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의하였던 강의안입니다.
두 짐승과 짐승의 표
- 요한계시록 13장 -
1. 13장의 요약
1-10절 바다에서 나온 짐승
11-15절 땅에서 나온 짐승
16-18절 짐승의 표
2. 개요
요한계시록 13장은 짐승의 장이라고 부른다.
13장에서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을 언급하고 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졌는데,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씌워져 있었고, 그 머리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어린 양과 같이 두 뿔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하는 말은 마치 용처럼 하였다.
이 두 짐승은 각각 자기의 때에 등장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하고,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하며, 짐승의 표를 받게 하면서, 마흔 두 달 동안 이 세상을 통치하게 된다.
3. 요한계시록 13장 본문 강해
첫째, 짐승에 대해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나오고 있다.
1절에서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11절에서는 땅에서 나온 짐승이 등장한다.
1절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머리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11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과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이 두 짐승의 공통점은 둘 다 같은 짐승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은 그 출신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는 바다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땅에서 나온다.
이 짐승이라는 단어 ‘데리온’은 본래 ‘야생동물’이나 ‘들에 사는 크고 사나운 동물’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두 짐승은 야생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짐승이라 한 이유
사람을 짐승이라 한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진 포악하고 잔인한 기질 때문이다.
플라톤 이후 이 ‘데리온’은 은유적으로 사용되어서 짐승과 같이 포악하고 사악한 사람, 잔인하고 무지비한 사람에게 사용되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예로 히틀러, 네로,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 등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진짜 짐승이라는 말은 아니다. 마치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포악하고 잔인하게 된 이유?
짐승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데리온’의 어원은 ‘데라’인데, 이 ‘데라’는 짐승 중에서도 사냥감으로서의 짐승을 말한다. ‘사냥꾼이 덫을 놓아서 사로잡거나 생포하거나 포획한 짐승’이라는 뜻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이 짐승(데리온)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사냥꾼에게 사로잡혀서 포악하고 잔인한 짐승의 기질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사냥꾼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4장(막1장, 눅4장)을 보면 이 세상 임금인 사단 마귀가(요14:30)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단 마귀는 예수님에게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준다.’(눅4:6)라고 하면서‘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될 것’이라고 하며 거래를 제안한다. 예수님은 사단 마귀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그런데 요한 계시록 13:2절 말씀을 보면 ‘.....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 말씀은 바다에서 나온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진 짐승이 가진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의 배경이 바로 용(사단. 마귀)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사단 마귀가 전에 예수님에게 했던 것과 같은 동일한 거래를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사단 마귀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그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용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못한 것을 알고,(계12:12)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나 땅에서 나온 짐승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사단 마귀와의 모종의 거래를 하여서 자신들은 사단 마귀를 경배하는 자가 되고, 그 대가로 사단 마귀가 주는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받았다. 그 결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용에게 사로 잡혀 살아가는 짐승이 되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을 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용처럼 말을 하며 용이 준 권세로 심지어 이적을 행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게 된다.
둘째, 바다와 땅에 대해
이 두 짐승은 바다에서 나오고 땅에서 나왔다고 한다. 바다와 땅은 이 세상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❶ 이 세상은 본래 땅 위에 바다 물이 덮여 있는 상태로 창조되었다.
창세기 1:2, 9-10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사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❷ 하나님께서는 바다 속에 있던 땅이 솟아나게 하심으로 땅을 만드셨다.(창1:9-10) 이렇게 만들어진 땅은 처음에는 하나였다. 그 땅 주변을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창2:8-14)
❸ 노아의 홍수 때 하늘의 창이 열리고 깊음의 샘이 터지면서 발생하였던 지각 변동에 의해 오늘날과 같이 오대양 육대주가 되었다. 이 오대양 육대주를 컴퓨터로 다시 한 곳으로 모아보면 마치 흩어진 퍼즐이 모아지듯이 그렇게 정확하게 하나로 모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우주는 작은 한 점에서 대폭발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빅뱅이론이다. 과학자들은 불덩어리였던 땅이 식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지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 지구에는 물이 없었다고 본다.
그러면 지금 있는 이 많은 물은 어디서 왔는가? 과학자들은 그 대답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 대답을 우주에서 찾았다. 물을 가지고 있는 유성들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지구에 물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유성들은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거의 다 불타버린다.
유성들이 혹 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그 물은 다 증발해 버린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또 머리를 짜고 짜내어서 이런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물을 가진 유성들이 단단한 물질에 쌓여 있어서 대기권을 통과할 때 불타지도 않고 그 안에 가지고 있던 물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구로 물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렇게 물이 공급 되고 공급되어서 오늘날과 같은 지구환경이 조성 되었다고 한다.
지구에 있는 물의 양은 1.36 × 10에 21승이라고 한다.
이 많은 물들을 물을 가진 유성들이 지구에 떨어지면서 공급하였다는 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는 지구에 물이 있게 된 것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 지금까지도 과학자들은 유성에 의해 물이 공급되었다고 설명한다.
바다와 땅의 비율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실 때 바다와 땅의 비율을 7:3으로 조성해 두셨다.
바다가 70%라면 땅이 30%이다. 이 바다와 땅의 비율은 지구에 사람과 동식물들이 살 수 있게 해 주는 황금비율이라고 한다. 만약 바다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수증기가 증가하여 지구는 온통 습지로 변하게 되고, 만약 바다가 지금보다 조금 줄어들게 되면 수증기 양이 감소하여 지구는 온통 사막이 된다고 한다.
정치와 종교의 영향력
바다와 땅의 크기는 바다와 땅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다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7이라면 땅이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3이다.
이렇게 바다와 땅이 지구에 영향력을 미치듯이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큰 두 세력이 있다.
하나는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이다. 이 중에서 정치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신 더 크다. 정치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7이라고 하면, 종교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3이다. 이렇게 보면 바다는 정치를 말하고, 땅은 종교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요한계시록 13:1절에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정치지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치지도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요한계시록 13:11절에서 ‘땅에서 나온 짐승’은 종교지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종교 지도자를 거짓선지자라고 한다.
이 둘은 짐승이라는 점에서 같다.
다른 점은 그 출신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는 정치계에서 나온 지도자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계에서 나온 지도자이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세상에서 70%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 지도자인 적그리스도이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세상에서 30%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종교지도자인 거짓 선지자이다. 이 두 짐승(데리온)은 단수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짐승들은 특정한 시기에 나타나서 활동하게 될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셋째, 짐승과 성도의 비교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은 사람이다.
사냥꾼에게 사로잡히고 포획되어서 짐승이 된 사람이다. 결과 그 머리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으며, 사단 마귀를 따라 용처럼 말하고, 짐승과 그 우상을 경배하게 하며, 짐승에게 받은 권세를 행하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
성도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게 사로 잡혀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사랑의 말을 하며 살아간다.
문1) 성도와 짐승의 차이점
성경은 사람들을 그릇이라고 한다.
그릇은 그릇 그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그릇 안에 담긴 내용물이 그 정체성을 결정한다. 어떤 그릇에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된다.
사람도 이와 같다.
사람의 정체성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그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사느냐 하는 것에 의해 그 존재와 정체성이 결정된다.
성도들과 바다와 땅에서 나온 짐승은 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다.
그 주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믿음이 다르고, 그 하는 말이 다르고, 그 살아가는 삶이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안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라고 하셨다.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그 마음 안에 사단 마귀가 있는 사람들은 용처럼 말을 하게 되어 있다. 그 하는 말을 보고 그 살아가는 삶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이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고, 용처럼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신천지 이만희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우리는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유혹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사람들도 다 용에게 사로잡힌 자들임을 알 수 있다. 통일교의 문선명이 하는 말이나 천부교의 박태선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그런 유혹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사람들도 다 용에게 사로잡힌 자들임을 알 수 있다. 13:8절 /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열심당원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가롯 유다이다. 가롯 유다가 속해 있었던 열심당의 원리는 바로 이 세상의 원리, 짐승의 원리이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셨던 원리는 하나님의 원리였다. 짐승의 원리와 하나님의 원리가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롯 유다는 배신자가 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사는 원리와 예수님이 가지셨던 원리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는 자기 길을 간 것이다.
