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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대.
2. 갈망.
3.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이 시간에는 브래넘 형제님이 전한 기대, 갈망,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 는 책자에서 전하신 말씀 중에서
일부 편집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메시지 책자를 공부하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게 되었습니다. 입으로는 말씀대로 산다고 고백했지만 아직도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양식으로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에 있는 것들로 채우지 못한 갈증을 채우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모습에 많이 실망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배만이 우리의 갈증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 올바른 경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함이 전제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어떤 것들을 기뻐하시는 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 주셨는지를 정확하게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그분이 기뻐하는 일로
그분께 올바른 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 경배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고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의 마음의 참된 갈증을 채워주십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살롬~
눅2:25.보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더라. 성령님께서 그 위에 계시더라.
26.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것이 성령님에 의해 그에게 계시되었더라.
27.그가 성령을 힘입어 성전에 들어가니 마침 아이의 양친이 율법의 관례대로 아이에게 행하려고 아이 예수님을 데려오므로
28.이에 시므온이 아이를 팔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주여, 이제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온데
31.그것은 만백성의 얼굴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인들을 밝히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매
33.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관하여 말한 그것들로 인해 놀라워하더라.
우리는 항상 기대하는 것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대하면 보통 기대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마음가짐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고 절대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올바른 영적인 태도는 그 기대를 실현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올바른 영적인 태도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모두, 즉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명예로운 사람이었고, 제사장이었으며,
우리가 듣기로는 80세 후반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이자 교사로서 그의 이름에 많은 명성이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요. 그러나 성령께서
그에게 먼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성령에 의해 계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의 명성이 무엇이든, 그의 직책이 무엇이든, 성령께서 그에게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리스도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에덴 동산에서 태초의 시간의 시작에서 부터 전해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4천 년이 지났고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그분이 지상에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유대인의 피의 흐름은, 제 생각에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메시아가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그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면 그것은 확실한 진리입니다.
당신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이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을 믿으며 죽기 전에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을 하시면 그분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그분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실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 맞습니다. 그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에는,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라디오나 언론이 없었습니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메시지를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8일 후 마리아는 율법의 관습에 따라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려와서 산비둘기나 가난하면
집비둘기 등을 제물로 바치고 자신을 정결케 하는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목하세요. 제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시므온은 아마도 기도실이나 성전 밖 어딘가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날 아침에는 50명의 아이들이 할례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을 모셔오자마자 성령께서 바깥 어딘가에서 시므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곧 바로 그리스도 아이에게로 인도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시므온은 예수님을 품에 안고 "주님, 주님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주의 종을 평안히 보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그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그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이 왔을 때
성령께서 그 약속을 가진 시므온을 바로 그 약속으로 인도하셨다면 말이죠. 그분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셨나요?
그리고 그분이 마지막 날에 이런 것들을 보내겠다고 약속 하셨다면 오늘 날에도 똑같은 성령이 아니겠습니까?
그분께서 마지막 날에 이것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6장에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라고 약속하셨습니까? 거기가 뉴욕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늦은 비 성령 아래에서 수년 동안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의 관계를 끊으시기 직전에 아홉 가지 영적 은사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시대가 끝나기 직전에 그분은 1906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의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오순절 부흥으로 한국은 1907년 평양 오순절 부흥으로 그 아홉 가지 영적 은사를 교회에 다시 회복시켜 이방인 교회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부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 이 은사들은 약속되어 있고 여러분은 마음속에 소망을 갖고 이곳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수님이 시므온에게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오늘 날 성령께서 여러분을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 같지
않습니까?
동일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여러분은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오늘 좋은 것들을 여러분에게
주시리라는 기대와 갈망을 가지고 오셨고, 그것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을 채워주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속에 소망이 생기기 전에 그 소망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물고기의 등에 지느러미가 있기 전에는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 물이 먼저
있어야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지느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땅에서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땅이 있어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성한 치유로 치유 받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면 어딘가에 치유의 샘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소망이 마음속에 없을 것입니다.
오랜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아파치족과 인디언들조차도 예배의 창조 자체가 그들의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물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창조주로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딘가에 숭배할 창조주, 즉 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신을 경배하는 것은 그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대상인 신이 있다는 사실을 대변해줍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더 많은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갈망이 있는 한,
그 어딘가에는 여러분의 기대와 갈망을 만족스럽게 채워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십니다.
자 그것은 미신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있을 때,
그 갈망을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깊은 것이 깊은 것을 부를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부름이 있으면 어딘가에 응답할 깊은 곳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렀다면, 자연적인 몸의 치유나 영적인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다면,
어딘가에 치유의 샘과 하나님의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반드시 응답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전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부르면 강 너머에 땅이 있다고 말하는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무언가 깊은 것을 부르는 소리. 더 큰 곳, 더 좋은 땅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저는 그곳에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 굴에서 구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 청년들은 풀무 불에 들어가면서 "우리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구원해 주실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이 오시기 전에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주님은 항상 마지막 끝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 오셨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혈루병 여인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분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끝난 것입니다.
그녀가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녀의 기대는 성취되었습니다.
주목하세요. 눈먼 바디매오, 그는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갈 수만 있다면, 즉 주님의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자신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내려놓게 하려고 했지만,
그는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더 크게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그분이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다가오더니 "브래넘 형제님" "저는 당신이 집회하는 걸 계속 따라다녔어요.""여기 형제가 있어요.
심장이 횡경막을 뚫고 나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금밖에 더 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물건을 팔아서 따라 왔습니다. 그리고 줄을 서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카드가 있지만 한번도 부르지 않았어요."
그리고 "우리 돈은 거의 다 떨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밤새 기도했어요. 아침에 호텔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잠이 들었어요.
9시에 밀러 식당으로 와야 한다는
꿈을 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9시 였습니다.
당신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습니까? 그것이 바로 시므온을 이끄신 성령입니다. 이것은 지금 삶 안에 있습니다.
"당신의 형제를 이리로 데려오세요."고 말했습니다. 네, 주님께서 순식간에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기분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가서 다시 밥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무언가가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는 밖으로 나갔고 아내와 그들이 저를 따랐습니다.
