
“선생님 말씀을 다하셨습니까?”
“네.”
“주태가 안 죽고 지금 교실에 있으니 데려다가 물어보시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폭력을 썼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 외에는 다른 친구들이 한 걸로 생각됩니다.”
“그럼. 1건당 벌점 5점에 사인을 하시죠. 덮어씌우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전에 아이한테서 물어봤으니 1건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2건을 추가해서 벌점 처리를 받을 것 아닙니까? 또는 선도회를 할 것이 아닙니까?”
“미안하게 됐네요.”
“가해자와 피해자를 잘 아시고 처리하셔야죠. 어느 한 편만 두둔하지 마시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잠잠했나 했더니. 며칠 후 저녁밥 시간 때에 전교사로부터 연락을 또 받는 그 순간에 사나운 맹수 언어로.
“내일 학교로 오세요. 주태 아버지 되시죠.”
“네. 맞습니다.”
“내일 아이를 꼭 데리고 등교 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오는 것 잊지 마세요.”
한여름 장마 날씨인지라 거리마다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는 등굣길에 우산을 받쳐 들었으나마나. 자식 둔 죄로 교사를 찾아가 뵙자마자 인성 교육실로 안내를 받아 따라 들어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이번 상황을 아빠가 잘 모르니 사실대로 말하라.”
머뭇거리는 아이 앞에 아빠는.
“거짓말 빼고 말해봐.”
거리를 두고 교사는 노트에다 무엇인가 적고 있었다.
“같은 학년 은하수 친구랑 인터넷에서 형을 만났습니다.”
“누가 처음에 만나자고 했느냐.”
“하수 친구가 먼저 만나자고 했어요.”
“사실이지.”
“예.”
“또 말해봐.”
“전화로 연락을 하니까 형 되는 분께서 택시 타고 인천으로 와라. 요금은 형이 내 줄 테니 그래서 갔더니 지급을 하시던데요.”
“그 사람이 몇 살이냐.”
“32살쯤 보여요. 그러고 경찰서로 붙으러 가 철장 신세가 되었어요. 우리는 미성년자라서 돌아왔고요. 그 집에서 3일간 놀면서 지냈어요. 형의 심부름으로 같이 먹고 잠자고 같은 배 타자고 해서 안탄다 했더니 죽인다고 해서 못 이긴 척 탔으나 재미가 없더군요. 저도 피해자입니다.”
그때까지 노트에 적고 있던 교사는 큰 소리랄까?
‘야. 쌍 십 했구나.’
오늘부터는 이 학교를 더는 못 다닙니다. 들으셨죠. 데리고 가세요.”
“같이 인천에 간 여학생은요.”
“내일부터는 못 나오게 하겠습니다.”
그런 후 말을 못하게 교사는 말을 막았으며 교실 수업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주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2개월이 지나가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자 학교로 연락했더니 그때서야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면 배울 수가 있다기에 서둘러 찾아간 퇴학학교 교사는 보호자를 이 계단과 저 계단을 끌고 다니면서 급식비를 계산하셔야죠. 교과서도 반납하셔야죠. 여기서 있었던 일을 소문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아빠는 아이 다니는 학교에서 전학서류를 들고 지방에 일가 있는 백마 중학교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와 교무실로 서류를 들고 교감 선생님께 제출하자.
“위장전입자다. 문제아는 우리 학교에서 못 봤습니다. 그 좋은 서울을 놔두고 왜. 먼 곳까지 이사를 오겠느냐. 이상이 있으니 오지.”
여러 간부교사로부터 아빠. 할머니. 작은 아빠 아이까지 대면하는 자리에서 색안경을 끼고 위로 아래로 훑어봤다라고 할까? 며칠 간 실랑이는 계속해서 벌어졌다. 죄인 다루듯이 고문보다 더 혹독하다고 할까? 아침 등교 시간에 교무실로 찾아가 실랑이 끝에 오후가 되어서야 아이는 새로운 김 교사를 만나 교실로 들어갔다. 아빠의 생각 같아서 당장 학교하고 영영 이별이라고 할까 호랑이 같은 교감께서.
“아이로 말미암아 문제가 발생할 때는 되돌려서 서울로 보낼 겁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으며 이튿날.
“밤10시 넘어서야 가정방문이 이뤄질 테니 집 비우지 마시고 집주소와 약도를 정확히 적으세요. 찾아가기 쉽게요.”
“예. 알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 기다리세요.”
이튿날 밤에 바람 소리 따라 밖을 나갔더니 체육부장과 호랑이 교감께서 찾아오셨다. 교무실에서 뵙던 분이랄까?
“들어오세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주태의 이삿짐이 어디 있습니까? 기거할 방이 어디죠.”
“작은 방인데요.”
“사진을 찍어 증거자료를 만들어 교육 지원 청에다 올려야 한다.”
야단법석을 달밤에 치렀으며 의무교육을 받으러 아이를 데리고 지방으로 이사 온 탓에 오늘날 교육자들이 만나 할 정도로 도망자 취급을 받았다. 꼭 이렇게까지 학교 측에다 통사정을 해서야 될까? 목마른 놈이 샘을 판다지만 학부장과 호랑이 교사께서는.
“주민등록상 여러 아이가 있더라.”
“임시로 작은 집에다 올렸어요.”
“형제 둘이 더 있던데 안보이네요?”
“서울 고모 댁에 가 있어요. 한 학년 형은 전학을 안 가는 것이 났다며 생각을 해봐야 한다나요.”
“그래. 위장전입자가 맞다.”
“고목나무 전셋집을 몇 달 전부터 나눔의 복덕방에 내놨습니다. 한 겨울철이라 지금까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 옆에다 집을 샀어요. 의심스러우시면 계약서류를 드릴 테니 가져다가 확인을 하세요. 복사해 드릴까요?”
“그럼. 그때 이사를 오셔야죠.”
“정학을 받은 날짜가 너무 길어 놀면 안 될까 봐. 그랬어요.”
“그건 주태 아버지의 사정이고 형은 왜. 전학을 안 옵니까?”
“서울로 통학한다. 던대요.”
“빨리 데려와 같이 보내세요.”
“예. 알았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아빠는 절차를 밟아 베드로의 전학할 서류를 들고 백마 중학교 1층 계단을 통해 교무실로 찾아 들어갔다. 주태의 형 서류를 가져왔어요. 호랑이 선생께서 그때서야.
“우리 학교는 못 받아요.”
그렇게 사정사정 하였으나 완강히 거절을 했으며 아빠는 교무실을 빠져나와 아파트 울타리와 천마산을 돌아 찾아간 산모퉁이 중학교 교무실로 노을처럼 달려갔다. 내 마음속으로 교사의 권력은 하늘이다. 교육법을 맘대로 이용하는 교사 때문에 힘없는 학부모만 이렇게 골탕을 먹고 학교법을 잘 모르니 전학을 가라 하면 꼼짝없이 가는 줄만 알았다. 그리고 생활 기록부에 초등학교부터 부모의 직업과 학력 가족관계를 학년 오를 때마다 기록부랄까? 족쇄다.
“만일 문제가 있을 때 아이한테 방울을 달아 끝까지 문제로 삼는다.”
이 교사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눈 밖에 나면 교내봉사와 어린이집. 장애시설 등을 돌린단다. 벌점을 줄인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공부에 취미가 없는데 해결이 될까 그때 아이는.
“학교 문턱이 무서워요”
“그러하다는 담임.”
우직이라고 자청한 교사가 영문도 모르는 주태를 화장실로 밀어 넣고 구타를 30분간 해대고 나서 친구들 보는 앞에서 하는 말인즉.
“전과자 주태랑 놀지 마라.”
왕따를 시키는 교육자가 지금도 학교마당에서 숨어 지내는가 하면 부모와 아이를 불러 찾아간 교무실 갑자기 정학처분이란다.
“주태는 앞으로 이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면 경찰관을 불러 잡아가게 하겠다.”
“네.”
“다른 데로 전학을 가세요.”
“전학을 온 지 15일도 안 되었는데.”
교감이라는 호랑이다운 말이랄까?
“학교다 뭘 해 줬습니까?”
“앞으로 많이 해 줄 겁니다.”
“싫으니 전학을 가세요.”
치맛자락 교장도
“도둑도 빨라요 관내에 노는 아이 모두 데리고 다닌다 하던데요.”
“아. 그래요. 어디로 전학을 가면 될까요.”
“먼- 시골로.”
교감께서 말을 이었다.
“아이만 가면 될까요.”
“가족이 다 가야 합니다.”
“생계는요. “
“알아서 해야죠.”
“그러면 못 갑니다.”
“대한학교로 보내세요.”
“이 교감께서 보내주세요.”
아빠의 말에 따라 이야기교감 동료 교사들도 교감 말에 힘을 싫었다. 담임이 다가오더니 주태아버지 대한학교 연락처를 인터넷으로 출력한 전화번호를 넘겨받았다. 아빠는 집으로 돌아와 여러 학교에 연락을 해봤으나 일부는 통화가 불가능하고 연락이 되는 대는 자리가 없었다. 나라에서 지정된 학교를 갈려면 1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했으며 평소에 학교적응이 안 되는 아이는 해당 사항이 아니란다.
“문제 있는 학생은 더욱 안 받아요.”
그렇게 2개월이 됨으로 답장이 없는 학교를 나는 담당 교육 지원 청으로 민원을 제기할 때. 교육 담당자께서 설명을 들으시고 깜짝 놀라며.
“어느 학교입니까?”
“백마중학교입니다.”
“몇 학년이죠.”
“2학년 9반입니다. “
“학교로 연락을 취해 전화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 있는 후로 김 교사가 연락을 걸어왔다.
“주태아버님 되시죠.”
