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70년 안타원님 법사수여식
사진-김정문
뒷줄좌 유타원 김성혜교무, 양타원 황인숙, 오타원 이형덕교무, 전타원 이진화, 안타원
안정진교무,안타원님앞에 어린이 구혜원, 밀타원 진문철교무, 연타원 박혜철교무,
앞줄좌 봉타원 전영만, 담타원 조원정, 정타원 김정문, 유성연
원기70년
사진설명 진산 박인광
원기70년(1985) 5월 26일 석존성탄절을 맞이하여 상타원 전종철법사님을 초청하여 법호수여식을 하였습니다. 축사는 민산 이중정 감찰원부원장이 해주셨고 전타원 이진화, 장타원 곽해인화, 방타원 이지일화 3분이 함께 법호를 받으셨어요. 전타원님은 석존성탄절 기념법회에서 받으셨는데 사진은 10월로 나오네요. |
원기71년/1986 4월 28일 대각개교절기념식을 하고 단별성가대회 1등-6단, 2등-11단, 3등-10단 |
71년 합동 법회후 수원 푸른동산에서 명랑운동회
합동법회를 마친 후 바로 수원시 유원지인 「푸른 지대」로 이동해 이성원 사무장의
사회로「이 시대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이날 기도식에서 李교구장은 기원문 독배를 통해 국가 ㆍ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였다.
이어 청년회원들의 진행으로 명랑운동회를 개최, 4개 팀(1개 팀 3개 교당 연합)을
구성해 각종 오락경기와 장기자랑 등을 갖고, 행운권추첨을 통해 푸짐한 선물을
교도들에게 나눠 주는 등 교구신설 후 처음으로 연합행사를 실시, 힘찬 첫 발을 내딛었다
원기71년 어린이 여름훈련
수원교구 학생여름훈련이 7월 26일~27일(1박2일) 신봉리 사슴농원에서 8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인천교당에서 어린이 39명참석하였고 일반교도 고희중 천희명 박정덕
이원해교도가 행사지원을 위해 동행하였으며
지도교사는 양제우 이성민 박법인 윤지영 문명곤 하성혜
「신앙 그리고 만남」이라는 주제로 실시된 이번 훈련은 서원의 밤, 캠프파이어,
산상기도, 「참 신앙」강의(이성원 사무장), 한마음 합창, 광교산 형제봉 등정,
단별발표 및 장기자랑 등으로 진행됐다.
주무훈련
원기 72년 /1987 1월 20~21일
원기72년/1987 1월 20~21일에 용인 명성콘도에서 ‘우리는 한일꾼’을 주제로 11명의
주무가 참석하여 주무훈련
훈련을 마치고 용인 민속촌관람
원기73년(1988)년 6월 12일 창립20주년기념행사화
팔타원 황정신행(온순) 법사
수원교구 합동 대종사 추모법회가 12일 오전 11시 인천교당에서
이정무 교구장을
비롯한 재가 출가 교도 6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장훈 사무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합동추모법회에는
원로수위단원 황정신행 황 정신행(黃淨信行) 법사의 대종사에 대한
간절한 추모 담이 있었다.
이날 황 법사는 추모 담을 통해 대종사의 주세 불로서의 심법과 처사를
소상히 설명한 후,
교단과 국가 세계의 밝은 전망을 대종사 법문을 인거,
강조함으로써 교도들의
신앙심을 크게 북돋았다.
평생 마음에 모신 두 분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그땐 거지가 많았던 때였다.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이라 날마다 거지가 찾아 왔다.
온순 어린이는 거지가 먹던 수저를 따로 챙겨 두고 거지가 오면
그 수저를 얼른 내어 주곤 하였다.
거지가 먹는 수저와 집안 식구가 먹는 수저가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아버지 황원준 님께서 이를 보시게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참하다고 칭찬을 받을
거란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꾸중은 조용했으나 그러나 어린 온순은
뼈아프게 새겼다.
“사람은 본래 다 똑 같다. 그들도 부모가 없어서 거지가 된 것 뿐이다.
그 누구도
차별 해서는 안 된다.
능력껏 남을 도와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임을 너는
명심해야 한다.”
황정신행 종사는 이 말씀과 함께 이런 인생의 지표를 주신 아버님 앞에
평생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아버님을 가슴에 모시고 그 뜻을 좇아 살았다.