가룟유다를 보면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슨 삶의 원리를 따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계시해 주신 원리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좁은 길을 걸어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 말씀의 인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들은 다 마귀가 주관하는 원리이다.
성도와 짐승은 다 같은 사람이다.
그 차이는 누구에게 사로 잡혀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의 차이이다. 하나님께 사로잡혀 살면 성도가 되지만 사단 마귀에게 사로잡혀 살면 짐승이 된다. 그 사람이 특별히 선한 사람이어서 성도가 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특별히 악한 사람이어서 짐승이 된 것도 아니다. 그 마음 안에 모시고 사는 대상에 따라서 짐승이 되기도 하고 성도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될 수도 있고 가롯 유다가 될 수도 있다. 베드로는 성령이 그 마음 안에 충만 하여서 베드로가 되었고 가롯 유다는 마귀가 그 마음 안에 들어감으로 스승을 배반하고 파는 제자가 되었다.
문2) 천국 백성과 지옥백성의 차이점
그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천국백성이다.
그 마음 안에 사단 마귀가 거하고 세상과 그 영광을 목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옥백성들이다.
부자청년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장차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기를 소원한다.
복음서를 보면 한 부자 청년도 이런 소원을 가지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방법을 물으려고 예수님에게 나왔다. 이 청년에게 한 예수님의 요구는 ‘내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의 제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물러갔다.’고 한다.
이 청년은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며 살고 싶어 했지만 그 천국을 얻기 위하여 세상에서 가치 있는 많은 재물을 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다. 이 청년에게는 천국에 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도 있었지만 물질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더 큰 마음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청년이 돌아 간 후에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나?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 삶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던 것이다.
진주 비유
천국 비유 중에 ‘진주 비유’가 있다.
값진 진주를 구하는 어떤 사람이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에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다고 한다.
이 말씀은 조금 이상하다.
성경은 어떤 사람이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 그 진주를 샀는데 그 진주의 값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고 다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값진 진주를 샀다고 한다.
이 말씀은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양은 각각 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소유를 다 팔면 수십억 수백억이 넘는 재산가 일수도 있고 그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몇 백 만원 되지 않는 가난한 사람도 있다.
그 발견한 진주가 정말 값진 진주라면 그 값이 엄청나게 비쌀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어떤 사람이 그 발견한 값진 진주를 사려고 100억이 넘는 돈을 지불하였다.’ 이렇게 해야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진주를 사기 위해서 지불한 돈의 액수를 보고 그 진주가 정말 값진 진주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진주비유에서는 사람들의 빈부귀천을 전혀 개의치 않고 진주를 사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다고만 한다.
예수님이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 진주는 세상에 있는 그런 진주가 아니고 천국을 진주에 비유하여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천국이라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그 천국을 자기의 것으로 사려고 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천국이라는 진주를 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천국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물의 양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다 지불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자 청년은 어떻게 했나?
부자 청년은 천국이라는 진주를 발견하고도 재물에 대한 욕망과 탐욕 때문에 그 천국을 사지 못했다. 제자들은 어떻게 했나?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그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산 사람과 같이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다. 그래서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다.
문제3) 참 신앙과 거짓된 신앙의 차이
참 신앙과 거짓된 신앙의 차이가 무엇인가?
참 신앙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믿는 신앙이다. 성경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 희생과 헌신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신앙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이런 이해를 가지게 되면 예수님께서 왜 많은 양의 돈을 가지고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연보하였던 많은 부자들의 헌신을 인정해 주지 않으시고, 그 전 재산이 두 렙 돈뿐이었던 한 가난한 과부가 드린 구제헌금을 그렇게 높이 인정해 주셨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신앙은 그 헌신과 희생의 양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섬기는 질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세상이 주는 부도 함께 취하고 누리고자 하는 구복신앙이나, 하나님을 믿고 그 능력을 의지하며 살지만 세상 속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권세와 영광도 함께 취하고자 하는 신사도주의 신앙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신앙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참되고 진실한 신앙이라면 그 신앙을 위해 전 인격을 바치고 전 삶을 바쳐서 믿는 신앙이어야 한다. 이런 신앙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신앙이다.
양다리 걸친 신앙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양다리 걸친 신앙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신앙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다.
진주의 비유에서 어떤 사람이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서 그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천국이라는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신앙이 우리들이 가진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믿는 신앙
찬송가 94장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이 있다. 그 가사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이 찬송시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 같아 보이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 천국을 산 사람 같아 보이는가? 아니면 자신의 소유 중 일부를 팔아서 천국을 소유하려고 한 사람 같아 보이는가?
또 아브라함은 어떻게 보이고, 기생 라합은 어떻게 보이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 하신 요구는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마지막 요구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하는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아들이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친다. 성경은 당시 가졌던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느니라.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기생 라합은 어떠한가?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낸 정탐꾼을 대면하면서, 우상을 섬기며 사는 동족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자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편에 서기로 결단한다. 기생 라합의 믿음의 결단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가?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나 기생 라합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다.
부자 청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부 베드로는 그렇게 했다. 베드로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그 발견한 천국 진주를 산 사람이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믿는 신앙이 참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정리))) 참된 신앙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믿는 신앙이다. 거짓된 신앙은 양다리 걸친 신앙이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대단히 충성된 사람인데도 예수님이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7: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주님을 위해 충성하며 헌신을 하였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그런데 23절 말씀을 보면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을 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셨다. 이 불법이라는 단어 ‘이노미아’는 법이 없음, 법을 위반한 것을 말한다. 이런 불법은 신앙이 없는 이교생활의 특성으로 묘사된다. 이렇게 볼 때 이 사람들은 참 믿음의 사람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 2:7절에서 불법의 비밀은 사단의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사람들은 전형적인 양다리 걸친 신앙, 다른 말로 하면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을 가졌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신앙이 아니다. 이단들이 가진 신앙이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이다. 고전 13:1이하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앙, 희생과 헌신은 컸으나 사랑이 없는 신앙 또한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이다.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도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신앙이다. 니고데모가 가졌던 신앙도 거듭나지 않은 신앙,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이다.
요한복음 3장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보면서 천국이라는 진주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밤에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께 자기가 가진 신앙을 고백한다. 이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요한복음 3:3절 말씀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천국에 가려고 하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다.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 아니냐?’ 라고 하시면서 두 가지 말씀을 주셨다. 하나는 니고데모가 잘 알고 있는 구약성경에 있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니고데모가 모르는 인자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니고데모 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씀은(예수님이 죽으셔야 한다는 말씀은) 전혀 모르는 말씀이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고난 받는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마리아는 예수님이 장사를 위해 귀한 옥합 깨뜨렸다.(요12:3,7)
예수님이 이상의 말씀을 하신 후에 주신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3:16절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는데, 독생자 죽음에 내어 주실 정도로 사랑하셨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 즉 ‘이는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알고 믿는 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진주를 사는 사람이 된다. 아멘. 이런 사람은 멸망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 천국 들어가게 된다.
니고데모의 이후의 삶
1. 요한복음 3장 / 1-2절 - 밤에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서 자신이 가진 신앙을 고백하였다.
2. 요한복음 7장 / 51절 – 예수님을 적대시 하는 산헤드린 안에서 예수님을 변호하였다.