“네. 그런데요.”
“왜 교육 지원 청에다 고발을 했습니까? 학교로 찾아왔어야지.”
“답답해서 하소연을 했어요.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68일간 결석을 하여도 학년이 오른다 하던데요. 정학기간이 최고 10일 끝나면 등교 하라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누구한테서 들어 습니까?”
그 순간 말을 얼버무렸다. 며칠 전에 베드로 담임께서 아빠를 찾으셔서 교내 계단을 올라 화장실이 보일 무렵에 큰아이의 몰골에 핏자국이랄까?
“어떻게 된 거야.”
“같은 반 자갈 행적을 담임선생께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변기통에다 몰아넣고 어름 물병으로 맞았어요.”
그때 담임께서 다가와 오늘은 운동회 날인데 반장 엄마라는 여자가 어름 물통을 아침 일찍이 학교로 배달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아이와 서둘러 응급실이 있는 관내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가 입원을 시켰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 선도위원회 사무실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을 때 담임께서 다가오셨다.
“좋은 걸로 오시게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반장이란 학생이 베드로를 포함해서 3명 더 돈을 뜯고 때리고 6개월 동안 그 친구들이 시달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말할 사람은 베드로 아빠뿐인 것 같아요. 그러니 책임 있게 말하세요. 그때 둘째가 떠올랐다.”
“네.”
선도 측에서 정학으로 입을 모은 사이.
“그 기간이 며칠인가요.”
“최고 10일입니다.”
피해 학부모도 정학으로 눈길 가는 사이. 나는 전학 쪽으로 입을 모으자 베드로의 폭력행위에 대해 합의문에 전학을 가는 조건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위 내용이 사실이지만 김 교사한테는.
“아는 분이 교육 지원 청에 있습니다.” 라고 선의 거짓말을 했다.
“왜. 고발했습니까?”
“고발이 중요한 것 안이잖아요.”
“당장 주태를 데리고 오세요.”
고양이 앞에 쥐가 따로 없었다. 보호자 앞에 서도 저런데 아이들에게 교육이랍시고 얼마나 잡을까? 다음 날 등굣길에 아이를 데리고 담임 집무실을 찾았더니 사나운 고양이 얼굴로 맞이하니 더욱 불편했다.
“야. 반성문을 써.”
그날로 아이는 고양이 교사로부터 교내봉사를 하루에 한꺼번에 시킨다는 이런 내용을 잘 모르는 학부모들은 학교에 가라 하니 밖으로 내몰려서 노숙 강아지가 되어 이 집과 저 집을 넘나들면서까지 또래 집에 가 밥을 훔쳐 먹으면서 이웃 옥상에 가 잠과 술. 담배 친구로 시간이 갈수록 어느 폐가에 들어가 잠도 청하고 이웃 도움으로 새벽 시간 때. 몽둥이를 들고 고샅을 찾아가는 순간에 줄행랑으로 되돌아오는 아빠의 모습이 처량했다. 달 없는 둥지 아이들끼리 어울려 옷과 신발을 바꾸어 사용하면서까지 누가 그런 마음을 알까? 이름표도 바꾸어 쓰고 배춧잎도 오토바이도 훔치다가 소년원에 간 아이도 있었다. 교사도 일가도 가정의 문제 타령만 늘어놓았다. 내 가정이라면 그럴까? 배려하는 교육자가 없는 무궁화 나라 마당 피해의 학생들은 더 늘어 날것이다. 숨 쉬는 아이들에 대책이 미흡한 교육정책 새싹들이 태어나기만 강요하지만 있는 아이들에 대한 선행교육이 시급한 일이다. 세상은 바뀌어도 교사는 관행으로 붙으려 나미아불타불관셈보살 아닌가.
“학교다. 무얼 해줬습니까?”
“앞으로 소설책을 써. 드릴 테니 이 교감께서 그동안 일어난 것에 대해 책임을 지세요.”
“교직 생활 40년을 했지만 문인은 처음이요. 소설은 말장난인데.”
“아. 그러세요. 봅시다.”
갑자기 교무실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소설가를 향하여 두 손을 모았다. 나도 그와 똑같이 그런 모습을 취했다.
“누가 선생님인가 학부모인가.”
나는 저녁밥 시간이 되자 집으로 왔다.
다음날 어둠이 들자 현관문을 두드려서 밖을 쳐다보니 낯선 사내였다.
“혹시 김주태 아버지 되시죠.”
“그런데요.”
“방으로 실례합시다.”
“좀 누추해서.”
“괜찮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동공을 불을 켜고 기웃거렸다.
“한울타리 아버지 되는 사람이요.”
“무슨 일로.”
“주태의 집 주소를 학교 담임으로부터 알았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요즈음 어느 시대인데 이 늦은 밤이랄까? 남의 둥지 연락처를 맘대로 알려주다니.
“아. 그렇게요.”
“울타리가 수학학원에 갔다 오는데 주먹을 휘두른 2명에게 빈집으로 끌려가 행방불명 2일이 되자 삼거리역이면 여러 군데에 확인을 해본 끝에 같은 학년 짓이더군요. 그냥 놔두면 안 될까봐. 싶어서 찾아왔어요.”
“잘 오셨네요. 어찌 됐던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로 생긴 일인데.”
“아들 친구도 내 자식 같아요.”
“공감합니다.”
그렇게 하고 간 한의사가 갑자기 돌변하더니 내 자식이 더 피해를 볼까봐. 며칠이 지난 후 선도회 측에다 고발하므로 짧은 기간 동안 무근 터주 뿌리는 감춰지고 새로운 뿌리가 문제를 다 뒤집어썼다. 약 뿌리 대학원을 나왔다면서 바닷바람 원장이란다.
“울타리만 학교에 잘 다니면 되고 이 지역 깡패두목과 경찰고위간부도 원장친구요.”
철부지 아이들 속에 뛰어 들어가 이기주의가 판치는 시대아닌가.
“저 아이하고 놀지 마 물들라.”
“네모난 학교에 안 갈래요.”
아빠는 주태를 설득해 교실로 데려가면 때는 이때다 싶은가 선도회를 수십 번 열어야 한다며 교내 방송으로 불러대니 중학교 2학년이 되었어도 혼날까 봐. 도망자 신세가 한동안 되었다. 아빠가 검정 눈으로 살아가다 보니 무식이 답답함이 말이 아니어서 고등교육만큼은 꼭 이루도록 책가방을 싸들고 지각생이 되어 정문에 이르자 마주친 학생부장이랄까? 위로 아래로 훑어보면서.
“더는 이 학교에 다닌다고 번복을 하지 마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교무 부장한테가 교과서를 반납하고 돌아 나오는 학부모 마음을-. 말은 선도차원이란 취지는 참 좋다. 내용상 방울 달린 아이들을 색출하는 곳이다. 이런 새끼들이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언제 어디에 세워져야 할까? 며칠 전에 집을 나간 강아지가 연락을 해왔다. 혼자 사랑 청소년 쉼터에 들어가 보니.
“너무나 좋아요.”
그런 꿈도 잠깐. 법원으로부터 집배원 손에 편지가 배달되어서 뜯어봤다. 아이와 같이 동행하라는 내용인즉. 그러나 될 수 있으면 부모가 먼저와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날짜와 시간을 지켜서 지방보호관찰소 김 조사관을 찾아갔다.
“어떻게 오셨나요.”
“김주태 아버지 됩니다.”
“묻는 말에 사실대로 말하세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보는 순간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팩스로 왔나 마음으로 읽는데 슬그머니 넣는 조사관을 바라보며 조사를 마쳤다.
“2010년 7월 15일 오후 2시경 소년법정으로 가세요.”
“네.”
“시간이 늦으면 안 돼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조사실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온 거리는 1만 원이었다. 혹시 주태가 달아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날이 밝자 시간을 맞추어 쉼터를 찾아갔다. 날 다람쥐만 배외랄까? 한참 만에 주태를 만났다.
“아빠 왜 왔어요.”
“법원에서 이게 왔다.”
주태가 집을 나갈 때 싸들고 갔던 가방과 의복을 그곳에 놔두고 부자는 아빠택시를 타고 소년법원으로 달려갔다. 법정 밖에 재판을 받으러 온 참새 가족들이 줄을 있었다. 호명에 따라 판사님 앞에 섰다. 판결문을 펴자.
“김주태는 들어라.”
“예.”
“타 학생한테 여러 차례 돈을 빼앗고 폭력을 쓴 것이 맞느냐.”
“예.”
“보호관찰 2개월인데 양성을 잘 시킬 수 있나요. 보호자 김영님 말을 해 보세요.”
“사회에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럼. 주태는 잘 들어라. 사회시설 6호 기관인 살레시오 천주교 재단으로 보내어줄 테니 그곳에 가 검정고시 공부도 하고 여러 개월 동안 시설에 가 있어라.”
판결이 떨어지자 보호 관찰 손에 이끌려 동구 밖으로 나갔다. 아빠 또한 처음으로 겪는 일이라 내용도 전무했다.
“이대로 가나요.”
“그대로 가는 거지 아침 7시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 잊지 마.”
“네.”
“너. 이름이 뭐냐.”
“미카엘인데요.”
“언제까지 있어야 하나요.”
“6개월 지나면 집에 가.”
호송차가 대기하고 있었던가. 떠나보내고 나서 돌아오는 기러기아빠의 모습이 부끄러웠으며 배움의 가난한 집안에 고리를 끊으려고 아이를 가르쳐 보려고 가진 애를 썼건만 헛수고에 그쳤다. 2개월이 되어갈 무렵에 보호시설로 전화를 걸었다.
“누구세요.”
“김주태 부친이 되는 사람이요. 그곳 아이가 들어간 후로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요.”
