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公 3年(紀元前 570年)
三年春, 楚子重伐吳, 爲簡之師, 克鳩玆, 至于衡山, 使鄧廖帥組甲三百, 被練三千, 以侵吳. 吳人要而擊之, 獲鄧廖. 其能免者, 組甲八十, 被練三百而已. 子重歸, 旣飮至三日, 吳人伐楚, 取駕. 駕良邑也, 鄧廖, 亦楚之良也. 君子謂, 「子重於是役也, 所獲不如所亡.」 楚人以是咎子重. 子重病之, 遂遇心疾而卒.
삼년춘, 초자중벌오, 위간지사, 극구자, 지우형산, 사등료솔조갑삼백, 피련삼천, 이침오. 오인요이격지, 획등료. 기능면자, 조갑팔십, 피련삼백이이. 자중귀, 기음지삼일, 오인벌초, 취가. 가량읍야, 등료, 역초지량야. 군자위, 「자중어시역야, 소획불여소망.」 초인이시구자중. 자중병지, 수우심질이졸.
[解釋] 노나라 양공 3년 봄에, 초나라의 자중은 오나라를 쳤는데, 그것을 위하여 정예의 군사들을 뽑아, 오나라의 구자 고을에서 싸워 이기고, 衡山에까지 나아갔으며, 그래서 鄧廖를 장수로 하여 조갑을 한전차병 3백 명과 被練을 한 보졸 3천 명을 거느리고, 오나라를 침략하게 하였다. 그런데 오나라 사람들은 매복하였다가 그들을 맞아 공격하여, 동료를 죽였다. 그때 달아날 수 있었던 자는, 겨우 組甲한 전차병 80명과 被練한 보졸 3백 명뿐이었다. 子重은 먼저 형산에서 돌아왔으므로, 조묘에서 축배를 마시던 사흘째에, 오나라 사람들은 초나라를 쳐서, 駕땅을 빼앗아 버렸다. 駕는 초나라의 良邑이고, 鄧廖도, 초나라의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군자는 이르기를, 「子重은 이 싸움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고 비평하였으므로, 초나라 사람들은 이 일로 해서 자중을 허물하였다. 子重은 이것을 걱정하다가, 홧병에 걸려 죽었다.
公如晉, 始朝也. 夏盟於長樗. 孟獻子相公, 稽首. 知武子曰 : 「天子在, 而君欲稽首, 寡君懼矣.」 孟獻子曰 : 「以敝邑介在東表, 密邇仇讎, 寡君將君是望. 敢不稽首?」
공여진, 시조야. 하맹어장저. 맹헌자상공, 계수. 지무자왈 : 「천자재, 이군욕계수, 과군구의.」 맹헌자왈 : 「이폐읍개재동표, 밀이구수, 과군장군시망. 감불계수?」
[解釋] 노나라의 양공이 진나라에 간 것은, 처음으로 즉위의 인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름에 양공은 진후와 장저에서 맹약하였다. 그때 맹헌자는 양공을 도와, 천자에게 행하는 계수의 예를 행하게 하였다. 그러자 지무자는 말하기를, 「천자가 계신데, 임금께서 계수의 예를 행하는 것은, 저희 임금으로서는 황공할 뿐입니다.」고 하자, 孟獻子는 말하기를, 「저희 나라는 동쪽 끝에 강국 사이에 끼어 있어, 귀국의 원수인 제`초와 근접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 임금은 귀국의 임금만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떻게 감히 계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晉爲鄭服故, 且欲脩吳好. 將合諸侯, 使士匃告于齊曰 : 「寡君使匃. 以歲之不易, 不虞之不戒, 寡君願與一二兄弟相見, 以謀不協. 請君臨之. 使匃乞盟.」 齊侯欲勿許, 而難爲不協, 乃盟於耏外.
진위정복고, 차욕수오호. 장합제후, 사사개고우제왈 : 「과군사개. 이세지불역, 불우지불계, 과군원여일이형제상견, 이모불협. 청군임지. 사개걸맹.」 제후욕물허, 이난위불협, 내맹어내외.
[解釋] 진나라는 정나라가 복종하였기 때문에, 잠깐 오나라와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제후들을 모아 동맹을 맺으려고, 사개를 제나라에 보내어 말하기를, 「저희 임금께서는 저를 사자로 보내셨습니다. 그 해는 다사다난하고, 어떤 뜻밖의 사태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저희 임금께서는 한두 분의 형제와 만나서, 화합하지 않는 제후들에 대하여 상의하고 싶어 하십니다. 귀국의 임금께서도 왕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를 보내어 맹약을 요청하게 하신 것입니다.」고 하게 하였다. 제후는 허락하지 않으려고 생각하였으나, 진나라와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꺼려, 이수의 밖에서 맹약하였다.
