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味적인 시장-9]-[전남 무안 오일장(4,9)] -2019. 05. 14. 금. 경향신문(김진영 작성) 기사-
그래도 낙지가 빠지면 [무안]하죠... 여수 등 깊은 바다에서 잡힌 낙지는 몸집이 커서 주로 볶음용. 무안의 세발낙지는 연포탕이나 탕탕이용으로 많이 팔려요. 크기는 다르지만 가격이 비슷한 건 [안 비밀!]. 남쪽으로는 목포와 영암, 서쪽으로 신안, 동쪽으로 나주, 북쪽으로는 함평과 맞대고 있는 무안은 서해와 호남정맥 끄트머리의 반도를 품고 있어 산물이 다양하다. 그중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낙지와 양파다. 무안에 들어서면 양파즙 판매장이나 양파 저장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라면 하나 시켜도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양파김치가 나오는 동네가 무안이다. 낙지 파는 식당이나 판매장은 과장 조금 보태서 한 집 건너 한 집일 정도로 많다.
■ 큰 낙지와 세발낙지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시기, 무안에서는 낙지도 맛있지만 분명 계절의 맛을 품고 있을 다른 것은 무엇인지 찾아본다. 무안 오일장은 숫자 4·9가 들어간 날에 열리는 4, 9장이다. 2년 전에 새로운 곳에 터를 마련해 오일장을 연다. 천장이 있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다. 장터 한편에 널찍한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어 이래저래 장보기가 다른 장터보다 편한 곳이다. 낙지로 유명한 고장답게 장터에서 호떡집만큼 불난 곳이 낙지 파는 곳이다. 전남 여수·순천·장흥 등지에서 잡힌 낙지와 200㎞ 넘는 해안가를 지닌 무안 곳곳에서 잡힌 낙지가 같이 팔리고 있다. 여수 등 깊은 바다에서 잡힌 낙지는 무안 갯벌에서 잡힌 세발낙지와 달리 큰 몸집으로 주로 볶음용으로 팔린다. 작은 몸집의 무안 낙지는 탕탕이나 연포탕용으로 팔린다. 크기는 달라도 가격은 비슷하다.
■ 무안장에서 반드시 사야하는 것-족편(우족으로 만든 묵) 무안 5일장터에서 꼭 사야할 물목 중 하나가 우족으로 만든 묵인 족편이다. 족편은 조리 시간이 6시간 넘게 걸려 쉽게 만들어 먹기는 어려운 음식으로 초장 찍어 먹으면 굉장히 맛있는 묵의 일종이다. 우족을 푹 고아서 식히고, 굳혀 만드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6시간 이상 걸리는 탓에 쉽게 만들어 먹지 못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5000원에 세 덩어리를 살 수 있는만큼 만드는 데 들인 공력에 비하면 거의 공짜 수준의 값이다. 우족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콜라겐이 삶는 과정에서 녹았다가 식히면 다시 굳어지는 성질을 이용해 묵처럼 만들었다. 그런 묵을 파는 할머니는 [내가 말여, 우족을 푹 과. 그리고 식혀. 또 껍질을 푹 과. 두 놈을 합쳐. 그리고 굳혀. 짤라. 그래서 가지고 나온 겨. 초장 찍어 먹으면 맛나.]라고 만드는 방법과 먹는 법을 동시에 알려준다.
재래시장에서 수산물이나 고기를 사려고 마음먹었다면 사전 준비물 중 필수인 품목이 보냉백이다.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두어 개 살 돈이면 괜찮은 보냉백 하나를 살 수 있다. 환경도 살리고 돈도 절약할 수 있으며 접어서 보관할 수 있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 일석삼조인 품목이다.
■ 무안 갯벌의 향 담은 곱창김
밀물·썰물 차가 크고 수심 낮은 해안에서 지주식으로 양식한 김. 향과 단맛이 뛰어나 참기름을 바르거나 소금을 치지 않고 김만 오롯이 구워 간장에 찍어 먹으면 12첩 반상이 안 부러운 게 곱창김이다. 그러므로 무안에서 딴 건 몰라도 곱창김은 꼭 사야 한다. 낙지와 양파가 유명한 무안에서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황토다. 무안 갯벌은 황토와 펄이 적절히 섞여 있어 나는 것들의 맛이 다르다. 그런 무안 갯벌에 나무 장대를 박아 줄로 연결해 김을 양식하니 맛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데 그 김이 곱창김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고 수심이 낮은 해안에서 하는 김 양식 방법을 지주식이라 한다. 지주식으로 양식한 김은 부유식(수심이 깊은 곳에서 부력체에 김발을 연결해서 하는 양식)과 달리 생산량이나 때깔은 좋지 않으나 김 특유의 향이 강하다. 지주식 김 중에서도 향과 단맛이 뛰어난 김이 곱창김이다. 곱창김은 참기름 바르고 소금 쳐서 굽기보다는 김만 오롯이 구워 먹는다. 참기름 향은 김 향을 방해할 뿐이다. 구운 김에 하얀 김 나는 갓 지은 밥을 올려 양념 안 한 간장에 찍어만 먹어도 12첩 반상이 부럽지 않다.