“아이한테 집으로 연락을 하라고 했어요.”
“아. 그러세요.”
“부모교육에 참석하셔야 해요. 날마다 아이들이 변해 가는데 같이 변해야 합니다. 매월 두 째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의무교육에 참석을 안 할 경우 법원으로부터 벌금이 나갑니다.”
“네.”
아빠는 약도를 찾아가는 길 파악한 다음에 교육받는 날 되어서랄까 서울에 있는 살레시오. 그 날짜에 찾아갔다. 아이와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아빠가 판사님께 말을 잘했으면 한두 달 살고 나갈 수 있을 텐데.”
“아들아. 그때 판결을 내리시는 망치든 판사께 말해보지 그랬냐. 네 죄가 없다 하자 빵에 들어가 산다고 떼를 써도 안 받아 줄 거야 알았느냐.”
“처음 이곳을 왔을 때 야간도주를 하려고 살폈는데 문도 잠겼고 지키는 분이 있어서 포기했어요.”
“그래. 잘했다. 이곳은 학교 수업으로 계산된다.”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아이는 숙소로 올라갔다. 교육내용을 김 강사에게 듣고 보니 설득력이 좋았다. 나는 본업으로 돌아와 2달이 되어갈 무렵에 대형은행 찾아가 통장정리를 하는데 중학교로부터 학교 운영비가 계속 빠져나갔다. 교무실로 연락을 했더니 서슬이 퍼런 교감께서 전화를 받았다.
“김주태는 우리 학교의 학생입니다. 아버지 되시죠.”
“예.”
“안녕하십니까?”
서로 간에 말 맞춘 말처럼 그래서 나는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아버님도 잘 아시겠지만. 운영비 때문에 주태가 다시 이 학교를 다닐 수가 있고요. 지금 어디에 있죠.”
“청소년보호 6호 기관인 살레시오에 수감 중입니다.”
“수감 중에는 등교일수로 처리됩니다. 결석은 안 됩니다.”
나는 교감의 말을 듣고 살레시오. 교육담당자분과 연락을 하여 등교일수에 대해서 문의를 해보았다. 교감의 말대로 사실이었다. 그 내용을 담임하고 통화했더니 횡설수설 아닌가.
“자퇴서를 써놓고 갔잖아요. 정리가 다 끝난 마당에 무슨 말을 합니까? 또 시작하네.”
“그런 것이 아니고요.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셔야겠네요.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한참 동안 말을 들어보시더니 그때서야 언성을 낮추며.
“그래야지요. 결석이 많네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꼭 윗선에서 내려오네.”
몇 달이 지나서야 담임께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출소하면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하니까? 연락을 드렸습니다. 대비할 서류 같은 것 없나 해서요. 복학이나 같은 학년에 올라갈 수 있나 해서요.”
“그때 가봐야 아니까? 그렇게만 아시죠.”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의무교육과 멀어져가는 느낌을 아빠는 받았으며 될 수 있으면 고등교육을 학교 틀 안에서 가르쳐주려고 그때는 했다. 그러나 아이는 싫다고 했다. 교화과정을 마치고 나오면 물들기 싫어하는 담배와 술 또는 욕설과 폭력 컴퓨터 중독 등 그동안 끊었는데 앞으로 밖의 세상에 안 나간다고 하소연하는 주태가 살레시오. 속에서 검정고시를 하도록 도와 달라고 아빠한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아직은 고아가 아닌데 어릴 때 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아이도 홀로 아빠도 홀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아빠의 마음이 무거웠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규칙적인 생활로 흙으로 만든 도자기와 합판까지 톱질함으로 힘이 장사랄까?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식성 좋은 청소년들에게 1천1백 원짜리 밥을 먹였다고 들었다. 사회의 전문가들이 골고루 살펴서 아이들이 밝은 기둥이 될 수 있도록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할 시기다. 그리고 출소할 날 2개월을 남겨놓고 대한학교로 보내려고 시도 교육 지원 청에다 민원을 냈다. 담임을 통해 학교장의 추천서가 필요하다나 그런 말이 오간 뒤에 교감한테 달려갔다.
“어떻게.”
“대한학교 서류가 필요로 해서요.”
“앞으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지 마시고 저를 찾아오세요. 다 해 드릴 겁니다.”
교무 부장을 통해 김 교사를 호출했다.
“주태 출석 일수가 어떻게 되나요,”
“다 결석으로 쳤습니다.”
“새로이 수업 일수를 만들어 시도교육 위원회 가는 날까지 수업 한 걸로 잡아야죠.”
교사는 한숨을 깔면서 호랑이 교감 말에 따라.
“네”
교무실을 함께 빠져나와 복도에서.
“서류를 새로이 하는 것이 힘들어요.”
“그러하겠네요.”
주태가 수감시작 할 때. 담임교사한테 연락을 드렸다. 그 당시 우물쭈물 했다.
“빠른 기간 내 서류를 부탁합니다.”
“며칠만 기다리세요.”
“이만 가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아버지.”
눈발이 날리는 겨울날 2개월 연장이란 담배피우다 걸리면 그렇게 수감이 끝나갈 때 살레시오 한 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학생신분에 세례 받은 아이는 처음입니다. 대한학교 연결을 해서 이곳에 남겠다는 아이도 처음 있는 일이고 수사님 주관하여 회의한 연 다음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교감을 찾아가 뵈었다.
“나라에서 대한학교로 지정된 학교만 해당합니다. 그곳에 있는 기간에 수업 일수가 되는 걸로 봐서는 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이의 서류를 그쪽으로 보내어 주세요.”
“연락처가 어떻게 되나요.”
명함을 보여 드림으로 교무부장께서 기록하셨다.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연락이 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리를 빠져 나와서 삶의 일터로 향했다. 아이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곳에 남아서 공부를 할 수가 있게 되었다면서 너무나 좋아했다. 집안에서 바지락 소리만 나도 가슴을 쓸어냈다.
“처음 입소자와 똑같은 공동체 과정을 생활화하니 열 받아요.”
외출을 즐기고 입소 시간이 되어서랄까? 아빠를 찾아왔다.
“주태가 내일 살레시오. 들어간다고 연락을 하세요.”
“안이 될 거다. 쉬는 아빠 택시타고 같이 갈까?”
갑자기 욕설을 해대며 안 갈 거라고 고샅을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살레시오. 선생께 연락을 했더니.
“시간 내 드려 보내세요.”
아빠는 땅 짚고 수영을 하는 격이었다,
“주태와 연락이 되나요.”
“아직 없는 데요.”
정규학교 이 교감께서 연락을 해왔다.
“아이가 가출했다고 연락이 왔는데 들어 왔나요.”
“소식이 없어요. 오는 대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실래요.”
“내용은 아세요.”
“다 같이 지내다 보니 그랬을 거예요.”
그렇게 7일이 흘렀고 어둠이 물들면서 전화가 울렸다.
“주태를 만났습니까?”
“아니에요.”
“승합차로 아이를 만나 선생님과 가는 중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번 주태의 행동을 봐서 서울 나눔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그런 짓 같아요.”
“예전에 그쪽으로 간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서류가 필요합니다. 준비 좀 해주세요.”
“그 서류가 어떤 것인가요.”
“가족증명서와 재적증명서 담임 소견서가 필요합니다. 아이 학교로 연락해놓았으니 가시면 드릴 겁니다.”
“준비하겠습니다.”
하루를 놔두고 여름방학이었다. 체육부장께서 나를 보자마자.
“이사를 안 하고 아이만 전학을 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네요. 그렇게만 된다면.”
“안녕히 계세요.”
“나눔의 집 김 신부께서 연락이 갈 겁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구를 할 거예요.”
“네. 알았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신부님이셨다.
“미카엘 아버지 되시나요.”
“네.”
서울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기는 아늑한 집인데다 5명이어서 같이 살아요. 가정보다는 못하지만.”
“네. 좋네요.”
“아이보다 먼저 오셨으면 해요. 오늘 어떨까요.”
근무하는 날이라 내일로 미뤄놓고 하룻밤이 지난 후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서 비좁은 주택가 골목을 어렵게 도착한 나눔의 내부에 숲과 자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부님의 안내 따라 집무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마실 것을 뭐로 할까요.”
“음료수로 주세요.”
“택시를 한다면서요.”
“예. 어떻게 아셨나요.”
“대충 들었어요.”
“여기는 살레시오. 6호 기관에서 자부담이 없습니다. 국가 지원을 받기 때문에 그러나 교육기관에 금전적 학부모께서 지급해야 합니다. 터무니없는 약정을 해놓고 앞으로 안내는 분도 봐왔고요. 자식을 이곳에 놔두고 이사를 하는 부모가 있었어요. 만일 이사를 할 때 미리 연락을 주세요. 영세민일 경우에는 국가의 혜택을 받아요.”
“아이 셋을 키우지만. 부자가정인데 개인택시란 이유로 혜택이 없어요.”
“남은 아이들도 있으니 부담이 안 가는 형편에 하세요.”
“매월 10만 원씩 온라인으로 입금을 하겠습니다.”
“미카엘로 말미암아 부족한 것 다른 데서 보충하기로 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 가정환경에 대해서 자료가 필요합니다. 저쪽에서 넘어오지만. 그것 가지고는 부족해요. 사실대로 말씀을 해주세요.”
“7살 때 아이 엄마께서 카드다 손을 데어 감당을 못하고 가출을 했고요. 그런 후로 할머니 집에 합쳐서 함께 살다가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운명하는 바람에 같이 살지 못하고 반지하방으로 이사했어요. 그곳에서 어린 형제들만 지내는 과정에서 통제할 어른이 없는 집이라 학교에 가면 싸움질로 또는 32살이 된 어른 형을 따라다니면 술과 담배를 가정교육이 없어서 성질이 욱하며 절제가 부족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제 왔다 갔어요.”
