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들이 생기니 삶이 전처럼 허무함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다. 주문에 걸린 것처럼 묘하게 가볍게 움직이게 되고, 귀찮은 일들을 척척 해낸다. 식물을 제때 돌보는 단순 한 미션이 나를 자꾸 더 삶에 정 붙이게 만든다.
이제껏 나는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 있 었다.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으려고 방어기제를 쌓아두고 염세적인 태도로 살아왔다. 별다른 다짐 없 이 어영부영 살아지는 안락함을 좋아했다. 기대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는 쪽이 훨씬 편하다. 그런 염세적 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려면 무엇도 쉽게 좋아하지 말 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식물들이 마음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높 게 쌓아둔 방어벽이 무너졌다. 이제 벽 뒤에 숨어 지내 던 시절을 모두 지나왔다. 좋은 것을 더 오래 보고 싶 고, 귀한 것을 더 아끼고 싶다. 심장을 뛰게 하는 것들 에 귀를 기울이고, 슬플 때는 슬픔을 느끼고, 괴로울 때는 주변에 조금 부담이 될 정도로 기대고 싶다.
매일 기다려지는 것들이 있기에 아침에 일어나자마 자 옷을 대충 챙겨 입은 채로 테라스에 나가 식 물들 곁에 한참을 앉아 구경하는 삶이 지금의 나를 충족시 키는 삶이다. 온 세상을 통틀어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내 식물들의 미묘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목격하고 싶 다. 이런 욕심은 결국 삶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강한 욕심이 주는 에너지가 고맙다.
어떤 일이 일어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다 시 천천히 채우면 된다. 흩어진 것들을 모으며 살아가 면 된다. 적당한 날의 아침에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일 상만 놓지 않으면 된다. 바로 앞에 주어진 것들부터 하 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