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형태의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그 자체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이룬다. 1960년대 이후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주관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급속히 파급되어갔다.
이는 예술의 주체와 객체의 양자에 있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계층에 실로 다양한 실험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이는 다원화된 사회현상과 맞물려 새로운 형태의 미술, 즉 대안미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의 대안 미술은 다양한 각도에서 새로움에 대한 추구로 이어졌다. 새로운 미술은 새로운 전시공간을 원했다. 하지만 기존의 공간들은 실험적인 새로운 미술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의 존립에 영향을 주는 자본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항에서 흑인이나 여성 등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마이너리티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전시공간을 찾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으며, 이는 자본이나 정치, 권력과는 무관한 순수한 예술을 위한 공간을 탄생시키게 된다.
한국에 탄생한지 8년이 지난 비주류 대안공간은 그 발생 배경 면에서는 서양 국가들의 것과 다르지만 국가 권력과 상업 자본으로 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며, 재능 있는 신진작가의 발굴을 목적으로 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나름대로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대안공간의 진정한 대안성에 대한 고민도 수반되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는 비주류 미술 공간 중 한국 대안공간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이들‘대안공간들이 동시대 한국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또한 ‘한국의 대안공간들이 서구의 대안공간처럼 현대미술을 읽는 또 다른 코드로서 읽혀지지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본다.
먼저 최초의 비주류 대안공간이 성립된 미국의 대안공간을 비롯한 서구 대안공간의 등장을 살펴봄으로써 현대미술에서의 그 등장의 필연성을 추적해 본다. 그리고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의 발생 배경과 그동안의 성장 과정과 함께 현재 활동 중인 대표적인 대안공간들을 표를 만들어 살펴본다. 이는 한국 대안공간의 올바른 위치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진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안공간의 활동들이 한국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살펴봄과 동시에 그동안 대안공간의 전시회를 토대로 현대미술의 또 다른 코드로서 대안공간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에 대해서 연구해 본다.
이로써 대안공간의 활동이 주류미술에 대한 단순한 대안이 아닌 또 다른 문화의 요소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는 발전 방안을 제시해 본다.
2.비주류 대안공간의 성립
1)비주류 대안공간의 등장
대안공간 (AIternative Space) 은 ‘기존 갤러리의 전시 양상에 대한 안티(anti)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대안공간이 기존의 미술 운동이나 사조라기보다는 'AIternative Space movement'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안공간의 역사는 적어도 역사적으로 변화된 미국 문화 정책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까지 미국 정부의 문화 정책은 백인 중심의 단일 문화를 건설하려는 용광로 이론으로 대별된다. 이것은 짧은 역사와 다양한 뿌리의 이주자로 구성된 미국 사회를 단일한 특성을 지닌 하나의 국가 이데올로기에 귀속시키려는 동화주의 정책이었다. 백인 중심의 단일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교육과 문화정책을 통하여 동화주의 정책으로 정립된 것이다. 이 동화주의는 인디언과 흑인, 유색인종이 철저히 배제된 생태적 모순을 지닐 수밖에 없었고, 백인 지배문화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미국의 동화주의 정책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중요한 변화를 맞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는 반문화운동 흑인 인권운동 대안문화운동 등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소수 민족의 문화적 자각과 인종간의 갈등은 미국의 사회적 통합을 위협하는 새로운 갈등요인으로 등장한다. 그간의 이민정책을 통해 흑인, 라티노, 아시안 등 유색인종이 미국 인국의 30% 정도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러한 다양한 그룹과 인종간의 갈등과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관계를 개선하는 일에 미국 문화정책의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통합주의 내지 다문화주의로 불리는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미국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실제로 정책입안자들은 늘어난 유색인종의 투표권과 후원금의 액수만큼이나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의 공존이 미국 문화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 하고 있다.
미국의 대안공간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정책의 전환기에 설립되기 시작했다. 주류 미술제도에서 배제된 작가들의 피난처였던 초기의 대안공간은 이렇듯 미국사회의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 사이에서 태동한 것이다. 미국 내 대안공간의 등장은 상업적 미술관 체제에 반하는 다소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저인 노력의 일부인 것이다.
