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란
• 2018년 제3회 《강원아동문학》 신인작가상 동화 부문 당선
• 2019년 《고려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 2019년 119 문화상 입선
• 공저 《문학상 수상자들의 단편동화 읽기 2, 3》, 《동화작가 14명의 단편동화》
• <신나는 숲속 동요마을>에 작사가로 참여
가시
김미란
학원에 갈 때 있던 자전거가 돌아올 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래, 승헌이네 자전거와 비슷했어.
“엄마, 이번 생일 선물은 자전거 사주세요! 네?”
엄마는 눈높이를 맞추면서 앉았어.
“지난번에 다리깁스 했던 거 잊었어? 위험해서 안 돼.”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어. 석 달 전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난 후로 난 자전거 타기 금지야.
“여보. 차가 없는 곳에서만 안전하게 타면 안 될까요?”
아빠는 말끝을 흐렸어. 좀 더 강력하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게 다였어.
며칠 뒤, 늦은 시간에 아빠가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 주자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어. 화장실에 가려던 것도 참으면서 들었지.
“당신은 학교 앞에서 자전거 타던 아이가 숨진 사고 소식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지난번 사고가 예고편이면 어쩌려고 그런 소리를 해요. 난 정말 상상하기도 싫어. 절대 반대에요.”
아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지.
그런데 내 눈앞에 저건 정말 갖고 싶은 자전거랑 똑같이 생겼어.
‘그냥 살펴만 봐야지.’
한참을 만져보는데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았어.
‘나를 타보지 않을래?’
자전거가 한번 타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럼, 아주 잠깐만 타볼까?’
나는 주인이 올 때까지만 타보기로 했어.
놀이터 주변을 돌면서 자전거를 탔어. 이제 어둑어둑해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해.
“자전거는 어쩌지?”
이상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지 뭐야.
‘자전거를 그냥 여기에 둘 수 없잖아. 내가 보관했다가 주인을 찾아줘야지. 주인을 영영 못 찾으면 어떡해.’
누군가 내 귀에 대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어. 그 소리에 끌려서 움직였어.
아파트 입구 화단 옆에 잘 세우려는데, 경비 아저씨가 다가왔어.
“여기 자전거 두면 안 된다.”
“네? 네.”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현관에 두었어. 앞집이랑 우리 두 집만 쓰는 공동현관이니까 오히려 좋아.
집으로 들어오면서 대충 인사를 했어. 엄마 눈을 못 보겠더라고. 얼른 내 방으로 들어와서 자전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에 빠졌어. 그때 엄마가 문을 벌컥 열었어.
“아이, 깜짝이야. 엄마!”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
“뭔데 그렇게 놀라니? 밥 먹자는 말 안 들렸어?”
다행히 엄마는 빨리 나오라며 돌아섰어.
‘아무래도 숨겨둬야겠어.’
사실은 그 자전거를 갖고 싶거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깐 나와서 자전거를 확인했어. 결국 옮기지도 못하고 벽 쪽으로 살짝 붙여두었지. 자꾸 서성이게 되고 안절부절 견딜 수가 없어서 일찍 자겠다고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갔어.
‘주인이 지금쯤 자전거가 없어졌다고 찾고 난리가 났겠지?’
생각이 꼬리가 있는 것처럼 길게 이어졌어.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어.
“아들. 토요일이니까, 아침 먹고 엄마랑 산책 가자.”
엄마는 요즘 건강을 위해서 산책을 하고 있어. 문제는 주말에 나를 꼭 데리고 간다는 거지. 산책할 때 놀이터를 지나가니까 자전거를 찾는 사람이 있는지 봐야겠어. 평소에는 겨우 따라가느라 항상 늦었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나왔어.
먼저 나와서 자전거부터 확인했지.
‘없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어. 자전거가 어디 갔지? 내 것도 아닌데 큰일이야.
“네가 어쩐 일이야? 이렇게 일찍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일찍 나와도 문제에요? 얼른 가 봐요.”
마음이 급해졌어. 엄마 속도에 맞춰서 걷자니 답답했지만 놀이터를 자세하게 살피면서 걸을 수 있었어.
“안녕하세요? 동규야!”
승헌이가 엄마에게 인사를 하더니 내 등을 치며 불렀어.
“응. 그래. 승헌이구나.”
