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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요트 항해기 (마닐라에서 세부까지)
3일 마닐라 도착 엉터리 마리나 배안에서 제1박
4일 제1항해 포르토 갈레라 여관 및 배에 나뉘어 제2박
5일 미운항 사방비치 다녀오다 배에서 제3박
6일 제2항행 Maestre de campo 도착 배에서 제4박
7일 낮동안 섬구경 야간항해 제5박
8일 제3항해 롬브론 카이무스항도착 시장구경 배에서6박
9일 제4항해 바탄항 바랑가이 오찬도 뉴 와싱톤 아클란 배에서 7박
10일 파나이섬 CALAGNAAN 섬 북동쪽 배에서 앵커불침번서면서 제8박
11일 세부 보고베이항구 배에서 제9박
12일 세부 막탄섬 기항 여관에서 제10박
13일 해산
1. Prologue
항해를 시작하기 전부터 난 어디를 가는지가 관심사가 아니였다.
나의 관심사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지 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여행을 했지만 이처럼 생면부지 한번도 만나적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도 처음임은 물론이거니와 열흘간이라는 적지 않는 시간을 좁은 공간속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는 점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어디 어디를 어떻게 항해했는지는 윤선장님의 항해기를 지금 보고서 간신히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관심사가 아니였다.
나의 관심사는 나를 포함한 사람이었다.
마닐라에서부터 시작하여 세부 막탄에서 마감한 나의 아니 우리의 항해는
세계일주를 한 윤선장님의 항해를 단편적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고
세계를 한바퀴 돈 Intrepid호의 신뢰감을 구석구석 느낄 수 있었다.
지상에서도 인간사가 가장 어렵듯이 좁은 배안에서는 더더욱 인간사가 어려우리라 여겼지만 그건은 나의 예상을 뒤바꿔 버렸다. 협동과 희생이 적절히 조화된 인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열흘간... 그 이상이 되면 ..gg
시간의 궤적을 따라 반추하듯 나의 아니 우리의 항해기를 회상해 본다.
2. 제1일차 : Intrepid호를 만나다.
생면부지의 윤태균 선장과 참가 대원 5분들을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근사하게 내 소개부터 하려고 폼을 잡았건만 누가 누군지 알수가 있어야지...
주관자인 윤선장님께서는 초장부터 지각을 하시는지 통 나타나지도 않고....
문자 메씨지가 달랑 날아온다.
“저는 쪼매 늦을 것 같으니 먼저 타이소...”
“된장..”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 혼자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거야 원 불안해서 원...
나 혼자 마닐라에 달랑 도착하고 다른 분들과 윤선장은 안오거나 나중에 오는거 아닌가..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눈을 두리번 거리고 있으려니 윤선장 특유의 백발에 산발을 한 헤어가 비행기 입구에서 보인다. 비로서 안도하며 대원들은 만나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마닐라에 도착했다.
윤선장이야 우리들의 영웅으로 인터넷에서 많이 봐왔으니 낮설지가 않으나 5분의 대원들을 처음본 소감은 한마디로 “안도”다. 이상한 분들이라면 열흘을 피곤하게 보내야만 할테니까 말이다.
면면이 선하시게 다들 생기셨다.
‘이런 분들이라면 내가 잘난척하면서 지내기에는 지장이 없겠군...“
이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봉고를 타고 그 유명한 Intrepid호가 있는 곳으로 간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헌데 우연도 참 우습게 깊지..
내가 사랑하는 선배한분이 일년에 한두번 필리핀에 골프를 가는데 매번 같은 곳으로 가곤했고 나도 언젠가는 같이 낑겨서 골프여행을 해볼까 생각하더 차인데 바로 그 골프장 근처에 Intrepid호가 정박해 있는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빌어먹을 Zest Air가 사람들을 비행기 속에 갇어두고 인천 출발을 무려 4시간이나 지연하는 바람에 깜깜한 한밤중이 되어있었다.
골프장은 좋은지 나쁜지 밤이라서 알 수 없어지만 Intrepid가 정박해있는 마리나는 그야말로 폐허였다. 마리나 정박장은 골조만 남고 바닥 나무는 모조리 뜯겨져 없는 말도되지 않는 순 엉터리 마리나였다. 헌데 더 가관인 것은 당초 약속과는 달리 정박비를 하루에 삼만원이 넘는 터무니 없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방법이 딱 한가지 뿐이다.
우선 침을 탁 뱉고... 두 번다시 그곳을 찾지 않는다. 아울러 민중의 최대무기인 인터넷을 동원하여 그 빌어먹을 마리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망할테니깐...g
감격스럽게 인트레피드호에 올라 조촐한 통성명과 인사를 나눈 후 누울 곳을 배정받은 후 후진 마리나에 정박한 채로 첫 잠을 잤다. 푹~~~
3. 제2일차 : 첫 번째 항해
아침에 일어나 마리나에 탁하고 침을 뱉고는 일찍 출발했다.
바람을 충분히 강했다. 파도도 덩달아 충분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대로된 바람이 없는 강가에서 조각배만 몰아본 나의 꿈... 풍향이 변하지 않는 강하고 지속적인 바람을 맞으면서 세일링해보는 것 ... 이것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바람이 불어라.. 파도라 높아라. 세계일주한 영웅이 있고 그 배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랴...