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작은 여자였어요. 그녀는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어나세요, 자매님"이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녀는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시카고 출신이었어요.
"유방에 암이 생겼어요."라고 말했죠. 그녀는 말했죠 "당신을 만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어요."
"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죠. 그리고는 "오늘 아침에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집에 돌아가야 해서 울고 있었어요.
주님의 영이 '9시 10분에 밀러 식당 앞에 서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의 천사는 그보다 4~5일 전에 저에게 나타나서 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는... 또는 은사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켄터키 주 파두카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어요." 그는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봤어요. 그리고 그분이 내려와서 제퍼슨빌이라는 도시로 가서 브래넘이라는 이름의 사람을 찾아서 기도해 달라고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브래넘이라는 이름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보십시오. 같은 시기에 안나라는 이름의 늙은 눈먼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보세요.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를 안고 주님께로 갔을 때...
오늘 날에도 그 동일한 성령이 이곳에 오실 거라고 믿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보세요. 군중들 사이로 늙은 눈먼 여인 안나가 군중들 사이를 헤치고 나왔습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계신 곳으로 곧장 가서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 사이로 그녀를 아기 예수께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길이 없는 물속으로 물고기를 인도하시고, 길이 없는 공중으로 새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허락만 하신다면 여러분을 진리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여기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여러분의 기대와 갈망을 채워주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여기 있다고 믿습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갈망했으며, 그리스도를 보기를 열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에게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하지 않고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무척 사모하고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다윗이 "심연이 심연을 부를 때에" 라고 말했던 것처럼, 여기에 있는 여러분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병을 치료하시는 것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이 병을 치료하신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심연이 심연을 부릅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 여기에서 심연이 부르고 있다면 그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깊은 바다가 있어야만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이 말하는 것을 더 명백하게 말한다면 바로 내가 자연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숲속에 들어가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고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습니다.
내 어머니는 반 인디언입니다.
그래서 내 피 속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 그래서 내가 들짐승의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
그 무엇인가가 내 영혼을 흥분시킵니다.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깊은 바다가 부르면 거기에는 응답할 깊은 바다가 있습니다. 지구상에 자라날 나무가 있기 전에 먼저 자라날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위해서 나무를 만드시지 않았고 나무를 위해서 땅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시고 나무들이 나오도록 땅에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땅은 나무들을 나오도록 불렀습니다.
물고기의 등에 지느러미가 있기 전에는 수영할 수 있는 물이 없었습니다.
물고기가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그것을 이용하여 헤엄칠 수 있는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어떤 이유와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자, 심연이 심연을 부를 때, 깊은 바다가 부르기 전에,
그 부름에 대답할 수 있는 한 깊은 바다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은 몇 년 전엔, 죄인이었을 것이며, 어쩌면 성령의 침례를 믿지 않는 형식적인 교회에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듣고 그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더 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성령의 침례를 원하고, 갈망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에 갈급했기 때문에 성령이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여기에 불러낼 성령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여러분이 이곳에 온 바로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병 고치는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에서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이신 여러분이 하나님의 치료를 믿는다면 어딘가에 열려진 샘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그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치료해 주실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깊은 바다는 서로 응답하니까요.
그것은 시므온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는 구세주가 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께서 그가 죽기 전에 주를 다시 볼 것이다 ; 라고 그에게 약속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오! 그 말씀을 가진 사자가 한 늙은 여자였을 때" 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여자는 소경이었고, 이름은 안나라고 들었습니다.
그 여자는 선지자였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안나에게로 갔습니다.
그 늙은 소경 선지자는 아침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장님이었지만, 건물들과 많은 사람들 가운데를 지나서
그녀는 성령이 인도하신 분수대(생수) 바로 앞에 와서 멈추었습니다. 나는 그 늙은 여자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여전히 오늘도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일어나셨으며, 그분은 여러분에게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여러분이 모이도록 이끌었습니다. 만약 성령이 여러분을 여기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며, 여러분은 세상 속 어디엔가 있겠지요. 우리는 오늘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이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면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오셔서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편42편을 보겠습니다.
1.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같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
2.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오니 내가 언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서겠나이까?
3.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하는 말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눈물이 밤낮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
다윗은, 이 시편 말씀에서 볼 때, 아주 곤경에 처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대개 곤경을 겪게 될 때 가장 최선의 것이 나오게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가 금식하며, 가로막고 있는 우리 자신을 옆으로 치워놓고 있을 때에 오십니다. 저는, 다윗이 그런 처지에
처해 있었을 때, 주님을 묵상하기 시작하고, 그런 것들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가 위를 올려다 볼 필요가 있는 곤란한 구석으로 몰아세우십니다.
때로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딘가 침대에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들이 오는 곳을 보도록 위를 올려다볼 수 있게 하려고.
“갈망(thirst,갈증)” 저는 이 말씀을 찾아보려고 사전을 뒤적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말, “갈망,”이라는 말을 보고 생각하다가, 그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보려고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웹스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고통스러운 소망이다,” 여러분이 너무나도 간절히 원한 나머지 그게 고통스럽기까지 할 때, 고통스러운 소망. 자, 갈급해 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갈증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뭔가를 원하도록 주신 겁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관제탑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내면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소원들을 조종하는 관제탑입니다. 그런데 이 갈증은, 인간의 마음 안에 세워진 이 관제탑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필요한 소원들에 대해서 그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자 갈증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느끼는 갈증이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느끼는 갈증도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 다윗이 한 말을 다시 읽고 싶습니다. 내 혼은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오니...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어떤 역사적인 일이나 어떤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말했던 어떤 이야기가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혼은 그런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어떤 역사적인 존재를 갈망한 게 아닙니다.
자, 여러분 안에 있는 그 관제탑은 여러분을 인도합니다.
몸 안에 있는 관제탑은 여러분의 몸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말해줍니다.
또 혼 안에 있는 관제탑은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말해줍니다.
두 관제탑으로부터 갈증이 나오고 그 필요가 채워집니다.
