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선당 _ 1999년 복원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며,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동궁은 세자궁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자선당(資善堂)과 비현각(丕顯閣)이 주 전각이고,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춘방)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던 세자익위사(계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 창건 시에는 궁내에 동궁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세종대(1427년)에 와서 창건된다. 자선당에서는 문종이 세자시절 단종을 낳기도 하였으며, 고종대 경복궁 중건 후에는 순종이 거처를 하였다.
현재의 동궁은 1999년 자선당과 비현각 영역만 복원이 되었다. 동궁의 북쪽에는 수라간인 내·외 소주방이 있었다.
세자는 다음에 왕이 될 사람이므로 떠오르는 태양에 비유하여 예로부터 궁의 동쪽에 배치하였다.
여러 사연으로 못 살게 되고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해서 고종때 중건하고 순종이 잠시 머물렀을 뿐이라고 한다.
비현각은 원래 세조가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고종 때 중건하면서 이름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동궁 동쪽에 건춘문이 있는데 거기 천정에는 용무늬가 그려져 있다.
자료는 경복궁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철종은 아들이 없이 죽고 순조의 외아들 익종의 부인인 신정왕후가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 명복을 양자로 입적해 고종(26대)이 된다.
철종과 고종은 15촌뻘로 혈통도 아니고 머나먼 무늬만 왕족이다.
이런 고종을 왕위에 올려주었으니 대원군은 속칭 조대비인 신정왕후를 위해 조선전기의 자미당터에 자경전을 지어준 것이다.
중국 한나때부터 왕의 어머니의 처소는 보통 동쪽에 짓는데 자경전도 같은 맥락이다.
자경전도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여인들을 배려해서 담장을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들어가는 입구의 담장도 매화, 복숭아, 모란, 석류, 꽃과 나비, 국화, 대나무 무늬가 있었고 거북의 등무늬(귀갑무늬)인 석쇠무늬와 만자무늬가 있어 악귀를 쫓고 길상만덕을 기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자경전 뒤로 돌아가면 보물 제810호인 십장생 굴뚝이 있다.
꽃담처럼 담에 붙여서 만들 굴뚝으로 상단에는 좌우에 학이 문양된 학문전이 각각 있고 중앙에 짐승모양을 한 일종의 귀신인 나티문전이 있다.
그 밑에 중간에는 해, 산, 구름, 바위, 솔, 거북, 학, 바다, 사슴, 포도, 연꽃, 대나무, 불로초를 조형전으로 배치하고, 그 밑에 불가사리 두 마리를 전(塼)으로 만들어 박았다.
학은 주둥이에 멀 물고 있는데 먼지 모르겠고 불가사리는 이가 뽀족하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뽀족한 것을 물은 모양인지 모르겠다.
▲ 자경전(보물 제809호)_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가 거처하던 전각
경복궁 침전 동쪽 터에 자리한 자경전(慈慶殿)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조대비(신정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건물을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44간의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은 온돌방으로 꾸며진 복안당과 자경전, 동남쪽의 청연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연루의 동측으로 협경당이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 남쪽으로 행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여자들이 여닫기 쉽게 가벼운 당판문으로 된 만세문이 있다.
◀ 자경전 꽃담 : 대비전인 자경전의 서쪽담장 외벽에는 매화, 천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색깔이 든 벽돌로 장식하여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자경전 뒤편에는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처럼 화계를 꾸미지는 않았지만, 십장생과 박쥐문, 당초문을 새긴 굴뚝을 세워 볼거리를 만들었다. 또 서쪽 담은 주황색 벽돌로 축조하여 내벽에는 만수문, 격자문, 육각문, 오얏꽃 등을 정교하게 새겨 넣고, 외벽에는 매화, 천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색깔 있는 모양벽돌로 꾸며 격조를 높이고 있다.
▲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 :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 무늬와 당초문, 그리고 박쥐문을 정교하게 새겨 넣어서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조형미를 보여주는 굴뚝, 기존의 담장에 기대어 쌓아 흡사 담장의 일부처럼 보이게 한 재치도 돋보인다.
십장생(十長生) 굴뚝
십장생무늬는 가장 토속적인 무늬로 알려져 있으며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바 고종의 양모(養母)조대비(趙大妃)의 장수를 기원하여
이 곳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십장생 굴뚝은 굴뚝의 기능과 함께 공간 조형물로서의 장식적인 기능에도 충실하였으며
그 조형미도 매우 세련되어 조선시대 궁궐의 굴뚝들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집옥제 -좌우로 협길당과 팔우정 (왕이 서재로 사용했던곳)
명성황후의 거처
향원정
경회루
박물관
첫댓글 정성스레 찍은 사진 즐감하다 갑니다 ^^ 수고했어요
아직 다 안 올렸는디요~~ 서방님!!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