“정상학교에 다닐 수가 있나요.”
“다닐 수 있습니다.”
내일 주태의 옷과 신발을 싸들고 나눔에 집으로 와야 합니다. 나는 아이를 태우고 가는 도중에 총알 기사 식당가에서 오랜만에 부자가 식사를 한 다음 입교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서둘러 찾아간 나눔의 신부님 소개를 받아 살림꾼 삼촌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집보다는 못하지만 가정적인 분위기예요. 전 학생 수가 주태까지 포함해서 5명이 되네요. 아버지도 분담을 맡아야 해요 1년에 4번은 아이가 가정으로 휴가를 가는데요. 돈이며 전자물품을 사줄 때는 사전에 연락을 주세요. 그것만은 꼭 지켜주셔야 해요. 이것을 안 지켜질 때 탈선의 노출이 심하니까요. 유사한 사례를 참관 결과지요. 떨어져 있다가 보면 안쓰럽고 뭐든지 다 해주고 싶지만 아이한테는 도움이 안 되지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좋은 사례를 참고 하겠습니다.”
“주태야. 이제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깨어나야 한다. 욱하는 성질도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학교에 가면 끌어들이려고 건드리는 아이가 있다. 너는 그동안 많은 것을 해봤으니까 터치를 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다 보면 그들이 다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이곳에 형들과 동생들이 있는데 사이좋게 지내야 하니 노력해야 한다. 못하고 잘하고는 너한테 달렸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가 있는 곳은 3층 건물에 형들과 같은 침대를 사용해야 한다.”
“네.”
또래 안내를 받아서 문지방 너머로 따라 들어갔다.
“여기서 아이가 중, 고등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이 시설은 돈 많이 들어가는 데고요. 어떻게 아셨죠.”
“앞전에 살레시오. 있을 때 나눔의 집으로 간다고 노래를 부른 적이 있어요.”
“잘 왔습니다. 관심을 많이 둬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신부님을 믿겠습니다.”
아빠는 해거름을 따라 나눔에 집을 등지고 삶터로 달려간 택시랄까? 식솔들은 십자가 믿음 있기에 안도의 한숨으로 오늘도 아이만 잘되기를 마음속 기도로 해와 달과 넘어가고 있었다. 삼백예순날 이웃둥지의 신고로 경찰관들이 몰려와 울타리 너머 노숙한다는 아이들의 방구석이 된 지도 오래된 어느 날.
“공동 주택인데다 여기서 잠자면 모기도 무는데 일어나봐.”
“주태 형 베드로 집이에요.”
“그래도 안 돼.”
“빨리 일어나 부모님의 연락처 대봐.”
“몰라요.”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
“고등학교요.”
“경고하는데 앞으로 여기서 만나면 경찰서 가는 거다.”
“네.”
떠돌이 강아지가 되어 울타리 너머로 몸을 숨기는 찰라 이웃사촌인 통장께서.
“아이들을 경찰차로 싫어 가세요.”
아빠는 출근길에 둥지 밖을 나왔을 때. 유치원생 엄마께서 다가왔다.
“아저씨.”
“왜요.”
“아이들을 동네 못 오게 하세요.”
“나도 주의를 시켜요. 그리고 이웃도 관심을 둬줘요.”
“별 밤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이루어요. 아저씨께서 없는 날.”
“죄송합니다.”
그러하지 않아 여도 아이 셋으로 골 덩어리가 아픈데 묘수풀이는 없나 고민 끝에 베드로가 다가왔다.
“아빠. 여자 친구를 사귀면 안 될까요.”
“어른이 될래.”
“어른은 싫고요.”
“그럼. 오래오래 사귀어라.”
“예쁘데 보실래요.”
“너만 좋으면 된다.”
어느 토요일 노을들 무렵에 둘이 사귀는데 허락 아닌 허락을-. 둘이는 펄펄 뛰었다.
“여고 친구네 부모께서 이해를 못 하는데-. 소설가 아빠는 다릅니다. 아빠. 감사합니다.”
어느 문학가 박 교수로부터 사랑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들었다.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갑자기 성적이 뚝 떨어져서 이상도 하지 했는데 하루는 아들이 엄마 곁에 다가와 여자 친구가 있는데 소개를 해줄까요.”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만나던 사람이 지금은 며느리가 되었으며 그 후 공부를 잘해서 화가 교수가 되어 잘산다는 이야기가 오갔으며 그때는 먼- 옛날이야기라고 했는데 교수도 모르게 준비된 시어머니라고 그런 말이 오간 탓에 베드로가 다가오더니 아빠께서 허락을 안 했으면 가출하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 눈엣가시인 고교생 아이가 공부는 뒷전이라면서 사랑에 눈이 멀었다 무수 자르듯이 해야 한다며 당신아들 김영님 집을 찾아와 현관문을 열어놓고 없는 소리로 참견이랄까?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살면서 도와달라고 사정할 때는.
“왜. 너의 자식한테 구 덮을 치루냐.”
“이유야 어떻든 두 손입니다.”
”이젠 다 끝이라는 어머니. “
“어머니라고 부르지 마.”
“그럼. 할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
바람 따라 휭할 때. 모시 자락만 어른거렸다. 그 다음날이 되어 근무하는데 전화연락을 받았더니.
“주태 아버지 되시죠.”
“그런데요.”
“주태가 자동차 사고를 냈어요. 빨리 와주세요.”
서울변두리 근처에서 하던 운전을 놔두고 달려가 만났다.
“어떻게 된 내용인가요. “
“중학교 3학년 번식이가 주태의 친구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주태가 자전거핸들을 잡았어요. 그 뒤 저가 탔거든요. 내리막길에 서 있던 오토바이를 바치는 바람에 오토바이가 쓰러지면서 자가용과 부디 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예요.”
“주태가 운전을 했으니 얼마든 다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번식이의 아버지 말이랄까? 부자가 사는데 형편타령을 할 때 나는.
“그럼. 핸들 잡은 죄로 10만 원이고 뒷자리 탄 죄로 5만 원으로 합시다.”
“예.”
“오늘은 주일 이니 온라인 입금을 내일 해줄게요. 채워서 피해자를 드리세요.”
나는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주태 한태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어디요.”
“까치산역을 지나가는 중이다. “
“죄송해요.”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해라.”
그렇게 하루가 지났으며 오늘따라 새벽인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내일이 걱정이 앞섰다. 혹시 졸음 닭으로 핸들을 잡으면 어쩔까? 별이 뜬 하늘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가양 지구대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주태의 아버지 되시지요.”
“그런데요.”
“편의점에 들러 아이가 컵라면을 먹고 나오는데 취객한테 맞아 핏자국이 된 내요. 미성년자라 부모의 동행 하에 이곳으로부터 나갈 수가 있어요. 빨리 오세요.”
“인천인데요.”
“오는 거죠. 오는 거죠.”
그 말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네 지금. 가겠습니다.”
새벽바람과 함께한 택시와 달려간 강서경찰서 형사과를 두리번두리번 문지기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누구.”
“주태가 안 보여서요.”
“없네요. 나가세요.”
나는 어둠 속에 1시간 후에야 도착이란 연락을 받았다.
“늦었네요.”
“경찰서로 넘겨야 할 조서가 필요해서요.”
내 아이는 가벼운 타박상이라 바로 합의서 작성을 해줬다. 또래 3명은 몰골에 혈 은과 멍으로 얼룩이 되어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강촌 아파트 근처다 4명의 아이를 내려주고 아침을 맞았다. 졸음 닭으로 근무에 차질이 생겼다. 돌아온 금요일에 주태가 가출했다고 신부님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듣는 순간에 오늘로서 아빠의 끈을 놓겠다. 다짐을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후 삼촌한테서 연락을 해왔다.
”추석이니까 캔 선물을 들려 보냅니다. 보낼 때 그냥 보내는 것 있지 마세요. 교육상 필요합니다. “
”네. 잘 알았습니다. “
서쪽으로 햇살이 기울 때. 밖에서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미카엘입니다.”
“아빠 오는데 걷다가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오느라 힘들었어요.”
“당연히 힘들지. 쉬어라.”
어둠이 깔린 밤하늘에 현관 밖에서 소리가 왁 자지 걸 했다. 나는 눈길을 그곳으로 서두르며 다가갔다. 베드로의 여친이 집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가로막는 둘째 아닌가.
“미카엘 들어가게 비켜줘라.”
“안돼요. 제 허락을 받아야죠.”
“아빠가 허락해줬다.”
“그래도 안 됩니다.”
“야. 이놈아. 누구 집인데.”
“미카엘 집이요.”
“너희 3형제가 결혼할 때까지는 부모한테서 얹혀사는 거야. 지금부터 아버지 집이다.”
여친이 방안으로 들어가자 볼때기에 비가 내리더니 없던 인상과 욕설까지 퍼부었다.
“더러운 집구석에 오나 봐라. 살레시오로 갈래요.”
“당장 사라져라.”
밖으로 힁하니 나가는 주태 뒤를 따라가 데려오게 베드로를 시켰다. 한참 뒤 두 형제가 돌아온 후 주태는 아빠 곁으로 다가왔다.
“미안합니다.”
“그럴 때가 있다. 너 여친 언제까지 아빠한테 보여줄 거야.”
“구정 때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알아둬라. 이렇게 사는 아빠의 눈이 높다. 형 여친처럼 볼때기가 적어야 한다.”