여러분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어떤 삶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는지 가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원들이 뭔지를 볼 수 있을 때,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여러분이 가진 이 소원을 창조하고 있는 것을. 아시겠죠, 여러분이 갈망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의 혼 안에서 이 소원이 뭔지를 말해 줍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갈증의 성질로 봐서. 저는 여러분이 그것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혼의 관제탑이 하나 있고, 몸에도 관제탑이 하나 있는데, 그 관제탑들은 제각기 혼과 몸이 필요한 것들이 뭔지
경고하는 장치입니다. 그 관제탑은 경고장치가 요구하는 필요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경고파를 내보냅니다.
예를 들어서, 육신의 갈증은 몸 안에 있는 소원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영은 혼 안에 있는 것들을 소원합니다,
소원하는 것이, 많은 경우에 이것들은 서로서로 싸웁니다. 우리는 거기서 오늘날의 큰 문제점을 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두 가지 소원들 사이에서 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땅의 것들을 소원하고, 다른 것은 하늘의 것들을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7:21에서 기술하듯이,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 악이 가까이 있도다.” 여러분이 해보려고 할 때, 그리스도인들이여, 여러분도 그런 체험을 해 보셨죠? 여러분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행하려고 하고, 어떤 선한
일을 해보려고 노력을 기울일 때, 그러면 그때 사방에서 마귀가 여러분을 괴롭히려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이... 그건 한 가지 좋은 점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싶군요,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한 가지.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기 시작할 때, 항상 여러분이 그 일을 못하게 방해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래도 그 일을 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옳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마귀입니다.
자, 많은 경우에, 저는 좀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모든 일이 그 일을 저지하는 것을 보게 되면, “주님이 뜻이 아니었나 봐요.”하고 말합니다. 아시겠죠?
마귀가 여러분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첫째로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를 원하신다면, 성경을 들여다보십시오.
여러분을 바르게 세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예를 들어서, 성령 침례를 찾고 있다면. 많은 경우에,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저는 성령을 찾아 왔는데, 아직도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건 저를 위한 건 아닌가 봅니다. 제가 결심을 할 때마다, 저는 몸이 아프게 됩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금식하면, 저는 아프게 됩니다. 철야를 하려고 하면, 제가 밤을 새우려고 하는데,
졸음이 너무나 쏟아집니다. 저는 아무리 시도를 해도 안됩니다.”하고 말합니다. 명심하십시오, 그건 마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성령을 받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건 누구나 원하는 자에게 다 주시는 겁니다.
많은 경우 여러분이 어떤 집회에서 하나님의 병고치심을 바라고 기도할 때 보면, 다음 날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은 분명히, 그 전날보다 더욱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겁니다. 아시겠죠?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건 마귀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준비해두신 축복으로부터 여러분을
떼어놓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 작자의 말을 절대로 듣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항상 전진해 나가시기만 하십시오.
아시다시피, 바울이,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 악이 가까이 있도다.”라고 말했을 때. 이제 그 갈증을 봅시다,
실제로 갈증은 자연스러운 일인지 봅시다. 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 저는 한번도 그런 갈증을 느끼지 않았어요. 그건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오, 아닙니다. 그건 틀립니다. 그건 실제로 모든 인간과 연관된 일입니다. 그건 정말로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초기에 이 나라에 왔을 때, 우리는 여기에서 인디언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그 당시에 이교도였을지라도, 그들은 태양이나 뭐 다른 것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인간인 이상,
그들 안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갈증입니다, 어딘가에 있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겁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갈망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들은, “어, 저는 어떤 분들이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을 봤습니다,
항상 지붕 위에 올라가 있고,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그 갈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건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갈망하는 것이. 이제 자연스러운 일들 몇 가지를 알아봅시다.
갈증이 먼저입니다. 예를 들어, 물을 향한 갈증을 봅시다.
다윗이 여기서 말한 것처럼, “물을” 향해 갈망하는 것. 물을 향한 갈망, 몸은 물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갈증을 채워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탈수현상이 될 것이고,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음식은 없이도 살지만 물이 없이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사십 일은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음식을 먹지 않고서, 하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그렇게 오래 금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야말로 말라죽을 겁니다. 여러분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있는 그 갈증은,
어, 그건 몸이 지속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몸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섭취해야만 합니다.
제가 말씀 드렸듯이, 여러분이 그것을 무시한다면 여러분은 얼마 살지 못합니다.
갈증은 또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 갈증은, 자명종 시계입니다. 혼은 자명종 시계를 켜놓고 있고,
여러분 안에 조그마한 종이 있어 사망이 가까이에 숨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이 곧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죽을 겁니다.
그것은 점점 소리를 크게 내어, 여러분이 마지막까지 계속 그것을 미루게 되면, 여러분은 죽을 겁니다,
그것은 자명종 시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기술한대로,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다윗은, “수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망하듯이 아니면 헐떡이듯이 (갈증으로),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하나님을 갈망하나이다. 주님, 제가 주님을 찾을 수 없다면, 저는 멸망할 겁니다.
주님을 찾지 못하면 저는 갈 수가 없습니다!”고 말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소년이나 소녀나, 하나님을 그 정도로 갈망한다면, 그는 뭔가를 찾게 될 겁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하여, 건성으로, “어, 기도해 보고 주님이 어떻게 하시나 보자.”고 말합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아직 갈망하는 건 아닙니다. 사망과 생명 사이의 갈망이 되어야 하고, 그러면 뭔가 일이 일어납니다.
사슴은, 또한 여기서 사슴은... 우리는 사슴이 또한 다른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후각이라고 하는, 사슴에게 원수가 가까이 있다는 경보를 해 주는 겁니다. 이 조그마한 피조물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감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슴 안에는 조그마한 경보장치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뭔가가, 원수가 가까이 있을 때 코를 간질이는 게. 원수의 기미를 느낄 수 있고, 사슴은 여러분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사슴은 도망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과 사슴을 비교하면, 원수가 오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영 안으로 태어나,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원수를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에다 성경에 어긋나는 뭔가를 주입시키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을 재빨리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어떤 조그마한 일을 감지하면, 여러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 말씀과 꼭 일치되는 것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성령 안에 있는 한은 그 감각으로 보장을 받고 있게 됩니다.
