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Date 2023. 6. 11
Text 벧후3,1-14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 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 금년 여름에는 엘니뇨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 그 어느 여름보다 더울 것이며, 강한 태풍이 발생하여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연향을 많이 줄 것이라는 예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 변화는 이미 모든 사람이 피부로 느끼는 단계에까지 와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해마다 6월 둘째 주일을 환경선교주일로 지킨지 벌써 40년째입니다. 지난 2005년에는 교인의 의무에 환경사랑과 보존의 의무를 삽입하였고, 지난해에는 각 연회에서 탄소중립선언문을 채택하였으며, 금년에는 지방회까지 환경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지방위원장들의 모임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세계의 환경문제는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위기 신호가 증폭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환경선교주일’에 주신 벧후3,1-14 말씀을 통해 환경을 사랑하고 보존하는 일에 솔선수범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베드로 사도께서는 6-7절 말씀에서 옛날 지구가 물이 넘침으로 멸망당하였던 것 같이 지금의 세상은 장차 불살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살라지게 될 그날은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세상은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6-7절을 한 번 더 읽겠습니다. “(6)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또한 그 멸망의 날은 어느날 갑자기 이르게 될 터인데,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된다고 합니다.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어느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순간, 마치 도둑이 오는 시간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종말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환경위기에 대한 보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었습니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2007년 4차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기후변화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고 인간 행위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대응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 상황은 지구멸망이라는 심각한 위협을 하고 있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당장 누리는 소비중심적인 문화를 바꿀 마음이 없어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는 놓고 어이없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오염수 해양 방류를 반대하는 것을 괴담으로 치부하면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국민 불안을 조성하면 어민들과 수산물로 영업하는 사람들은 다 죽는다고 집단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는 없습니다. 정말로 어민들과 수산물 취급 영업자들을 위협하는 주체는 오염 위험을 말하는 괴담입니까? 아니면 방사능 오염수 방류입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는 싸움을 만들고 있는 꼴입니다.
핵발전소 문제를 놓고도 마찬가지의 어이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핵에너지는 환경오염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청정에너지입니까? 지구를 망가뜨리는 오염원입니까? 핵이 인류에게 얼마나 무서운 위협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없애기 위해 멈추거나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줄여갈 것인지 방법론을 가지고 싸울 수는 있지만 존폐 여부를 놓고 싸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경제성이 낮아 폐기해야 할 정책일까요? 아니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일까요? EU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불안해진 유럽 내 에너지 수급 및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2022년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의 내용을 담은 ‘RE Power EU’를 선언했습니다. EU는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45%로 상향 조정했고,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제품들에 대하여 수입을 규제하기로 하였습니다. 설치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으며 비용도 저렴한 태양광 발전량을 늘리는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태양광의 발전비용이 낮아지면서 탄소중립을 선언한 주요국의 태양광 발전 누적 설비용량이 가파르게 증가하여 이미 미국의 일부 주, 독일, 인도,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은 태양광 발전의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 석유·석탄을 쓰는 화력발전과 태양·바람 등을 이용하는 신재생 에너지 발전 원가가 같아져서 신재생 에너지 발전이 경제성을 갖추는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도리어 역행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이유도 크긴 하지만 당연한 일을 반대하는 것은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고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지구는 멸망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 앞에 멸망의 지점이 보이고 있음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인간들 중 얼마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하나님은 그 시기를 조절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를 멸망으로 가게 하는 길입니다. 깨달아지시기를 기도합니다.
3. 파괴된 환경의 모습은 파괴된 인간성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환경파괴와 인간의 영성 파괴는 정비례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을 본문 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진실한 마음이란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의지하며 행하는 것임을 2절에서 가르쳐줍니다. 또한 일깨운다는 것은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는 데서 일깨운다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미혹으로부터 일깨우는 것임을 4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경보호는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영성을 보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회복하려는 노력은 인간에게 있는 영성을 하나님의 영성으로 회복하려는 노력이며 파쾨된 데로부터 돌이키려는 회개의 노력이 됩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환경보호는 곧 인간을 구원하려는 노력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등지고 죄를 저지를 때, 그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고 더럽게 되며 고통에 신음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롬8,19-22절에서 사도바울은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 하였고(19절)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21절)이라 하였습니다.
이상기후로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때 아닌 폭설이 내리거나 일사병으로 숨지게 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잃어버린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은혜로 잃어버렸던 영생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인격을 함양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헛된 욕망과 꿈들을 다 버린 사람입니다. 찬송가 545장 가사처럼 ‘이 눈이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까?
김형태님의 ‘꽃은 핀다’라는 시를 소개해드립니다. “땡볕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돌 틈에서도, 모래 가운데서도/ 꽃은 핀다 // 비바람이 내리꽂는 벼랑 끝에서도,/ 숨을 헐떡거리는 물속에서도/ 꽂은 핀다 // 벌나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핀다/ 열매를 맺지 못해도 꽃은 핀다/ 때려 죽여도 꽃은 핀다 // 내일 이름 없이 그냥 꺾일 때 꺾일지라도/ 메마른 세상에 한 줄기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꽃은 그렇게 말없이 활짝 핀다”
김형태님이 본 꽃은 그냥 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피조물은 그렇게 존재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에 의해 끝까지 그렇게 꽃을 피우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피는 꽃을 아름답다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나도 그렇게 산다고, 우리 계속해서 그렇게 살자고, 그게 행복이고 성공이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손을 잡고 서로를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나 때문에 파괴된 환경입니다 그 파괴된 환경이 지금 나에게 새사람이 되라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세상에서 함께 살려고 계획하고 계십니다.(계21,1) 자연 만물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어깨 동무하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4.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11)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라고. 그리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 ... "(13)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14)...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환경운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환경운동가가 되는 것은 곧 자신을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주님 앞에 나타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경보호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의무가 아니라 삶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파괴할 정도의 탐욕, 탐식, 사치, 허영에서 벗어나는 것이 성도의 당연한 태도입니다. 공원에 가면 있는 표어가 생각납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당신의 양심을 버리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방금 전 속담은 ‘당신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성을 버리는 겁니다.’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겨집니다.
여러분, 이 환경선교 주일에 묻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연 만물이 자기의 소임을 다하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보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