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장 뇌정도갑(雷霆刀甲)의 비밀(秘密)
콰아아앙!
화드드득!
거대한 굉음과 함께 수십장 높이의 석벽이 한 순간에 허물어져 내렸다. 강인한 화강암의 석
벽이 흡사 눈이 녹듯 일제히 모래로 부서져 내리는 것이다. 실로 가공할 광경이었다.
그와 함께,
"와! 밖이네!"
붕괴된 석벽의 뒤쪽에서 해맑은 소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뚜벅! 뚜벅!
발자국 소리와 함께 하나의 그림자가 무너진 석벽의 깊은 안쪽에서 나타났다.
전신이 온통 피투성이인 청년이넜는데 그 청년의 한 팔에는 금발의 인형 같은 귀여운 소녀
가 안겨 있었다.
무영과 금붕공주 파사, 바로 그들이었다.
"보아요, 아저씨! 노을이야!"
파사는 떠들썩하게 교성을 토하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의 귀여운 옥용은 몰라보게 밝아져 있었다.
무영은 천년삼존의 무덤 안에서 열흘 간을 보냈다.
그 사이 금붕공주 파사와는 친남매같이 친해졌다.
한바탕 시련이 지난지라 파사는 다시 열 두 살짜리 귀엽고 말많은 소녀로 돌아와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스으…… 스으……
황홀한 노을이 막 진홍빛으로 불타오르며 무영과 파사를 비추었다.
그들이 지면을 뚫고 나온 곳은 뇌왕애에서 멀지 않은 천균평의 한쪽이었다.
파사는 귀엽고 아름다운 두 눈을 반짝이며 생기에 찬 음성으로 조잘거렸다.
"파사는 노을이 좋아! 노을 만큼 고운 빛은 없으니까!"
그녀는 무영의 목에 가녀린 팔을 둘러 볼을 부벼대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실로 해맑고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무영을 바라보며 맑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노을 만큼 아저씨도 좋아해! 아빠가 허락하기만 하면 파사는 언제까지나 아저
씨와 함께 살 테야!"
그 말에 무영은 유쾌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나도 파사가 아주 좋단다!"
"정말?"
파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확인하듯 물었다.
무영은 물론이라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하 그럼 정말이지 않고!"
그는 상기된 파사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이어,
스---- 읏!
그는 일 보를 내디디며 다시 말했다.
"자! 파사에게 줄 선물이 있다!"
한데, 놀라운 일이었다.
무영이 일 보를 내딛는 순간 천균평의 균열 사이를 스쳐 무려 일천 수백 장 밖으로 나가 있
는 것이 아닌가?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경공이었다.
그곳은 천균평의 깊디깊은 균열 속이었다.
무영은 그 사이를 마치 물 흐르듯 유연한 신법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얼마나 전진했을까?
슥……
무영은 문득 발을 멈추었다.
순간,
"와!"
무엇을 보았는지 파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딱 벌렸다.
그들의 전면, 하나의 벽이 가로놓여져 있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 벽면 전체는 투명한 얼음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지심의 깊은 곳에서 솟구친 지극한기가 얼음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그 얼음벽 속에 수십 장 크기의 황금빛 물체가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을 본 파사는 기쁨을 금치 못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금…… 붕(金鵬)이야! 저것은 금붕지존 할아버지가 타고 다니셨던 대막금붕(大漠金鵬)이
야!"
이어, 그녀는 무영의 품에서 뛰어내려 곧장 얼음벽을 향해 달려갔다.
거대한 황금빛 물체, 그것은 바로 대막금붕이었다.
8-만금지왕(萬禽之王) 대막금붕(大漠金鵬)!
그것은 실로 놀랍도록 거대했다. 앉아 있는 높이만도 무려 이십여 장에 가까운 거구였다.
천 년 전, 금붕지존을 태우고 천마성전 위로 날아가다가 십대겁황이 일으킨 강기의 돌풍에
휘말려 대막금붕은 이곳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추락하는 순간 지극한기의 폭발로 인해 그대
로 얼어붙어 버린 것이었다.
얼음벽 앞에 우뚝 선 무영은 대막금붕을 향해 슬쩍 우수를 쳐들었다.
"뇌왕(雷王)의 뜻이다 녹아랏!"
순간,
쩌---- 저적!
콰아아아앙----!
그의 손 끝에서 거창한 낙뢰가 일어나 빙벽을 무섭게 휩쓸었다.