“아, 깜짝이야. 왜 쳐? 놀랐잖아.”
승헌이가 치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지 뭐야.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니?”
엄마는 나를 살짝 밀면서 승헌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어.
“승헌아, 엄마는 뭐해?”
승헌이네랑 우리 집은 엄마끼리 친구여서 자주 만나고 지내는 가족 같은 사이야.
“엄마도 운동 가셨어요.”
엄마도 알면서 물은 질문에 승헌이도 인사처럼 아는 대답을 했어.
“승헌이는 아침부터 어디 가?”
엄마는 앞뒤로 팔을 흔들면서 물었어.
“아, 저기요. 동규야. 너, 우리 형 자전거 알지?”
갑자기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멍해졌어.
“아, 어, 어. 승윤이 형 자전거?”
승헌이가 무슨 말인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똑바로 나를 쳐다보았어. 익숙한 자전거라고 생각했는데 승윤이 형 자전거였나? 이제 어쩌지? 내가 챙겨뒀다고 말할까?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어. 승헌이도 승윤이 형이 만지지 말라고 하는 걸 몰래 탄다고 했는데 말이야.
엄마는 못을 박듯이 말했어.
“우리 동규는 사고 나고부터 자전거 안 타잖아.”
고민할 틈도 없이 나도 모르게 툭하고 말이 나왔어.
“너희 형 자전거. 왜? 난 모르지?”
“아니, 어제도 봤는데 왜 몰라? 아, 근데 동규야, 어제 말이야?”
내가 어제 봤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났어. 나는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어.
“내, 내가 어, 언제 봤다고 그래?”
이런 상황에 엄마는 갑자기 이러는 거야.
“암튼, 동규는 자전거 안 된다. 알았지? 근데 너희들끼리 놀래? 엄마는 좀 더 빨리 걷고 싶은데 말이야.”
다른 날이었다면 신이 나서 빠졌겠지만 오늘은 아니야.
“아니에요. 나도 운동이 필요해요.”
엄마에게 바짝 붙었어. 승헌이도 망설이다가 볼일이 있다는 듯 손을 흔들고 갔어.
“그래, 이따가 이야기하자. 나도 자전거 때문에 말이야.”
빨리 승헌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어제 자전거 탄 걸 승헌이가 봤나?’ 다리에 힘이 풀렸어. 빨리 걸어서인지, 남의 자전거를 잃어버려서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해서인지 모르겠어.
산책은 잊은 채 걷는 내내 공원과 놀이터, 아파트 단지, 모든 길이 자전거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어. 승헌이를 만났을 때 우리 집에서 자전거 가져갔는지 물어볼 걸 그랬어.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했어. 이제는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지 뭐야.
얼른 찾아서 돌려줘야지. 어디서 찾지? 어떻게 돌려주지? 다시 그 자리에 갖다 두면 아무도 모르겠지?
돌려주든 도둑이 되든 찾아야 가능한 일인데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 앞이 캄캄했어.
“어머나, 왜 이렇게 땀이 많이 나니? 어디 아파?”
엄마가 내 얼굴의 땀을 훔쳐내면서 물었어.
“아니에요. 그냥 좀 더워서요.”
엄마가 나를 잡아끌면서 방향을 바꿨어.
“너무 오래 걸었나 보다. 그만하고 들어가자.”
몸에 힘이 쭉 빠져서 엄마에게 기댔어.
‘이럴 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공동현관 구석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전거가 서 있지 뭐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이 떠올랐어. 어쨌든 최대한 빨리 돌려둬야겠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어. 아무도 나를 알아보면 안 되잖아. 자전거를 두러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도둑이 되는 거야. 상상하기도 싫어.
‘잠시 맡아두려고 했던 거야. 훔치려던 건 절대 아니야. 하느님, 돌려주니까 제발 용서해주세요.’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용서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면서 기도를 했어.
누가 있나 확인하면서 놀이터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세울 자리를 확인했어.
자전거를 세워두고 돌아오는데 발바닥이 땅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어. 돌아보니 누군가 자전거를 살펴보고 있잖아.
“누구야. 그 자전거 만지지 마!”
나는 급하게 달려가서 다시 끌고 왔어. 내 자전거도 아닌데 미칠 것 같았어. 두근거리고 떨리던 마음이 이제는 따끔거리고 아팠어. 자전거가 다시 공동현관으로 돌아왔어.