호쾌하게 7노트가 넘는 속도로 Puerto Galera를 향해 거칠게 순항했다.
항해를 한다는 것은 멀미와의 싸움이라는 선입관이 있는 나로선 사실 걱정이 많았다. 해서 일부러 바쁜척하며 뱃전을 돌아다녔다. 본의 아니게 Bow man을 자청하고 나선 셈이 되어버렸다.
암튼 난 열흘 내내 바쁘게 갑판위를 돌아 다녀야만했다. 멀미를 잊으려고...
이번 열흘간의 항해는 총 370마일을 항해하게 되며 그중 첫 번째 항해는 60마일가량이 되는 셈인 모양이다. 한번 움직이면 50에서 60마일을 항해했던 것 같다. 인트레피드호의 최대 속도가 7노트 가량되니까 한번 항해하면 열시간은 운행한 셈이 된다.
역시 한밤중에 푸에르토 갈레라 요트 클럽에 도착했다.
마리나 시설이 되있는 것이 아니고 천혜의 항구에 몆개의 부이를 띄워놓고 거기에 배를 묶어 놓는 방식이다. 늦었지만 정박 후 요트클럽으로 찾아갔다.
요트 클럽 매니저는 중년의 서양 여인이었다.
“이뻐~~~”
퇴직하고 혼자 배를 몰며 돌아다니는 떠돌이 서양 노인네들의 집합소였다.
간만에 영어하려니 영 내 자신이 맘에 들지 않는다. 어쪄랴 난 한국인이고 그간 영어쓸일이 없었던 것을...
뻘줌하게 동양인 6명이 구석진 테이블에 꾸그리고 앉아 샨미구엘을 쪽쪽 빨고 있으려니 이쁜 서양 여성이 생글 생글 우스면서 다가온다.
이놈의 인기는..... 여기서도...
헹.. 근데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윤선장에게 말을 건다..된장..
이름은 에니... 이뻐...
대화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잠시 후 에니의 동료인지 애인인지 폴이란 친구가 왔고 이어서 에니와 폴의 가이드인듯한 필리핀인도 함석해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디가냐 어디서 왔냐 어디서 정박할꺼냐 어디가 좋다. 그럼 어디서 언제 보자... 뭐 이런 이야기가 오갓을 것이 뻔하다...
클럽을 나와 포구 선창가로 가보았다. 딱 내 맘에 드는 조촐한 시골 선창가다.
난 배가 아니 여기서 묶고 싶었다. 마침 내일은 출항하지 않고 여기서 머물기로하고 물과 기름을 보충하고 인근에 있는 사방비치도 놀러간다고 했다. 해서 육지 베이스캠프도 겸하여 나와 대원한사람 둘이서 선창가 여인숙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리 오래전도 아니었건만 깨끗한 시트뮈에 내 몸을 눕혀보니 참으로 좋았다.
그렇게 두 번째 잠을 청했다.
3. 제3일차 : 푸에르토 갈레라에서 하루를 보내다(사방비치 다녀오다.)
밤에 도착한 탓에 항구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침에 눈을 뜨고나서야 비로서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조용하다.
아침밥 냄새가 솔솔나는 것이 배가 고프다.
요트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는가하는 것은 내가 그동안 매우 궁금해왔었다.
군시절에 먹던 일회용 건조식품을 먹을 것인가?
음식은 어떻게 보관해야하나?
마른 반찬은 어떤 종류를 준비해야할까?
난 이번 윤선장님과의 항해를 통해서 그 노하우를 얻었다.
그래서 나도 이 항해기에 그런 노하우를 적지는 않겠다... 메롱.
너무 얌체같은가요? 그럼 딱 한가지 알려드립니다.,
압력밥솥 !
아침에 압력밥솥으로 밥을 해두면 빠르게 되면서 하루 종일 먹는다. 게다가 보너스로 누릉지까지 제공해주니 금상첨화일 수밖에 없다.
난 육지에서 잤다. 얌체같이..... 허나 아침은 육지가 아닌 다시 배로 가서 함께 먹었다.
자 이제부터 요트에 어떻게 수분을 공급하고 기름을 넣을 것인가를 견습하는 시간이 되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수차례 반복적으로다가 물통과 기름통을 들고 주유소와 수도꼭지를 찾아 왕복운동을 해야했다.
사역을 했으니 놀아야했다. 유명하다는 사방비치로 가기로 했다.
많은 다이버들이 사방비치에 다이빙을 간다. 난 다이버지만 한번도 사방비치에 가본적이 없었으므로 궁금했다. 과연 어떤 곳일까? 야자수가 너울거리고 야한 비키니의 아가씨들이 줄지어 해변을 거니는 그런 곳일 것이다.
사방에 도착했다. 해변을 걸어보았다.
“ 개뿔...... ”
도대체 이런 곳이 왜 유명해졌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해변은 예전 부산 송도처럼 하수구 악취가 나는 똥물에 모래 색깔도 하수구색이다.
비키니 아가씨? 택도없다. 전혀 없다.
퇴역한 늙은 서양인들이 노리개감으로 데리고 다니는 우울한 표정의 필리핀 여자만 내 눈에 들어온다.
물론 나를 향해 유혹의 눈빛을 보내는 젊은 아가씨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찮가지로 여기서도 변함은 없었다.
