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원결의
광무제가 후한(後漢)을 건국한 지 160년. 정권은 부패하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이 틈을 타 장각은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다. 하지만 조정은 난을 제압할 힘이 없어 세상은 혼돈으로 빠져든다. 이때 유비, 관우, 장비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괴롭히는 황건적을 소탕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한눈에 뜻이 맞은 그들은 누상촌의 복숭아꽃 아래에서 맹세한다. 비록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한날한시에 죽기를 기원하며 형제가 되기로 한다. 이름하여 도원결의(桃園結義).
친족의 민사적 효과_
법률로 뜯어보는 삼국지
유비, 관우, 장비는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의형제가 되기로 맹세한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가 다르고 피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 호형호제를 넘어 법적으로도 형제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친족이 된다면 어떤 법적 효과가 생길까. 우선 민사적으로는 상속권, 부양의무 등이 생긴다. 형사적으로도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같은 범죄라도 친족 관계 때문에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일부 범죄는 처벌받지 않기도 한다. 먼저 민사적인 효과에 대해서 살펴본다.
일정한 범위 내의
친족에게 생기는 상속권
사람이 재산을 남기고 죽은 경우, 그 재산은 누가 물려받게 될까. 민법상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 상속인이 될 수 있다(민법 제1000조).
상속인이 여러 명 있다면 어떻게 될까. 1순위로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상속을 받는다면 다른 후순위 상속인은 상속권이 없다. 도원결의가 법적으로 유효해 형제 관계가 새로 만들어진다면 유비, 관우, 장비는 서로 상속권을 갖게 된다.
관우는 맥성에서 여몽에게 포로로 잡혀 관평과 함께 참수되었다. 유비와 장비가 형제로서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상속받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1순위 상속권자인 관평이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관우에게 직계존속이나 배우자가 없어야 한다. 이 경우 상속분은 얼마나 될까. 유비와 장비가 같은 순위로서 각각 1/2이 된다.
만약 관우에게 관평 이외에 다른 아들과 부인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는 부인과 다른 아들이 1.5:1의 비율로 상속한다.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형제인 유비와 장비보다 우선하여 상속권을 갖기 때문이다.
친족사이에 생기는 부양의무
부양의무는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돌봐야 하는 의무다. 그런데 법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민법에서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경우에만 부양의무를 지우고 있다. 제826조는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974조에서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사이,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 사이에서는 부양의무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비와 아내인 미부인이 조조에게 신야성을 빼앗기고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이다 보니 먹을 것이 턱 없이 부족했다. 유비는 마지막 식량으로 주먹밥 한 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 경우 전쟁을 위해 유비가 주먹밥을 혼자 먹어도 될까. 그렇지 않다. 유비는 미부인과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 부부간의 부양의무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면제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비가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미부인을 부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미부인은 유비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민법에서 이혼 사유 중 하나로 ‘배우자를 악의로 유기’한 경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제840조 제2호).
친족 간의 부양의무는 좀 다르다. 관우와 장비도 피난길에 올랐다. 대장인 유비도 먹을 것이 부족했는데 관우와 장비는 오죽했을까. 관우도 갖고 있는 것이라곤 주먹밥 반 덩이뿐이었는데 먹성 좋은 장비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이 경우 부양의무는 어떻게 될까. 장비가 관우에게 “형제간에는 부양의무가 있으니 나누어 달라.”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친족 간의 부양의무는 부양해야 하는 사람에게 경제적 여력이 있을 때에만 인정된다. 그런데 관우도 장비를 부양할 처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관우가 주먹밥 반 덩이를 한입에 털어 넣어도 장비는 도원결의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항의할 수 없다.
친족의 범위는?
친족이 되면 특별한 법적 효과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친족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 민법은 친족을 ‘배우자, 혈족(血族), 인척(姻戚)’(제767조)으로 구분한다. 그중 배우자,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이 민법상의 효력이 미치는 친족 관계다. 먼저 배우자란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를 말한다. 혼인신고를 마치지 않은 동거 관계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녀는 친족이 될 수 없다.