철봉턱걸이 하듯이 중학교 3학년이 되었어도 정신을 못 차리는 미카엘한테 쇼크를 주기로 아빠는 오래전부터 고민을 해왔다. 고교생인 베드로 여친을 집으로 받아주자 그 순간에 돌아버린 주태에겐 약이 되었으면 했다. 5일간의 추석 연휴를 집에서 보내는 기간에 주태는 형 여친을 볼 때마다 불편 하는 걸 감지했다. 사람은 육체적인 동물이랄까? 여기서도 느낌이 없다면 바보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한편으로 해본다. 연휴가 끝나자 사과 1상자를 들려서 기숙사 가는 길에 보내었다. 3일째가 되어가던 날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나눔의 집 살림꾼이었다.
“전화하기가 왜. 힘들어요.”
“그럴 리가요.”
“신부님께서 통화하셨다. 하던데요.”
“그랬어요. 시간이 늦어 말씀을 못 드렸어요.”
“은행통장 2개를 만들어 오라고 한지가 언젠데 지금까지 안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못 들었습니다.”
“내일 오후 1시까지 무궁화은행 걸로 만들어 와요.”
“예. 알겠습니다.”
그 당시 소설책 읽듯 해놓고 잊었느냐. 다그치는 속셈에 기가 막혔다. 또는 전화로 언성을 높이며 따지는 내막이 뭘까? 궁금했다. 아이가 착실하게 있었으면 저러실까? 속마음으로 나는 시간을 맞추어 교육관 삼촌을 만났다. 탁자 사이 두고 둘이서 물 한잔 없이 말이 오간 시간만 4시간이 흘렀다.
“왜. 신부님께 거짓말을 했습니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늦어 말씀을 못 드렸을 뿐이오.”
“경찰서 간 것과 오토바이 사고로 부모가 왔다 간 것에 대해 이곳에 맡겼으면 신부님께서 아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미쳐 타임이 늦었어요. 거짓이 아니죠.”
“좌우지간에 신부께서 책임자로 다 아시고 계시지만 당신이 오시면 미카엘 데리고 가시라 할 것입니다. 이런 아이는 처음 봐왔고요. 신경을 너무 쓰다 보니 위궤양으로 몸이 말이 아니에요. 그동안 기숙사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 아이로 말미암아 뒤집어 놓았으니 지금 꼴이 아니네요. 가출에서 일주일 만에 돌아와 청바지가 터졌으니 세탁소에 갔다 온다던 아이가 새벽 3시쯤에 돌아왔으니 더는 공동체 교육이 안 될뿐더러 사고를 크게 저질러서 다시 살레시오에 갇혀 살게 했으면 싶은데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고 그런 행동을 하니까 속이 터질 것만 또는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네요.”
“죄송합니다. 더는 뭐라고 말씀드리고 싶지가 않네요.”
“실제 나이가 몇 살인가요.”
“돼지띠다가 윤달들은 해 태어났어요. 원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야 맞아요.”
“아니나 다를까 체구와 다른 아이보다 크고 생각도 틀려요.”
“사춘기 할 나이 1년 남은 것 같네요.”
“형제가 똑같으니 괴로워요. 형이나 동생이나 나이 차이가 없는데다 3년간 똑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발톱이 달았어요.”
그때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빠를 보는 둥 마는 둥 방안으로 들어가는 미카엘을 삼촌이 불렀다.
“왜요.”
“아빠를 봤으면 인사해야지.”
굳은 몰골에다 미소를 지으면.
“오셨어요.”
“오냐. 삼촌 말을 잘 들어라. 올라가 봐.”
“행동이 저래요.”
외출을 다녀온 신부의 모습이 예전과는 달라 보이셨다. 둘이는 신부님과 마주 보면서 대화가 이루어져 갔는데 신부님의 말을 따라 반박을 계속하는 미카엘 아닌가. 다리 하나를 흔들었다 그러하지 말라고 아빠는 타일러도 똑같은 행동으로 일관했다.
“미카엘 잘 들어라. 여기는 개인적인 행동 하는 데가 아니야. 공동체 생활하는 데잖아. 그렇게 행동을 하면 같이 못살아.”
“신부님께서 행동들을 이행하시고 말씀을 하셔야죠.”
그때 나를 밖으로 유인하는 삼촌이 다가왔다.
“미카엘 집으로 데려간다고 신부님께 사정하고 데려가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문짝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에 큰소리가 났다.
“나가세요.”
한 참 뒤 나는 문짝을 다시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주태를 몇 번을 불러서 돌아오는 모습이랄까? 신부님 옆에 서서 나는 허공에다 대고 아이가 한번 밖으로 나가면 그냥 노숙해요. 옛날 그림자가 아빠의 머리에 맴돌았다. 처음으로 연휴 때. 집에서 잠을 같이 잤는데 특별한 휴가로 2박3일 간 신부님으로부터 다시 휴가를 받아내어 아빠하고 같이 돌아오는 길에 말문을 열었다.
“내가 잘못을 했는데 아빠가 신부님 앞에 무릎을 꿇고 빌어도 부족하다는 말씀에 열이 올라와 아빠 보는 순간에 그랬어요.”
“야. 그래도 그렇지. 아빠체면이 있잖아.”
“어른이면 행동을 그런 식으로 하면 되나요.”
“잘 모르겠다. 네가 똑똑하잖아.”
그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온 주태는 이틀 동안에 만화책을 빌려다 읽는가 하면 인터넷으로 일본만화를 내려 받아 욕과 싸움의 글을 보면서 지냈다. 입소하는 날.
“아빠 집이 더 좋아요.”
“그럼. 집보다 좋은데 어디 있느냐.”
“3개월 만 있으면 중학교 졸업장도 얻고 고등학교는 집에서 다닐래요.”
“그렇게 해라.”
나의 출근길에 차비 2만 원을 주태 손에 쥐여 주고 일을 가면서 버스 타고 가다 오류동에 내려서 택시 타고 가거라. 그 날짜까지 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어진 나는 운행 중이랄까? 대치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오후 1시였다.
“여보세요. 나갈래요.”
“누구냐.”
“아들 주태요.”
어느새 수화기는 신부한테로 바뀜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주태 아버지.”
“네. 신부님.”
“몇 시까지 올 수가 있나요.”
머뭇거리는 순간에도 거리가 먼 데다 생각지도 안 한 상태였다.
“대치 사거리인데요.”
“1시간 잡고 2시쯤이면 도착할 수 있네요.”
“그럴 겁니다.”
“빨리 오세요.”
“네. 알았습니다.”
낮12시인데도 신호와 교차로마다 차들로 가로막고 있었다. 빈 택시를 끌고 바람같이 가는 도중에도 전화가 울렸다.
“어디세요.”
“남부 순환도로 개봉역을 지나가는 중이에요.”
“다 와 가네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미카엘 짐을 밖에다 내놓았어요.”
재촉 끝에 서둘러 나눔의 집에 이르자 동행하는 삼촌과 트렁크다 보따리를 싫어 놓고 사무실로 들어가 퇴소절차를 밟았다.
“여기서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하는 곳인데 아쉽다. 밖에 가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자. 아버님께서 신경을 쓰셔야겠네요.”
“짧은 기간이지만 김 신부께. 이곳에 있으신 여러분께.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이달분 10만 원을 입금 시켰습니다.”
“찾아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러하지 않아도 살레시오다 기부하려고 했는데-. 나눔의 집 공동체 심부름은 삼촌 손에 이루어졌고 주태의 재촉으로 서둘러 본의 아니게 아쉬움과 돌담길을 빠져나왔다.
“아빠. 오늘 일하시죠.”
“그래.”
“친구들과 흡입한 접착제 멍 가든데요.”
“당연하지 하지 말라고 TV방송에서 않데.”
흡입 접착제이야기 처음 가출할 때 아닌가.
“그럼. 일하시고 오세요.”
“주태는 친구들과 놀다 내일 오후나 갈 거예요.”
“알았다. 문제 일으키지 말고.”
“네.”
부모로써 걱정은 되지만 걱정이 다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살아 움직이는 동물인데 가둬놓을 수도 없고 내 속은 안 좋지만 그래도 믿자 퇴근 후 돌아와 보니 미카엘이 12개월 만에 달 없는 둥지로 정신적 장애인 되어서랄까? 돌아왔다.
“아빠를 보면 인사를 해야지.”
“주태를 보면 인사를 해야지.”
말 따라 행동하니 예전의 아이가 아니었다. 힘이 황소처럼 감당이 안 되었고 누구를 탓하랴. 기러기아빠의 잘못이다. 그렇지만 공자가 아닌지라 말싸움으로 충돌이 잦아졌다. 집안 형제들끼리 회오리바람과 둥지 밖도 노숙학생들까지 몰려온 저녁 시간이었다.
“아빠. 친구들이 내 몸종인데 재워줘.”
“야. 인마 여기가 여관방이냐.”
“나갈까?”
“나가라.”
“아빠나 나가라.”
“에이 씨~”
“에이 씨~”
“아빠나 해라.”
울화통까지 터지지만 미운 놈 떡 하나 생각나는 반지하방에다 이웃 노숙 생들까지 먹이고 재우고 10일간이나 흘렀다. 베드로가 다가왔다.
“아빠 할 말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왜. 주태 한태만 잘해줍니까?”
“걔보다 너에게 뭐든지 많이 간다.”
“선생님과 약속했어요.”
“그것이 뭔데.”
“선생께서 가방을 메고 다니라고 했어요.”
“잘 알았다. 며칠 있다가 생각 좀 해보자.”
“당장 해줄 거요. 안 해줄 거요.”
“너. 걔 닮았느냐.”
“저 말만 꺼내면 아빠는 다음에 하잖아요.”
“너도 알잖아. 주태가 왔으니 학교도 전입해야 하고 보호관찰신고도 해야 한다는 것 말하는 버릇이 네 동생 닮았느냐.”