3. 요한복음 19장 / 39절 – 아리마대 요셉이 변화하여 예수님 장사하려고 그 시체 달라고 하였다.
니고데모 예수님 죽으실 것 대비하여 몰약과 침향 썩은 것을 백리트라 쯤 준 비했다.(이 두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천국을 산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모세의 구리 뱀 사건을 말씀하신 후에 인자가 마치 구리 뱀처럼 들려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통해서는 이 사건은 죄악 된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를 믿는 사람들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니고데모는 당시 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전도사역을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다가 예수님이 그 말씀하시던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보고 범죄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 범죄한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어 준다. 이렇게 니고데모는 천국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다 팔아 천국을 산 사람이 되었다. 니고데모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니고데모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 버려도 나 혼자라도 이 신앙을 지킨다는 각오로 나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였고 아리마대 요셉이었다.
((추가로 살펴볼 문제)) 하나님의 인 맞은 144.000에 대해
모든 이단들의 특징은 자기들이 144,000으로 선택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신들만 구원 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전 3년 반 | 후 3년 반 | |
인 재 앙 | 나 팔 재 앙 | (화:황충) (화:유브라데) (화:대접재앙) |
이방인의 때(교회시대) | 유대인의 때 한 이레 | |
일곱 교회 사자 | 두 증인의 활동시기 | 예비 처 시기 |
교 회 시 대 → ← 7년 환난의 시대 →
이 사람들의 잘못이 무엇인가?
➀ 때를 잘못 알고 있다.
이단들은 나팔재앙의 시대인 전 3년 반 동안 두 증인으로 활동하게 될 이 144,000명을, 그보다 앞선 시대인 교회시대의 일이라도 되는 양 전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단들은 이 144,000명을 100년 전부터 전해 오기도 했다. 미안하게도 교회 시대인 지금은 그 때가 아니다. 지금은 짐승의 표가 아직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대이듯이, 지금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시대이다. 144,000명이 하나님의 인을 맞고 활동하는 때는 아직 미래에 있을 일이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때를 헛집은 것이다.
➁ 사명이 인을 구원의 인으로 해석한다.
이단들은 144,000명이 받게 될 하나님의 인을 구원의 인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자기들의 무리에 들어와서 이 144,000에 포함되라고 한다. 구원의 인은 성령의 인이지 하나님의 인이 아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그 그룹에 들어오면 구원받는 성도의 숫자인 144,000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님의 인은 장차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에게 주시는 사명의 인이다.
➂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이단들은 144,000으로 부르심을 받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계14:4-5)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자격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144,000에 들 수 없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이 자격조건은 구원을 받게 되는 조건이 아니다. 마지막 환난의 시대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게 될 사명 자들에 관한 자격 조건이다.
144,000은 마지막 시대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단들은 이 하나님의 인을 구원의 인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을 미혹한다. 또 그 활동시기가 장차 도래할 환난 기 전반부인 전 3년 반 1,260일 동안에 있을 일인데 교회 시대인 지금의 일이며 지금이 그 때라고 전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자격 조건을 애써 무시하면서, 하나님이 정하신 자격 조건을 갖추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까지 144,000에 들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부인하고 변개하는 것이다.
전에 박태선과 문선명이 이런 주장을 하다가 죽어갔다.
지금은 이만희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죽어가고 있다. 거의 모든 이단들은 이 144,000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 이렇게 미혹하는 사람들도 사단에게 포획되어 사로잡힌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미혹을 당하는 사람들 역시 사단에게 포획되어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지금은 곧 인 재앙이 시작되게 될 교회시대이다.
이단들은 때를 기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팔 재앙의 시대에 있을 일들을 지금 교회 시대의 일로 알고 전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교회 시대 끝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 재앙이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교회 시대에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앞으로 이 인 재앙이 떨어지는 시대에도 목회를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우리는 인 재앙이 떨어질 때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첫째 인이 떼어질 때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이미 각종 이단들이 이기고 또 이기고 있지 않은가? 이단들은 교회 깃발만 꽂아 놓으면 적게는 수 만 명, 많게는 수십 만 명이 모인다. 그런데 우리 개척교회는 단 한 사람을 교회로 이끌기도 쉽지 않다. 이것은 이 시대가 미혹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단들보다 설교를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시대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미혹의 시대이기 때문에 거짓선지자들이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고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첫째 인이 떨어지고 있는 시대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목회 현실이다.
둘째 인이 떼어질 때 나라와 나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셋째 인이 떼어질 때 극심한 기근의 때가 올 것이라고 한다.
넷째 인이 떼어질 때 상상을 초월하는 온역이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땅 1/4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한다.
다섯째 인이 떼어질 때 그 억울함을 신원해 달라고 하는 순교자들의 호소가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해 달 별 등등의 천 체계에 이상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로 세움 받은 목회자의 고민이 우리에게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슨 설교를 해야 하는가?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목회자들에는 이런 고민이 있다. 우리는 어쩌면 구약시대 선지자들과 같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전개될 이런 상황들을 예측하면서 선지 서들을 많이 읽어 두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4. 바다에서 나온 짐승
1절 /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등장하는데 그 모습은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진 모습이었다. 그 각각의 뿔에는 열 왕관이 씌워져 있었고 그 머리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이 짐승의 모습은 요한 계시록 12:3절에 등장하는 용 즉 사단 마귀의 모습과 똑 같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자신을 계시하셨듯이 사단의 역사도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으로 삼위일체로 계신다. 사단 마귀도 용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적그리스도)과 땅에서 나온 짐승(거짓 선지자)으로 삼위일체로 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용(사단)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용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하나라는 것이다. 용의 활동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활동이 하나이라는 뜻이다. 바다에서 나온 이 짐승은 철저히 용(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활동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첫째,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졌다는 뜻은
일곱 머리
일곱 머리는 요한계시록 17:9-10절을 보면 여자가 앉은 일곱 산, 일곱 왕, 일곱 나라라고 한다.
요한계시록 17:9-10절입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이렇게 볼 때 이 일곱 머리는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통치하는 세상의 머리가 되는 일곱 나라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두 나라가 공존하고 있다.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머리가 될 나라는 첫째, 이 세상나라들을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정복해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나라 즉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지배하는 머리가 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참고로 몽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 제국을 이루었어도 이스라엘을 정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머리가 되는 나라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을 통일한 거대한 왕조들도 이스라엘을 정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머리가 되는 나라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한 계시록 17장에서는 그 당시에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나라들 중에 ‘이미 다섯 나라가 망하였다.’고 한다. 로마 시대 이전에 세상 나라들과 이스라엘을 정복하였다가 망한 나라들을 거슬러 추적해 올라가보면, 헬라, 메데바사, 바벨론, 앗수르, 애굽 등 다섯 나라가 있다. 당시 존재하고 있었던 한 나라는 로마이다. 아직 이르지 않은 한 나라가 바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나라 곧 종말의 날에 등장하게 될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그 나라이다.
다니엘서 2장에서는 세상의 머리가 될 이 나라들을 순서대로 잘 기록하여 보여주고 있다. (32-33)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다니엘서 2장의 금 머리는 바벨론이고, 은 가슴과 팔은 메데 바사이고, 놋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이다. 여기까지는 망한 나라이다. 쇠 종아리는 로마인데 하나 있는 나라이다. 철과 흙으로 된 발과 발가락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나라인데 아직까지 이르지 않은 나라이다.
역사 | 구약시대 | 신약시대 | 환난시대(7년) | 천년왕국 | ||||
계시록 7:9-10 | 애굽 | 앗수르 | 바벨론 | 메데. 바사 | 헬라 | 로마 | 적그리스도나라 | |
다섯은 망하고 | 하나는 있고 |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않음 | ||||||
다니엘 2:31-35 | 금 머리 | 은 가슴과 두 팔 | 놋 배와 넓적다리 | 쇠 종아리는 | 쇠와 진흙 발과 열 발가락 | 뜨인돌 |
열 뿔
뿔은 왕을 상징하는데(계 17:12, 단 7:24) 뿔이 열이라는 말은 왕이 열 명이라는 말이다.