혈족은 자연혈족과 법정혈족으로 나뉜다. 자연혈족은 말 그대로 피로 맺어진 관계다. 출생과 같이 자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를 의미한다. 유비와 아들 아두(미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관계가 자연혈족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법정혈족은 법적인 행위를 통해 혈연관계가 인정되는 사이다. 양자(養子)와 양부모(養父母) 사이가 바로 법정혈족에 해당한다.
관우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유비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군의 다섯 관문을 돌파해 유비와 재회한다. 이때 기주에 살던 관정은 잘 곳이 없던 유비와 관우에게 방과 음식을 제공했다. 관정은 평소 관우를 존경했다. 관우에게 자신의 아들 관평을 거두어 주길 청했다. 관우는 관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관평을 기꺼이 아들로 삼았다. 관우와 관평은 입양을 통해 법정혈족이 된 것이다.
인척은 혼인으로 생긴 친척이다. 배우자의 혈족이 이에 해당한다. 유비는 손권의 여동생인 손상향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유비와 손권은 적(敵)에서 인척이 되었다. 그것도 법적 효과가 미치는 4촌 이내의 인척이 된 것이다. 촉나라의 군주 유비와 오나라의 군주 손권은 가깝고도 먼 인척이었던 것이다.
의형제는 법적으로 보호될까?
본래의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인데, 도원결의를 통해 법적인 효과를 받는 의형제가 될 수 있을까. 민법은 법정혈족이 될 수 있는 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입양을 통해 양자와 양부모 사이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형제자매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안타깝지만 유비와 관우, 장비는 법적으로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관우는 관평을 입양해 친족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한날한시에 죽기로 결의를 한 유비, 장비와는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상속권을 가질 수도 없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의 분신과도 같은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상속받을 수 없다. 도원결의까지 한 유비와 장비가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상속받을 수 없다니! 너무 분하지 않을까.
방법이 없지는 않다. 바로 유증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증은 죽음과 동시에 증여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이 경우는 친족 관계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다만, 관우가 죽기 전에 미리 의사표시를 해 놓았어야 한다. “내가 죽으면 적토마는 유비에게, 청룡언월도는 장비에게 주라.”라고 말이다.
<사례 1>
외국 의대 교수인 A는 어머니로부터 3층짜리 건물을 증여받았다. 건물은 세놓아 임대료를 어머니와 나누기로 했다. 어머니는 숨지면 자신의 땅을 A에게 증여한다고 증서까지 썼다. 그런데 A는 외국에 살면서 어머니를 잘 돌보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 명의로 된 문서까지 위조해 임대료를 독차지하려다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아들을 믿을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증여증서와 다른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러자 A는 어머니를 상대로 유언장이 무효라는 소송을 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법원은 어머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민법 제556조는 ‘증여를 받은 사람이 증여를 한 사람에 대해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A씨와 같은 불효자에 대해 간접적으로 제재를 하는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자식의 부양의무를 강제하기 위한 ‘불효자방지법’에 대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사유에 ‘학대’와 ‘부당한 대우’ 등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여론조사 결과 67.6%가 찬성 의견을 냈다. 법으로라도 효도를 강제해야 할까.
<사례 2>
민법은 친족 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원수처럼 으르렁대며 사느니 차라리 남으로 사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 기회를 열어놓은 것이다. 이혼과 파양(罷養)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피로 맺어진 자연혈족 관계는 어떨까.
B씨 부부는 자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한 아들이 미웠다. 아들이 교수로 있는 대학에 찾아가 1인 시위를 하고 아들을 징계해 달라고 탄원서도 냈다. 아들도 어머니를 상대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급기야 B씨 부부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로 소급해 부모 자식 관계를 끊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형식적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며 각하(却下) 결정을 했다. 피로 맺어진 부모 자식 관계는 법으로도 끊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괜히 생긴 건 아닌 것이다.
○ 직계비속(直系卑屬) : 아들, 딸, 손자, 증손자로 이어지는 친족
○ 직계존속(直系尊屬) :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로 이어지는 친족
※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4촌 형제, 조카 등은 방계(傍系)에 속함
○ 유증(遺贈) : 죽기 전에 유언으로 증여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써 사망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함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