마가복음16장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며; 그들이
새 방언들로 말하고; 뱀들을 집거나, 독을 마실지라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며; 병자들에게 손을 얹은즉,
그들이 회복하리라.”
그런데 누군가, “자, 그건 사도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이에요.”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합시다. 그러면, 금세, 여러분이 성령을 받은 분이라면, 여러분은 그 감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 말을 밀쳐버립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다른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오늘날에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 안에는 조그마한 경종이, 그건 잘못되었고 사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조그마한 뭔가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이 책에서 한 마디를 더하거나, 한 말씀을 없애면, 우리의 부분도 생명책에서 제하여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구절 한 구절이라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쓰여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수행하려고, 자신의 말씀을 감찰하고 계시고, 우리는 성경이 옳아야 한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교회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여러분은 성경의 일부가 됩니다. 하나님은 에스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죠. 하나님은, “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먹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선지자와 그 두루마리는 서로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믿는 자가 성령을 받을 때 그렇게 됩니다; 성령은 성경을 썼고,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말들이 영이라.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라.”
히브리서13:8절,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분이 그 말씀의 일부가 되면,
그 말씀에 반대되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조그마한 경종이 금세 울리게 됩니다.
아시겠죠, 그건 사망이 길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경고할 겁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러한 갈증들은 자연스러운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 성공을 바라는 갈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갈망을 위해 얼마나 교육을 많이 시키는지! 우리는 봤습니다, 그들은 대학교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대학교에 보내려고 많은 돈을 지불합니다,
종합 대학, 단과 대학들, 등등, 교육을 받기 위해서죠,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는 그걸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여러분은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들을 다 받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지식으로는 하나님이 바라는 올바른 성공은 찾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임시적인 것으로 이 땅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편하게 살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여러분이 죽을때는, 여러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로 얻은 모든 경제적인 것들도 구원에는 전혀 도움이 않됩니다.
“이 모든 현대 문명과, 모든 교육 프로그램들, 모든 과학 프로그램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상반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 새 세상에는 이런 문명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왜곡된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그분의 첫 번째 문명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피조물들이 각 씨의 종류대로 완성되었을 때, 그 문명 안에서는 죽음도 질병도 슬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학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과학은 이 땅에 세상을 묶어놓고,
그것을 왜곡하여 어떤 것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사망을 가져옵니다.
아시다시피, 과학, 교육, 문명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인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건 뱀의 유혹으로 이브가 지식을 받아 들인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사랑에 대한 갈망입니다.
그들의 나이에는, 그들은 서로 사랑합니다. 그건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그들이 사랑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 우리는, 이 자연적인 몸 안에서 살고 있는 삶에서 많은 것들을 갈망하면서 살아갑니다.
뭔가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것을 하기를 원하고 있고, 정말로 그게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을 해야합니다.
요즘에 보면 많은 여성들이, 미를 갈망합니다. 여자가 예쁘게 되고자 갈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건 하나님이 주신 본성이고, 하나님께서 그녀의 배우자를 위하여 그녀에게 주신 아름다움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성들이 그렇게 되고자 함을 알았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건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성이 예뻐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뻐야만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유일하게 남자보다 여자가 아름다운 피조물입니다, 인간만 그렇습니다. 다른 모든 동물은,
암소보다 수소가, 암사슴보다 수사슴이, 암탉보다 수탉이, 어미 새보다 아빠 새가, 항상 수컷이 크고 예쁩니다.
하지만 인간은, 거기서 왜곡이 보입니다, 정반대가 되었죠;
여성이 예쁘고, 그래서 그들은 예뻐지려고 무모하게 바라는 겁니다.
여자가 가져야할 진정한 갈망은, “아담한 옷차림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그리스도 닮은 영을 갖는 것” 입니다,
디모데전서2:9~10절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 해야합니다.
그것이 “미”에 대한 기준이 되어야합니다..
만일 여자분이 그런 갈망을 갖고, 미용실이 아닌, 하나님 앞으로 온다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갖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닮은 온유한 영과 아담한 옷으로
단장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미는 나이가 들어도 시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모든 것을 만드셨을 때, 그것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들어와서 왜곡시켰습니다.
사탄은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는 단 한 분이 계시며,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사탄은 원 창조물을 왜곡시킵니다. 이제 사탄이 들어와서 (오늘 말하고 싶은 이것) 갈망의 원 창조를 왜곡시켰습니다.
네. 그건 진정한 갈망을 왜곡시키는 왜곡입니다.
자, 여자 안에서 뭔가가 있어서, 여자는 예뻐지고, 여성스럽고 그렇게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늘날 거리에서 하고 다니는 걸 보면, 남자처럼 머리를 자르고, 남자 옷들을 입고;
그런데 남자는 반대로 여자들의 옷을 입고 여자처럼 머리를 하고 다닙니다. 아시겠죠,
그건 왜곡입니다, 전부가 다!
여러분의 음식도 왜곡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왜곡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갈망도, 왜곡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도 왜곡된 겁니다. 지금은 왜곡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육천 년에 걸쳐서 완전한 에덴을 만드셨습니다.
사탄이 와서는 씨를 뿌리고는 그것들을 망가뜨렸습니다.
자, 사탄도 육천 년에 걸쳐서 자신의 지적인, 과학적인 에덴을 만들었습니다,
옳은 것을 완전히 왜곡시켜 놓았습니다.
지금은 교배의 시대입니다, 이종교배. 오늘날 교회들도 교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기로 와서, 교회에 나가는데, 교회가 아니라 집회소입니다.
교회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집회소입니다. 우리는 가서 잠시 악수를 나누고, 교제를 하고, 건물 뒤에서 블랙커피를
좀 마시고, 다음 주까지 집에 가 있다가,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종교적인 의무를 다한 겁니다.
