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선열전(八仙列傳) 4 - 선인(仙人) 종리권(鍾離權)
- 이름의 유래
종리권은 팔선(八仙) 중 분이다. 세상에는 선인 여동빈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통 민간에서는 '한나라 때 사람, 종리(鍾離)'라는 의미로 '한종리(漢鍾離)' 혹은 '종리(鍾離)장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리권(鍾離權)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이 권(權)이다. 자(字)는 운방(雲房)이다. 경조 함양(지금의 협서) 출신으로, 후에 이름을 각(覺)으로 고쳐 종리각(鍾離覺)으로 바꾸었으며, 자(字)도 적도(寂道)라 하였고 도호(道號)를 정양자(正陽子)라고 하였다.
원나라 때부터 도가의 대종 전진도(全眞道)에서는 정양(正陽)조사로 받들어 모시었다. 종리권의 부친은 한(漢)나라 때 열후의 벼슬에 봉해져, 벼슬이 중군태수(中郡太守)까지 올랐다고 한다.
- 출생 일화
종리권이 태어날 때, 산모가 거처하던 지붕 위 하늘에는 기이한 빛이 수 미터 위로 솟구쳐서 그 모습이 마치 작렬하는 불빛과 같았다고 한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솟구치는 화염 때문에 그 집에 불이 난 것으로 오인할 정도였다.
그는 갓난아이일 때부터 두개골이 둥글고 이마가 넓고, 눈은 오목하고 코가 높았다. 귀는 크고 두터우며, 눈썹은 짙고도 길었다. 얼굴은 붉고 기골이 남달라서, 마치 세살 정도 된 아이와 같았다고 한다.
더욱 괴상한 것은 종리권은, 태어난 후 며칠동안 울지 않고 젖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7일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침상에서 뛰어내려오면서 '몸은 자부(紫府; 선계)에서 놀았고, 이름은 옥경(玉京;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 올라있다'(身遊 紫府, 名書玉京)고 외쳤다. 그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여 마치 종을 두드리는 것과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다닐 수 있었는데, 어른처럼 빨라 다른 아이들이 쫓아갈 수 없을 정도였고, 다 큰 아이들처럼 말을 하고 밥을 먹었다고 한다.
성장한 후에 종리권은 벼슬에 나아가, 관직이 간의(諫議)대부에 올랐다. 간관(諫官)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그는 모함을 받아서 좌천되어 강남으로 귀양을 간 적도 있었다.
- 전투 중에 폭우로 길을 잃고
얼마 후 귀양에서 돌아온 종리권은 진(晉)의 장군으로 복직했다. 그는 마침내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전군마침 을 호령하게 되었다. 그 당시 토번(吐蕃; 티베트족)이 국경을 넘어 침입해 들어와서, 종리권은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양쪽 군대가 대치하여 일진일퇴 교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면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졌다. 앞뒤 분간이 어려워지고 양쪽 군대 모두 더는 싸움을 할 수 없었다. 군사들은 자기 몸 하나도 가누기 어려워, 군대의 대오가 스스로 붕괴되어가는 형국이 되었다.
종리권이 타고 있던 말 또한 겁을 먹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후, 종리권은 단기필마로 자기 혼자만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꾸불꾸불 험난한 깊은 산골짜기 속에 있어서 그는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종리권은 말을 몰아 산골짜기를 벗어나 자신이 지휘해온 군대를 찾기 위해 안간 힘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빙빙 돌 뿐이었다.
- 호승(胡僧)을 만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나무가 무성한 숲속이라 골짜기에는 어둠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하루 저녁 묵을 인가(人家)조차 보이지 않아서 종리권은 말을 세우고 어찌하면 좋을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저 멀리 산모퉁이에서 벽안의 스님(胡僧) 한 분이 나타났다. 멀리서 바라보니 그 호승은 푸른 눈에 높은 코, 헝클어진 머리칼을 눈썹 부위까지 흐트러뜨리고, 몸에는 풀로 짠 옷을 걸친 채 손에는 죽장을 짚고 있었다. 그 스님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종리권 앞으로 걸어왔다.