암튼 이런 곳을 찾아서 한국에서부터 날아온다는 것은 바보다. 거기서 사업을 하시는 한국분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내가 보고 느낀 바는 그렇다.
세상은 넓고 갈 곳도 많고 좋은 곳도 많은데 왜 거길 가겠는가...
난 시장통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그런 식단을 좋아한다. 해서 시장통을 찾았다. 너무 작아서 그런가 마땅히 먹을 만한 곳이 없다.그래서 아무대나 가서 먹었다...
이참에 필리핀 아가씨를 데리고 다니는 은퇴한 노인들을 보는 나의 시각을 술회하고자 한다.
너무 이기적이다. 늙으면 품위가 돋보여 멋이 있어야하지 않을까한다. 젊은이들에 비해 육체적으로 월등할 것이 없으니 정신적으로는 우월해야하지 않을까 .. 그마저도 멋이 없다면 내 입장에서는 만나볼 이유가 없는 추물에 불과하다 여긴다.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사람이어야지 돈을 바라고 어거지로 붙어다니는 여성을 데리고 다니며 벌거벗은 육체를 상상하는 것은 나도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나의 멋을 버릴 만큼 강력하지 않다. 이번 여행을 통해 특히 이런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헌데 공통적인 그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내 시각에는...... 아님 말구..
5. 제4일차 : Sibale (꿈같은 마을..)
아침일찍 푸에르토 갈레라를 출발하여 한껏 바람을 받으며 하루 종일 항해를 하다 깜깜한 밤이되어 깊은 협곡같은 천연항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밤에 어떻게 정박지를 찾는지 좋은 경험이었다. 실로 윤선장님과의 항해는 교본에 없는 요트 항해에 필수적으로 알아야할 지식의 보고다.
배를 항구에 한참만에 대었다. 어디가 어딘지 당췌 보여야 말이지... 그래서 대충 앵커링해서 배를 세우고 밥먹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밥해먹고 항해하고 항해하면서 밥먹고 깜깜해지면 앵커링해서 또 밥묵고 그리고 맥주한잔 빨고 또 잔다.. 배에서 살아가는 그 평범함을 배워나가는 것이 난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보이는 거라곤 깜깜한 Sibale 항구의 언저리뿐이다.
우선 성질 급한 내가 고무보트를 타고 항구로 상륙했다.
여기서 내 오른쪽 발바닥이 예리한 대나무에 4cm가량 찢어졌다. 이 상처로 항해중에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신발을 신지않고 싸돌아다닌 댓가를 지불한 셈이다.
물론 이 상처로 이쁜 간호사 아가씨를 둘이나 사귈수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깜깜한 항구에는 늘그막한 한분이 무관심한 듯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한국에서 왔고 여긴 첨인데 뭐 먹을 만한 곳이 있습니까?”
뭐 이렇게 물어봤겠지요. 대답은 허망했습니다.
“No“
담배를 권해가며 이런 저런 정보를 캐내었습니다.
입을 열기 시작하니 술술 정보가 나왔습니다.
예전에는 매우 번잡한 항구였으며 사람들도 많이 왔으나 요즘은 안온답니다.
그리구 한국인 다이빙shop이 근처에 있고 사장분이 미스타 원이라는 분이라고 하면서 나더러 아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잘 아는 분이고 한국에서 유명한 분이라는 멘트를 날리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암튼 얻은 결론은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동네를 돌아다녀보니 구멍가게가 대충 여섯군데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배로 돌아와 밥먹고 잤다.
윤선장님에게 착취와 사육당하고 있는 느낌이라 심히 불쾌한 감도 없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지만 우찌되었든 실전 요트 크루징을 전수받는 느낌이 들때는 윤선장님이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다.
암튼 또 배에서 잤다.
아참 이쯤에서 강남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싸이의 강남 스타일 때문에 우리들은 항해 내내 어디를 가든 대접받았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럼 대번에 현지인은
“강남 스타일....” 노래와 안무가 섞여 몸을 움직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싸이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왔다면 사람들이 우선 우호적인 눈빛을 보내줍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필리핀 구석중에 상구석을 쑤시고 다닌 우리가 그 시골 구석에 앵커링을 하고 있노라면 어디서 나오는지 강남스타일이 꿍짝거립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단 한곳도 강남스타일을 안 들어본 묘박지는 없었습니다.
시골 라디오에서부터 항구 노래방까지....
싸이 혼자 이루어 놓은 업적이 너무나 큽니다. 최고 훈장을 주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내가 상륙한 곳 중 세군데가 첨으로 한국인 요티가 발을 디딛 곳으로 나같이 낮선 사람이 마을에 내리자 마자 아이들고 함께 강남스타일 군무를 추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마을 사람들과 편하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싸이 덕분입니다.
“ Tanks SSai “
6. 제5일차 꿈같은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은 Sibale의 아침은 탄성을 지를만큼 깨끗하고 단정했다.
이 섬에 대해 자세한 설명과 묘사가 필요하다. 왜냐면 너무도 소개하고 싶은 섬이기 때문이다.
이섬은 이름은 나중에 알았지만 세가지가 있단다.
SIbale Island, Maestre de campo, 그리고 Municipality of Concepcion 이렇게 세가지 이름으로 불이운단다. 한국에 돌아와서 조사한 바로 바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항구 이름도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이름이 세가지니 원 헤깔려서 이름이나 제대로 알겠어요.