대안공간은 시민권과 페미니즘 운동, 학생운동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반전 운동으로부터 유래한다. 따라서 대안공간은 예술가들에게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규제된 체제 안에서 노동자로서의 그들의 역할을 이해하고 토론하는 공동체의 형성 예술노동자연맹, 게릴라예술그룹, 흑인비상 문화연맹, 같은 공동체의 형성은 예술가들의 저항과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1970년 ‘112 그린 스트리트 112 Green Street’가 뉴욕에 설립된 이래로 ‘키친 the Kitchen’(1971), ‘피. 에스. 원 스튜디오 P. S. 1 Contemporary ART Center' (1971) 과 같은 비슷한 성격의 많은 공간들이 속속 설립되었다.
비상업적인 미술을 추구하고 여성작가를 비롯한 마이너리티 작가들을 지원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생겨난 미국에서의 대안공간은 소호 지역에서부터 출발하여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맨해튼 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생겨났다.
제2세대 대안공간들은 뉴 미디어 아트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미술 분야의 확장을 가져온 주역으로서 인정받으며 성장하였다. 1988년까지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700개 이상의 대안공간들이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자랑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적으로 고립된 지역과의 연대 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오래되고 버려진 부동산 문화적 목적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후원 많은 작가들이 오늘날 현대미술의 주류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안공간은 더 이상 마이너리티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아니라,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적극 후원하여 국제 미술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인재로 키워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유럽의 대안공간은 그 발생 배경이나 성격이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 대안공간의 기본 성격인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작업과 전시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 역시 지원 해주는 공간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에서 영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대안공간의 구조가 그리 활발하지 않은데 그것은 미술관과 미술기관, 박물관들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 유럽에서 대안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 - 작가, 큐레이터, 이론가 등 - 은 실제 상황에 대한 도전적인 참여의식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미술계에 새로운 이슈를 만드는 이슈메이커이다.
2)비주류 대안공간의 특성
비주류 대안공간의 특성은 크게 ‘작가 주도형 전시 공간’과 ‘비영리 전시 공간’을 들 수 있다.
작가주도형 전시공간은 정치, 권력,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작가들만을 위한 작가들에 의한 전시공간의 확보를 의미한다. 이는 ‘예술의 자율성 확보’라는 말로 풀어 쓸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가는 미술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이상과 실험적인 작품을 내보일 수 있는 공간의 부재는 예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이에 따라 작가들은 자신들을 위한 전시공간을 스스로 마련해야함이 필연적인 것이었다. 왕립 아카데미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마네의 작품은<낙선 전람회>에서, 다다이스트들은 ‘카바레 볼테르’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뉴욕의 병기 창고’에서 발표가 되면서 주류를 형성하고 잇던 미술보다도 더욱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후 수많은 실험과 변화 속에서 얻어진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도 결국은 지식이나 부를 겸비한 특권층에게 이미 수용되어 있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미술관이 권력과 자본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고, 또한 작가는 이러한 미술관을 통해서 작품을 소개하는 제도적 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더구나 오늘날 예술의 상품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시장의 상황과 예술 작품이 투기의 대상으로서 일부 화랑과 화상들에 의해 가격이 조작되고 있는 현실에서 어렵게 작업과 생계를 유지해야했던 예술가들은 그들이 속한 예술계의 제도적 장치들에 대해서 자각하지 많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적 완성을 정치적 사회적 저항을 통해 이루고자 하였으며 이는 작품의 소개와 분배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탐험하려는 예술가들의 의도가 증식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새로운 공간에 대한 해결책을 먼 곳에서 찾지 않고 그들의 작업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가까운 곳에서 찾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로 창고나 버려진 공장에서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마이너리티인 이들에게 제공 되어질 수 있는 공간들이란 엄격한 제도와 관습 하에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공간들이 아닌 저렴한 가격에 저항적인 예술과 어울리는 허름한 창고일 수박에 없었다.
제프리 류(Jeffrey Lew)가 그의 예술가 친구들의 작품 전시와 제작, 각종 퍼포먼스, 시낭송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위해 준비했었던 112 Workshop/112 Green Street 이 소호 SoHo 지역에 주소를 둔 것을 비롯하여 이후의 많은 대안 공간들이 버려진 부동산에 대한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작가주도형 전시공간의 탄생은 미국을 비롯하여 동시대 유렵의 예 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표현주의 이후 국제 미술시장에서 그 위력을 상실해가고 있던 독일의 젊은 미술인들은 과거의 위력을 되찾고자 하는 자각과 함께 실험적 미술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스스로 마련하게 되었다. 베를린 미술대학 출신인 칼 희디케(1938-), 코베를링(1938-), 뤼페르츠(1941-) 등이 독자적인 전시공간을 갖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그로스괴르센35'라는 허름한 전시공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로스괴르센 35’는 단체전이나 개인전의 형태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들로 인한 독일의 미술은 새로운 형상회화의 흐름을 형성하여 1980년대의 신 표현주의로 일컬어지는 국제 미술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도 대안공간의 초기 성립은 작가들에 의한 공간의 창출을 들 수 있다. 20개 이상의 스튜디오와 입구에 위치한 전시공간을 가진 큐비트 갤러리는 전적으로 작가들이 운영하고, 자체 선거를 통해 위원회를 조직, 대표를 선출하여 운영하는 곳이다. 작가들끼리 모여서 시작한 이 대안공간은 외부 자문위원을 두기보다는 이공간의 성격과 미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작가들 자체 모임으로 만들려는 취지가 매우 강하다.