-뇌정천강(雷霆天剛)!
겁황의 최후최강의 무적마력이 천 년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다음 순간, 실로 엄청난 광경이 벌어졌다.
찌지직----!
츠츠츠츳!
가공스럽게도 빙벽 전체가 수증기로 화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뇌정천강의 뇌정지기가 너무나 극강하여 수마장에 이르는 얼음벽조차 견디지 못하고 기화해
버린 것이었다.
"와!'
이 놀라운 광경에 파사는 손뼉을 치며 탄성을 올렸다.
석벽이 있던 자리, 거대한 얼음벽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대막금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구우우……!
대막금붕의 타는 듯 거대한 부리 사이로 나직하나 웅혼한 붕음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
파사의 두 눈이 놀라움과 경이로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는 뒤로 주춤주첨 물러서며 무영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흥분과 환희에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보…… 보아요! 대막금붕이 깨어나고 있어요!"
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하게 미소지었다.
"후훗! 그렇구나, 파사. 내가 네게 주려는 선물은 바로 저놈이란다!"
이어, 그는 파사를 번쩍 안아들고 서서히 생기를 되찾고 있는 대막금붕에게로 다가갔다.
걸음을 옮기며 그는 파사에게 말했다.
"파사는…… 대막의 여왕이 되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단다. 저 놈은 그런 파사의 수호신
이 되어 줄 것이다!"
이윽고, 그는 대막금붕의 앞에 이르러 우뚝 멈추어섰다.
스으…… 스으……
찬란하고 황홀한 노을이 그곳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천 년 만에 비로소 깨어나는 대막금붕!
그 신비하고 경이로운 모습 위로 노을빛은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뇌왕애(雷王崖)!
천 년의 대지……
그곳에서 겁황의 신화가 부활하고 만금지왕 대막금붕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 * *
휘리리링----!
쓰쓰쓰……
바람(風), 맹렬한 모랫바람이 끝없는 회오리를 일으키며 대막의 거친 땅을 휩쓸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 모래 바람 속에 하나의 거대한 석성의 그림자가 신기루같이 떠올랐다. 끝
이 보이지 않는 성체에 둘러싸인 장엄한 석성(石城)……!
그것은 실로 장관이었다.
석성(石城)의 성루 위, 한 마리 금붕(金鵬)이 정교하게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대막금붕성(大漠金鵬城)!
바로 대막금붕성이었다.
천 년 대막무림의 지배자인 대막금붕성은 겁황대전 이후 천 년 간 모래바람 속에 잠들었다
가 백여 년 전부터 다시 그 웅자를 드러낸 것이었다.
변황의 절대자, 대막금붕성!
황혼 무렵,
따각따각……!
맹렬하게 몰아치는 사풍(沙風)을 뚫고 한 필의 거마가 대막금붕성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보통말보다 두 배 가량 더 큰 거구의 신마(神馬),
철골금강총(徹骨金剛 )!
바로 대막삼보 중 철마라 불리는 신마였다.
철골금강총 위에는 일남일녀가 타고 있었다.
물론 무영과 금붕공주 파사였다.
"……!"
무영은 한 손에는 패왕천극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파사를 안은 채 눈앞으로 다가서는 대막
금붕성을 주시하고 있었다.
위---- 이잉!
무영의 주위 일 장 내로는 모랫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몸 주위로 강력한 호
신강기가 흐르는 탓이었다.
이때였다.
"공…… 공주님이시다!"
"파사 공주님이 돌아오셨다! 성문을 열어라!"
무영과 파사의 모습이 가까와지자 대막금붕성의 성루 위에서 한바탕 대소란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그그그긍----!
거대하고 육중한 성문이 굉음과 함께 열렸다. 그리고 열려진 성문 앞으로부터 수십 장에 이
르는 철교가 내려졌다.
스으…… 스으……
대막금붕성의 주위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죽음의 유사(流沙)가 흐르고 있었다.
따라서, 철교가 내려지지 않으면 누구도 대막금붕성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때,
"공주님……!"
"아!"
스스슥!
쐐---- 액!
대막금붕성의 성문 안에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분분히 날아 무영과 파사를 향해 달려왔다.
이윽고, 철골금강총에 탄 무영과 파사는 대막금붕성의 가신들에게 둘러싸여 성 안으로 들어
갔다.
그그그긍----!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내려졌던 철교가 다시 올려지며 성문이 닫혔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구우우……!