이름은 유래도 있다지만 그건 뭐 별로 알고 싶지 않고 맨 스페인 사람들이 지어놓은 이름이니 지들 편한대로 불렀을테지요. 스페인 사람들을 결코 경멸하려는 태도는 아닙니다.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그 시절 해도나 GPS도 없이 구석 구석을 찾아다닌 것을 보면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오고 그들의 의지력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페인 찬미는 나중에 기회있을 때하기로 하고 진도 나가겠습니다.
이 섬을 소개하려는 의도는 너무도 사람들이 친절하고 제도가 잘 정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경찰서를 찾아갔었습니다. 여경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뻐~~
친절하기로 말씀드리면 생글 생글 웃음이 끝날 줄을 모르고 같이 사진 찍어주고 마실 물도 주고 심지어는 들어와서 언제든지 샤워해도 좋다고 합니다. 경찰이 내눈에는 8명이 보였는데 한결같이 다 친절했습니다. 천국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네를 천천히 돌아보았습니다. 헌데 깜짝 놀랐습니다.
집집마다 아니 곳곳에 네 개의 분리수거통이 있는게 아닌가.....
담배 꽁초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찾을 수도 없었다...
아니 시골 촌 동네가 어찌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중에 그곳 Mayer를 만나서 인터뷰해서 알아낸 바로는 바로 그 시장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
그곳에서 태어나 마닐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그곳의 Mayer가 된 사람으로 매우 사교적인 분이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요트를 타고 그 섬을 찾았으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초청받아 정식으로 만났다.
암튼 그분이 다스리는 그 마을을 참으로 깨끗하고 안정적으로 보였다. 내면은 더 살아봐야만 알수있으니 거기까지는 알수는 없고...
심지어 걸어다니면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했단다. 담배는 집안에서만 피워야 한단다. 담배 꽁초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난 그것도 모르고 길에서 담배를 피웠는데....잡혀갈뻔했다...
인터뷰도중 거기서 다이빙샾을 운영하는 원창선씨와의 인연을 매우 강조하면서 어떻게하든 외부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그의 노력도 알 수 있었다. 정식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사저에서 소탈하게 맥수를 마셔가며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리핀 중앙정부에서 재정지원도 나온단다. 필리핀은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저 자국의 젊은 여인들을 서양 퇴역자들에게 팔아먹는 한심한 나라가 아니라 점차 개선되고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택시 운영제도라든지 오토바이 헬멧을 쓰게하는 방식이라든지 도로포장공사현장 그리고 좀더 깨끗해진 구멍가게등 여러 가지를 조합해 볼 때 필리핀은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
암튼 마을 구멍가게를 전전하며 샨비구엘을 마셔가면서 동네 순방을 마치고 몇일간 목욕을 못한 탓에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중 산정상에서 내려오는 도중 왠 아낙이 빨래하는 실개천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낮선 사내가 우르르 몰려오면 기겁을 할 만도한데 바싹마른 그여인은 침착했다. 빨래를 챙겨 자리를 비켜주었다. 우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등모욕을 했다... 간만에... 한결 인간 다워졌다.
머리를 털며 산기슭을 내려와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배가 고프다.
독일에서 유학한 임수택대원이 독일식 영어로 동네 아줌마 한분을 구워 삶는데 성공했다. 우린 그집에 진을치고 앉아 맥주도 마시고 내어준 깨끗한 베개를 베고 잠도 자면서 동네 아줌마가 해주는 음식을 기다렸다. 옆집사는 경찰 아저씨도 다시 찾아와 마실 물과 컵을 내어주기도했다. 정말 정이가는 동네다. 이런 동네라면 편히 살수 있을 것만 같은데 글쎄... 살아봐야 알겠지요. 동네마다 이상한 분들은 꼭 한두분 계시니까...
동네 아줌마가 내어준 음식은 치킨아도베 즉 닭간장조림 그리고 생선토막 튀김 딱 두가지에 밥이었다. 필리핀 현지 사람들은 반찬을 우리처럼 화려하게 늘어놓고 먹지 않고 밥 국 반찬 이렇게 세가지를 먹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감사히 잘먹었습니다. 아주머니... 물론 돈을 어거지로 주긴 했지만 너무나 적은 돈을 지불했다. 다음에 가면 꼭 그집을 찾아가서 도움이 되게 하고 말테닷...
아주머니 집에서 맥주, 물, 샤워, 대소변, 음식, 수면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난 어제 상륙하면서 대나무를 잘못 밟아 절상된 내 발바닥을 치료하고자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에는 이쁜 아가씨가 네명이나 있었다. 이뻐~~~
물론 나에게 추파를 보내는 이쁜 아가씨는 어딜 가나 있었다. 허지만 진정하고 가장 고참인 듯한 간호사인지 의사인지 이쁜 아가씨에게 내 발을 보여주었다.
“꼬매줄까 아니면 말어...”
“오잉.. 꼬매야 할 지경인가... 그건 지가 판단해야하는거 아닌감”
꼬맸어야 했다.. 헌데 난 잘난척하느라 그냥 대수롭지 않은 듯 소독만해달라고 했다.. 빙신...꼬맸어야했는데..
“물대면 안됩니다.”
