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4월 22일 금요일, 흐림 비, 춥다. 낮 기온 최고 9℃.
*걷기- 열이틀 날
*아헤스(Ages)에스 부르고스(Burgos)까지.
*이동거리 : 23.5km.
*누적거리 : 292km.
아침 6시 45분에 숙소를 나섰다. 오늘의 시작은 한적한 베나(Vena)강 계곡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이다. 떡갈나무와 소나무 숲을 통과하여 인적이 드문 길을 간다. 새벽 푸른빛이 가득하다. 새벽 미명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고맙게도 포장된길로 간다.
동쪽에 붉게 하늘이 열린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간다. 어둠 속이라 보이지 않지만 여기가 죽은 왕의 경계석이 있는 곳이란다. 아헤스와 아타푸에르카 사이에 펼쳐진 평원에 2미터 높이의 거석이 세워져 있다.
이 평원은 중세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군대와 그의 형제 페르난도 데 카스티야의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이 전투로 가르시아 왕이 사망하고 나바라의 군대는 패배하게 되었다.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바라 왕국의 왕위 다툼이 끝나게 되었다. 이 거석은 ‘죽은 왕의 경계석’이라고 불리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단다. “1054년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 여기서 죽다.” 접어든 오솔길에 커다란 인물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인물이 특이하게 원시인 차림이다. Atapuerca라는 글씨도 보인다. 아타푸에르카 마을 홍보판 인 것 같다. 왜 원시인일까? 마을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타푸에르카, 집들이 모여 있는 중심 구역에는, 산 마르틴 성당이 있다.
아타푸에르카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큰 곳이다. 이곳은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인류의 고향이고, 중세에 결정적인 전투가 치러졌던 곳이다. 약 3킬로미터 떨어져있는 백만 년 전의 인류 ‘호모 안테세소르’의 유적지는 인류의 진화이론에 대한 혁명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호모 안테세소르는 네안데르탈인 이전의 인류로 유럽의 인류 중 가장 오래된 이들이라고 한다. 아타푸에르카에 머문다면 어린 양고기로 만든 구운 고기요리를 즐겨 볼만하다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이 마을에 도착했다.
성당의 지붕과 마을의 주택들이 조용히 들어난다. 시청(Ayuntamiento de Atapuerca)사 앞에는 깃발이 5개 걸려있다. 유로기, 스페인 국기, 주기, 마을 깃발, 하나는 또 뭘까? 시청사는 소박한 돌 건물이다. 관광안내소(ⓘ) 앞에는 캠핑카 한 대가 주차해 있고 마을은 조용하다.
도로와 함께 가는 마을에 알베르게 건물도 보인다. 원시인 석상이 세워진 앞에는 작은 박물관도 있다. 돌담으로 세워진 성벽의 유적이 있다. Mattangrande 2.1km, Minas 3.5km라는 오래된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을 벗어나 오솔길을 걷는데 커다란 고목이 있다.
멀리서 보면 까치집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약초로 알고 있는 겨우살이 기생식물이다. 뒤돌아본 언덕 위 마을은 태양빛을 배경으로 까맣게 교회와 마을의 모습이 멋지다. 다시 비포장 오솔길을 올라간다. 제법 춥다. 길이 자갈길로 불편하다. 해가 떠서 훤하다.
밀밭 사이 길을 걷는다. 멀리 하얀 설산도 보인다. 흰 자갈돌 길에 까만 염소 똥이 보석 같다. 멀리 풍력 발전기 몇 개가 보인다. 언덕을 오르니 커다란 십자가(Cruz de Matagrande en Atapuerca)를 만났다. 이곳은 해발 1070m 높이다.
우리가 출발한 아헤스 마을이 해발 960m지역이다. 오늘 걷는 여정 중 가장 높은 곳이다, 평평한 언덕이다. 돌무더기에 세워진 앙상한 십자가는 곧게 서 있지만 너무 커서 좀 불안해 보인다. 누가 올려놓았는지 등산화 한 켤레가 십자가에 높이 걸려있다.