이제 왜곡된 시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갈망하도록 여러분 안에 넣어두신 이런 갈망들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사탄은 아주 교묘하게 예수님을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갖고 미혹한 것처럼 이제 그의 자녀들을 세상에 있는 온갖 것들을 총 동원해서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미혹과 왜곡의 시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을 왜곡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왜곡된 성품을 주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몸과 혼의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갈망을, 죄를 향한 정욕으로 왜곡시키는 겁니다. 죄입니다, 왜곡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날 사람을 보면, 그들이 그 왜곡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 예뻐지고자 하는 갈망, 이런 모든 갈망들을. 왜곡 시켜 놓은 것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았는데, 이제는 그것이 우리의 집안까지 들어와 24시간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광고에 등장하는 여자 모델들이 “미”의 기준이 되었고, 돈만 내면 그들처럼 성형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모델들이 난잡한 옷을 입고 있는데도, 어린 자녀들이 그것을 보도록 방치하므로 그들도 왜곡된
“ 미"에 노출되는 악 순환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 물 대신에 술을 만들어 기쁨을 위한 갈망을 채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만드셨는데, 사탄은 그것을 다른 종류의 갈망으로 만족시키려 합니다.
바른 갈망을 약간 왜곡시킨 갈망으로. 자연적인 면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겠습니까?
영적으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길 원하십니다!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이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시냇물을 갈망하고 있는 사슴에게, 누군가가 와서, 친구 사슴이 따라와서는, “이봐, 내가 할 일을 말해 주지.
저 아래에 진흙탕이 있는 곳을 알아.”하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음, 그 사슴은 그걸 원치 않을 겁니다.
그는, 그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상 교회까지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 안에 있는 그 갈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인간은 그것을 가져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도 그 거룩한 갈증을 세상적인 것들을 가지고 잠재우거나 만족시키려고 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건 경건치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한다면, 설교자와 악수하고 이름을 교적부에 적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한다면,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은 딱 한 가지 뿐인데, 그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은 이 땅이 아닌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완전한 선물" (야고보서1:17)
여러분이 지금 하고자 하는 일들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큰 위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한다면,
여러분 꼭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아시겠죠, 여러분의 갈증이 꼭 만족되게 하십시오.
사탄이 여러분을 자연적인 관제탑으로부터 왜곡시킬 수가 있다면, 그는 단지 여러분으로 하여금 만족되게
여러분이 스스로 노력하게 만들 것입니다.
남녀가 왜 술에 취하죠? 그는 걱정이 많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안에 뭔가 부족한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갈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인간의 갈증이 만족함을 얻습니다.
사탄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왜곡시켜 왔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4차원도 사탄의 영역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깊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갈증을 올바른 자리에 두지 않고, 그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갈증을 멈추도록 예비하신 것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탄은 이 세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온갖 종류의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고, 만족을 채워줄 것 같은, 지혜롭기까지 한 것들로 여러분들을 속이고 유혹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고여 썩어 있는 웅덩이 물로 온갖 더러운 것들이 살고 있는 썩어 있는
물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아름답고, 먹음직하고, 갈증을 채워줄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영적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 안에서 영적 갈증을 채우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세상 어딘가에서 그것을 채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음식을 찾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먹을 겁니다. 아시겠죠?
만일 여러분이 물을 찾지 못하면, 여러분은 죽어갈 무렵에,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웅덩이에서라도 물을 마실 것입니다, 안마시면 죽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을 때는, 그것엔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역사적인 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 오셔서 지금도 인간들의 갈망을 채워주시고 계십니다. “내 혼이 주를,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생명수를 주는 것, 만족시켜 주는 분이십니다.
진짜 자연스러운 갈망이 있듯이, 우리 내면에 있는 혼의 갈망도 있습니다.
혼이 갈망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런 식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실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갈망하도록, 심판정에서는 이런 변명이 나올 겁니다,
“저-저-저는 하나님을 갈망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 핑계 댈 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갈망하니까요.
여러분은 그 갈망을 다른 것으로 대체했을 뿐입니다. 그 갈망을 여러분의 아내나, 또는 남편으로, 또는 돈으로,
또는 명성으로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뭔가로 채웠습니다, 교회에 나가 그 갈망을 만족시키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만족이 될 수는 없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을 찾아, 여러분의 혼 안에 모셔야, 여러분이 갈망하는 그 갈망과
갈증을 채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만드셔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자, 진정한 교제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만나기를 좋아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 교제 나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서 함께 만난 겁니다. 왜 우리가 교제를 좋아하죠?
우리 안에 서로 만나기를 원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공동 지역에서 만납니다, 즉,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오늘날 교회 안에는, 교제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과 교파가 가지는 교리적인 부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채워져야 하는 하나님을 향한 그 갈망으로 인해 우리는 이 부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점, 어떤 분들은 물 뿌림 세례를 믿고, 어떤 사람은 침례를 믿고, 어떤 사람은 물을 붓는 것이나 그런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갈망하는 면에서는, 우리는-서로 통하는 지역에서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분과 그분의 교제를 갈망하도록 그분을 올바르게 경배함으로 갈증을 채울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그 목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 마음의 이 만족함을, 그 혼의 갈망을 왜곡시켜 보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마귀는 세상 체제와 질서를 가지고 교제를 만족시키려고, 온갖 다른 것들을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성한 교제의 본질을 왜곡 시키려 합니다. 그런데 이 왜곡의 시대에 사탄은 너무나도 우리를 미혹합니다.
이 세상은 왜곡된 세상입니다. 왜곡된 문화입니다. 왜곡된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왜곡되었고, 인간이 살았던 시대 중 가장 미혹하는 시대가 될 정도로 점차로 왜곡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혹하는 시대입니다.
자, 여러분은 이 성경의 페이지를 통해서 죄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죄를 멈추게 합니다.
그건 성령의 필터로 걸러냅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에 가서, 아무 거나 받아들이지만,
여러분은 이 성경을 통과해서 죄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모든 죄를 필터로 걸러내고, 거룩한 사람의 입맛을 줍니다.
인간은 자기가 거룩하길 원하고,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면, 그는 올바른 필터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이 쪽에서 모든 죄를 멈추게 하고,
성경을 통해서 성령만을 나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을 쓴 성령. 그것은 거룩한 사람의 입맛입니다,
이 생각 있는 사람의 필터를 가지면…이제 우리는 오늘날 얼마나 속이는 시대인지 알았습니다.