“맹세 합니다. 물 안대겠습니다.” 난 이쁜 사람말은 무조건 듣는 병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개뿔 배타는 놈이 어찌 물을 안댈 수 있으랴... 내가 다이버라고 스크류에 뭔가가 걸리면 대번에 다들 내 얼굴만 쳐다보는 판인데....
이쁘게 치료받고 Mayer인텨뷰를 마치고 다시 보건소에 놀러가서 아가씨들과 놀 작정이었는데 웬걸... 관사에서 저녁을 대접하겠단다... 아니 되는데.... 누군지 모르겠으나 어떤 대원이 시장과 그리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아뿔싸... 네명의 이쁜 간호사 아가씨가 날 기다리고 있는데... 분하다....
그렇게 허망하게 맛대가리도 없는 식사를 같이 해야만 했다 게다가 메뉴는 점심 때 먹었던 치킨 아도베로... 누가 약속을 잡았는지 아주 그냥....
다음 항해는 야간항해였다. 자정에 출발하여야하므로 다들 일찍 서둘러 눈을 좀 붙여야만 했다.
자정이되자 심통맞은 윤선장님은 여지없이 엔진 시동을 걸었고 우리 노예들은 다시 눈을 부스스 뜨고 이젠 숙달이되었는지 각자 일거리를 알아서 챙긴다. 고무보트를 올리고 밧줄을 정리하고 앵커를 올리고 ....
그렇게 sibale 마을을 뒤로하고 밤바다속으로 들어갔다.
7. 제6일차 야간항해로 롬브론 섬으로 가다
그간 야간 항해에 대해 무척 궁금한 것이 많았다. 사실 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칠흙같은 밤바다를 뭔 수로 항해를 할까 지표가 있어야 키를 향하고 앞으로 나아갈텐데...
이러한 나의 궁금증은 모두 해결되었다.. 후하하하...
우선 바람이 기가 막히게 불어주었다. 강하면서도 세일에 바람이 잔뜩 머금을 수 있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불어주었다. 이런 바람을 맞으며 항해하길 얼마나 바래왔던가. 7노트가 넘는 속도를 내가며 탄탄함 그 자체인 인트레피드호를 밤바다를 순항했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3명1조가되어 교대하기로 하였지만 잠이오지 않았다. 원없이 밤바다를 뱃전에서 바라보았다.
김민기의 노래가 저절로 눈에 나타난다.
“어두운 밤바다에 바람이 불면 저멀리 한바다에 불빛 가물거린다.........”
아참 기타 이야기도 해야겠지요.
제가 한기타 합니다. 해서 필요할 때마다 잘난척질을 좀 했습니다. 물론 기타가 윤선장님껀데 싸구려 연습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력이 있으니 그정도는 극복하고 사람들의 심금을 좀 울렸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말입니다. 아님 말구.....
항해거리가 그리 길지 않았고 바람이 너무나 좋아 생각보다 일찍 롬블론 섬에 도착했다.
정박할 곳을 정했다. 아주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원래 이런 곳을 찾아다니기로 하고 나선 항해니 불평은 없다. 아니 재미지다...
동네 아이들이 여나무명 몰려나와 진을 치고 10미터가량 떨어져 정박해있는 우리는 지켜본다. 개중에는 나이드신 어르신네도 있다. 이동네 인심도 참 좋은 모양이다. 아이들이 정박용 밧줄을 만지작거리면 어른신이 나서서 줄풀어진다고 호통을 치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으로 보아 동네 인심은 좋은 것이 틀림없다.
다들 밥하느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나 혼자 또 상륙했다. 우선 동네아이들에게 내가 한국인임을 알렸더니 대번에 강남스타일 춤을 춘다. 그래서 같이 춤을 추면서 동네 구경에 나섰다.
“기왕이며 성당부터 찾아가보자. 대부분 성당이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니 거기가 중심일 것이다” 이렇게 여기면 아이들과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은 작은 식당처럼 작고 문도 잠겨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둡다. 십자성호와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아버지 이 여행이 저에게 의미있는 여행이 되게하여주옵시고... 어쩌고 저쩌고..”
아이들은 나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꼈는지 서로 이름도 교환했다.
플랭클린... 녀석... 똘똘하게 생겼다... 게다가 이쁜 여자친구를 둘이나 대동하고 댕긴다.. 부럽군...
난 김으로 불려졌다. 하루종일 내 이름을 불러댔다.. 아이들은 언제나 귀엽다. 딱 한놈 빼고....
야간항해를 하였다지만 교대로 숙면을 취하고 또 전날 너무 잘 쉬었기에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들 롬블론 시내 구경을 가기로 했다. 우리가 정박해있는 카이무스 마을에서 트라이시클을 타고 7키로 정도 떨어진 거리에 롬블론 시내가 있다. 그래서 가보았다.
“오잉”
시장이 무지 크다. 야채며 생선이며 작은 마을인줄 알았는데 제법 큰 시내다.
중국제 짝퉁 크록스 신발한개를 샀다. 야자수를 샀다. 쪽빨아묵었다. 필리핀 대나무 모자도 샀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은 갔고 또 배에서 내 잠친구인 이상곤 대원에게 나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처럼 선물하는 시간이 되었다.
8. 제7일차 이쁜이집
아침에 로블론섬 카이무스 마을을 떠났다.
다음 목표지점은 필리핀서부 비사야 지방 아클란 주 뉴 워싱턴 .