매달린 신발이 작아 보인다. 이 언덕에 서니 멀리 서쪽으로 부르고스 시내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탁 트이는 언덕에서 잠시 주저앉았다. 오른쪽 발목의 근육통이 느껴진다. 맨소레담을 꺼내 바르며 좀 쉰다.
벌판은 하얀 암벽이 드러나 있고 돌밭이다. 화살표도 투박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림자가 서쪽으로 앞서 간다. Villalval 2.1km, Cardenuela Rio Pico 3.5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언덕을 내려간다. 마을들이 보인다.
산티아고 522km라는 돌비석도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많이 걸어온 것 같다. 전체 800km에서 200km를 넘게 걸어온 것이다. 쉬지 않고 걷다보면 언젠가 도착할 것 같다. 자갈이 깔려있는 평지 길을 간다. 시골길이다. 구부러진 길이다. 그늘이 없다.
흙길이다. 좀 더 걸어가니 포장된 길로 이어진다. 언덕 아래로 휘어진다. 초록색 밀밭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앞서 가는 순례자 커플이 무척 추워 보인다. 패딩에 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쓰고 간다. 날이 점점 흐려진다.
낡아서 사용하지 않는 대형 버스에 알베르게와 순례자를 홍보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국 태극기도 그려져 있다. 숙박료가 5유로란다. 250m 앞에 있단다. 카르데뉴엘라 리오 피코(Cardeñuela Riopico) 마을에 도착했다.
이 오래된 마을의 이름은 산 페드로 카르데냐 수도원에서 유래가 되었단다.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 마을은 카르데냐 수도원의 영지였고, 그 이후엔 코바루비아스 수도원의 영지에 속해 있었다.
매년 12월 10일에는 마을의 수호성인인 산타 에우랄리아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Bocatería San Miguel)로 들어간다. 날이 추워서 안으로 들어갔다. 밖은 오래된 건축물인데 안은 깔끔하고 훈훈하다.
커피와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이 들어있는 샌드위치 빵을 주문해서 먹는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었다. 단단히 옷을 무장하고 다시 걷는다. 산타 에우랄리아 데 메리다 성당 (Iglesia de Santa Eulalia de Merida)이 보인다.
마을의 수호성인인 산타 에우랄리아를 위해 만들어진 이 성당에는 아름다운 피에타와 비가르니 봉헌화가 있는 르네상스 양식 현관이 돋보인다. 큰 종이 걸린 성당의 종탑은 넓은 하늘에 솟아 있어서 성당이 마을의 중심임을 알려준다.
돌로 지어진 집들이 견고해 보인다. 벽화가 있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벽화란다. 힘든 순례길 도중 집에서 편히 쉬는 모습을 상상하는 그림이다. 내가 왜 이 길을 고생하며 걸어갈까?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오래되 보이는 집들이 예쁘다.
수선화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다. 언덕 아래 마을이다. 다시 포장도로를 걸어 오르막을 오른다. 초록색 울타리에 예쁜 화살표와 조개 문양, 이정표가 붙어있다. 우리는 Orbaneja Riopico(오르바네하 리오피코)마을에 들어섰다.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이 지나는 피코 강변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이다. 부르고스 주의 수도인 부르고스에 가기 전에 조용한 거리와 강변에서 잠시 쉴 수 있다. 작은 예배당이 보인다. 원죄없는 잉태 소성당 (Ermita de La Inmaculada)이란다.
원죄 없는 잉태 성당은 중세풍의 근사한 탑이 있는 작은 석조 건축물이다. 산 미얀 수도원장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Millan Abad)도 만났다.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성당의 내부에는 소박한 성 로케의 조각상과 마을을 지나는 신실한 순례자들이 바치는 봉헌 물들을 볼 수 있다.