자려고 누웠는데 어지럽고 몸이 뜨거웠어.
“쟤가 어제, 오늘 이상하네. 통 먹지도 못하고 말도 없고 말이야.”
엄마가 걱정하는 말이 들렸어.
내일은 꼭 돌려줘야지.
승헌이에게 말을 해야겠어. 뭐라고 말을 하지. 밤새 고민했지만 방법을 모르겠어. 그냥 길을 가다가 보여서 가져왔다고 할까? 몇 번을 전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았어. 아무래도 솔직하게 말을 해야겠어. 겨우 전화하고 승헌이를 만났어.
‘아. 승헌이다!’
멀리서 다가오는 승헌이를 보자 심장이 콩콩…… 두근두근, 따끔따끔!
"아휴, 바쁘다 바빠."
승헌이는 놀러 나오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가슴이 철렁했지.
“승헌아, 있지.”
승헌이는 툴툴거리듯이 말했어.
“할 말이 뭐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같이 놀자고.”
이게 아닌데 엉뚱한 말을 하게 돼.
“승헌아, 있잖아.”
승헌이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얼굴을 쓱 내밀었어.
“뭔데. 왜 그러는데?”
“승헌아, 미안해.”
승헌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뭐가 미안하냐는 표정이야.
“저기 있잖아. 나, 아파서 못 놀겠어. 가시가 박힌 것 같아.”
승헌이가 내 팔을 잡으면서 물었어.
“가시가 박혔으면 빼야지. 어디 봐.”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리고 말았어.
“많이 박힌 것 같아. 나 집에 갈게.”
아무래도 말을 못 하겠어.
“너, 얼굴도 하얗다. 아프니까 내가 같이 가줄게.”
자기를 피하는 것도 모르고 데려다주겠다며 따라온대.
“이제 가.”
집 앞에서 가라는데 아픈 친구를 어떻게 혼자 들어가게 하냐며 따라 들어왔어. 바로 침대에 누웠어.
“너 이제 가. 난 잘게.”
문을 닫고 나가더니 엄마에게 인사하는 승헌이 소리가 들렸어.
“안녕하세요. 근데 동규, 가시가 박혔다고 아프대요.”
인사만 하고 가지, 가시가 박혔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어.
“동규야, 승헌이가 그러는데 아프다며?”
엄마는 놀라서 내 방문을 열었어.
“도대체 어디야. 엄마한테 말을 해야지. 어디 보자.”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손을 먼저 들고 살폈어.
“엄마, 있잖아. 사실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눈물이 먼저 나왔어.
“훔친 건 아니에요.”
엄마가 놀라서 그대로 멈춰버렸어. 뭔가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아서 한참 만에 입을 열었어.
“있잖아요. 처음에는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찾아주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안됐어요. 승헌이가 자전거 물었을 때 못 봤다고 거짓말까지 했어요.”
"뭐? 자전거? 이게 무슨 말이야. 아이고, 동규야!"
엄마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툭 툭 치면서 말이 없었어.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는 나를 끌어당기더니 토닥여 주었어. 엄마에게 기대서 보니 문 앞에 승헌이가 서 있었어.
“미안해, 승헌아.”
“내가 미안해. 동규야.”
승헌이가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말했어.
“사실은 나도 형에게 거짓말을 했어. 내가 형 몰래 타다가 너희 집에 숨기게 되고, 너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 기회를 놓쳤어.”
‘뭐라고 하는 거지?’
승헌이는 내가 놀이터에서 자전거 챙기는 걸 보고 아침에 가져갔다가 다시 숨겼다는 거야. 어제 아침에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엄마 눈치를 보느라 못했다는 거지.
어쨌든 이틀 동안 제대로 벌을 받은 느낌이야.
“동규랑 승헌이. 이제 승윤이 보러 가야지?”
엄마가 나와 승헌이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어.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승헌이네 집으로 갔어. 가면서 두근거렸지만 가시는 빠진 것 같았어.
승헌이에게도, 승윤이 형에게도,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어. 그렇지만 아프지는 않았어. 저녁 바람이 시원했어.*
첫댓글 김미란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재미와 감동, 봄날의 새싹 같습니다
김미란 작가님 동화 < 가시>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가시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동화였습니다.
다시한번 좋은 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