일곱 머리에 열 뿔이 있다는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보통은 한 머리에 한 뿔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한 머리에 두 뿔이 나온 나라가 있다. 바로 메데 바사 연합국이다. 이 나라는 두 나라가 연합된 나라이기 때문에 두 뿔을 가진 수양으로 묘사되고 있다.(단 8:3-4)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졌다는 말은 일곱 번째 머리가 된 나라는 뿔이 열 개, 즉 열 명의 왕이 연합하여 세운 연합국가라는 뜻이다.
그 각각의 뿔들은 모두가 다 자기 왕관을 쓰고 있다.
이런 나라가 세상에는 흔치 않다. 이와 비슷한 나라가 유럽연합이다. 유럽연합은 지금 열 뿔을 넘어 29개국의 회원국을 가지고 있다. 블랙시트로 영국이 탈퇴하여서 지금은 28개 나라이다. 이런 유럽연합이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진 짐승이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유럽연합이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진 나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리 칩을 주의해서 바라보듯이 유럽연합을 주의해서 바라보고 있다.
일곱 머리 열 뿔
정리하면 일곱 머리 열 뿔은 이 세상의 머리가 될 일곱 나라 중에 일곱 번째 머리가 될 나라이며, 그 나라는 열 명의 왕들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라는 뜻이다. 이 일곱 머리 열 뿔을 로마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로마는 일곱 산 즉 일곱 언덕에서 시작된 나라를 말하며, 열 왕은 로마의 중요한 10명의 왕을 말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장차 될 일’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과거에 지나간 사건이 되어 버린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인류역사의 종말의 날에 있게 될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미래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미래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둘째,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이스라엘의 관계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진 짐승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만약 이스라엘이 없다면 바다에서 나오는 이 짐승의 등장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 세상의 머리가 되는 짐승의 나라가 되려고 하면 반드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나라들을 정복해야 할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정복해야 한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보듯이 인류역사상 일곱 머리에 해당하는 짐승의 나라였던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로마는 다 세상 나라들을 정복하고 또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인류의 머리가 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이 등장하기 이전에 먼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회복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망한 이후에 1,900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다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게 된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독립하므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등장할 무대는 갖추어졌다.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이 등장할 기간에 대한 윤곽도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이때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세상역사는 끝이 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간은 흘러가서 지금은 이스라엘이 독립한지 어언 70년이 되었다. 마지막 짐승이 나올 때가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는 이렇게 임박하게 다가오는 시대 상황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다니엘서 7장에서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 대해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또 보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 같은데 그것이 한 몸을 들었고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가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내가 밤의 환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더라.’(단7:3-8)
다니엘서 7장에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을 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이 있다.
하나는 역사 속에서 연대기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다른 하나는 종말의 날에 있게 될 일들이라는 견해이다.
계17:9-10 | 애굽 | 앗수르 | 바벨론 | 메데. 바사 | 헬라 | 로마 | 적그리스도나라 | |
다섯은 망하고 | 하나는 있고 |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않음 | ||||||
단2:31-35 | 금 머리 | 은 가슴과 두 팔 | 놋 배와 넓적다리 | 쇠 종아리는 | 쇠와 진흙 발과 열 발가락 | 뜨인돌 | ||
단7:2-8 | 사자 독수리 날개 | 곰 몸 한쪽을 들고, 세 갈빗대 물었다. | 표범 등에 네 날개 머리가 넷이다. | 짐승 무섭고 놀라우며 매우 강하고 쇠로 된 입 있었다. |
1) 역사 속에서 연대기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4절 /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이 내용은 바벨론과 느부갓네살 왕을 말한다고 본다.
5절 / ‘또 보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 같은데 그것이 한 몸을 들었고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이 내용은 메데 바사 제국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두 국가가 연합하여 바벨론을 무너뜨렸지만 곧 바사 왕국이 메데 왕국을 들고 지배자가 되었다.
6절 .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가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이 내용은 헬라의 알렉산더가 새의 날개를 받아서 아주 짧은 시간에 세계를 정복한 것과 그의 사후에 네 머리를 중심으로 네 개의 국가로 나누어진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7절 . ‘내가 밤의 환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더라.’
다니엘서 7장을 연대기적으로 해석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이 7절이다.
역사 진행의 순서상으로는 로마가 나와야 하는데, 여기 말씀하고 있는 내용들은 로마 같으면서도 실상은 종말의 때에 있게 될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나라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7장을 해석할 때 적용하는 해석방법이 ‘원근투시 적 해석법’이다.
‘원근투시 적 해석법’이란?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볼 때 두 산은 마치 한 산처럼 겹쳐져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그 두 산 사이에는 굉장한 거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보게 될 때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니엘서 7:7절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초림 때의 로마제국과 예수님의 재림 때에 다시 나타나게 될 부흥 로마제국이 함께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이 두 제국 사이에는 1,500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기록들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다.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안식일에 읽으셨던 이사야서 61장이 바로 그런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읽으실 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까지 읽고 읽기를 그치셨다. 그 이유는 여기까지는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말씀이지만, 이후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로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 있게 될 말씀만 읽으시고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2) 인류역사의 종말의 때 있게 될 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계17:9-10 | 애굽 | 앗수르 | 바벨론 | 메데. 바사 | 헬라 | 로마 | 적그리스도나라 | |
다섯은 망하고 | 하나는 있고 |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않음 | ||||||
단2:31-35 | 금 머리 | 은 가슴과 두 팔 | 놋 배와 넓적다리 | 쇠 종아리는 | 쇠와 진흙 발과 열 발가락 | 뜨인돌 | ||
단7:2-8 | 사자 독수리 날개 곰 몸 한쪽을 들고, 세 갈빗대 물었다. 표범 등에 네 날개 머리가 넷이다. 짐승 무섭고 놀라우며 매우 강하고 쇠로 된 입 있었다. -동 시대의 서로 다른 나라로 본다. |
이렇게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야 한다.
다니엘서 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네 나라는 종말의 날에 세상에서 일어나게 될 네 나라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그 때에 사자, 곰, 표범과 같은 강한 세 나라가 일어나고 또 무섭고 매우 강하고 사나운 짐승과 같은 나라가 일어난다. 이 나라는 쇠로된 이가 있어서 무엇이든지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 나라들은 발로 밟아 버린다. 이 나라가 바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나라이며, 이 나라는 이전에 일어난 모든 짐승의 나라와 다르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왕이 하나인데, 이 나라는 열 뿔을 가진 나라 즉 왕 열 명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이다.
이 네 나라를 이렇게 적용하기도 한다.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를 러시아에, 한쪽 몸을 들고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을 중국에, 표범 등에 네 날개를 가지고 머리가 넷인 표범을 미국에, 무섭고 매우 강하며 사나운 짐승의 나라를 유럽연합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꼭 이렇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 되어갈지는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유럽연합은 모든 면에서 세계 1위이다. 오직 군사적인 면에서만 미국에게 뒤진다. 아직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왕이 없기 때문이다. 왕이 세워지면 유럽연합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나라,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종말의 시대에 있게 될 이 세상의 국제정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때 4대 강국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를 보여주고 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나라에 대한 말씀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나라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요한계시록 13:2절에서는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다니엘서 2장에서는 이 나라를 철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라고 한다.
‘.... 그 발의 얼마나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단 2:33) 이 말씀은 얼마는 쇠와 같이 강한 나라이고 얼마는 진흙과 같이 약한 나라라는 뜻이다.