사풍이 휘몰아치는 대막의 아득한 천공으로 한 마리 거대한 황금빛 대붕조가 맴돌고 있는
것을……
또한, 그 황금빛 대붕조가 지금까지 무영과 파사를 허공에서 엄호하며 대과벽에서 날아왔음
을……
<금붕군림전(金鵬君臨殿).>
대막금붕성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거대한 석전(石殿)은 대막금붕성주 대막천존 붕극형의
집무실이었다.
화려한 실내,
"……!"
"……!"
이 인(二人)이 마주 앉아 있었다.
바로 방금 이곳으로 안내된 무영과 대막천존 붕극형이었다.
대막천존은 혈왕 나백과의 충돌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 안색이 파리해 보였다. 하지만
절대종사의 기도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
그는 감격한 눈으로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거구 안, 금붕공주 파사가 태평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고양이 같이 몸을 웅크리고
잠든 파사는 일단의 고난을 겪으며 정신적 피로가 심한 듯 틈만 나면 어디서든 잠에 빠져들
곤 했다.
"고맙네 도수!"
대막천존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기질이 강한 장부로서 입바른 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고맙다는
그의 말 한 마디 속에 모든 감정이 다 들어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무영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파사를 지켜준 은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본좌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
이든 하여 그대에게 보답하고 싶네!"
무영은 그 말에 싱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만… 소생은 귀성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뇌정도갑(雷霆刀甲)을
한 번 보았으면 합니다!"
"뇌정도갑을……?"
대막천존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비록 그것이 겁황의 유물이라 하나…… 보잘것 없는 도갑(刀甲)에 불과하네. 무엇 때문에
그것을 보자고 하는가? 금붕성검을 달라고 하면 줄 수도 있거늘……!"
대막천존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무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뇌정도갑에는 천마겁황이 남긴 지존팔마결 중 서열 삼 위의 초마공
지존마후(至尊魔吼)가 깊숙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순간,
"지존마후!"
대막천존은 아연한 신색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보잘것없는 골동품으로만 여겨왔던 뇌정도갑, 그 안에 겁황절기 중 서열 삼 위의 절기가 감
추어져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데,
'흐흐 이거 의외의 비밀을 알았는데……!'
스으……
소리없이 금붕군림전에서 멀어지는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대막금붕성의 병탄을 실패하여 혈왕 저하의 질책이 두려웠는데……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되
었구나!'
그 인물은 득의의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신속히 금붕군림전에서 멀어졌다.
'겁황의 지존팔마결 중 하나를 얻어 돌아가면 혈왕저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득의의 미소를 흘리며 사라지는 인영은 금시천붕 붕천리, 바로 그였다
* * *
밤(夜),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이었다.
스읏!
유령인 듯 하나의 인영이 소리없이 한 석실 앞에 내려섰다.
-천세기병전(千世奇兵殿).
그곳은 대막금붕성의 각종 보물과 병기를 보관하는 창고였다.
'흐흣 도수 무영! 대막천존 붕극형! 내일 아침 뇌정도갑이 사라진 것을 알면 길길이 날뛰겠
지?'
은밀한 도둑고양이같이 천세기병전 앞에 나타난 야행인은 득의의 눈빛으로 히죽 웃었다.
이어,
철---- 컥!
그는 되도록이면 소리를 죽이며 천세기병전의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깜깜한 어둠 속
으로 수많은 병기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야행인은 이미 뇌정도갑이 놓여져 있는 위치를 알고 있는 듯했다.
'이쯤에 있을 텐데……'
그는 어둠 속을 더듬어 한쪽의 시렁으로 다가갔다.
한데, 그곳을 살피던 야행인의 안색이 홱 변했다.
'엇! 없다. 분명 여기 있었는데……'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하며 내심 부르짖었다. 분명 그 자리에 있어야할 뇌정도갑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는 곤혹함에 어쩔 줄 몰랐다.
한데 그때,
"후훗! 이것을 찾고 있는가, 붕천리?"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스산한 음성이 들렸다.
동시에,
팟!
소리와 함께 하나의 화섭자가 켜지며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순간,
"헉! 너… 너는 도수 무영!"
야행인, 즉 금시천붕 붕천리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석실의 한쪽, 무영이 유령같이 우뚝 선 채 히죽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에 한 자루 녹슨
도갑(刀甲)이 들려 있었다.
표면에 복잡한 아수라(阿修羅)의 문양과 뇌정흔(雷霆痕)이 새겨진 낡은 칼집이었다.