아스팔트 길로 넘어간다. 우리 목적지 부르고스는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하늘에 경비행기가 한 대 내려온다. 걷다보니 도로 왼편이 비행장(Burgos Airport)인 것 같다. 공항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없어 곡선으로 둥글게 돌아간다.
걷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더욱 지겹다. 다리까지 아프니 길이 더 멀어보인다. 공항을 돌아가니 바로 Villafría(비야프리아) 마을이 오른쪽에 있다. 보라색과 핑크빛의 예쁜 들꽃들이 인상적이다. 건널목을 건너가는 길 아래 넓은 철길이 끝나보인다.
철길 종점인 것 같다. 비야프리아 마을은 눈 아래 보이는데 교회를 중심으로 기와 지붕들이 질서있다. 이제 부르고스다. 우리 숙소는 부르고스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다. 부르고스가 길게 펼쳐져 있고 우리의 목적지는 거의 서쪽 끝에 있는 것 같다.
아직도 1km는 더 걸어가야한다. 도시다. 주유소도 있고 호텔과 레스토랑, 버스정류장도 있다. 무엇보다도 건물들이 가득하고 거리에는 차들도 많다. 사람들도 많이 보여 복잡하다.
거기에 마을에 들어서기 전 오전 11시 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춥고 움추려드는 거리다. 부르고스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아파트에 차량들로 정신없다. 순례자 조형물들도 만난다. 시간은 11시 35분, 기온은 영상 8℃라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큰 가리비 그림이 건너편 아파트 벽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견고하고 오래되 보이는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을 지난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으로 가모날에 위치해있다.
황금빛 시계와 종탑의 종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 광장에는 돌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제일 큰 가리비 그림을 배경으로 현대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아파트 상가 앞에는 택시들이 줄 서 있다.
사진 가게에 들어가 카메라 메로리를 찾았으나 구하지 못했다. 신부 흉상이 보인다. 2007년도에 만들어진 A Juan 13세의 흉상이다. 비 맞고 있는 것이 화난 표정이다. 대형 슈퍼 건물도 있다. 버거깅 매장도 있는 것 같다. 돌 조형물도 만났다.
엄청 커 보이는 대도시다. 돌고래 분수대(Dolphin fountain)가 있는 광장에는 대형 스페인 국기가 있다. 뚱뚱한 할아버지 할머니 동상이 있어 가 본다. Gigantillos y gigantones 란다. 옛날 복장에 웃음이 나오는 조형물이다.
다리 건너에 커다란 성당(Iglesia de San Lesmes Abad)이 있다. 종탑이 3층으로 되어있다. 거리에는 개 동상도 있고 커다란 황소 동상도 보인다. 관공서 건물은 작은 성 같다. 우산을 쓴 여성의 동상으로는 진짜 비가 내린다.
전통 복장을 한 아버지와 딸의 동상은 모자가 인상적이다. 보행자 거리가 나타난다. 비가 내리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건너편에 있는 호텔(Hotel Boreal Viento Norte)로 들어가서 우리 숙소 위치를 물었다.
시내 지도를 꺼내서 친절하게 현재 위치와 우리 숙소를 알려준다. 바다의 여신이 있는 분수대를 지나 드디어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Hostel Catedral Burgos다. 아직 체크인이 안되었다. 19유로다.
가방을 맡겨 놓고 부르고스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비가 내린다. 축축한 비에 우산을 쓰고 시내를 둘러본다. 점심은 사과를 얻어먹고, 비상 식량으로 해치웠다. 저녁은 중국 식당을 찾아갔으나 문을 닫았다.
3유로를 주고 샌드위치와 쥬스를 사서 저녁을 해결했다. 아픈 다리를 주물러 주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쉬면 곧 나을 것 같은데, 계속 걸으니 좀처럼 회복되질 않는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근육이완제 카마몰, 진통소염제를 먹고 얼음찜질도 한다. 파스도 발랐다. 비록 발은 아프지만 멈출 맘은 없다. 내일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