- 호승(胡僧)이 길을 안내하다
종리권은 서둘러 말에서 내려, 그 호승에게 하루저녁 자고 갈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 말을 들은 호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종리권을 인도하여, 몇 리를 걸어가 작은 집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때서야 호승은 그 산골 집을 가리키면서 한 마디 하였다.
"이곳은 동화(東華) 선생이 도를 이룬(成道)곳이요. 장군은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요."
말을 마친 후 스님은 작별인사를 하고는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 동화제군(東華帝君) : 동화(東華) 선생이라고도 한다. 도교의 대선인( 大仙人)으로 성은 왕(王), 이름은 현보(玄甫)이고 한나라 때 산동(山東) 출신의 동이족이다. 백운상진(白雲上眞)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호를 화양(華陽)진인이라 한다. 후에 그는 신부(神符), 비법(秘法 ), 금단대도(金丹大道)를 종리권에게 전했다. 원나라 때부터 전진도(全眞道)에서는 그를 '북오조(北五祖; 전진도 북종의 5대 조사)' 중 제1조로 받들고 있다.]
- 산골 모옥(茅屋)속으로 들어가 보니
종리권은 말에서 내려 그 집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산속의 모옥(茅屋, 초라한 초가집)은 비록 크지 않았으나 깨끗하면서 아취가 있고, 속기가 없는 듯 정갈하였다. 그는 귀를 기울여보았으나, 집 안은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종리권은 집안의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한동안 대문밖에 가만히 서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돌연 대문 안쪽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괴상하고 눈 푸른 오랑캐 중은 쓸데없이 말이 너무 많아."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열리면서 몸에 흰 사슴 털가죽 옷을 입고, 손에는 푸른색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 노인은 종리권을 보자 큰소리로 물었다. "그대는 대장군 종리권이 아닌가?"
종리권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공손히 대답하였다. "저는 사실 종리권입니다. 노인장께서는 어떻게 저를 알고 계십니까?"
- 검은 깨 밥으로 주린 배를 채워
노인은 대답 없이 빙그레 웃으며, 손짓으로 종리권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지치고 배고픈 종리권에게 노인은 검은깨로 된 밥을 먹게 해주었다. 종리권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그 노인은 옆에 앉아 눈을 조용히 아래로 드리운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종리권은 밥을 먹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는 노인의 형색과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노인에게는 마치 세상을 떠난 듯 조용하고도 엄숙한 기운이 온몸 전체에 가득 흐르고 있어서,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 스승을 만나 예를 갖추고
종리권은 노인의 그러한 분위기에 동화된 듯, 부지불식간에 세상에서 자신의 부귀영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투었던 마음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불현듯 세상을 벗어나서 도(道)를 닦아야겠다는 마음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종리권은 은근히 노인에게 수도해서 신선이 되는 법(修道成仙之法)을 물었다. 노인은 종리권의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음을 머금고는 한 마디 했다.
"선문(仙門)에 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대는 진정으로 선도(仙道)를 배우고 싶은가? "
그 자리에서 종리권은 '선도(仙道)를 배우겠다'고 하면서, 노인에게 제자로서의 예로 큰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이때부터 그 산골짜기에서 종리권은 선도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도인은 종리권에게 '장생진결(長生眞訣)', '금단비결(金丹秘訣)', '청룡검법(靑龍劍法)' 등을 일일이 전수해주었다.
- 대장군(大將軍)에서 도인(道人)로 변신하다
종리권은 산골짜기 모옥에서 지내면서 바깥세상의 일을 모두 잊고, 무명의 도인(道人)에게서 선도(仙道)의 비술을 전수 받았다. 이때부터 종리권은 옛날의 속인 복장을 벗어 던지고 도복(道服)으로 갈아입었다. 머리는 빗어 올려 쌍상투를 틀었고 손에는 불진(拂塵: 먼지털이)을 들고 다녔다. 바야흐로 그는 대장군에서 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이윽고 선도의 도력이 점차 높아지자, 그는 스승을 떠나 구름따라 발길 가는대로 천하사방을 노닐었다.