비영리 전시공간은 작가가 자신의 전시공간을 스스로 마련하려 했던 데서 유래한 대안 공간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운영에 있어서 비 영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미술관의 전시 경향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소개나 작품의 판매에 의한 이윤의 추구이기 때문에 무명의 작가이거나 새로운 형태의 예술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게 된다. 이러한 실정에서 대안공간의 비영리성은 안정적 수입이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 갤러리를 대관하는 비용을 자신의 작품제작에 쓸 수 있게 해줌으로써 작품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작가가 좀 더 자신의 작품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설립 초기부터 젊고 역량 잇는 비주류 작가들의 작품 소개를 목적으로 한 대안 공간에 있어서 모금된 기금만으로 운영이 되는 ‘비영리 전시 공간 (Non prefit gallery)’라 불리는 미술관, 갤러리들의 운영방식은 그들의 목적을 실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초창기 미국의 대안공간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적인 기금 마련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1972년‘국립 예술 기금 (the National Endowment) ’이 설립되어 대안공간들을 지지하게 되면서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 인 대안공간의 질적, 양적 팽창을 가져오게 되었다.
유럽의 국가들 중 대안공간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영국의 경우는 아트 카운슬 (Art Council England) 을 통해 대안공간을 지원하고 독일, 프랑스 등은 자치주와 시단위로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미술활동이 가장 활발한 스웨덴은 야스피스 (IASPIS) 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
대안공간의 재정구조가 기금과 모금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은 이미 그 사회에서 문화 저변이 활성화 되어 있고 그러한 기반위에서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으로서 대안 공간의 존립유무는 그 사회의 문화적 척도로서 간주 될 수 있다.
3.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의 발생 배경과 현황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산물로서 발생한 미국이나 선진국의 대안공간과는 달리 한국에 본격적인 비주류 대안공간이 등장한 것은 IMF구제금융 당시 기존의 많은 상업화랑이 장기간의 불황으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자체 기획행사들을 줄이고 대관의 비중을 높여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술인들은 작품 발표 기회가 적어지고 작가들은 전시욕구의 대안으로 전시 형태의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대안 공간 루프’, ‘대안공간 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대안 공간 섬’ 등 네 곳의 대안공간들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한국의 대안공간들의 발생 배경은 미국의 경우처럼 광범위한 사회문화 운동에 수반되어 나타난 작가들의 저항적인 행동주의가 두드러진 것도 아니고, 기존의 미술관과 화랑들이 수용할 수 없을 만큼의 전위적인 미술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된 시점도 아니었다. 다만 한국사회 보편적인 현상의 하나로 미술계의 구조적인 모순이 심화되어가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다양한 전시욕구와 전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주류라 하는 공공미술관은 제도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명 또는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없었다. 상업화랑은 미술시장의 수요를 쫓는 성격상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전시를 수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은 공장미술제나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전시, 거리 미술제, 주차장 프로젝트 등으로 다양하게 자신들의 작품 발표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 했다. 이는 기존의 미술관이 갖는 제도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넘어 더욱 다양해진 미술계의 수요와 공급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전시공간의 개념 확장과 미술 그 자체의 장르의 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미술의 흐름이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국제 전시가 성행하게 된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등장한 네 곳의 비주류 대안공간은 설립목적에 있어 상업화랑과는 달리 젊고 실험적인 젊은 인재의 육성에 힘쓰고 한국의 현대미술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당찬 의욕을 보이면서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의 탄생을 열었다. 물론 이에 앞서 비영리 작가지원을 목적으로 한 ‘그림마당 민 1986년’, ‘예술마당 솔1991년’ 등 몇몇 공간들이 오늘날의 비주류 대안공간을 위한 토대가 되어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1990년에 설립되어 젊고 실험성이 강한 유능한 작가 발굴을 기치로 내세웠던 ‘소나무갤러리1990년’역시 작가들에 의한 공동 운영과 이익금의 전액 재투자를 표방함으로써 한국의 비주류 대안공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전시공간 구성은 크게 미술관(국, 공립, 사립), 갤러리, 대안공간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명확한 구정은 없다.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자체 기금이나 공공기금의 후언으로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작가지원을 하기도 하고, 대안공간이라 명명하고 있는 전시공간에서도 대관료를 받는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아트 선재 미술관’과 같은 경우 공식명칭은 미술관이지만 비영리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대구 현대미술가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129’는 공식명칭은 대안공간이지만 작으나마 대관료를 받고 있으므로 작가주도형 전시공간이라는 의미로서의 대안공간이지만 비영리 전시공간으로서의 의미에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앞서 언급한 비주류 대안공간의 두 가지 특성 중 ‘비주류-비영리 전시 공간’으로서 ‘신진 작가 발굴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공간만을 분류하고자 한다.