창밖에서 이슬비가 되어 주태가 돌아왔다.
“아빠 왜. 형을 내쫓았어.”
“지가 나간 거다.”
“집에 안 들어온 데 고집이 강해요. 저는 못 데려오니 아빠가 나가 봐. 그 자리를 딴 데로 옮긴 데 빨리.”
현관밖에 밤 울타리 앉아 있는 베드로 곁에 다가서니 물끄러미 쳐다봤다고 할까?
“뭐 하느냐 들어가자.”
“안 들어갈래요. 나가라고 했잖아요.”
“열나면 무슨 말을 못하냐.”
태풍이 지나간 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이튿날 10만 원으로 책가방을 사라고 약속했다. 아빠의 속은 짠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몇 년 동안 가방도 책도 버리고 학교에 다녔으며 신발과 교복도 친구들과 바꾸어 사용했으며 들러리 학교생활이 다였다. 둥지는 출렁이는 바다와 같았다. 아침 햇살의 지피에스 바람이 흔들릴 때마다 전화가 울려 받았더니 신부께서 연락을 주셨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하루빨리 서류 전학하는 것이 아이한테 좋아요. 수업일수가 너무나 빠지다 보면 졸업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주태가 욱하는 것 때문에 치료가 되어야 사회활동 하는데도 좋은데 아버님께서 어떻게 했으면 듣고 싶네요.”
“그렇게 심한가요.”
“그럼요 남도 쪽에 있다는데 알아봐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신부님 고맙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지방-서울 간의 경인고속도로 타고 나눔의 집과 울타리 학교를 찾아 담임을 찾아뵙는 순간.
“아 쉼이 있네요. 조금만 더 있으면 졸업을 이곳에서 하는데 왜. 전학을 선택했나요.”
“공동생활의 참견과 갇혀 있는 삶은 싫데요.”
“어느 학교로 갈 건가요.”
“집주변은 싫데요. 청정중학교로 갔으면 하고요. 신부께서도 아이의 희망하는 대로 해주라고 하네요. 알바페인트 5일간 하고 학교에 간대요. 북극 교육 지원 청에 찾아가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전학서류를 전산으로 보내드리고요. 옛날에 학부모들께서 들고 갔어요. 책 반납증과 이 학교 사실이라는 재학증명만 가지고 가면 돼요.”
“그동안 저희 아이로 말미암아 수고를 많이 하셨네요.”
나는 학교를 빠져나와 아스팔트 바람과 함께 찾아간 데는 교육 지원 청 3층 중등과 담당자를 만났다.
“왜. 다시 옵니까?”
“형을 마쳤는데 나눔의 집에서 일거일 투 적 한다고 청정중학교를 집에서 다닌대요.”
“그쪽은 불법인데 전학한 후 3개월이 지나면 다른 학교로 배정받는데 20일 되었으니 전에 다니던 학교로 가야겠네요. 아이가 다닌 데요.”
“다닌다고는 했는데 철장 속에 갔다. 온 후로 180도로 변했어요. 아빠가 야. 하면 야. 하고 야. 새끼야 하면 야. 새끼야 합니다.”
“서류가 부족하니 동사무소 가셔서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오세요.”
열바람이 된 나는 왕복 40분 거리를 도보로 동사무소 직원을 찾아가 의뢰한 서류를 교육담당 직원한테 드렸다.
“서울학교 2개월만 다니면 졸업하는데 다니게 할 수 없나요.”
“나눔의 집에 한번 나오면 못 들어가요 이젠 주민등록을 옮겼으니 위장전입자랍니다.”
중등담당자께서 전에 중학교로 연락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봤다. 안 받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학교로 보내라고 사정하는 걸 보였다. 담당자께서 다가오시더니.
“지금 바쁜 것 아니죠. 임원진과 상의해서 10월 4일 날 연락해 드리겠습니다.”
“예. 알았습니다.”
계단 밖으로 나와 가로수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4일 동안 고민에 들어갔다. 주태 하나 둘 모습을 관찰할 때마다 사랑이란 전혀 없었다. 어른들의 말마다 부정만 쌓여 있는 느낌이랄까? 또는 남 친이나 여 친이나 똑같은 상말뿐이었다.
"은별아. “
“네.”
“이리 와봐. 할 말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주태 여 친을 소개해주라.”
“그러겠습니다.”
“꼭이다.”
“네.”
“주태야 이리 와봐.”
“왜. 불러.”
“말하는 버릇 봐.”
“말하는 버릇이다.”
“너는 말버릇부터 고쳐라 그리고 아빠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별 볼이 없이 보여도 눈이 높으니 형 여친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작은방으로 들어갈 때.
”길은별 이리 와봐. “
“네가 그러니까 여친들이 좋아하느냐. 그리고 말버릇부터 고쳐라 그래야 여 친을 소개해주지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사귀어라.”
그런 말이 있고부터는 노을들 무렵에 아빠는 주태 여친과 인사를 받았다.
“이름이 뭐니?”
“유슬이예요.”
“그래 주태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싸움은 피하고 행복은 둘이 만드는 것이니 알았지? 그리고 잘 사귀어라.”
“네.”
주태는 좋은 언어랄까 날이 갈수록 조금씩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아빠도 까막눈으로 졸업도 못하고 떠돌이 고아생활을 하며 자랐으니 유년시절에 그러니 사랑을 줄 수도 없으며 엄마한테서도 식솔한테서도 사랑도 모르고 자랐으니 주태도 역시 사랑을 모르고 자라가니 누굴 원망해 가난한 삶이랄까? 오늘 시간이 있는 아빠는 보호관찰소 직원한테 전화로 관찰에 대해서 문의했다.
“2013년 7월말까지 관찰대상자며 직원이 나가던 가 아이가 오던 가 그에 대한 규칙만 따르면 됩니다.”
“주민등록을 나눔의 집에서 퇴소했어요.”
“위반입니다. 관찰에 미리 신고부터 해야 하는 데.”
“며칠 전 전화를 드렸더니 자리에 안 계신다 하던데요.”
“그랬어요.”
“이번만 봐 드릴 테니 미리 하는 거 잊지 마세요. “
“예.”
“언제 아이를 데리고 오실래요.”
“주태가 날 품팔이 5일간 끝나면 4일 날 가겠대요.”
“집에 없습니까?”
“집에서 잠자고 오후 5시경에 돌아와요.”
“하루빨리 담당거주지 가셔서 신고하세요.”
“네. 그날 뵙겠습니다.”
국경일과 공휴일을 포함해서 3일 날이 되자 금세 일주일이 흘렀으며 10월 4일 햇살을 쫓아 달려간 데는 서쪽 보호관찰소 E층 계단을 올라갔다.
“주태 담당자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역이 어딥니까?”
“고목나무입니다.”
“저 끝으로 가세요.”
먼저 온 사람부터 서면으로 대화와 워드 기록을 남기고 관찰자께서 나를 보자마자 저쪽에 가 기다리세요. 20십분 후 앞사람이 떠나간 자리 주태가 앉아서 전출신고를 마쳤다.
“다 끝났습니다.”
“예.”
“바닷가 보호관찰소 연락처를 주세요.”
“주태가 안다고 하던데.”
“학식만 안다 했어요.”
“주소를 적어주세요.”
차량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제2경인고속도로 달여 갔으나 점심시간이 걸렸다. 30분을 기다려야 하므로 아들과 중국집을 찾으랴. 10분을 기웃거리며 찾아 들어간 상하이 식당이랄까? 함께 먹은 지가 2번이 되었다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2층 계단을 이용해서 관찰 3팀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요.”
“주소를 전입하러 왔습니다.”
“양식대로 서류를 작성하세요. 아저씨도.”
“아녀요. 아들이요.”
“옆에 계세요.”
“왜. 전입하느냐.”
“학교에 다니려고요.”
“몇 학년이야.”
“중학교 3학년입니다.”
“너무나도 살레시오에 오래 갇혀 지냈다. 그동안 폭행과 다투는 일 없었지.”
“없는데요.”
“아이가 인물이 되어 성직자를 만들려고 했어요.”
“교회를 오래 믿었나 봐요.”
“5대째부터 성당을 믿어요.”
“하늘에서 내놓은 분이야 된데요.”
“여기는 나쁜 짓 못하게 관리하는 데야 절대로 해서도 안 되고 내년 7월까지 보호관찰대상자니 1달에 1번 이곳에 와서 신고를 해야 하고 만일 문제가 생겼을 때는 물거품이 되는 거 잊지 마.”
“예.”
“지금같이 해온 대로 하면 돼.”
“아이가 군대 가나요.”
“고등학교 나오면 가요. 실업계 학교 나와서 밥을 먹게 해줘야 하니 꼭 고등학교를 나와라.”
보호관찰소를 빠져나와 계단을 오가는 중이랄까?
“아빠. 말씀을 편하게 해줘서 좋아요.”
“그래서 보호관찰소야.”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육 지원 청으로 연락을 취했더니 오히려 박 주무관께서 나한테 연락을 하니까 통화가 안 되더란 말에 따라.
“그랬어요.”
“옛날 학교 주태가 다닌 다고 할 수도 있고요. 지금 학교도 다닌 다고 할 수 있어 선택권은 아이한테 있어요. 의논해서 결정하시고 이번 교육법이 바뀐 내용이에요.”
“예. 감사합니다.”
“낙엽이 물들어가면서 떨어지는 천고마비의 밤하늘에 바람이 우리 부자의 얼굴을 바라보게 했다.”
“주태야.”
“왜요.”
“집 근처 있는 학교에 다녀라.”
“서울학교 안이면 검정고시 할래요.”
“2개월만 다니면 졸업하잖아.”