실은 윤선장님도 다음 목표지점을 잘 모른다. 그냥 본능적으로 파도를 피해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지형을 지도를 보고 찾아내고 그곳으로 향해서 현지에서 앵커링 장소를 결정했다. 융통성이다. 난 그게 좋다. 되지도 않는 목표를 정해놓고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꼴은 우습다. 마치 내가 세일에 바람을 한껏 맞도록 바싹 조이면 윤선장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크루즈는 경기가 아닙니다. 그냥 루즈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듯이 아등바등거리지 않으면서 항해해서 참 좋다.
필리핀 전체 풍향이 이시기에는 북동풍인가보다 끊임없이 북동풍이 불어준다. 정말 신기하게 풍향이 안바뀐다. 강에서 세일링보트를 타자면 끝도없이 바람이 변하는데... 그래서 너무 좋다...
이번에는 그나마 아주 깜깜한 한밤중에 도착하지는 않았다. 물론 앵커링하고 나면 깜깜한 밤이 되었지만...
하여간 깜깜한 밤중에 보트타고 간첩처럼 또 상륙했습니다.
이번에는 첫 번째 상륙팀에 못끼었습니다. 왜냐믄 화장실 변기가 막혀서 그것을 뚫어야 했거든요. 당장 내가 필요했으므로... 인트레피드호는 선미가 수려하여 거기서 볼일을 볼수 없게 되어있으므로 필히 화장실이 필요했다. 윤선장님 왈...
“제가 변기고치고 있을테니 다들 먼저 상륙해서 식사하이소”
나참.. 이렇게 말하면서 왜 날 쳐다보냐고.....
그래서 나는 남았다. 변기 뚫는거 시다 노릇했다. 에효... 내 팔자야..
암튼 둘이하니 순식간에 수리를 마치고 대원들과 합류하기 위해 둘이서 상륙했다.
근데 이 마을도 엄청 친절하다. 친절의 도를 넘어서는 친절을 우리에게 베풀어주고 있었다.
윤선장님과 날 버리고 먼저간 대원들이 타고간 고무보트를 마을 주민 두분이서 자기배를 가지고 와서 우리 배에 고무보트를 묶어두고 자기배를 타고 돌아가는 수고를 하셨고. .. 윤선장님과 내가 상륙하니 후덕하게 생기신 아주머니한분이 자기집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물도 대접하고 친절하게 우리 일행이 간 곳도 알려주었다.
헌데 그 아주머니 따님이 절세 미인이었다. 나이 29세...캬~~~ 그냥 확 며느리 삼고 싶다.
같이 사진촬영은 물론 했다. 이렇듯 미인이 있는데 왜 밖으로 기어나가서 밥을 먹는지 난 먼저간 대원들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후덕한 아주머니에 이쁜 딸에 뭐가 모지란가... 아주머니에게 말을 잘해서 같이 밤새 이야기하면서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투덜거리면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무려 7KM를 트라이시클을 타고 갔다.
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는데 개뿔 뭐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쁜이네 집에서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대충 먹고 되돌아오는 길에 윤선장님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이쁜이와 아주머니 주려구 음료수를 잔뜩샀다.
오잉? 우리가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두 불끄고 주무시고 계셨다..
“분하다”
내일 아침에 들러서 물도 얻고 아침도 얻어먹어야겠다고 여기고 우린 다시 특수부대원이되어 고무보트를 타고 배에 기어올랐다.
잤다.,
헌데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꿈같이 누군가가 인트레피드호를 두드리는 것이었다. 뭐라 뭐라 캐사면서...
인트레피느는 워낙 탄탄해서 두들겨도 잘 소리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인지 밖에서 뭐라 뭐라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물론 난 자는 척했다. 귀찮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윤선장님이 부스스 일어나는 소리가 나고 또 한참을 뭐라뭐라 캐샀는다. 난 그냥 잤다. 내가 나서서 될 일도 아니니깐.
다음날 아침 진상을 알아보니 요상한 사람들이 배타고 와서 정박한다고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되먹지 못한 경찰관이 당장 배빼고 자기네 초소로 오라는 이야기였고 지금은 자는중이니 내일 일찍 초소로 간다고하고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침일찍 정박지를 떠나야만 했다. 이쁜이네 집에서 밥도 못얻어먹고 물도 얻지 못한채 마지못해 한참 떨어져있는 초소로 향했다...
이쁜아.... 흑흑...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보다 더 그쪽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임모 수택이란 분께서 자세히 내사를 했더라구요. 근데 그 딸은 친딸이 아니구 며느리라네요. Law daughter이었답니다.
한국에 사촌동생이 시집갔구 어쩌구.. 에그. 남자들이란....
아참...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저녁 노을이 물들어가고 있을 때였는데 망그로브 숲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모두들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사진을 구하는대로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카메라를 못가져왔습니다., 윤선장님께서 내가 다이빙 장비를 가져간다고 하니까 짐많다고 어찌나 타박을 주던지 감히 카메라를 가져갈 엄두를 못내고 다만 아들 소유의 아주 작은 세미 방수가 되는 카메라를 가져갔는데 셋째날 항해하다가 어찌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거꾸로 매달리고 어쩌다하다가 수장시키고 말았답니다. 에효 변상 조치해야합니다.