祁奚請老, 晉侯問嗣焉, 稱解狐. 其讎也. 將立之而卒, 又問焉, 對曰 : 「午也可.」 於是羊舌職死矣, 晉侯曰 : 「孰可以代之?」 對曰 : 「赤也可.」 於是使祁午爲中軍尉, 羊舌赤佐之.
기해청로, 진후문사언, 칭해호. 기수야. 장립지이졸, 우문언, 대왈 : 「오야가.」 어시양설직사의, 진후왈 : 「숙가이대지?」 대왈 : 「적야가.」 어시사기오위중군위, 양설적좌지.
[解釋] 祁奚가 은퇴를 청할 때, 진후가 후임자를 묻자, 기해은 解狐를 추천하였다. 기해와는 원수지간이었다. 해호를 임명하려고 할 때에 죽었으므로, 다시 물으니, 기해는 말하기를, 「午가 좋을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이때 羊舌職이 죽었으므로, 晉侯는 말하기를, 「누가 그를 대신할 만한가?」라고 하였는데, 기해는, 「赤이 좋을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진후는 기오를 중군의 위에 임명하고, 양설직을 그의 보좌로 삼게 하였다.
君子謂 : 「祁奚, 於是能擧善矣. 稱其讎, 不爲諂, 立其子, 不爲比, 擧其偏, 不爲黨. ≪商書≫曰, '無偏無黨. 王道蕩蕩.' 其祁奚之謂矣. 解狐得擧, 祁午得位, 伯華得官. 建一官而三物成, 能擧善也. 夫唯善, 故能擧其類. ≪詩≫云, '惟其有之, 是以似之.' 祁奚有焉.」
군자위 : 「기해, 어시능거선의. 칭기수, 불위첨, 입기자, 불위비, 거기편, 불위당. ≪상서≫왈, '무편무당. 왕도탕탕.' 기기해지위의. 해호득거, 기오득위, 백화득관. 건일관이삼물성, 능거선야. 부유선, 고능거기류. ≪시≫운, '유기유지, 시이사지.' 기해유언.」
[解釋] 이에 대하여 군자는 이르기를, 「祁奚는, 이제 훌륭한 인물을 잘 천거하였다. 자기의 원수를 천거하였어도, 아첨이라고 할 수 없고, 자기의 아들을 세웠어도, 역정을 들었다고 할 수 없으며, 자기의 부하의 아들을 천거하였어도, 불공평하다고 할 수가 없다. ≪商書≫에 이르기를, '치우치지도 않고 불공평하지도 않다. 황자의 도는 참으로 사심이 없다.'고 했지만, 祁奚를 두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解狐는 천거를 받고, 祁午는 자리를 얻었으며, 伯華는 관직을 얻었다. 하나의 관직을 임명하는데 세 가지의 일이 이루어졌으니, 훌륭한 인물을 잘 천거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훌륭하기 때문에, 자기와 같이 훌륭한 인물을 추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詩經≫에도 이르기를, '오직 그 사람이 유덕자이기에, 추천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 닮아서 훌륭하다.'라고 했지만, 祁奚도 그것과 마찬가지다.」고 비평하였다.
六月, 公會單頃公及諸侯, 己未, 同盟于鷄澤. 晉侯使荀會逆吳子于淮上, 吳子不至. 楚子辛爲令尹, 侵欲於小國, 陳成公使袁僑如會求成. 晉侯使和組父告于諸侯. 秋叔孫豹, 及諸侯之大夫, 及陳袁僑盟, 陳請服也.
육월, 공회선경공급제후, 기미, 동맹우계택. 진후사순회역오자우회상, 오자부지. 초자신위령윤, 침욕어소국, 진성공사원교여회구성. 진후사화조보고우제후. 추숙손표, 급제후지대부, 급진원교맹, 진청복야.
[解釋] 6월에, 양공은 單頃公 및 제후들과 회합하여, 己未日에, 진나라의 鷄澤에서 함께 맹약하였다. 그때 진후는 순회를 보내어 오자를 淮水가에서 맞아들이게 하였는데, 吳子는 오지 않았다. 초나라의 子辛은 令尹이 되어, 소국들을 침략하려고 하였으므로, 진나라의 성공은 원교를 보내어 회합에 참가하여 화평을 요청하게 하였다. 그래서 진후는 和組父에 명하여 그와 같은 사실을 제후들에게 알리게 하였다. 가을에 노나라의 叔孫豹와 제후의 대부들이, 진나라의 袁僑와 맹약한 것은, 진나라가 귀순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晉侯之弟揚干亂行於曲梁, 魏絳戮其僕. 晉侯怒, 謂羊舌赤曰 : 「合諸侯, 以爲榮也, 揚干爲戮, 何辱如之. 必殺魏絳. 無失也.」
진후지제양간란행어곡량, 위강륙기복. 진후노, 위양설적왈 : 「합제후, 이위영야, 양간위륙, 하욕여지. 필살위강. 무실야.」
[解釋] 晉侯의 아우 揚干은 행군의 대열을 진나라의 曲梁에서 어지럽게 하였기 때문에, 魏絳은 양간의 어자를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진후는 노하여, 羊舌赤에게 말하기를, 「제후들을 회합시키는 것은, 영광을 위해서인데, 양간이 처벌받았으니,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을 것이다. 반드시 위강을 죽여야 할 것이다. 놓치지 말라.」고 하자,
對曰 : 「絳無貳志. 事君不辟難, 有罪不逃刑. 其將來辭. 何辱命焉.」 言終, 魏絳至, 授僕人書, 將伏劍. 士魴, 張老止之.