한국 대안공간은 그 운영모체에 따라 각종 문예 진흥 기금이나 후원금에 의존하는 순수한 의미의 비영리 전시공간과 기업체 후원에 의한 전시공간으로서 기업체의 브랜드 이미지의 형성과 홍보를 위한 대안적인 공간들로 구분 할 수 있다.
기금, 후원금에 의한 비영리 전시공간은 1999년 한국의 대안공간이 발을 딛게 된 이래로 지금까지 당시 네 곳에서 현재 전국적으로 약 27여 개에 이른다. 이들 대안공간을 지역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표1)
(표1)
지역
대안 공간
비고
지역
대안 공간
비고
서울
대안공간 풀
비영리 공간
갤러리 정미소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셀
//
대안공간 합
//
대안공간 루프
//
갤러리 쿤스트 독
비영리 공간
대안공간 휴
//
브레인 팩토리
//
부산
대안공간 반디
비영리 공간
대안공간 틈
//
문화소통단체 ‘숨’
복합문화공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
인천
스페이스 빔
비영리 공간
대안공간 팩토리
//
경기도
스톤 앤 워터(안양)
//
심 스페이스
//
대안공간 눈(수원)
//
대안공간 ZIP
//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안성)
//
아트포럼 뉴게이트
//
경상도
대안공간 마루(창원)
//
아트 선재 미술관
//
충청도
대안공간 MOM(청주)
//
대안공간 팀 프리뷰
//
큐브 스페이스
조각전용공간
대안공간 갤러리 꽃
한국화전용공간
이들 비주류 대안공간들은‘ 비영리 전시 공간 협의회(대안공간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상호간의 정보 교환을 통하여 제도화된 상업 미술계에 대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위 표1 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 네 곳의 대안공간이 현재 다양한 성격의 대안공간들의 출현으로 다원화되고 저항 문화적인 경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증가하고 있는 ‘복합 문화공간’은 탈장르화 되어가는 현대 예술의 흐름과 다원주의 문화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갤러리 정미소’나 ‘스페이스 셀’은 음악과 멀티미디어 영상이 함께하고 있다. 또한 홍익대 앞에 총 5층으로 구성된 ‘대안 공간 합 (HAP)’아트 엔터테인먼트 멀티 플랙스 건물은 일레트로닉 음악에서부터 모던 락, 힙합 등 모든 장르의 음악과 미술작품, 퍼포먼스까지 한 곳에서 향유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문예 진흥원으로부터 전액 운영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인사미술공간’역시 재원 조성면에서는 다른 공간들과 성격을 달리 하지만 비영리공간으로서 젊은 인재의 발굴 육성과 실험적 현대미술을 지원한다는 점에서는 대안공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업체 후원의 ‘비영리 전시공간’은 각 기업들이 고비용 저효율의 광고를 지양하고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문화마케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발생하였다. 먼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그룹의 ‘리움 미술관’이나 ‘로댕갤러리’에서 비롯된다. 또한 LG그룹의 ‘LG아트홀’ 한독 약품의 ‘의약박물관’, 태평양 화장품의 ‘화장품 박물관’ 등과 같이 그들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갤러리나 박물관 형태의 문화적 접근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경향은 관람자가 되는 소비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이라는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비영리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투자는 자신들의 브랜드가치를 향상시키고 있다.