뇌정도갑(雷霆刀甲)!
그 칼집이 바로 겁황의 애병 뇌정마도의 도갑인 뇌정도갑이었다.
'함정……!'
붕천리는 일순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적반하장이라던가?
"도수 무영! 이곳이 어디라고 잠입하여 겁황유물에 손을 대려느냐?"
그는 도리어 폭갈을 내지르며 무영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무영은 실소를 터뜨렸다.
"임기응변이…… 빠르군, 붕천리! 아니 혈왕일호라고 불러야겠지?"
그는 붕천리의 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순간 붕천리는 당황한 듯 안색이 벌겋게 변했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 혈왕일호(血王一號)라니……?"
무영은 차갑게 잘라 말했다.
"당신에게 만나게 해 주고 싶은 인물이 있지!"
이어, 그는 한쪽의 시렁 뒤로 손짓을 보냈다.
순간,
"바득! 혈왕의 개! 나를 모른다고는 않겠지?"
지독한 원한으로 뒤엉킨 음성이 붕천리의 귓전으로 울렸다. 그와 함께 한 명의 건장한 청년
이 시렁 뒤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상체와 머리를 온통 흰 천으로 둘둘 감은 청년이었다.
그를 본 순간, 붕천리의 안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천리신안(千里神眼)! 죽지 않았단 말인가?'
쿵쿵……!
붕천리, 아니 혈왕일호는 흡사 귀신을 만난 듯 뒤로 비칠 물러섰다.
천리신안(千里神眼)!
그렇다. 나타난 청년은 바로 뇌왕애에서 혈왕일호가 단애 아래로 던져버린 금붕십왕의 막내
였다.
그는 천행으로 죽지 않았고 사경을 헤매는 그를 무영이 구해 은밀하게 대막금붕성으로 호송
한 것이었다.
혈왕일호는 교활한 눈을 빛내며 빠륵 염두를 굴렸다.
'다…… 틀렸다! 달아나야 한다!'
생각을 마친 순간,
팟!
그는 벼락같이 천세기병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무영은 동정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 가엾은 친구같으니...! 내 말이나 마저 듣고 나갈 것이지! 문 밖에 무서운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그때였다.
"크---- 악!"
천세기병전의 밖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쿠---- 웅!
밖으로 뛰쳐나갔던 혈왕일호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퉁겨져 들어왔다.
어느 새 그의 양팔은 어깨에서부터 싹둑 잘려나가고 없었다. 잘려진 어깨에서는 뜨거운 피
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 천존(天尊)!"
혈왕일호는 몸을 비틀거리며 공포의 표정을 경련했다.
이때,
뚜벅……!
한 명의 거한이 천세기병전의 문을 가득 메울 듯 들어섰다. 한 손에 황금빛 고검(古劍)을 들
고 두 눈에 무서운 신광을 토해내는 거인(巨人)은 대막천존 붕극형, 바로 그였다.
"대막금붕성을 우롱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혈왕의 졸개!"
대막천존은 사신같이 우뚝 버티고 선 채 혈왕일호를 노려보았다.
"으……!"
혈왕일호는 전신을 부르르 경련하며 공포에 질렸다.
대막천존의 두 눈이 무섭도록 냉랭하게 굳어졌다.
"다른 것은 그래도 용서할 수 있으나... 파사를 유괴하여 노예로 팔아 버린 일은 결코 용서
할 수 없다!"
이어,
뚜벅……!
그는 육중한 산(山)이 움직이듯 한 걸음 혈왕일호의 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혈왕일호는 질끈 입술을 악물었다.
"빌어…… 먹을!"
퍼---- 억!
쿠웅----!
둔음과 함께 그는 오공(五空)에서 분수처럼 피를 폭출하며 쓰러졌다. 스스로 심맥을 끊어 버
린 것이었다.
"흐흐흐! 승....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혈왕 저하는…… 너희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
한 분이시다!"
그는 그 말과 함께 히죽 웃으며 절명했다.
그 모습에 무영은 고개를 흔들며 탄식했다.
"지독한 자로군!"
이어, 그는 대막천존에게 뇌정도갑을 내밀었다.
"잘 보았습니다! 성주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이미 그 중에 감춰진 지존마후(至尊魔吼)의 구결을 찾아낸 상태였다.
한데, 대막천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받지 않겠네!"