다니엘서 7장에서 다니엘은 한 머리에 열 뿔을 가진 짐승의 나라를 유심히 보는 중에, 이 열 뿔의 나라에서 다른 작은 뿔 하나가 올라오더니 첫 번째 세 뿔을 뿌리 채 뽑고 나왔다고 한다. 단 7:8절 /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 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논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
이 작은 뿔이 바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의 나라이다.
그 뿔이 작다는 것은 다른 뿔에 비해 권세와 능력이 작다는 뜻이 아니다. 뿔은 왕권을 말하는데 다른 왕들보다 그 통치 기간이 짧다는 뜻이다. 종말의 날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통치하는 기간은 42달이다.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이 나라가 쇠와 같이 강한 세 나라를 뿌리 채 뽑고 나올 정도로 강력하게 된 것은 요한계시록 13:2절 말씀과 같이 강력한 짐승의 나라의 특성 즉 사자, 곰, 표범의 특정과 힘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더하여 용이 주는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마지막 때 일어나게 될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나라가 어떻게 강력한 세 왕을 굴복시키고 나올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의 나라는 함께 바다에서 나온 다른 짐승의 나리인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나라, 한쪽 몸을 들고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의 나라, 그 등에 네 날개를 가지고 머리가 넷인 표범나라를, 쇠로 된 입으로 먹고 부서뜨리고 또 그 나머지 나라들은 발로 밟아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한 세계 단일국가를 이 땅에 세우게 될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니엘서 9:27절에서는 온 세상이 단일 국가로 세워진 짐승의 나라와 한 이레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적그리스도)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단9:27)
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세상을 정복하고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세계 평화를 가져오게 한 왕으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전쟁으로 인한 멸망의 위기 속에 살아가던 유대인들은 마치 하나님이 보내 주신 구원자, 그들에게 참 평화를 가져다 줄 메시야가 찾아온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 때 유대인들은 그 짐승의 보호 아래 제 3성전을 건축하고, 이제까지 중단되었던 성전제사를 드리게 된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유대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세계를 지배하는 군주로 우뚝 서게 된다.
한 이레의 절반이 지나게 될 때 짐승은 그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짐승은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이스라엘이 부정하게 여기는 제물로 제사들 드리게 하며, 성전에 세우지 못할 짐승의 우상과 형상을 세워놓고 그 우상을 경배하도록 한다. 이때 모든 사람들에게 받기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짐승의 표이다. 짐승의 표에 관해서는 뒤에서 따로 다룬다.
요한계시록 13:2절에서는 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습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다고 한다. 그 배후에는 용이 있어서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도표로 정리해 본다.
계17:9-10 | 애굽 | 앗수르 | 바벨론 | 메데. 바사 | 헬라 | 로마 | 적그리스도나라 | |
다섯은 망하고 | 하나는 있고 |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않음 | ||||||
단2:31-35 | 금 머리 | 은 가슴과 두 팔 | 놋 배와 넓적다리 | 쇠 종아리는 | 쇠와 진흙 발과 열 발가락 | 뜨인돌 | ||
단7:2-8 | 사자 독수리 날개 곰 몸 한쪽을 들고, 세 갈빗대 물었다. 표범 등에 네 날개 머리가 넷이다. 짐승 무섭고 놀라우며 매우 강하고 쇠로 된 입 있었다. -동 시대의 서로 다른 나라로 본다. |
계13:1-2 | 짐승. -표범, 곰의 발, 사자의 입. -용이 능력을 줌 한 나라 | |||||||
단9:27 | 한 이레 언약을 맺고 통치함 |
이렇게 보면 다니엘서 7장 다니엘서 9장 요한계시록 13장의 말씀은 동시대의 말씀이 된다.
그런데 다니엘서 7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이 다른 점은, 다니엘서 7장에서는 언급되고 있는 나라는 각각 다른 네 나라인데 반해,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종말시대 등장하게 될 바다에서 나온 짐승 즉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한 나라에 대한 말씀이다. 이 나라가 강한 것은 앞에 등장하는 강력한 나라였던 표범과 곰 사자가 가진 그 모든 권세를 모두 다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며, 또 용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이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다 주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이보다 더 강력한 나라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다니엘서 9장은 한 이레 동안 언약을 맺고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할 것을 잘 보여준다.
셋째, 바다에서 나온 짐승 - 그는 유럽연합(EU)인가?
※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용의 능력을 받고 신격화된 지도자로 나타날 것이다.(13:2)
※ 이 전에 있었던 모든 왕들이 가졌던 특성들을 다 가지 강력한 지도자로 나타날 것이다.(계 13:1-2, 살후 2:9-10)
※ 이전의 왕들은 천하를 다 지배하지 못했으나 바다짐승에서 나온 짐승은 찬하를 다 지배한다.(단7:23)
※ 이 적그리스도의 나라는 10명의 왕이 있는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유럽 연합으로 추정한다) 적그리스도의 나라는 일곱 번째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 나라는 로마제국의 부활로 세워질 나라이다. 그 머리들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다.
1) 유럽연합에 대한 근황
1957년 3월 25일 유럽경제공동체(EEC)가 로마조약으로 창설되었다.
당시에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6개의 회원국으로 구성되었는데, 1967년 유럽공동체(EC)로 발전하였고, 1973년에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가 가입하고, 1981년에 그리스가, 1986년에 스페인, 포르투갈이 가입했다. 1991년 12월 ‘마스트리히 조약’을 바탕으로 1993년 11월 현재의 통합 형태인 유럽연합(EU)이 공식 출범했고, 1995년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가 추가로 가입했다.
2002년에는 유로화로 화폐를 통일하였으며 현재 13개국이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2003년에는 키프로스와 몰타가 가입하고, 2004년에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10개국이 가입하고, 2007년에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가입함으로써 27개 회원국으로 불어났다. 유럽공동체는 2007년에 50주년을 맞이하여 27개국의 회원국으로 연합되었고 인구 4억8천700만 명에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006년 말 현재 10조 9천억 유로(15조9천억 달러)로 미국(12조9천억 달러)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단일시장 공동체가 되었다.
지난 2002년부터 ‘하나의 유럽’이란 정치통합을 이루기 위해 기존의 여러 조약을 하나의 헌법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는데 리스본 조약이 바로 새 헌법에 해당한다. 2007년 12월 13일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리스본조약’이라는 새 개정조약에 서명함으로 본격적인 정치통합이 시작되었다. 신설되는 유럽연합(EU) 대통령과 외교총책이 국제사회에서 유럽연합(EU)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EU 정책의 일관성을 높여줄 것이다. EU 대통령은 현재 27개 회원국 정상이 6개월마다 돌아가며 맡고 있는 순회의장직을 대신한 상임의장직으로 임기는 2년6개월이고 1회 연임이 가능하다. EU외무장관격인 외교총책은 EU외무장관 회의를 주재하는 등 외교 및 안보 정책을 총괄하며 임기는 5년이다. 국제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은 군대와 군사 장비를 통해 영향을 끼치지만 개발원조 규모가 전 세계 개발원조액의 55%를 차지하고 있는 EU는 대화를 앞세워 분쟁해결에 기여하면서 기후변화, 중동평화, 아프리카 빈곤해소 등의 문제에서 주도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정치통합으로 일관된 목소리를 더 키울 경우 세계 역사를 주도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현재는 영국의 블랙시트로 유럽연합의 장래가 불투명해 지고 있다.
2)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등장과정
이 세상은 너무 크고 나라들도 많아서 단일 정부 구성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단일 정부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준비되어 가고 있다. 정치, 경제, 군사, 종교 모든 방향이 이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종말 시대는 혼란하고 혼탁한 시대가 된다.