기업체 후원의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젊고 실험적인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월 (주)쌈지의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젊은 작가들의 창작지원을 표방하면서 등장하게 된 ‘쌈지 스페이스’프로젝트다. 현재 한국의 기업체 후원의 비영리 전시공간은 다음과 같다.(표2)
(표2)
전시공간
기업
설립년도
지역
비고
쌈지스페이스
(주)쌈지
2000년
서울, 마포
작업실 제공
일주아트하우스
(주)태광그룹
2000년
서울, 종로
미디어아트 전문
샘표갤러리
(주)샘표간장
2004년
경기도 이천
공장갤러리
스페이스 C
코리아나 화장품
2003년
서울, 강남
복합문화공간
올림푸스 갤러리
올림푸스카메라
2001년
서울, 강남
포토갤러리
금호미술관
금호그룹
1989년
서울, 종로
복합문화공간
성곡미술관
쌍용그룹
1995년
서울, 종로
비영리공간
위 표2 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체 후원의 비영리 전시공간에서는 다른 곳들에 비해 재정적인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덜 한 만큼 그들만의 정체성 확립에 비교적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일주아트 하우스’는 기존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 대신 모니터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공간을 특징으로 다양한 장비와 편집실을 겸한 스튜디오를 제공함으로써 신세대 디지털 아티스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넓혀주고 있는데 기여하고 있다. ‘샘표갤러리’는 공장예술제를 개최 하는 등 공장을 견학 온 사람들에게 제품만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샘표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고 있다. ‘금호미술관’은 각종 기획전을 통하여 역량 있는 지방 작가를 발굴 육성하고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젊고 실험적인 작가를 지원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미술현장의 상황을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비주류 대안공간들은 그 역사는 짧지만 대부분 상업화랑에 반발한 비영리 전시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체, 기타 단체 등의 후원금에 대부분의 운영자금을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주류 대안공간들의 운영체제는 재능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 육성하고 이들을 통해 동시대 한국의 미술이 국제적 현대미술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4.한국 대안공간이 화단에 미친 영향과 문제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은 9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양적으로 많은 증가를 했다. 양적 팽창이 반드시 질적 발전을 수반하지는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 대안공간이 그동안 우리 미술계의 지형도를 바꾸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사회 전반적인 영향으로 인해 많이 위축되었던 한국 미술시장에 젊고 참신한 인재를 발굴, 육성하여 활력을 불어넣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 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충족을 가능하게 해왔다는 점 등 우리 문화계의 안팎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먼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미술 수용에서 한국 대표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쌈지 스페이스’ 는 국내외 젊은 작가들에게 안정된 작업실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예술을 지원하고 정기적인 국제 교류전을 통해 우리 작가들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대안 공간 풀’을 비롯한 각 대안공간들은 작가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작가들에게 무료 전시공간은 물론 200만원에서 300만 원 정도의 작품지원비와 리플렛 제작, 세미나 개최 등 직접적인 전시 지원과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로 온라인, 오프라인상의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대안공간의 이러한 작가지원은 기존의 젊은 미술학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줄 뿐만 아니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미술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미술의 영역을 확대하였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의 개관전을 통해 알려진 함진이 그의<공상일기>에서 보여준 독특한 작업세계로 오늘날 주목받는 작가가 된 것은 비주류 대안공간의 작가지원에 대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사미술공간의 기획초대전을 통해서 발표된 김병규의 <옥현이네 집 2004>은 일반대중에게 다소 생소한 인터렉티브 아트를 접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와 같은 비주류 대안공간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젊은 작가들은 학연, 지연으로 얽힌 국내 미술계의 관행을 일소하며 국공립미술관에서 조차 반드시 참조해야 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들은 ‘대안공간 작가군’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초창기 작가들과 대동소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미 진부한 느낌을 주는 문자 그대로 대안공간만을 위한 작가가 되어가는 우려를 낳고 있다.
비주류 대안공간을 통한 젊은 작가들에 대한 우려와 격려 속에서 대안작가들의 꾸준한 도전과 성장이 오늘날 우리현대 미술을 이끌어가는 근간이 되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대안공간들의 작가지원프로그램이 문예진흥원의 후원을 받는데 수월하다는 점은 기존의 상업화랑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이들 화랑들이 앞 다투어 작가지원에 나서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는 한국 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한국 대안공간들이 이루어 놓은 가장 커다란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화이트 큐브의 정형화된 공간 탈피의 대표적인 한국 대안공간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이다. 벽면은 시멘트 벽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작가들에게 제공하지 않은 시멘트 벽면까지도 그들의 작품에 활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작품과 공간과의 구분을 없앴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의 공간 활용의 사례는 이후의 많은 ‘대안 공간 풀’, ‘인사미술공간’ 대안공간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주차장 프로젝트’, ‘공장 미술제’, ‘지하철 미술제’, ‘골목 프로젝트’ 등은 ‘미술전시는 반드시 하얀 벽면의 잘 갖추진 미술관에서 해야만 한다’는 인식에서 탈피하게 되는데 주된 역할을 하였다.