1936년, 황온순의 나이 33세 때 소태산 대종사를 돈암동에서 처음 뵈었다.
첫 만남에서 바로 법명을 받았다.
정신행( 淨信行)이라고. 이 법명은 후일 그 분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그린 듯한
이름이 되었다.
황정신행은 소태산을 통해 크게 깨친 바가 있다. 대웅전에 모신 금부처만이
부처상이
아니라 처처에 참 불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길가의 보잘 것 없는 돌도 불상이요,
나무 한 그루도 부처라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황정신행 종사는 이런 깨달음과 함께 이런 인생의 지표를 주신
소태산 대종사 앞에 평생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소태산님을 새 부처님으로 가슴에 모시고
그 뜻을 좇아 살았다.
크게 살리는 집념
황정신행 종사는 영감(靈感)으로 느낀 일은 평생을 두고 일관 하셨고
그 추진력과 집념은 뜨거운 삼복의 햇살과 같았으나 외양으론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열 살 때 꿈을 꾸었다. 빨간 벽돌 높은 집에 푸른 잔디가 깔린
집이 종종 꿈에 보였다.
그 꿈을 꾸고 나면 하늘을 나를 듯 희망에 넘쳤다. 13살 때 이화학당
중등부에 입학 했을 때, 어려서 꿈에 본 그 집이었다.
붉은 벽돌집이 우뚝 서 있고 푸른 잔디가 깔려있는 그 꿈에 본 건물과
푸른 잔디! 평생을 두고 팔타원님이 지은 집은 거의가 붉은 벽돌에
잔디가 깔려있다.
일도 한번 시작하면 여름 햇살처럼 뜨겁게 집념을 갖고
정성을 다 하여 일관 하셨다.
6·25 한국전쟁에서 서울대 문리대 중국어과에 갓 입학한 외아들
필국을 잃는다. 이럴 수가?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말한다.
“자기 아들만 아들인가.
전재 아동 9백명을 제주도에 데려다 놓았으니
그들을 필국으로 알고 돌봐 주구려!”
황정신행 종사는 6·25가 터지자 영국에서 바로 귀국하여
부산 원불교 초량교당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기에 마음을 추스르고
기도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아들 하나의 어머니가 아닌,
수 천 아들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되는 기연이 된 것이다.
황혼기에 시작한 교육사업
그 뒤 팔타원님은 인재양성에 뜻을 둔다. 슬기롭고 아름답고
진실한 여성교육을 스스로 해보려 든 것이다.
그때 여사의 나이 70이 가까워 진 때이다. 호적 나이로 68세였다.
지금도 이 나이는 정년퇴임을 하고 일 손을 놓을 나이요
또 놓으라고 권유를 받을 나이이다.
더구나 그 분은 부군도 없고 아들도 없고 따님 한 분은 피아노 교수로
사업엔 무관심할 뿐이고 또 하나 딸은 미국으로 건너가 없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오직 혼자서 1970년에 휘경학원을 세운 것이다.
참으로 놀랍고 머리 숙이지 않을 수가 없다.
2005. 6. 29. 열반 1주기에
출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원기73년(1988)년 6월 12일 창립20주년기념행사
▲ 합창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 가운데남자 좌에서 국악인 조상현, 두번째 항산양상춘, 세번째 위산이영관초대회장,
네번째 밀타원 진문철교무, 다섯번째 항산 김인철교정원장 여섯번째 대종사님 역할을 임이조, 일곱번째 선법원 ,
「개벽의 북소리」인천공연이 인천교당 창립 20돌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6월 12일 교구합동 추모법회를 본 후 오후 2시 인천시민회관에서
황정신행 법사, 김인철 성업봉찬회 사무총장과 이정무 교구장을 비롯한
수원교구내 재가ㆍ출가 교도 7백여명과 신부 수녀 승려 등
타종교 성직자와 8백여 인천시민 등 총 1천 5백여 명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려
인천시 원불교 교화 발전에 큰 계기를 이뤘다.
원기74년/1989 7월 17일 강화도 함어동천에서 부부야외법회에 53명이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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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훈련
원기74년 2월 27~28일 길타원 최정은주무의 협조로 용평콘도에서
'우리는 교당의 숨통' 이라는 주제로 20명의 주무님 들이 한해 교당계획과
심성계발훈련으로 났습니다.