암튼 비록 고물이지만 내 DSRL를 가지고 갔었더라면 맹그로브 숲에서 많은 작품을 얻을 수 있었을겁니다.
“분합니다.”
9. 제8일차 경찰에 시달리다 calognaan에 앵커링하다
아침부터 이쁜이네집에도 못가보고 초소앞으로 배를 이동시킨 것만으로도 짜증나는 일인데 경찰서로 간 윤선장님과 대변인인 임수택대원 두분이 돌아올 줄을 모른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고 물은 떨어져 밥도 할 수 없고 배고픔을 이기며 오전 내내 배위에서 할 일없이 빈둥대다 하도 배가 고파 있는 물 없는 물 다 동원해서 밥을 짓고 우리끼리 살겠다고 밥을 차리는 와중에 점심때가 다되어서 두분이서 돌아왔다.
뭐 물어보나 마나지만 아직은 필리핀이 후진국이어서 경찰에서 삥을 뜯으려하고 어깨힘 주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보이려는 행위를 했을 것이 뻔했다.
결국 두분이서 얼르고 뺨치고 하면서 대충 해결하고 돌아왔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우찌되었든 윤선장님의 고집으로 돈 한푼 안 뜯기고 대한 남아의 기개를 손상시키지 않고 돌아왔으니 되었다.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출발했다. 물론 물 두통을 초소에서 얻은 후에...
이쁜이과 아직 미숙아인 경찰이 존재하는 곳을 떠나다....
미련과 꼴보기 싫음이 공존하는 New wasington을 그렇게 떠났다.
바람 방향이 영 꽝이다. 북동풍에 북동쪽으로 가니 천상 엔진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크루징하는데 엔진은 매우 중요했다. 심장이나 마찮가지다. 필요할 때는 주저없이 엔진을 써야하고 엔진 쓰는 것을 뭔 쪽팔림으로 여기는 풍조는 택도없다는 사실도 실감한다. 크루징은 주어진 모든 것을 활용해서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운행하는 것이 정답이란 것을 느낀다.
맞바람을 맞으며 엔진을 꿍쾅거리며 하루 종일 달렸다. 얼마가지 못하고 Calognaan섬 북동쪽을 파고들어 이름 모를 마을 앞에 앵커링을 했다. 바람과 파도가 있어 앵커가 견디지 못하고 끌릴 수 있다는 판단하에 우리 모두는 돌아가며 한시간씩 앵커끌림을 관찰하는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아무래도 윤선장님의 심통에 우리 대원 모두가 당한 것 같다.
결국 앵커는 한치도 끌림이 없었다...
농담이다... 대원 모두는 성실하게 불침번을 섰고 대원 모두는 배와 대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진지한 자세였다. 군대 제대 이후 간만에 불침번을 섰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불침번을 서다보니 한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이제 앞으로 두 번의 항해만 남았다. 항해의 끝으로 가고 있는 밤은 아쉽고 나른하다.
정박한 이 섬에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상륙해보지도 않았으니 더더욱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그냥 잠시 들러 잠만 잔 해안에 불과하다.
오전내내 경찰에 시달이지 않았다면 일찍 도착했든지 더 좋은 곳을 찾아가서 그 마을과 친교를 맺을 수 있었을텐데.. 공무원이 바르지 않으면 나라가 흥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되뇌인다.
10. 제9일차 보고항 강남스타일
드디어 세부로 항한다. 최소한 세부에 도착하면 뭔일이 있어도 육로로 공항까지 이동할 수 있으니 안심이다. 나야 항해가 끝나면 계속 필리핀 세부에 남아서 다이빙을 할 작정이니까 늦어도 상관이 없지만 대원들 대부분은 집으로 가야했기에 세부로 간다는 것은 다들 좋은 일이라 여긴다.
멀리 세부 북단이 보인다. 이어서 세부 북단에 있는 명 다이빙 포인트인 말라파스쿠아 섬도 스치듯 지나간다. 언젠가 저섬에서 다이빙을 하고 말테다. 멀리서 보아도 말라파스쿠아는 흰백사장과 야자수가 있는 멋들어진 섬으로 보인다.
바람 방향은 좋지 않았다. 엔진과 세일을 동시에 펴고 달렸다.
어둑어둑해져서 드디어 세부 본섬 보고항에 도착했다.
배가 바닥에 닿아 이리저리 헤메고 다니고, 내가 걸레 세탁하려고 후미에 내걸었던 뺄래줄을 걷지 않아 후진하면서 빨래줄이 스크류에 감기는 등 또 한밤중이 돼서야 앵커링을 하고 밥을 해먹었다.
앵커링을 마치고 밥을 해먹고 나서 한손에 샨미구엘을 들고 밤항구인지 바다인지를 살펴볼 겨를이 생겼다.
헌데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배는 항구 가운데 있어 뺑둘러 항구가 형성되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음악소리가 끊임없이 들렸고 그 음악의 대부분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사방천지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들으면서 잠을 청하려니 참 묘했다.
멀리 이국에서 이처럼 한국말로된 노래를 끝없이 들을 수 있다니.... 거참...
내일 마지막 항해가 남았다. 거리도 얼마되지 않는다.
묘한 감정으로 빠져 다들 조용히 밤으로 빠져들었다.
11. 제10일째 정박
마지막 항해는 신바람이 났다.