오늘날은 국제질서가 점점 더 혼란해 지고 있다. 인류는 이런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 잡아줄 강력한 독재자를 요구하게 된다. 지금 이 세상은 그런 시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류는 2차 대전 이후인 1946년에 국제연합을 설립하여 자멸을 면하려고 하였다.
종말 시대가 되면 이 국제연합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인류는 국제연합 아래에서도 계속 전쟁을 해 왔고, 지금도 계속 전쟁을 하고 있다. 장차 이 국제연합 아래에서 핵전쟁인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 후 적그리스도는 전쟁과 테러와 질병과 식량 위기의 해결자로 역사 속에 등장한다.
유브라데 전쟁은 모든 인류와 국가에게 이 총체적 난국을 유엔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세계 단일 정부만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세계가 단일 정부가 되어야 이 세상에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세계단일정부가 세워지게 되는 배경이다. 그 때 상황은 단일 정부가 아니면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게 된다.
때가 되면 모든 독립 국가들은 각국의 주권을 내려놓고 세계 정부를 세우는데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세워진 세계 정부의 수장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되고 거짓 선지자가 적그리스도를 위한 부역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정치 경제 종교 국가의 통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국제 연합은 해체되고 세계 단인정부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앞으로 세계는 이렇게 되어 갈 것이다. 정치 경제 종교 국가의 통합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역사 흐름이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재촉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적그리스도는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제거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 가려고 할 것이다. 세계를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하여 경제발전과 번영과 부를 가져다준다고 약속할 것이다. 국가를 단일 국가로 통합하여서 서로 적대적인 행위를 중단하게 되고 사회를 안정시키려고 할 것이다. 거짓 선지자를 통해 종교를 통합하여 자신을 지지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인류가 바벨탑을 쌓은 이후 최초로 하나의 국가로 연합을 이루게 된다.
장차 등장하게 될 적그리스도가 이전 짐승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적그리스도 이제에는 전 세계를 정복한 왕은 없었다. 세상의 머리가 되었던 짐승의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일부 세계를 정복하였지만 전 세계를 정복한 왕이 아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종말 직전에 인류역사상 딱 한번 즉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전 세계를 정복하여 지배하도록 허용하신다. 이 사람이 바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다. 이 짐승이 세계를 정복하여 지배하는 기간은 7년으로 정해 놓으셨다. 적그리스도는 거짓 선지자와 함께 세계의 지배자 된다.
짐승은 세계를 정복하며 승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패한다.
이 사건은 마치 사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승리하는 것 같았으나 실패한 것과 같다. 이런 사건은 하나님이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준다. 아멘
적그리스도는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짐승에게서 나오게 된다.
그 열 뿔은 쇠와 같이 강한 나라와 진흙과 같이 약한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쇠와 진흙이 잘 합쳐지지 않듯이 이 나라는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나라에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기 까지 이런 느슨한 연합의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그 열뿐 가운데 한 작은 뿔이 일어나서 강한 세 뿔을 뿌리 채 뽑고 일어설 것이다.
이 짐승의 나라가 쇠와 같이 강한 세 나라를 무너뜨리고 일어서는 과정 속에 반대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다. 3절 말씀은 이런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런 과정 속에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용은 거래를 시도하며, 이 거래를 예수님은 거절하였지만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거래를 수용한다. 그래서 짐승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며, 용은 이 다시 살아난 짐승에게 그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다 준다.
3)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그 하는 일
(1) 일곱 머리 열 뿔 가운데서 나온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이 일곱 머리는 인류역사 상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린 머리가 되는 일곱 나라 중 일곱 째 머리가 되는 나라이다. 열 뿔은 어느 나라든지 왕은 한 사람인데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나라는 열 명의 왕이 연합하여 이룬 나라라는 뜻이다. 이 나라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
(2) 그 머리들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다.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세계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열국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교만하여져서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앉아 신성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도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아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일을 했다.
(3) 세상 권력자들의 능력과 권세를 다 가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네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4) 용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가지고 나타난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5) 예수님을 모방한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사단은 모방의 천재이다. 사단의 졸개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예수님과 비슷하게 모방하여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예수님과 적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해 짐승이 어떻게 예수님을 모방하는지 살펴본다.
➀ 삼위일체의 모방함.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로 계시듯이, 사단도 용과(사단 마귀), 바다에서 나온 짐승(적그리스도) , 땅에서 나온 짐승(거짓선지자)의 삼위일체로 하나님을 모방한다.
➁ 부활을 모방함.
예수님이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었듯이(롬1:4, 행17:31), 적그리스도도 죽었다가 살아난 흉내를 낸다.(계13:3)
➂ 사역 기간을 모방함.
예수님은 3년 반 공생애 사역을 하셨다.(요2:13, 요6:4, 11:15) 적그리스도는 3년 반, 마흔 두 달 동안 이 세상을 통치하게 된다.(계13:5)
➃ 인침을 모방함.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의 인, 하나님의 인을 치시나(엡1:13, 계7:1) 적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13:16-17)
➄ 재림을 모방함.
예수님께서 백마를 타고 재림하시듯이,(계19:11-16) 적그리스도도 거짓 선지자를 백마를 태워 보낸다.(계6:5)
➅ 때를 변개함을 모방함.
예수님으로 인류 역사는 BC에서 AD로 바뀌었다. 적그리스도도 자기 탄생을 원년으로 때와 기한을 바꾼다.(단7:25)
(6) 예수님과 다른 점
➀ 그 형상이 다르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참 형상이다.
➁ 그 오심이 다르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 적그리스도는 무저갱에서 올라온다.
➂ 그 하는 말이 다르다.(5절-6절)
하나님은 유순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겸손한 말을 하게 하신다. 적그리스도는 비방하고 과장하고 신성을 모독케 하는 말을 한다.(계13:5, 6)
➃ 그 성품이 다르다.
예수님은 온유 성결 은혜 충만 순결하신 분이시다. 적그리스도는 곰, 사자 표범과 같은 마치 야수와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
➄ 그 권세 주심이 다르다.
하나님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시나, 용은 짐승에게 거짓 선지자에게 능력과 권세를 준다.(13:4)
➅ 그 경배하게 하는 대상이 다르다.(13:4, 8절)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게 한다. 적그리스도는 용과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
➆ 그 신부가 다르다.
예수님은 흠 없는 교회를 신부로 삼는다.(엡5:25-27) 적그리스도는 배신한 교회인 음녀를 심부로 삼는다.(계17;3-5)
5. 땅에서 나온 짐승에 대해
땅에서 나온 짐승에게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것은, 이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가진 권세를 받아서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하는 일은 땅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경배하며, 바다에서 나온 짐승 앞에서 그 받은바 이적을 행하여 땅에 사는 사람들을 미혹할 뿐 아니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게 하고 권세를 받아서 그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경배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속한 자로서, 철저히 그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9:20절 말씀을 보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잡혀 유황불 못에 던져 질 때 바다에서 나온 짐승도 함께 유황 불 못에 던져지게 됨을 보게 된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은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겉과 속이 다른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은 모습이 다르다.
마치 어린 양과 같이 두 뿔이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는데, 그 말은 용처럼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 보면 예수님을 닮았으나 그 속은 사단 마귀를 닮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보면 마음에 가지고 있는 믿음과 그 나타나는 삶의 행위로 표현된다. 이 때 우리의 행위는 그 마음에서 나온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은 불신앙의 말을 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믿음의 행위가 있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은 믿음의 행위가 없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없는 말을 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그 마음 안에 믿음의 말과 믿음의 행위를 하게 하는 믿음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 마음 안에 믿음이 있었으면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행위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마음 안에 믿음은 없는데 믿음의 행위를 하는 것은 위선이다. 바리새인들이 그 예다.