마태복음24:24절에서, 예수께서는, “마지막 날들에는, 두 영들이 너무나도 유사하여 가능하다면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유사한지! 오늘날 얼마나 옳고 그름을 속이는 시대인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오, 있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저는 지금 교회에 등록했어요.” 여러분은 그걸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넣어두신 그 큰 거룩한 갈증을
만족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올바른 것에로 돌이키려는 그 관제탑,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교회에 등록하는 것이나,
신조를 암송하는 것이나 그런 것으로 만족하려 애씁니다. 그 갈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자체와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채우심밖에는 없는데 말입니다. 그 갈증은 신조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 성경을 통해서는 신조를 끌어내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 신경(신조)조차도 거기에는 절대로 통과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사도 신경에 말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십시오, “나는 거룩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믿으며;
성인(saints)들의 교통(communion)을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한 분이시니,
그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서는 그것들을 끌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 이런 현대적인 문명의 경향을 뽑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반대합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데, 그 갈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성령 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죠,
이 성경 말씀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 남자나 여자의 입맛을 만족시킨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성령은, 비웃는 것인데, “당신이 그것을 믿다니 당신은 정신이 나갔군요.”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그 갈망을, 세상은 전혀 모르는 어떤 것을 만족시켜줍니다. 그들은 자신을 왜곡시켰습니다,
성령의 진정한 침례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뭘로?)
시궁창으로, 교회라는 시궁창으로, 독단들과 신조들과 교파적인 차이라는 시궁창으로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하고 묻습니다.
“나는 감리교인입니다. 나는 침례교인입니다. 난 장로교인입니다.” 그건 하나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혀. 하나님은 여기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통해서는 그것들을 뽑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주신 그 거룩한 갈증을 만족시키려고
애씁니다.
여러분 다윗은 여기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라고 말한 걸 아시죠. 자,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느니라.”
이 말씀, 곧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살아나시기 전까지는 어떤 만족감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하신 약속들을 친히 성취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어떤 교회에서는 저런 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교회에서는 이런 저런 식으로 해석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일부만 취하고; 어떤 교회에서는 여기와 저기, 성경의 한 부분만을 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직접 해석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을 하시고 성취하시면, 그게 그 말씀의 해석입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 분, 그리스도 그분을! 비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은 계시 위였습니다. 우리가 동일한 교회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성경은, “아벨은 믿음으로!”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신성한 계시입니다. 아시겠죠, 믿음은 신성한 계시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계시 위에 세워졌고, 이것이 여러분에게 계시되지 않으면! 예수께서는, “아버지, 이 세상의 슬기로운 자들로부터 이런 것을 감추시고, 배우려고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계시해 주심을 감사합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자, 모든 것은 계시 위에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은 그 분을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감으로 그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인격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오늘날의 그분의 해석이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하신 약속들을 만나야만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점도 없고 주름도 없는 교회” 입니다, 교파가 아닙니다;
사람들, 점이나 주름 없는 개개인들입니다. 누가복음17:34~36절에서 “두 사람이 침상에 있는데, 내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두며; 두 사람이 들에 있을 때, 내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두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수리가 탈취 물을 강하게 움켜잡고 공중으로 채어 올라가듯 한사람은 말씀의 계시가운데로 데려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그 거룩한 갈증,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말씀을 입증하시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종임을 입증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여러분은 발끝을 세우고 그걸 뒤 따릅니다,
그분이 보여 주신 발자취를 따라 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있는 그 거룩한 갈망을 만족시키는 올바른 과정을 밟게 되는 겁니다.
오, 물론, 사람들은 여러분을 비웃을 겁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당신은 정신이 나갔군요. 당신은 미쳤어요.”하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물을 마시는지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있는 곳을 보십시오.
여러분 커다란 옹달샘이 맛좋은 물을 계속 쏟아 내는데, 어떤 사람이 저 아래에 있는 구덩이에서, 죽은 올챙이,
신조들, 별별 것이 다 들어 있는 물에서 마시면서, 위를 올려다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는 것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오! 그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이 어떤 갈증을 해소시키는 시내 옆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 천년 전에 죽어서 무덤에 있는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분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3:8절을 보면,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오순절 날 임하셨던 성령은 지금 여기에 계신 성령과 동일한 분입니다. 그는 말씀이시기 때문에,
만족시키는 분깃이십니다. 맞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기록하셨고, 성령은 말씀을 해석하십니다.
성경은, 베드로후서에서, 성령이 성경을 썼으며, “옛 사람이, 성령에 감동하여 성경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자, 여러분은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의 인격체로, 여러분 안에서 사시지
않고는 그 거룩한 갈망을 다른 어떤 것으로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교육, 문화, 교회들에 등록하고, 신조들을
암송하고, 무리 안에 속하는 것으로; 이런 모든 것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것들은 절대 그 거룩한 갈망을 멈출 수 없고, 그 거룩한 갈망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들의 갈증을, “나는 아무개 박사요,” 하고 말하거나,
어느 신학교나 어떤 학교 출신이라고 말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전혀. 하지만, 아시죠, 그들은, 그들은 자신들을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분의 담임목사이니까 날 인정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무개 사제니까,
아니면 아무개 주교니까 인정하실 겁니다,” 그렇게. 그들은 거기에 자신들의 갈증을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할 수 없는데. “나는 철학박사, 법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문학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어요. 이것도 있고.” 그건 좋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더욱 더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맞습니다. 항상, 그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져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체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압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여러분 안에다 교육시킬 수 없습니다.
그건 여러분 안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교육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인 베드로 성도는 자기 이름도
쓸 줄 몰랐습니다. 맞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성경은, “그들이 둘 다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에게 왕국의 열쇠들을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하나님을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을, 교제를 갈망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그 큰 갈증을 가지고 있었고, 이사야는 아마도 학교엘 다녔을 겁니다.