세 번째 다양한 기획전을 통한 큐레이팅의 중요성 재인식 되었는데 각 대안공간들은 1작가에 1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하여 기획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한국 큐레이터연구소의 부설 대안공간으로 ‘대안 공간 틈새’는 신진 작가들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들의 기획활동까지도 지원하고 있다. 브레인 팩토리는 큐레이터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대표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자체 기획자와 304명의 게스트큐레이터들이 함께 모여 작가를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이 선발한 작가에 대해 작업실 방문에서 홍보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주관하며, 전시의 내용은 운영진의 간섭이 배제된 큐레이터 책임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네 번째로 다원주의 문화 형성에 대안 공간 루프가 그 시작부터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면서 실험적 미술의 단순한 전시의 차원을 넘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공연을 함께 하였다. 쌈지 스페이스와 ‘대안공간 합’ 역시 젊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기여했다. 또한 (주) 코리아나 화장품에서 후원하는 ‘스페이스 C’는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하는 갤러리로 구성된 문화공간, 그리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스킨케어 시스템과 후식 공간을 갖춘 여성들을 위한 원스톱 공간으로 꾸며진 새로운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외도 ‘갤러리 정미소’나 ‘스페이스 셀’, ‘문화소통단체 숨’ 등은 다원주의 현대 문화를 정착시키고 알리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비주류 대안공간들은 먼저 그 설립 취지에서 기존의 예술공간들이 가지고 있 제도적 상업적 권위에 맞서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작가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창작적 자유를 촉진시킨다는 사명의식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대안공간의 이념이나 취지, 정체성 및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데에 따른 재정적 자립, 수도권편중 등에 관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5.결론
1969년 최초의 대안공간이라 할 수 있는 White Columns 가 설립되어 미국 미술계의 커다란 획을 그은 이래로 많은 대안공간들이 생겨났고, 폐관되는 가운데 이제 미국에서의 대안공간은 더 이상 비주류의 미술이 아닌 현대미술을 읽는 또 다른 코드로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새로운 세대를 알리는 미술공간의 출현이 이어졌다. 이들 그룹은 미술가들이 조직한 비영리 공간으로 그 사회의 문화하부구조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서 특히 현대미술의 주도세력이 되었다. 일본재단이 출판한 <대안: 아시아의 현대미술공간>과 광주 비엔날레가 대안미술공간을 전시에 포함시킨 것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이러한 현상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주류미술에 대한 저항문화로 시작했던 미국의 대안공간과는 달리 IMF구제 금융 하에 상업화랑의 장기적인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서 등장한 한국의 비주류 대안공간은 지난 9년간의 수적 팽창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미술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침체되어 있는 미술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 미술관의 전형이었던 화이트 큐브에서의 탈피로 전시공간의 개념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실험적 현대 미술을 적극 알리고 세상과 소통하게 해 주는 큐레이터의 중요성의 인식시키고 복합 문화공간의 탄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인 다원주의 문화를 형성하였음은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들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영향관계 속에서 ‘비주류-비영리 전시공간’에 따른 운영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일로에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증가는 우려를 낳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나 지자체의 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대안공간의 속성상 공간이 늘면 늘수록 그에 따른 후원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로 기금을 못 받아 문을 닫아야 한다.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의 짧은 역사를 두고 그 공과를 논함은 아직 시기상조이지만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 비주류 대안공간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앞으로의 전망은 필연적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스스로가 주체인 비영리-비주류 전시공간인 대안공간이 제도화되고 인습화된 미술계 내의 구조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창조하는 데 더욱 힘써 다원주의 문화형성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문화 선진국을 이루어 나가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비주류 대안공간의 진정한 의미의 ‘대안성’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공간들과 작가들의 활동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사회 전반적인 문화 인프라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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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회 20세기의 서양미술,조형교육, 2001
2002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편 <대안공간 네트워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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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공간의 역사> 2002국제대안 공간 심포지엄, 인사미술공간, 2002
<민족예술>, <아트인 컬쳐>, <월간미술>,<미술세계> 2001-2004년 대안공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