대왈 : 「강무이지. 사군불피난, 유죄부도형. 기장래사. 하욕명언.」 언종, 위강지, 수복인서, 장복검. 사방, 장노지지.
[解釋] 양설직은 대답하기를, 「장에서는 두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임금을 섬기는데 환란을 피하지도 않고, 자기에게 죄가 있다면 형벌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차 와서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임금님의 명령을 받들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 말이 끝나자, 魏絳이 와서, 僕人에게 글월을 건네주고, 칼에 엎드려 자살하려고 하였다. 士魴과 張老가 그를 만류하였다.
公讀其書曰 : 「日君乏使, 使臣斯司馬. 臣聞'師衆以順爲武, 軍事有死無犯爲敬. 君合諸侯, 臣敢不敬? 君師不武, 執事不敬, 罪莫大焉. 臣懼其死, 以及揚干, 無所逃罪. 不能致訓, 至於用鉞, 臣之罪重. 敢有不從以怒君心? 請歸死於司寇.'」
공독기서왈 : 「일군핍사, 사신사사마. 신문'사중이순위무, 군사유사무범위경. 군합제후, 신감불경? 군사불무, 집사불경, 죄막대언. 신구기사, 이급양간, 무소도죄. 불능치훈, 지어용월, 신지죄중. 감유불종이노군심? 청귀사어사구.'」
[解釋] 진후가 그 글월을 읽어 보니 이르기를, 「요즈음에 임금께서는 쓸 만한 신하가 없으시어, 저에게 이 사마라는 벼슬을 주셨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군대는 윗사람의 명령을 쫓는 것을 무라고 하고, 軍事는 죽을지라도 내 직책을 침범당하지 않는 것을 경이라고 합니다. 임금께서는 제후들을 회합시키는데, 감히 불경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의 군대가 불무한데, 그 책임자가 처벌을 하지 않고 불경 한다면, 그보다 큰 죄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직무태만의 죽을죄를 두려워하여, 양간의 어자를 처형한 것은, 그 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군사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여, 도끼를 사용하기에 이른 것은, 저의 중대한 죄입니다. 감히 임금님의 처형을 받지 않는 채 임금님의 마음을 노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의 시체를 사구에게 넘겨주시기 바랍니다.'」고 써 있었다.
公跣而出曰 : 「寡人之言, 親愛也, 吾子之討, 軍禮也. 寡人有弟, 弗能敎訓, 使干大命, 寡人之過也. 子無重寡人之過也. 敢以爲請.」
공선이출왈 : 「과인지언, 친애야, 오자지토, 군례야. 과인유제, 불능교훈, 사간대명, 과인지과야. 자무중과인지과야. 감이위청.」
[解釋] 진후는 맨발로 달려 나가서 위강에게 말하기를, 「내가 한 말은, 아우를 친애했기 때문이고, 그대가 죄가 있는 자를 친 것은, 軍禮를 지킨 것이다. 나는 아우가 있으면서도, 잘 가르치지를 못하여, 군법을 범하게 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 그대는 내가 이중으로 잘못을 적게 하지 말라. 감히 간청하는 바이다.」고 했다.
晉侯以魏絳爲能以刑佐民矣, 反役, 與之禮食, 使佐新軍, 張老爲中軍司馬, 士富爲候奄. 楚司馬公子何忌侵陳, 陳叛故也. 許靈公事楚, 不會于鷄澤. 冬晉知武子帥師伐許.
진후이위강위능이형좌민의, 반역, 여지례식, 사좌신군, 장노위중군사마, 사부위후엄. 초사마공자하기침진, 진반고야. 허령공사초, 불회우계택. 동진지무자솔사벌허.
[解釋] 진후는 위강이 형벌을 잘 이용하여 백성들을 잘 다스린다고 생각하여, 계택의 회합에서 돌아오자, 그에게 예우하는 주연을 베풀어 주고, 신군의 부장에 임명하고, 張老는 중군의 사마가 되고, 士富는 候奄이 되었다. 초나라의 사마 공자 하가 진나라를 친 것은, 진나라가 배반했기 때문이다. 허나라의 영공이 초나라의 일로, 鷄澤의 회합에 불참했다. 그래서 겨울에 진나라의 지무자는 군대를 거느리고 허나라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