그는 아마 교육을 잘 받았을 겁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는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들었을 겁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자로 양육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죠, 그는 전에는 한 번도 그것과 대면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옳게 행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옳게 되기를 원했고, 교육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의 신학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날 성전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그 그룹들이 날개를 흔드는 것을 봤고, 이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천사들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천사들은 죄가 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서서, 그들은 그들의 거룩한 얼굴을 덮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서기 위해서. 그 때 그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게 화로다! 나는 불결한 입술을 가진 사람임이라. 나의 모든 신학, 내가 배웠던 신학과 그런 것들,
내가 하나님에 대해 품었던 나의 모든 훌륭한 개념, 제가 지금 그것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길, “나는 불결한 입술을 가진 사람이며, 불결한 입술을 가진 백성과 함께 거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모든 율법의 가르침, 그들이 행한 모든 일들은, 절대 이사야를 하나님의 존전으로 이끌어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옷자락이, 하늘들에서 하나님의 높으신 보좌에 앉아 계시는 걸
보도록. 그러자 이사야는 외쳤습니다, “나는 불결한 입술을 가진 자요, 나는 불결한 사람들 가운데 거하는 도다.” 라고...그 그룹들은 집게로 제단에서 핀 숯을 집어 그 불결한 입술에 댔습니다. 그리고 겁쟁이인 그를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사람에서, 선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선지자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있을 때, 그것은 전혀 다른 체험이었습니다. 그가 가졌던 그 갈망은, 그가 그것으로 충만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교회에 등록해도, 이름을 아무리 많이 등록시키고,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어떻게 물을
뿌려 세례를 받든지, 물에 들어가 침례를 받았든지, 여러분이 어떤 분이든지 간에;
여러분이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 만남만이 진정으로 만족시킬 유일한 것입니다.
감정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펄쩍펄쩍 뛰고, 실컷 소리를 지르고, 마루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실컷 방언으로 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것들은 거룩하고 좋은 일입니다.
저는 그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만족시키는 분깃이신 그 분을 만나기 전에는, 여러분의 몸 구석구석을 채워주시는 분을;
감정이 아니라, 만족감으로입니다!
인간의 혼에 들어 있는 모든 구석구석과 갈망을 만족시켜주는 진정한 성령의 침례가 있는데,
우리는 왜 대용물을 갖고 싶어할까요? 죽음을 코앞에 두고 서서, 위대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침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우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지어다!” 형제님, 그것이 여러분 안에 있는 그 거룩한 갈망을 만족시켜주는 체험입니다. 그것이 갈증을 만족시킵니다. 여러분은 그 일에 대해서 다른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그것은 입술을 정결케 해 줍니다.
여러분이 사람들과 천사들의 방언으로 말할지도 모르고, 여러분이 가난한 자들을 먹이기 위해 온갖 선행을
할지도 모르고, 예언을 할지도 모르고, 지식을 가지고, 모든 신비와 이런 모든 것들을 이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여전히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 그 갈망을 해소할 수 있는 그 만족스러운 뭔가가 있기 전에는 말입니다.
“내 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처럼. 내가 그것을 찾지 못하면,
저는 멸망할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그 정도까지 배고파한다면, 무슨 일인가 반드시 일어날 겁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그 큰 샘들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영 안에서 경배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진리가 없이 영만 가지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은, “우리가 영과 진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진리입니다.
그건 정말 맞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계시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혈육이 이것을 네게 계시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것을 너에게 계시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지식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책들을 통해 배운 게 아닙니다. 교회에 가입함으로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소리를 질러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을 여러분에게 데려오셨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그 거룩한 갈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 안에서 만족감을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찾고자 원하는 그것, 그것으로 그 갈망을 만족시키는 겁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은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셨습니다. 아시겠죠,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올 겁니다,
하나님께서 미리아심으로 선택하신 자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은 다 오리라, 그들은 그것을 이해할 것이라.”
지식. 아시죠, 사탄의 복음은 지식입니다. 그걸 아셨습니까? 그는 에덴 동산에서 이브에게 그것을 설교했고, 이브는 사탄의 지식 복음으로 속아넘어갔습니다. 지금은, 그것으로, 온 인류가 오염되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교육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교회 안에다 두었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은 거기 밖에서는 괜찮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아닙니다. 안 됩니다. 여러분은 교육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바울은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그리스도께 와서, 성령을 받고, 고린도인들에게 갔을 때, 바울은, “내가 인간의 지혜의 말들을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간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나는 성령의 능력과 표명으로 너희에게 갔으니, 너희의 믿음이 어느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게 하려함이라.” 했습니다.
저는 교육이 마귀에게서 온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읽고 쓰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저는 그들의 교육을 여러분의 교회 안에다 들여놓은 것을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을 기반으로 합니까?
과학, 교육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신입니다. 사탄은, 그가 이브에게 소개시킨 것이 그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있고, 침례교회들, 감리교회들, 장로교, 오순절교, 모든 교파들 안에 있습니다. 어떤 교육 받은,
지적인, 어떠어떤 훌륭한 자들 같은 것, 그런 것은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리 떨어뜨립니다.
그건 잘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건 그들의 소원을 만족시킵니다. 교회가 그런 것을 투표로 들여오게 되면,
교회의 생각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그들의 소원이 뭔지, 그들이 갈망하는 바가 뭔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 목사님은 생각이 넓으신 분이에요. 그는 우리가 남자 여자 섞여서 수영을 해도 상관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가세요.”하고 말하길 원합니다. 그들의 혼은 높은 지적인 교회를 갈망합니다, 사람들이 아주 옷을
잘 차려 입고, 담임 목사는 십 오분이나 이십 분 설교합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초과하면, 그들은 집사회에 목사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 목사는 죄에 관한 말은 하면 안됩니다. 그는 짧은 옷을 입는 문제나, 사람들이 이런 일, 저런 일,
저런 일을 행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못하게 합니다. 그것을 전혀 언급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집사회는 쫓아낼 겁니다. 그게 뭔지 아시죠? 그게 그들의 생각 있는 사람의 필터입니다.