마음에 믿음이 있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행위가 있는 것은 바른 믿음이다.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이 그 예다. 마음에는 믿음이 있는데 그 믿은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범죄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그 겉과 속이 같은 짐승이었다.
누가 보아도 그 사람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땅에서 나온 짐승은 다르다. 어린 양과 같이 두 뿔이 있었지만 그 하는 말은 용의 말이었다. 땅에서 나온 짐승의 그 겉모습은 예수님을 닮았지만, 그 속은 사단 마귀를 닮았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성령이 예수님을 높이고 증거 하듯이, 먼저 나온 짐승을 높이고 증거 하는 일을 한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마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다.
그 모습이 거룩하고 흠이 없고 순종적이다. 그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한다. 요한계시록 13:14절 /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여기 사용된 미혹은 ‘플라나오’이다.
그 뜻은 ‘잘못된 길로 이끌어서 길을 잃어버리게 하다.’ ‘방황하도록 하다.’ ‘속이다.’ 등이다.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은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겉모습은 마치 어린 양 같아 보이나 그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들어 있는 사람이다.
본 모습을 드러냄
언제 그 본 모습을 드러내는가? 그가 종교의 이름으로 먼저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게 할 때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12절)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때 드러난다.(13-14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할 때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14절) 권세를 가지고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한 후에 우상을 경배하게 할 때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15)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할 때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16)
땅에서 나온 짐승인 거짓 선지자는 마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를 강요하는 시점이 되면 그 야수성을 들어내어 사람들을 죽인다.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시점이 되면 그 표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죽인다. 이 때 그는 종교의 이름으로 용처럼 말할 것이다. 이 때 그는 용에게 사로잡힌 자임을 드러낼 것이다.
이때는 짐승에게 허락된 시간이다.(13:5)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이 짐승과 더불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11:2, 4, 5, 7, 12, 15)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해도 마흔 두 달 동안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11:5) 짐승은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혐오감을 여과 없이 들어낼 것이다. 짐승은 이 마흔 두 달 동안 마음대로 할 권세를 받았다.
목회자에게 힘든 시기
인 재앙이 떨어지는 시대도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에게 힘겨운 시대이다.
나팔 재앙이 떨어지는 1260일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더 힘겨운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화 화 화가 있다고 선언한 시대, 짐승에게 전권이 주어진 이 시대가 되면 육신을 가진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믿음으로 견디어 내기에는 아주 힘이 든 시대가 될 것이다. ‘이 날을 감하지 않으시면 살아남을 성도들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날들을 감해 주셨다고 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 그 백성들을 향한 가슴 저미는 사랑 가슴 아픈 사랑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 환난의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저로서도 힘이 든다.
우리 교회에서는 아직 다가오고 있는 이 날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에서 요한계시록 13장을 강해해야 하는 때가 오면 하게 될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잘 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인재앙의 날에 대해, 나팔 재앙의 날에 대해, 13장에서는 짐승이 전권을 받고 마흔 두 달 동안 권세를 행하는 날에 대한 설교를 한다는 것은 아픔이고 고통이다.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철부지 아이들에게 부모는 ‘사람들은 다 죽어, 너도 곧 죽게 될 거야. 인생은 태어나는 날이 있으면 죽는 날이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보다 더 힘든 것이 바로 종말의 날, 환난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실재 성도들이 세상 권세 자들에게 사로잡혀 가고 그들의 칼에 맞아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시대에 목회해야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13:10)
그 당면한 시대가 하나님이 정해 둔 바로 그 심판의 시대라는 것을 들을 귀가 있어서 알아들으면 좋겠지만,(13:9) 아직 어려서 알아듣기 어려운 아이들, 아직 신앙이 어려서 그렇게 딱딱한 양식을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환난의 시대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런 철부지 성도들을 데리고 목회하는 목회자일 것이다.
우리 장성한 사람들은 비록 환난과 심판의 날 이후에는 참 소망의 날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렇다고 염려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남자 아이가 크면 군에 보내야 하는데 모든 아버지의 마음에는 염려 걱정이 있다. 여자 아이가 크면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모든 어머니의 마음에는 염려 걱정이 있다.
나는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성도들을 목양하고 있는 목회자이며 설교자이다. 교사들은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면 된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다르다. 목회자들은 이런 말씀들을 대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고민이 된다. 그래서 가슴 아픈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가슴 아픈 사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시대가 오면 내가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뿐일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을 바라보며 성도들을 아픈 가슴에 보듬어 안고 주님을 향해 손을 들고 인도하시고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일부 말씀들은 설교자들이 설교하기 쉽지 않은 본문이다.
사단 마귀는 어떨까? 요한계시록 13장을 강해하고 설교하는 것을 사단 마귀는 엄청 싫어할 것이다. 자기의 정체가 낱낱이 드러나며 자기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폭로되기 때문이다. 제가 별 것 아닌 강의안을 준비해 오기 위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 여러분들도 사단 마귀의 방해공작을 이겨내고 여기 나왔을 것이다. 그 믿음의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두 짐승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짐승의 같은 점은 둘 다 짐승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은 그 출신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는 세상 속에서 나온 적그리스도이며, 하나는 종교에서 나온 거짓선지자이다. 그러나 이 둘의 배후는 같다. 용이라고 하는 마귀 사단이 그 배후에 있다. 우리나라의 주적이 북한이듯이, 우리의 신앙의 주적은 용과 그 수하에 있는 두 짐승과 그 졸개들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대적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다. 아멘. 요한 계시록 13장은 우리의 주적에 대한 긴장과 경계심을 갖게 해 준다. 아멘.
6. 짐승의 표에 대하여
이제 마지막 주제인 짐승의 표에 대해 살펴보고 마치려고 한다.
짐승의 표는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이다. 짐승의 표는 제 2의 선악과라고 하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저주를 받았듯이, 짐승의 표가 생과 사를 가른다고 본다. 베리칩에 대한 자료들이 인터넷에 많이 나아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짐승의 표에 관한 논쟁은 그런 자료들을 활용하시고 저는 아주 오래 전에 교회에서 한 설교로 대신하려고 한다.
짐승의 표 논쟁
요한계시록 13:16-18
Ⅰ. 짐승 표 논쟁
요즘 한국교회 안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주제가 ‘짐승의 표 논쟁’입니다.
그간 짐승의 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수면 아래에서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는데, 이제는 그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와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 뿐 아니라 믿음이 없는 세상 방송에서도 공개적으로 다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계열의 방송인 CBS는 물론, 공영방송을 표방하고 있는 KBS, 예장 합신이대위, 합동총회 신학부,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 여의도 순복음 교회, 우리들 교회, 연세 중앙교회 등 많은 곳에서 이 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곳들에서 짐승의 표에 대해 견해를 표방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짐승의 표에 대한 논쟁이 성도들 사이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 목양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어떤 실정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이 짐승의 표 문제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전하고 있는지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오늘은 여기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간 이 짐승의 표 논의는 주로 미국 교회에 의해 다루어져 왔습니다.
최근에 새롭게 이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오바마 케어라고 불리는 미국발 건강보험법 때문입니다.
