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서는 1914년 (甲寅) 음 2월 25일에, 충북 보은군 탄부면 고승리에서 부친이신
임任 덕德자 재宰자, 모친 구具 인仁자 조祖자 내외분 사이에서 제3녀로 태어나셨다.
1929년 16세가 되시던 해, 아버님과 혼인하여서 우리 가문의 9대 종부宗婦가 되셨다.
시댁媤宅이 고적孤寂하여서 시어머님과 부군 두 분밖에 아니 계시는 외로운 집안으로
오셔서,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비롯한 가사 일과 함께 농사일에도 힘을 기울
이셨다.
22세에 장남을 출산하신 이래 슬하에 7남과 1녀를 두셨으나, 가문이 불행해 차남부터
5남까지를 어린 나이에 일찍 돌아오지 못할 곳에 떠나 보내셨으니, 어머님의 슬픔과 그
고통은 필설筆舌로 다 표현할 수가 없으셨을 것이다.
불초가 자라서 어쩌다가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망연자실해 하시던 안타까운 모습을 차마
뵈올 수가 없었다. 이에 더하여 이 불초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잔병치레를 자주해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참으로 그 불효가 크다.
장남이 혼인하여 슬하에 손자 손녀들이 늘어나 기뻐하셨으나, 당시에 가세가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농한기 철을 이용하여, 가정에 필요한 약품들을 구매하여, 이를 경상도 산골
마을에 가셔서 방문 판매를 하시면서 가계家計를 일으키려 힘을 쓰셨다.
여러 날 동안에 소지所持한 물건을 판매하려 집을 비우시고 귀가하지 못하실 때는, 어린
마음에도 불안하고 걱정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물며 어머님께서는 낯선 동네, 낯선 집
들을 찾아 하나라도 더 팔아 보시려 애쓰실 때, 그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마음이 민망하고도 애달프다.
내 할머님께서 만년에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어머님을 의지하시며 지내셨던 그 시절에도
가내 외 일로 두루 분망하신 중에, 할머님을 정성껏 보살피셨다. 할머니께서도 이를 아셨
는지, 임종을 지켜보던 이 불초에게 "어머니께 효도해라." 하시는 말씀을 남기셨다.
내 아버님께서도 여러 날을 병환으로 누워서 계셨는데, 어머님께서 집안 밖의 일을 처리하
시며, 아버님의 간병에 힘을 쓰셨다.
아버님께서 별세하신 이후에는 고향과 선산을 지키셨다. 농사일은 이제 그만하시고 편히
쉬시라는 자녀들의 요청에는 늘 "아직 건강하니 더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한 평생 살아오시면서 온갖 슬픔과 고통을 겪으셨던 어머님께서는 지천명知天命의 시기를
전후로 해서 고향에 있는 관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셨다.
그 후, 성심성의껏 교회 출석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다. 관기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을 맡아
헌신하셨고, 후에는 막내아들 문회文會가 출석하는 청주의 상당 교회에서 '명예 권사'님으로
추대를 받으셨다. 이때가 어머님이 96세 이셨다.
어머님께서는 가문과 자손들을 위해 늘 기도에 힘쓰셨다. 또한, 형편되시는 대로 목회자들을
대접하고 헌금 생활에도 힘쓰셨다. 나의 외가 집안에 아드님이 안 계시고 따님만 세 분뿐이라,
집안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양자를 들이셨는데, 양 외숙外叔께서는 어머님과 동갑이셨고
외가 집안의 큰 기대를 모았던 분인데, 불행하게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납북되셔서 친정 가문을
걱정하시며 늘 비탄에 잠기셨다.
평소에는 남달리 인정이 많으시고 성품이 명랑하셔서 종종 좌중을 잘 웃기시기도 하셨다.
또한, 매사에 정직하셔서 금전 문제로 셈이 흐리신 적이 없었다. 비록,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하
셨으나 총명하고 기억력도 좋으셨다. 집안의 대소사를 빈틈없이 잘 챙기셨으며 종부의 막중한
책무를 잘 감당하셔서, 일찍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찬사를 들으셨다.
어머님께서는 기울어 가든 집안, 꺼져가든 등불 같은 집안으로 혼인해 오셔서 별세하시기까지
86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셨다.
만 나이로 百歲가 되시던 해인, 2014년에 나라로부터 받으신 청려장靑黎杖을 침상에서 어루만
지시면서 깊은 감회에 젖으셨다. 이 불초의 마음 같아서는 그 청려장을 짚으시고서 산천경개를
두루 다니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지만,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결국 2015년
3월 19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면서 다사다난한 일생을 마치시니 향년이 102세 이셨다.
쇠미(衰微)한 집안에 여장부로 오셔서 청상靑孀에 홀로 되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부군을 잘 내조
하시며 춘풍추우春風秋雨 고단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님의 헌신과 희생으로 인해서 우리 가문은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자녀들 8남매 중, 살아남은 4남매와 그들의 소생들이 국내외에서 각자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모두가 어머님의 희생과 기도하신 삶의 결실이라고 믿는다.
이에 삼가 어머님의 행장行狀을 둔필로 적는 것은, 자손들이 어머님의 은혜를 잘 깨닫고, 나아가
이 땅에서 더욱 분발해 나가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16일에
불효자 차남 능회(綾會)가 울며 적어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