성경은, 요한일서2:15절에서, “너희가 이 세상 체제를, 또는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너희 안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소원하는 것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의 보좌에 누가 있는지를 말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말해줍니다. 여러분은, “어, 나는 그것들이 괜찮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마음 속에서,여러분은 그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압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혼을 먹여주는 것으로, 여러분의 혼이 갈망해 하는 것, 여러분은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이 아니라면, 뭔가가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성령께서는 말씀만으로만 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부흥을 원하고, 여러분의 교회가 부흥회 하기를 기다립니다. 그건, 여러분을 위한 부흥이 아닙니다.
부흥은 여러분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갈망하기 시작할 때에. 다른 교인들은 그 부흥을 원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것이 여러분 안에서 터진다면, 그건 다른 곳들도 터지게 할 겁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여러분은 그 갈망을 소홀히 여깁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들, 침례교인인 분들, 감리교인들, 장로교인들, 오순절교인들, 하나님의 성회 분들, 일신교,
이신교, 삼신교, 어느 소속이시든지 간에, 상관없습니다, 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한 개인입니다, 한 단위입니다.
여러분은 한 교회로서, 한 교파로서 천국에 가는 게 절대아닙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천국에 갑니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그게 전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느 교회에 소속되어 있든지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 읽는 것과 성경 믿는 것과, 성령이 그것으로 먹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여러분은 죽을 겁니다.
요한복음4:3절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길; 제가 가진 성경은...예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냥 말씀의 일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조금 취합니다. 저는 그것을 성경의 차 얻어 타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어, 저는 이 말씀은 믿지만, 여기 이 말씀을 봅시다, 그렇죠.” 아시겠죠?
여러분은 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 다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거 아셨습니까?
아시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이 시대를... 종교적인 왜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령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것을 소홀히 하시면! 예수께서는, “모든 말씀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지금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이 성령에게 잘못된 것을 먹이려고 하면,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진짜 성령이라면, 성령은 그 차이를 알 겁니다. 자,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이 먹고사는 양식입니다.
성령은 흥분을 먹지 않습니다. 성령은 교육을 먹지도 않습니다. 성령은 교회에 가는 것을 먹지도 않습니다.
신학들을 먹지도 않습니다. 영감을 받은 뭔가와 그것에 대한 신학적인 견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은 오직 말씀을 먹습니다. 여러분 혼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말씀으로 만찬을 함께 먹습니다.(계시록3:20)
예수님 당시에 그 모든 신학자들은, 그들은 말씀 말씀, 페이지 페이지, 적혀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이런 식으로 오시리라고 적힌! 그게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그것을 놓쳤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오셔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왔고, 그의 행위를 한다.”고 말씀하신 걸 아시죠.
진정한 말씀이 뭔지 그들에게는 계시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그 조그마한 모퉁이들을 놓쳤습니다,
오늘날 놓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것에 속하고, 저것에 속하면,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그것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오직 그리스도께 속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뭔가가 있다면, 그리스도에 대해서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면, 여러분의 생명은 태초에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몸 안에 거하시려고 내려오셨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거하시려고 내려오셨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여러분은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갈보리에서 그분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장사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부활절 아침에, 그분과 함께 부활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분 안에 있으며, 하늘에 속한 곳들 안에 앉아 있습니다.
그곳이 여러분의 위치이며, 이제 그분과 함께 신성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아무도 어느 때에도, 아버지를 본 자가 없으되, 아버지의 독생자 (아들)이 그를 분명히 밝히셨느니라.” 그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여러분과 사람으로 교제를 나누시기 위해서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육체이고, 그분도 육체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으로, 우리 가운데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에서 모자람이 전혀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표명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임마누엘이 되게 하셨습니다,
자, 여러분은 세상이 조성되기 전에,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뭘 먹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이제 계시록 22:19절에서, 성경은,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말씀을 빼거나 그 책에 한 마디를 더하면, 그의 부분이 생명 책에서 제거되리라.” 고 했습니다.
얼마나 깊은지 아시겠죠? 여러분은, 성령은 세상 것들로는 사실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와 까마귀처럼. 까마귀는 대단한 위선자입니다. 까마귀는, 여기로 와서 하루 종일 밀을 먹다가;
저기로 날아가서 오래된 죽은 시체 위에 앉아 있다가, 그것도 먹을 수 있습니다.
까마귀는 들에 앉아 있다가 비둘기와 함께 밀도 먹을 수 있고, 거기로 가서는 죽은 시체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하루 종일 밀을 먹을 수 있지만, 죽은 시체 위에서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니까요.
비둘기는 쓸개가 없습니다. 그 죽은 시체를 한 입만 쪼아먹어도, 그 비둘기는 죽을 겁니다.
아시겠죠, 비둘기는 쓸개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쓴 것이 전혀 없습니다.
진짜, 진정한 그리스도인도 똑같습니다. 그들은 세상 것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것만 먹습니다; 정결한 것, 그 생각 있는 사람의 필터를. 아시겠죠,
그들은 그것을 통해서 나오고, 그것만을 통과합니다. 세상의 죽은 것은, 그들에게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대홍수 심판의 때 까마귀를 보십시오, 시체를 여기 저기 날아다니면서, 그 죽은 시체들을 먹었고,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했고, 아시겠죠, 곡식을 먹었던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매일 매일 신선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로 삽니다.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 교회에 등록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설교자와 악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선하고, 올 곧은 삶을 산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내면을 만족시키려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혼 안에 하나님께서 쏟아 부으실 뭔가가. 있어야합니다.
천사의 음식 신선한 맛나를 매일 매일 주십니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음이 깊음을 부릅니다, 오 주님. 깊음에 깊음이 부릅니다!”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그건 그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주를 갈망하나이다.
내 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나이다!” 아시겠죠,
여러분 안에 있는 뭔가가, 지금 현재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혼은 적을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모든 좋은 선물들과 완전한 선물들을 감지하고 그것을 갈망합니다.
야고보서1:17.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거니와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우리는 오늘도 "기대" 를 가져봅니다.
우리의 기대는 눈에 보이는 세상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직접 주시는 영원히 있는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입니다.
우리 혼(마음) 안의 목마른 갈증을 채워줄 생명수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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