날씨가 너무도 쾌청하다. 바람은 없었지만 세일도 올리고 엔지도 켜고 밝게 항해했다.
지나가는 어선에서 횟감도 사서 먹고 , 모델처럼 여기저기 요트구석을 서성이며 사진도 찍어대고 다들 즐거운 표정들이다. 돈내고 고생하고 이제 집에 간다니깐 좋다는 건가...
나에게 이번 항해는 평생하고 싶었던 항해를 윤태균선장이라는 영웅과 함께 하게되어 더 없이 만족스럽고 본전이상을 찾아가는 장사를 하였다. 과연 앞으로 내가 요트로 세상을 돌아다닐지 아니면 지금처럼 강언저리에서 보트로 왔다갔다할지를 갸름해볼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아직 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 결정은 아무나 쉽게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러기에 윤태균 선장은 요트맨으로서 존경과 찬사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
전에 푸에르토 갈레라 요트클럽에서 만났던 에니와 폴과 만나기로 한 요트 마리나로 찾아갔다.
근데 마리나가 만원사절이란다.
에니와 폴이 마리나 끝으로 나와 우리배를 앵커링하도록 고함을 치며 조언을 해주었다.
앵커링을 할바에는 막탄 마리나까지 가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미치자 모두의 일치된 생각으로 세부 막탄에 있는 세부 요트 클럽 마리나로 계속 항해하기로 결정하고는 다시 닺을 올려 폴과 에니를 멀리서 작별하고 막탄으로 달렸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으며 공항근처에 더 가까이 간다는 생각에 다들 기분도 좋았다.
조금더 속도를 내보려고 바람방향도 좋지 않은데 제노아까지 펼쳐서 힘껏 달렸다.
어스룸 무렵이 돼서야 멀리 막탄대교가 보이고 마리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헌데 여기도 마찮가지로 마리나가 꽉차서 밖에서 앵커링하면서 몆일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앵커링을 해야할 판이었다.
여기서 구세주가 나타나셨으니 .....
웬 사람이 한국말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며 우리 배를 유도해주고 자기 배옆에 바싹 붙여서 정박시키라는 것이었다. 크럽에서 왠 사람이 악을 쓰며 우리를 쫒아내려했지만 한국말을 하는 땅딸한 아저씨가 한마디하니까 아무소리도 안하고 사라진다. 이곳에서 힘 좀 쓰는 분인가보다 여기며 배대고 통성명을 했다.
이 구제주는 한국인 요트맨으로 필리핀으로와서 요트사업을 하고 있는 윤사장님으로 윤태균선장님을 영웅으로 대접하는데 동의하는 분이었다.
그날 저녁 술값도 윤사장님이 쏘셨다.
영웅이랑 다니면 이런 혜택도 누리게 되나보다...
헤어지는 자리는 거창하지 않았다.
조촐하지만 심도있게 치렀다. 한마디로 그냥 한국음식먹고 찢어졌다.
대원들은 모두 모텔로 가고 윤선장님은 자기 집인 INTREPID호로 갔다.
그리곤 각자의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헌데 난 보름이 지나도록 항해 휴유증에 시달리다가 이제사 제정신이 들어 항해기를 썼다.
휴유증이란 넋나간 사람처럼 그저 바다만 보일뿐 두뇌가 회전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너무 잔머리를 많이 쓰고 살아서 자연과 접한 순수한 뇌는 생소한 모양이다.
항해 후 나를 만난 선후배님 모두 나더러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보약을 지어먹어라. 왜 매가리가 없냐 등등 내가 무척 안쓰럽게 보이는 모양이다.
나도 내가 왜이리 멍청한지 모른다.
이제 차츰 정신이 들어가니 제정신을 차려서 다시금 일어서 봐야겠다.
항해를 같이해준 대원님들에게 감사와 애정을 보내며
윤태균 선장님과 인트레피드호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우리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대마도나 한번 댕겨올까요 ?”
2013. 1. 31 모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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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찌 이리 글을 잘 쓰시는지~ 정신없이 읽느라 퇴근시간 한시간 지난지도 몰랐습니다....구글어스까지 캡쳐해서 올려주시고.... 친질한 항해기 잘 읽었습니다.
별말씀을.. 격려 감사합니다. 부끄럽게...ㅎ
자세한 설명에 내가 다녀온듯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엄청 글을 재미있게 쓰시네요... 제가 현장에 함께한 느낌입니다.. 좋은글 잘읽었읍니다.... 꾸벅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정말 함께 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멋진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판하셔야 함돠..재미가 솔솔
현장감과 개인사견 그곳에 함께 있는 느낌입니다.
정말 감칠맛나는 항해기였습니다^^ 얼마전 저도 필리핀을 다녀 온지라 눈앞에 선하네요~~참, 발바닥 상처는 잘 아물었는지요
Wonderful!!
공을 많이 들인 항해기군요...잘 읽었습니다...
공은 무신 하루에 후딱써버린 항해긴데요... 발은 아직도 병원가고 조리중입니다. 발만 안아팠스면 배위에서 날아다녔을텐데..ㅋ
마치내가같이쎄일링한기분 착각이들었네요
너무 멋진 후기입니다... 잘보았읍니다...
정말 재미있고 유쾌한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늦게나마 잘봤습니다 ^^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읽고보니 엄청 긴글이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