무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찌 받지 않으십니까? 이것은 성주의 선조 금붕지존께서 적신마교를 멸하여 얻은 전리품
아닙니까?"
하지만 대막천존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네! 그것은 아주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네…… 그래서 본좌는 그것을 자네에게 예물로
줄 작정을 했네!"
"예물?"
무영의 안면이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에 이지러졌다.
대막천존은 그런 무영을 째려보았다.
"천마성전을 찾기 위해서 파사의 알몸을 보았을 것이 아닌가? 자네 설마 숫처녀 아이의 볼
곳 못볼 곳을 다보고 아제와서 발뺌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는 다짜고짜 무영을 윽박질렀다.
무영은 그만 어이가 없어 입이 딱 벌어졌다.
'숫… 처녀라고? 이제 겨우 열두 살짜리 꼬마 계집아이를……?'
이는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이 아닌가?
하나 그때, 무영의 귓전으로 대막천존의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알아서 하게! 만일 파사를 데리고 살지 않겠다면…… 본성 십만 금붕전사(金鵬戰士)를 몽땅
중원에 풀어 놓아 난장판을 만들 테니……!"
그는 금붕성검을 쓰다듬으며 음악하게 웃었다.
"마침 본성의 지존신병을 회수하여 천년금제도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중원을 침공해 볼
까?"
순간, 무영은 대막천존의 앞에 납짝 엎드려 큰소리로 외쳤다.
"어이쿠! 제발 그것 만은 참아 주십시오. 저로 인해 중원이 침공당하면 소생은 우혜라는 사
나운 마누라에게 맞아 죽고 말 것입니다!"
* * *
-혈왕문(血王門)!
그 이름은 천하무림을 공포와 혼돈 속에 몰아넣었다.
저 삼무신 중 혈왕의 후예들……
가공스런 잠력으로 일어나 그들은 일시에 천하를 휩쓸었다. 그들은 천 년 고심의 천마성전
을 무너뜨렸으며, 그리고도 다시 무림을 제패하기 위해 천 년 동안 힘을 길러왔다.
가공(可恐)…… 무적(無敵)!
그들의 위세는 그 두 마디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천 년 동안 길러온 혈왕문의 거대한 저력, 그것에는 천하의 그 어떤 강자나 강파도 견디
지 못했다.
그리고, 혈왕문(血王門)이 현세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구주팔황의 일 천 군데에서 일천 개
방파가 일어나 삽시에 주위의 문파들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혈마일천종횡련(血魔一千縱橫聯)!
이것이 그들 일천문파의 이름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천 년 동안 혈왕문(血王門)이 천하에 뿌려 놓은 세력들이었다. 그들은 천
년 간 그늘에서 도사린 채 혈왕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흡사 독사같이……
구주팔황(九州八荒), 사해(四海), 오호(五湖)……
혈마일천종횡련의 마수(魔手)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한 곳은 단 세 곳 뿐이었다.
대막(大漠) 대막금붕성(大漠金鵬城)!
남해(南海) 마황군도(魔皇群島)!
태산(泰山) 팔황마전(八荒魔殿)!
그 세 곳에서만 혈마일천종횡련은 좌절을 당했을 뿐 모든 곳에서 그들은 승리했다.
팔황마전과 함께 혼세이패(混世二覇)라 불리며 강남(江南)을 지배하던 여황성(女皇城)조차도
벌떼같이 몰려드는 혈마일천종횡련에게 무참하게 허물어지고 말았다.
결국 당대 여황성주인 나찰여황(羅刹女皇) 교옥진과 몇 명의 요인들만이 간신히 그곳의 총
단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팔황마전의 저항은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강력하고 완강했다.
다지관음 백리우혜와 불사마후,
그 두 여인의 능력이 합쳐지면서 팔황마전은 그 힘이 열 배나 늘어났다.
그들은 막강한 힘으로 당당히 혈마일천종횡련과 맞섰다.
난세(亂世)!
바야흐로 사상 최악의 난세가 펼쳐진 것이었다.
천하는 핏빛 옷과 핏빛 두건을 두른 혈마전사(血魔戰士)들만이 횡행했다. 그들의 손에 의해
매일 만 명의 무고한 인명이 살상되었다.
대막금붕성 등 삼대강파가 혈왕문에 맞서고 있었으나 그들조차 혈왕문의 총본영의 정예들이
출동하면 백 일을 버티지 못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게 가장 공포스럽고 가장 암울한 겨울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