- 공동산(崆峒山) 동굴에서 신선비결을 얻다
종리권은 발길따라 구름따라 돌아다보니, 어느덧 공동산에 닿게 되었다. 산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그는 기운이 특별히 생동하고 경치가 좋은 자금사호봉(紫金四皓峰)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는 선도(仙道)를 더욱 깊이 공부하였다.
하루는 그곳에서 종리권이 우연히 신선 한 분을 만났다. 그 선인은 종리권을 인도하여, 어느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옥(玉)으로 만든 함(函) 하나를 얻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신선비결(神仙秘訣)이 들어있었다. 선인이 떠난 후에 종리권은 이 신선비결을 좇아 수행에 일로매진하였으며, 그후 선도의 깊이를 더욱더 하게 되었다.
- 종리권, 여동빈을 제자로 삼다
당(唐)나라 회창 연간에 여동빈(呂洞賓)이 과거에 세 번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실의에 차 있는 것을 보고, 종리권이 인도하여 선도를 수련케 하였다(관련 고사는 여동빈편 참조).
어느날 종리권은 여동빈을 데리고 장안(長安) 서쪽, 중원 오악(五岳)의 하나인 화산(華山) 학정봉으로 갔다. 그곳에서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선도비술을 전수하였다.
여동빈의 선도가 깊이를 더하여 갈 때쯤, 종리권은 그에게 말했다.
"머지않아 천하 십주(十洲)의 모든 신선들이 천계(天界)에 올라가 옥황상제를 배알하고, 자신들이 베푼 공덕을 아뢰게 된다. 나도 또한 상제를 뵈러 가려고 하니, 너는 이 동굴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된다. 적절한 때가 되면 이 동굴을 나와서 구름 따라 세상을 다니도록 하거라. 10년 후에 너는 동정호(洞庭湖)에서 나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 석벽에 진인비결 수련법을 남기다
종리권은 붓을 들어 석벽 위에 초서로 선도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썼다.
"주일고명(晝日高明) 야월원청(夜月圓淸) 음양혼신(陰陽魂神) 혼합상승(混合上昇)"
그리고는 여동빈에게 이 16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인체 가운데 혼(魂)은 양(陽)에 속하고, 백(魄)은 음(陰)에 속한다. 네가 만약 양기를 보전하여 혼(魂)을 잘 응결시키자면 양혼(陽魂)을 음백(陰魄)과 결합해야만 음양이 능히 서로 합하게 되고, 혼백(魂魄)이 참됨(眞)을 이루니, 이렇게 지극히 수련하면 마침내 '진인(眞人)'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 나아가 운유(雲遊)할 때, 너는 덕(德)을 널리 베풀고 공(功)을 많이 쌓아야 한다. 이는 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의무니라. 네가 공(功)을 이루어 원만하게 되면, 너와 나는 천상(天上)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꼭 이것을 꼭 기억하거라."
종리권은 그에게 공덕 쌓기를 거듭 당부했다.
- 전생(前生)의 신선 직위를 회복하다
잠시 후 홀연히 청아한 선가음악(仙樂)이 들리면서, 다섯 가지 색깔의 상서로운 구름이 사방에서 피어오르더니 종리권과 여동빈이 거처하는 동굴로 점차 다가왔다. 그 구름 속에서 선학(仙鶴)을 탄 선인이 동굴 앞까지 날아와 내렸다. 그는 손에 금간영부(金簡靈符)를 받들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옥황상제께서 종리권 선인을 부르시오. 또한 당신 전생의 신선 직위를 회복시켜 주시었소."
하면서 그 신선은 금간옥책(金簡玉冊)을 종리권에게 전해주었다. 종리권은 여동빈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색영롱한 봉황을 타고 그 선인과 함께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종리권과 여동빈 사이에 문답을 나눈 선도(仙道) 관련 내용은 당(唐)나라 말기의 시견오(施肩吾, 791~?)가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으로 편찬하여, 오늘날까지 세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출처; https://cafe.daum.net/gycenter/Edmk/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