“싫어요. 멀어도 상관없어요. 그쪽이 분위기도 좋고요. 사랑의 정이 많이 가요.”
“생각해보자.”
서울학교 김 선생님과 전화 연락이 이루어졌었다.
“선생님 주태 아빠예요.”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그곳 학교에 다닐 거라고 하네요.”
“거리도 멀고 8시 20분까지 등교해서 교실 의자에 앉아야 하는데 이 아이로 말미암아 다른 친구들까지 지장을 받을 수가 있어요. 혼자서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의논 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네요.”
“네.”
“자기의 입장이 어려우면 무의미하게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뭐라고 좀 하세요.”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초저녁에 글 동인들 모임에 참석하면서 막걸리 친구들을 만나 한잔 바람으로 둥지 골목에 이르자 주태가 반갑게 맞았다.
“아빠. 형 친구들 5명이나 경찰에 끌려갔어요. 도둑질 아니면 담배를 피우다 달밤지구대에 있을 거예요. 아까 연락이 왔는데 부모냐고 했어요.”
아이 따라 발길 된 신호등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지배배 고교생들이 외쳤다.
“야. 여기 왔으면 변함이 있어야지 조용히 해.”
“예.”
“누구 부모님 되세요.”
“베드로 아빠입니다.”
“각서를 써주세요.”
“법에 위촉되나요.”
“그건 아니고 선도 차원에서 청소년들에게 흡연과 늦은 밤까지 시끄러워서 이웃에서 잠을 설친다. 신고가 들어왔어요. 누구인지 아시겠지만.”
동의서 작성하시고 내 아이만 데리고 지구대를 빠져나왔다. 속으로 나는 시원섭섭했다. 1주일 넘게 거실과 이쪽과 저쪽 방까지 넘나드는 잠자리 우리 식구도 많은데 송아지 둘을 더 보태어 식생활과 샤워 또는 변기도 막히기 일쑤였다. 친구를 따라왔으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장난이 아닌 아빠였다. 새벽에 달그락 소리가 나서 보면 소형플래시로 도둑고양이처럼 냉장고 문을 열어 밥 훔치는 가하면 현관문 열어놓고 달밤에 담배 필터로 울타리 만들었다.
“남의 집에 그러면 안 된다.”
“죄송합니다.”
아이들과 노숙생활이 끝나기를 어느 날 햇살이 아랫목을 달궜으면 하는 바램으로 날마다 떠오르는 아침이 되어 잠자리 아이를 깨워 아빠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서울 거리는 아닌 것 같았다.
“현찰 20만 원을 줄 테니 서울중학교 2개월간 대충 다녀라. 그럼 졸업하지 않겠니.”
“교통비도 그 정도는 드는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단구냐.’ 악바리 울타리와 그 아버지 하는 짓 졸업한 후랄까? 동창회 나이가 들어 나가면 너희 아빠가 빵공장에서 일하게 했다 친구들 앞에 큰소리치면 살아라. 알았냐.
“그럼. 그 학교로 갈래요.”
아이와 의논이 끝난 뒤 10월 5일 오전 10시쯤에 주무관과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
“안녕하세요. 주태 아빠입니다. 아이가 옛날 학교로 간다고 했습니다.”
“가족증명서와 재학증명서를 띈 날짜가 7일 지나면 다시 떼어 와야 받아요.”
“갖다 드렸잖아요.”
“복사한 것 폐기했습니다.”
이런 분께서 교육 공무원이 맞나 힘없는 학부모를 어떻게 어안이 벙벙했다 근무하는 도중에 김 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수업 시간이었어요.”
“다름이 아니라 재학증명서와 기본 증명서를 다시 주무관님께서 떼어오라고 해서요.”
“3달간 유효 기간인데 교육부에 민원을 내겠다. 하세요. 직무 유기예요. 4시까지 학교로 와주세요.”
“예. 오후 시간 내에 가겠습니다.”
“말을 잊고 못 해 드렸는데 그 성적으로 서울에 있는 학교는 못 가요. 졸업은 하지만 지방이나 부천에 있는 특성화고 갈 수는 있어요.”
난 아스팔트 실선을 따라 행정실로 달려가 주태 말을 꺼내자 바람같이 서류를 주셔서 받아들고 담임께서 혹시 말씀이 있었나. 뒤돌아 운동장을 빠져나와 복 공판 이룬 국숫집에 들어갔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시켜서 서너 번 먹을 무렵에 바위를 씹었다 휴지통에 내뱉으니 잔치 맛이 천 리로 달아났다. 그렇게 오후를 맞아 주무관을 찾아갔더니 서류를 확인에 확인을 하고 학교다 낼 서류를 주었다.
“말씀을 잘하세요.”
그 한마디 말에 기분이 묘연했다. 집으로 돌아와 한밤을 자고 등교 시간에 학교 가자 아이한테 했더니 내일 오후로 미뤘다. 주태 뜻에 따라 1년 전 학교 교무실을 찾아갔다. 호랑이 교감과 체육부장 학부장 등과 원탁에 앉았다. 서슬 퍼런 긴장의 20분 동안 아이 전학에 되잡는 선생들 왜. 도로 왔느냐. 그 학교도 가출함으로 무슨 짓을-. 해묵은 말과 깍두기머리 2시간 내 깎고 와 교감한테 검사를 받아라. 그때 가서 교복을 주겠다.
“내일 토요휴업이니 월요일까지 준비를 할게요.”
4명의 간부교사는 당장 해라? 재촉과 다른 학생들까지 건들어도 손대지도 말라는 말에 옛날 학교를 안 다녔으면 안 다녔지 그렇게는 못해요. 아빠와 주태는 선생님과 설전이 다시 이루어졌다. 호랑이 교감께서.
“왜. 아이를 여기다 갔다. 놓고 그럽니까?”
“두 발 때문에 안 다닌다 하니 이젠 학교에 가든 말든 나는 포기할래요.”
“그러면 됩니까?”
“더는 할 수 없잖아요. 주태에게 여러 날 머리카락 자유를 주세요.”
“그건 안니 됩니다. 교칙이 있으니까요.”
“다 압니다. 두 발 때문에 안 간다 하잖아요.”
다른 선생과 여러 얘기가 오갔으나 지금 집에 가셔서 아이 머리를 자른 후 오늘 금요일 오후 5시까지 교감 앞에 와 검사하는 조건으로 돌아왔으나 아이는 펄펄 잡아 뛰었다. 그때 학교 갔다 온 주태 형 베드로가 동생 친구들이 다 노숙해요 같이 재학시킬 수 없으니 교감선생님께서 동생을 데려가 교복과 머리 자르기로 약속을 며칠 내 함으로 형제는 흐뭇해 돌아왔다. 월요일부터 등교하기로 원점이 된 주태는 학년과 비교하면 뇌 생각은 초등생 수준 장애라고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치료는 늦었지만 건강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을 누가 알까? 밖에서 떠돌다가 달 없는 둥지의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간 날로부터 어름 산에서 2개월 간 잘 버틸 수 있을까? 아빠는 여친 유슬이 전화로 불러내어 곁에 안게 하였다.
“사랑이 그리운 눈빛 착한 친구이길-.”
“네.”
다음날이 되자 형 여친이 밖으로 나가더니 또 친구를 만나 이웃집으로 데려와 아빠 앞에 소개하는데 교련 차림새였다.
“안녕하세요. 초롱이 예요.”
“잘 왔다. 어느 학교 다니지.”
“푸른 여고 3학년이에요.”
“때마침 아이는 거실에 있었다. 둘이 사이좋게 이야기하는 걸 아빠가 허락해주는 것이니 오늘 같은 마음으로 몇 개월 몇 년이 되도록 사귀다가 헤어질 것 아닌가 믿음이 반반이랄까? 되도록 좋은 인연이 돼 거라.”
“네.”
“가봐.”
아빠는 멀리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그림자 사이로 학교 갔다 돌아온 푸른 이는 시간만 나면 전화를 걸어 확인한 다음에 주태 집을 오가는 몸으로-.
“좋은 말만 하자 우리.”
“‘쌍년아’ 꺼져 그 딴말 할 테면 오지 마.”
머뭇하면서도 아저씨 말이 약이 되었던 가 참아 내면서 다가가면 무기를 들고 위협해도 눈 하나 끔적도 안하는 푸른이 “독한 년”이라고 주태의 입가에 맴돌았다.
“여자는 약하다 좋은 말로 사랑해줘라.”
“그딴 말을 하시려면 가세요. ‘못 생긴 년.’ ”
“너는 잘생겼냐. 푸른이가 훨씬 예쁘다.”
이럴 때. 아빠는 화가 나지만 자식이니까? 쇠창살에 갔다 온 후로 방과 거실에 걸려 있는 예수의 액자를 부수겠다. 자동차도 뻥 구를 내겠다. 어느 날 둘째 아들친구랄까? 영란이가 다가왔다.
“아저씨 주태가 아빠를 이긴다 하던데요.”
“어리니까? 저주는 거다. 크면 알겠지만.”
“아빤 내 친구들 잠도 재워주고 밥도 대접해야 해요.”
처음엔 사정을 못 이겨 며칠 동안만. 그런 과정에 방구석이 넝마주의 여관이나 똑같았다. 또는 당연하다는 주태가 아닌가. 다가와 가출해서 손해를 끼친 친구들에게 빚 걸린 것 갚아 줘야 한다며 돌아가면서 오늘은 철이네 집으로 내일은 순이네 집으로 아빠는 잠자리만 안 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여동생이 있으니까? 더는 안 된다. 그럴 때마다.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들 집인데 왜. 상관합니까? 그런 것도 못하는 게 아버지입니까?”