뒷줄좌 길은상, 이산 오선명교무, 문타원 염진원, 길타원 최정은, 담타원 조원정, 신유진
가운데 우 봉타원 전영만, 정타원 김정문, 희타원 이영인, 밀타원 진문철교무,
혜타원 최보은, 정타원 김진정
앞 우 신타원 김홍신, 형타원 이형원, 준타원 고희중, 숙타원 박영종
앞좌 담타원 조원정, 형타원 이형원, 혜타원 최보은, 신타원 김홍신, 준타원 고희중,
뒤좌 신유진, 밀타원 진문철교무, 길은상, 문타원 염진원, 희타원 이영인,
봉타원 전영만, 숙타원 박영종, 정타원 김진정, 길타원 최정은
원기74년/1989 12월 3일 명절대재를 마친 후 교리시험대회 등 각종 행사를 전교도가
함께 한 가운데 대법당에서 개최했다.
교리 시험대회는 정전 대종경 등 9종 교서에서 문제를 골고루 출제,
학생 청년 일반 남녀 교도가 엄격한 감독 하에 함께 시험에 응시,
여 10단이 평균 93점을 얻어 최우수상을 차지하였으며, 전체 평균 75점을 기록,
교도들의 교리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번 교리시험대회를 위해 교도들은 지난 10월부터 단 회를 통해 교리를 연마하면서
주보에 실린 문제를 연구해 왔다. 이어 교리강연대회는 강연자 7명에게1개월 전부터
제목을 주어 연마, 감사생활을 강연한 성영권 교도가 1등을 차지했다.
또한 나이별로 나누어 실시된 독경대회는 일원상 서원문, 반야심경, 휴휴암 좌선문,
금강경 중에서 택일하여 각자 목탁을사용, 대중을 향해 경을 외우게 하여 화음,
음색, 태도, 외우는 정도를 채점, 40대가 우승을 차지했다.
기사출처 : 원불교신문
원기75년(1990) 1월 7일에 원기74년도 결산을 하고 교도시상을 하였습니다.
3관왕이 무려 29분이나 하셨네요.
우수단 7. 8. 10단
공로상 박순정 김법인
연원상 9단
심장병 어린이 돕기 일일 찻집
연표를 보니 원기75년 /1990 4월 8일에 인천교당 청년회주관 준 커피숍에서
심장병어린이돕기를 2차례 행사를 했는데 교무님 확인이 되면
언제인지 확인이 가능하겠어요.
사진은 교당자료사진과 약대교당 김제홍교도가 준 것입니다.
75년 4월 8일 일일찻집 참가
원기75년/1990 4월 8일에 인천교당 청년회주관으로 인천 준커피숍에서 심장병어린이를 돕기 위한 일일찻집을 열었다.
당시 청년회 송법연, 부회장 최정원 배정수였으며 월미도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하며 가두모금, 교당에서 땅콩판매, 일일찻집의 수익금을 모아 심장병어린이 후원과 부천의 은혜의 집에 후원을 하였는데 원기75년도에는 원청훈련을 하며 심장병어린이 수술지원금으로 일백만원을 후원했다.
교당 초기에는 청년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여 전국행사에도 많은 참여를 하고 특히 봉공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에 지도교무님으로 부터 공부와 사업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조언도 받을 정도로 봉공활동을 많이 하였다.
원기75년/1990 4월 29일 융산 송천은교수초청 대각개교절기념행사 및 단별합창경연대회를 하였고 교당 청년회 동남풍 사물놀이한마당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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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98년 3월 16일 밀타원님 퇴임식
상타원 박순정, 담타원 조원정, 문타원 염진원님은 왜 북인천교당교도 틈에 있지요?
▲ 원기98년 퇴임식에 밀타원님과 함께 한 인천교당 교도들.
사진을 카페에 올린 기억이 있어 검색을 해보니 안나오길래 기억을 더듬어서
하나하나 게시글을 열어서 찾았네요 (문산님)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웃으세요
첫댓글 옛날일들 틀린것들이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수정합니다.
교당 50주년때 자료들 모으기만 하고 그 당시를 모르니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만 기록하게 되었네요.
예전사진들 있으시면 제가 복사하고 돌려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