무안군 망운면에서 만난 웅어회 비빔밥은 새콤달콤한 양념이 웅어의 고소한 맛과 잘 어울려 늦봄과 초여름 사이 비빔밥 재료를 고르라면 낙지보다는 오히려 웅어를 고를 듯 싶을 정도로 그 맛이 뛰어나다. 어류 중 바다에서 생활하다 산란은 강이나 하천에서 하는 것들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어와 황어이지만 웅어도 빠지지 않는다. 반대로 민물에서 살다 산란은 바다에서 하는 것은 장어다. 5월이면 웅어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들어온다. 서천과 군산을 지나는 금강 하류 쪽에 웅어로 유명한 식당이 많다. 무안에서도 웅어가 나지만 5월부터 7월까지 웅어 맛을 아는 이만 즐긴다. 무안읍에서 서쪽으로 10여분 가면 망운면이 나온다. 작은 면 소재지의 허름한 식당에서 웅어회 비빔밥을 낸다. 새콤달콤한 양념이 웅어의 고소한 맛과 잘 어울린다. 이 시기에 낙지와 웅어 둘 중 하나를 비빔밥 재료로 택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웅어를 선택할 것이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특히 맛있기 때문이다. 동원회식당(061-452-0754).
농어목 망둑엇과 문절망둑의 사투리인 [운저리]. 전남 다른 지역에서는 문저리라고도 부르는데 막걸리 식초로 무친 운저리 무침에 보리밥의 통통 튀는 식감은 찰떡궁합이다. 그런 보리밥을 무안에서 [보리비빔밥 메뉴]로 가끔 만날 수 있다. 특히 해안가에 가까워지면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다. 지금은 신작로가 생겨 오가는 차가 적어진 한적한 옛날 도로 옆에 운저리 보리밥집이 하나 있다. 운저리는 농어목 망둑엇과 문절망둑의 사투리다. 전남의 다른 지역에서 문저리라 하기도 하는데 짱뚱어도 망둑엇과의 어류지만 운저리와는 다른 종이다. 회 뜬 운저리를 채친 채소와 무쳐서 내온다. 여느 회무침을 시키면 나오는 외양과 비슷하지만 속 맛이 다르다. 이 집은 막걸리로 식초를 만든다. 부드러운 신맛이 좋은 막걸리 식초 덕에 무침의 양념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 식초의 신맛은 따로 놀던 매운맛, 단맛을 같이 놀게 만든다. 식초 잘 쓰는 집 중에 맛없는 집이 없는 까닭이다. 쌀밥이 있음에도 굳이 보리밥에 비비는 까닭은 보리밥의 통통 튀는 식감이 부드러운 운저리회 맛과 어울리거니와 보리밥이 뭉치지 않고 잘 비벼지기 때문이다. 밥을 비비기 전에 운저리 회무침 하나를 집어 맨보리밥과 먹어보길 권한다. 운저리회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날이 더워질수록 빛을 발할 메뉴다. 양정식당(061-453-8233).
■ 통째 먹어야 제맛인 황실이(황석어), 깡다리
민어과의 황석어. 봄철 4-5월 사이 잡히는 것은 조림이나 튀김으로도 먹는다. 황실이조림 속 황실이는 살이 부드러워 한 마리 통으로 먹는 게 제대로 먹는 법인데 그렇게 먹어야 녹진한 내장맛까지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깡다리?] 무안 읍내의 식당 메뉴판에서 자주 접하는 메뉴 중에 [깡다리 조림]이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황실이 조림]이 있다. 정식 명칭이 황강달이인 물고기를 황석어라 줄여 부르고 이를 무안지방에서는 [황실이]로 부른다.
황석어는 민어과의 생선이며, 조기와 사촌지간으로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은 생선이다. 주로 젓갈을 담가 무침으로 먹지만 늦봄과 초여름에 잡힌 것은 조림이나 튀김으로 먹기도 한다. [황실이 조림]은 분명 조림이지만 국물을 탕만큼이나 넉넉하게 부어 나온 것을 자작해질 때까지 조린 다음 먹는다. 여느 생선처럼 살을 발라 먹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통으로 먹는 것이 황실이 조림을 제대로 먹는 법이다. 살이 한없이 부드러워 발라내기도 어렵고, 통으로 먹어야 녹진한 내장 맛도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물 한 숟가락 밥 그릇에 끼얹고 황실이 한 마리 올려 푹 떠먹는데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금세 빈 밥그릇이 된다. 이집 양념 솜씨로 미루어 짐작컨대 한여름에 병어 조림을 먹어도 좋을 듯싶은 그런 집이다. 보스음식점(061-45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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