“이놈아. 아빠 돈으로 집을 샀으니 아버지 집이고 넝마친구들을 그렇게 좋아하면 데리고 나가 살아라.”
“당신이 내 아버지야. 나가라.”
“야. 이놈아. 그런 말을 쓰지 마.”
듣기 좋은 말로 수천 번을 타일렀으나 돌부처의 머리를 쳐들자 바람 손이랄까?
“때려. 경찰한테 신고할 터.”
황소처럼 달려들자 격분한 아빠는 동짓달 밤 6시경 황소머리채를 잡자 흔들리는 고목나무 밭다리 걸려서랄까? 책상 모서리 다 부딪혀 누운 나무 그 배에 올라탄 망아지랄까? 한 학년 베드로가 어렵게 가로막아 깔려 통증으로 암 흙이었다고 할까?
“존속 상해죄를 아는 냐.”
“듣기 싫으니까 그만해.”
아빠는 문짝을 쳐 닿고 방으로 들어갔으며 이웃들까지 알면 창피스러워 아픔 몸을 이끌고 일터로 가면서까지 며칠 동안 끙끙 알았다. 일하다가 식사 때 기사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즐기며 조간신문을 뒤척거리는데 ‘오늘에 운세’ 가 눈에 들어왔다. 59년생 돼지띠 감정에 치우치면 신고로 씻을 수 없는 영원한 상처가 된다는 글귀에 아들의 행동들을 마음에 묻었다. 쉬는 날이 돌아와 불편한 몸으로 한동안 말을 잊고 사는데 주태의 주둥이랄까? 하나뿐인 동생에게도.
“‘시발 년아.’ ”
형 한 태도 “‘나쁜 놈아.’ ”
형 여친 한태도 “‘시 앙 년아.’ ”
기러기가 들을 때도 저런데-. 귀 열고 살다 보니 우리 집에 아빠만 잡으면 된다는 말에 불쾌했다. 야. 싹수없는 말 쓰지 말고 좋은 말 쓰도록 하여라. “저런 놈들은 그렇게 들어야 한다.”
“아들아 학교 가야지.”
“알아서 할 테니 상관하나마.”
뻘건 대낮에 동생 침대를 빼앗아 잠을 자는가 하면 보호관찰소 간다고 교통비를 받아내어 밤으로 노래방과 피시 방 또는 친구네 집으로 사흘 동안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 담임과 전화로.
“보호관찰소 흡연교육을 받으니 수업에 못 들어가요.”
거짓도 당연한 것처럼 담배 피우는 것도 용돈 1만 원을 받아다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를 들어 아빠가 관찰법을 책임져요 자신일인데도 전가 하는 버릇이 여전했다. 식솔들한테도 언어 협박까지 눈알끼리 마주치면 경색과 심적 불안을 조성하는데다 그 상태를 내버려두다가 화라도 도래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는 아빠는 근무 중 전화를 둥지로 걸어보았다.
“아빠 어디야.”
“너는 어디야.”
“신월동 IC 데리러 와.”
“지금 천호동이니까 그곳에서 집으로 빨리 가. “
주태와 통화가 이루어진 후로 1시간 동안 승객이 없자 휴대전화기를 다시 꺼내어 아들과 연결을 해봤으나 통화가 되었다.
“휴대전화 축전지가 없어요. 주유소 2개 중 한군데 있을 거요.”
“기다려라 경적을 울릴 때. 그때 나와라 30분 정도 걸릴 거야 새벽 시간이니.”
바람이 된 택시는 아이 친구 4명 속에 주태만을 태우고 지방으로 향해 달렸다.
“아빠 몇 10만 원짜리 학원을 보내주세요.”
“생각 좀 해보자.”
“학원 하나 책임 못 지는 게 부모요.”
“말하는 버릇 봐라.”
“소갈머리 족보 빼내어 주세요. 당장.”
“나라님도 못한다.”
“너 가 잘났으니 직접 구청 민원실에 가 빼내고 살아라.”
“나쁜 피를 이어받았으니 주태가 이렇지.”
“이놈아. 너 하는 짓 보니 엄마가 잘나갔다. 지금까지 행동이 뭐냐 아빠가 모든 것을 감수하며 살아가라고 나가준 데 대해서 고맙게. 너희 엄마가 너 때문에 이 집에서 못 살고 나간다 하더라.”
무당말을 100% 믿는다고 하더라. 오늘날까지 너희들을 믿고 살아온 아빠가 바보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주태는 예수다.”
“아들아. 예수님은 따로 계신다.”
“이 악당들아. 물러가라 무당 할 거야 왜 아빠의 체험이 내게로 왔다 더러운 피.”
“귀신 이야기하지 마. 재수 덩어리 없다. 아빠는 15년간 헛 인생 살았으며 교통사고가 나 경제적으로 손해를 봤다.”
“무당 아줌마를 찾아가 사주를 봤는데 좋은 조상신께서 몸속으로 들어왔으니 의식으로 대 무당 해야 한다며 복채를 요구하데요 중학생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성인 같다.”
“아빠의 연락처를 적어주고 왔으니 오면 말하세요.”
“상업이다.”
“지나간 것들은 거짓말과 같이 잘 맞추어요. 주태와 아빠랑 함께 가게요.”
“귀신 따라붙으면 그때는 되는 일도 없거니와 인간도 망가져서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보자.”
혼자서 잠자리 들 때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여러 개의 식칼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것을 본지라 그러면 안 된다 했더니 밤마다 꿈에서 영들이 나와 괴롭힌 이후로-.
“김 신부님을 찾아 꿈에 관한 말을 했더니 경험도 없데요.”
“너희 할머니도 예수 다 하더라. 거기 가서 말해보렴.”
“하~ 하~”
“통할 거야 아니냐.”
“아빠 조상귀신을 안 나타나게 해줘 주태. 그것 때문에 날마다 괴롭고요. 못 낳을 것만 같아 내가 왜. 그런가. 까꾸로 가는 생각-.”
3학년이 됨으로 옛날 학교 첫 수업하는 과정에서 아줌마 교사로부터 전화기를 압수당했다며 차라리 담배를 빼앗지 하소연을 이어갔다. 매 교시마다 반 친구들에게 강강수월래 타령이랄까?
“쟤가 김주태야.”
수컷 소리에 벌떡 일어나면 게네들이 뿔 뿌리 흩어지는 모습으로 여러 번 봤다 면서 기분이 또한 나빠서 2교시만 하고 무단결석 하면서까지 집 근처 게임방 가 놀았다고 자랑인 냥 말을 해왔다. 아빠는 밖에 나와 일하는 순간마다 둥지 쪽 생각하면 어지러운 환경 속이랄까? 삶으로 새벽의 그림자 차량에 밀려 주차장을 놔두고 고샅길 다람쥐채바퀴 생각하며 차 세우고 어둠을 쫓아 붕어빵 틀에 이르자 2층 치맛자락께서 미소로 응시했다.
“이제 오셔요.”
“예. 이른 편이에요.”
통장 아줌마도 의자에 앉아 흘긋한 눈.
“경찰관을 불러 아이들을 쫓아내어도 별 소용이 없으니 동네 분들이 아저씨를 이사하게 한대요.”
“며칠 전 K방송에 나왔는데 배부른 아파트 부녀 회장께서 장애인이 시끄럽다고 이사 가라 하는 조건으로 벌금을 물면서까지 징역을 산다던데요.”
“그건 그쪽 사정이고 이건 내용이 틀리잖아요.”
“생각하기 나름인가 봐요.”
“앞으로 아저씨를 바람 손으로 가하겠습니다. 불량 아이들을 잠재워주니까.”
한 건물 2층에 사는 붕어빵 치맛자락도 통장 아줌마와 짝꿍이어서 그 말에 춤추었다.
“셋째가 두 오빠 때문에 배울 게 없네요.”
생각해주는 말처럼 물어내는 옥 간 도사 아닌가.
“그럼 나름대로 해봅시다.”
“은평구 불광동 민주가 산다는데요.”
베드로가 다니는 중학교 반 친구가 강제전학을 친척 찾아갔지만. 지금은 학교도 안 다니고 우리 집에 와 흡연하다 파출소에 끌려가 부모가 와 데려가라는 경찰관이었다. 나는 그 집의 사정을 대충 아는데 엄마가 하루 벌어다 삶을 살고요. 아빠는 정신이상으로 다른 병원에 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주태 하나도 저런데 그 아이까지 신경이 안 가요.”
“각자 집으로 보내세요.”
“어른들이 집에 없으니 또래 친구가 와요. 인적사항이 있으니 큰 염려는 안 되지만 나도 괴로워요.”
“좌우지 간 아저씨가 책임지고 동네에서 쫓아내세요.”
“노력해봐야지요.”
그런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말로 타일렀으나 두 아들은 서로 내 탓으로 돌렸으면 뒤꼍에 바라보니 술병과 담배꽁초가 널 부러졌으며 누가 봐도 입 달린 사람들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베드로네 집 건물 2층에는 여고생이 살고 앞 건물에는 여중생이 살지만 주태가 살레시오 갔다 온 후로 유별나다고 이웃 분들까지 눈길이 곱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과 잠자리며 먹을거리를 챙겨주었다고 이웃사촌들까지 이사하게 고발해야겠다. 통장과 반장의 권력이 오늘날 하늘이다. 이웃감투쟁이들이 사회의 자격이라니 날다람쥐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지만 더 나쁜 청소년이 안 되게끔 하는 내 마음이랄까? 주변 시선들이 쌍안경을 끼고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니 빌라 촌사람들은 역시나 다세대족이다. 그러나 세월이 말을 한다고 지금은 직장에서 군대에서 철장 속에서 그 시절을 성찰 하면서 멋진 삶을 살아가리라 아빠는 너희 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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