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예(鄭之禮) |
1398(태조 7)〜1465(세조 11) 조선 초. 자는 숙부(肅夫) 개국공신 양경공 희계(熙啓)의 손자이며 증이조판서 길상(吉祥)의 아들이다. 1417년(태종17) 진사 문과에 합격하여 1431년 통례원봉례(通禮院奉禮 : 조선시대 조회, 의례를 맡아 보던 관청의 정4품 벼슬)가 되고 1438년 문과에 합격하여 상호군(上護軍 : 정3품 무관직)을 거쳐 가선대부 예문관제학(嘉善大夫藝文館提學) 자헌대부 예조판서(資憲大夫禮曹判書) 검교한성부윤(檢校漢城府尹)을 역임하였다. 1465년(세조 11) 8월 근정전(勤政殿)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 때 왕세자(王世子)와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정창손(鄭昌孫), 영의정(領議政) 신숙주(申淑舟), 우의정(右議政) 황수신(黃守身), 좌찬성(左贊成) 윤사분(尹士吩),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이변(李邊), 밀산군(密山君) 박중손(朴仲孫),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성봉조(成奉祖), 개성군(開城君) 최유(崔濡), 검공조판서(檢工曹判書) 조관(趙貫), 검판한성부사(檢判漢城府事) 양수(楊修), 윤희제(尹希齊), 검한성부윤(檢漢城府尹) 정지례(鄭之禮)와 승지(承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왕세자와 노인 반수(老人班首) 조관(趙貫) 이 차례로 술을 올리었다.
부인은 자헌대부 예조판서 여흥(麗興) 민의생(閔義生)의 딸이며 조(祖)는 대제학 중리(仲理) 증조는 여산부원군 근(瑾)이고 외조는 판한성부윤 전의이구(全義李龜)이다. 공께서는 3남을 두시니 큰 아들은 석성현감(石城縣監) 수덕(守德), 둘째 아들은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 문덕(文德), 셋째 아들은 문천군수(文川郡守) 숭덕(崇德)이며 묘소(墓所)는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산150-9번지에 있다.
51世 판윤공 묘소
51世 판윤공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