2010년에 이 법이 상원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그 법안을 보면 2013년까지는 유예기간을 두고 2014년부터는 가입하지 않는 미국의 국민에게 벌금을 내게 하는 등 강제성을 띠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소득의 1%나 기준액 95달러 중 더 많은 금액을 벌금으로 내고 점차 벌금을 올려서 2016년에는 소득의 2.5%나 기준액 695달러 중 더 많은 금액을 벌금으로 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7년부터는 강제적으로 시행하게 되는데 3개월 이상 보험금을 내지 않으면 벌금을 내고 의료혜택은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 안에는 미국 시민에게 필요시 의료목적을 위하여 기구를 인체에 삽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사시 사람의 몸 안에 강제적으로 짐승의 표를 삽입할 수 있는 조항이라고 하여 미국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나고 있고 하원에서는 보수적인 공화당이 1년 더 유예기간을 갖고 연구해보자고 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케어를 인정하지 않고 폐지를 공언하고 있어서 이 법은 시행되지 않고 유예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표 논의가 이제 한국교회 안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에서 1년 간 이 문제를 연구를 한 후에 나온 공식적인 입장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한번 구원 얻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빼앗길 수 없다.(요5:24, 롬5:8, 롬8:31-39)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을 놓치기 때문에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소수, 극단주의 적 종말론 자들의, 비상식적인 발상임으로 베리칩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좌우 할 수는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교류하지 마시기 바란다.
2013.9.24. 예장 합동총회 신학부에서 여기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표명되었습니다.
베리칩과 666에 관련한 총회의 신학적 입장 정리의 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 "본 교단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666과 베리칩을 동일한 것으로 연관 짓는 것은 분명히 비성경적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666과 베리칩을 연관 지어 활동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배격하기로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베리칩은 짐승의 표가 아니다"라는 결론이 저희 교단의 신학적인 입장입니다.
2014년 합신 이대위에서는 제 98회 총회에서 태평양 노회의 헌의를 받아 1년 연구한 후에 베리칩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연구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그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베리칩이 666 짐승의 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분명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세계단일정부, 적그리스도의 예루살렘에서 통치, GPS전산통제시스템,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짐승의 표, 666, 베리칩 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모든 것은 조작된 것이고 가상 시나리오일 뿐 사실과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성경해석도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나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긴박한 종말을 강조하기 위해 짜깁기 한 것이며 비정상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따라서 단호하게 베리 칩이 666짐승의 표니 하는 거짓된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목회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베리칩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인 견해가 무엇인지를 성도들에게 알려 줄 필요성이 생긴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짐승의 표에 대한 논쟁은 사실 무의미한 논쟁입니다. 왜냐하면
1. 아직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짐승이 역사상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짐승이 역사상에 등장할 때가지는 이것이 짐승의 표다. 짐승의 표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아직 실체도 없는 짐승이 주는 짐승의 표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탁상공론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표는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그 짐승이 역사에 실재로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야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짐승도 등장하지 않았고 그 짐승이 사람들에게 받게 할 것이라는 짐승의 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 이것이 짐승의 표다 아니다 라고 아무리 논쟁을 해 보았자 이 논쟁은 해답이 없는 논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짐승의 표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짐승의 표가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지금 상용화되기 시작하고 있는 베리칩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용화되기 시작하고 있는 베리칩은 짐승의 표가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첫째로, 지금 사용되고 있는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짐승의 표가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지금은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지만,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게 되면 지금의 베리칩보다 더 진화된 다른 무엇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베리칩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지자, 벌써 Positive ID라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RFID 잉크를 사용하는 방법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재품이 나오게 되면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지목한 사람들과 그 말을 믿고 따른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벌써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지로번호가 짐승의 표라고 했다가, 컴퓨터가 짐승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바코드가 짐승의 표라고 했던 사람들이 지금 상용화 되어 사용되고 있는 지로번호, 컴퓨터, 바코드를 보면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나와 있는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지목하였다가 베리칩보다 더 진보된 무엇이 나오게 되면 또 사람들이 똑 같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 단계를 보면 새로운 어떤 기술이 상용화되는 데는 수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애플사의 혁신적인 제품인 스마트 폰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스마트폰이 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적인 진보들이 이루어져 와서, 새로운 기기가 나올 수 있는 기술이 축척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스마트폰은 지금 이미 사용하고 있는 여러 분야의 기술들을 종합하여서 만들어낸 혁신적인 제품입니다. 이렇게 볼 때 새로운 어떤 제품, 혁신적인 새로운 제품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자동차도 처음에는 나무나 석탄을 그 원료로 하는 증기 자동차에서, 가솔린 자동차, 디젤 자동차를 거쳐, 이제는 전기 자동차, 수소 자동차까지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술이 더 진보되면 나중에는 맹물로 가는 자동차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동력을 이용하는 자동차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그와 관련이 있는 기술들이 축척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짐승의 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이 짐승의 표다.’ 라고 하며 이전에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제품이 짠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점점 진보되어 가면서 기존에 나와 있는 제품을 개선하고 거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로 삽입하는 수준에서 앞으로 짐승의 표가 될 제품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술의 진보라는 면에서 보면 앞으로 나올 짐승의 표는 베리칩과 전혀 별개의 것이 될 수는 없어 보입니다.
Ⅱ. 성경적인 고찰
오늘 우리는 세간의 이런 갑론을박을 떠나서 성경본문 말씀을 통해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짐승의 표에 대한 4가지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6-18절 말씀을 다시 함께 보겠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 수는 육백 육십육이라.’
이 말씀을 보면 짐승의 표가 가지게 되는 ‘네 가지 특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자’를 그 대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자’는, 어느 한 개인이나, 어느 한 국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자’는 그 뒤에 나오는 추가설명 즉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이라는 설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듭니까?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자’는 어느 한 개인이나, 어느 한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나와 있는 베리칩의 숫자 단위는 13단위의 숫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13단위의 숫자는 국가와 지역을 다 구분하면서,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약 70억의 인구에게 개인적인 번호를 부여해 주는데 넘치고 남는 넉넉한 숫자 단위라는 것입니다. 베리칩은 지금이라도 짐승의 표로 사용하기로 마음먹기만 하면, 지금 즉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표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숫자 단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16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오른 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는 것은, 사람의 몸에 표가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사용해 온 모든 것은 우리 몸 밖에 있었습니다. 베리칩의 전신인 바코드, 카드, 마이크로 칩, RFID 기능을 사용하고 있는 하이페스 카드 등등은 다 우리 몸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 밖에 있는 이런 것들과는 달리 짐승의 표는 우리 몸 안에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오른 손이나 이마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몸 안에 있는 것과 몸 밖에 있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 몸 밖에 있는 것들 중에 우리가 대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카드입니다. 이 카드는 우리가 지갑 안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내가 꺼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카드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거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카드와 같이 결제 기능을 소유한 것이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그 때 부터는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 되어서 카드를 쓰거나 쓰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것들이 내 몸 안에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이것들이 나의 주인행세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 우리 몸에 혹은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내가 내 몸 안에 있는 카드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손이나 내 이마를 상대에게 내어 주어야 합니다. 카드가 나의 주인행세를 하며 나를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와 결제 기능을 하는 카드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관계없이 내가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결제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도둑을 만나면 그 도둑이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또 내 지갑을 내어주면 나는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결재 기능을 하는 것이 내 몸 안에 들어오면 그 때에는 다릅니다. 그 때에는 도둑을 만났을 때 카드나 지갑이나 돈처럼 내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 도둑에게 내가 가진 그 무엇을 내어 주려고 하면 결재 기능이 들어 있는 내 몸 자체를 다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만 주고 끝나지 않고 내가 꼭 함께 가야만 하고 또 나를 내어 주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재 기능을 하는 그것이 나의 주인행세를 하게 됩니다.
셋째, 이 짐승의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17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표는 곧 짐승이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이 말씀은 바꾸어 보면 짐승의 표에는 매매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이 짐승의 표는 화폐의 역할을 하고, 또 화폐지불능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없으면 물건을 살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이 시대가 되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돈이나 카드는 다 없어지고, 오직 짐승의 표가 유일한 결제의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가 가지게 되는 그 다음 특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넷째, 이 짐승의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짐승의 수라고 합니다.
17-18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표는 곧 짐승이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이것을 설명해 보면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으로 그 사람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왜요. 동명이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등록번호 즉 그 사람에게 부여되는 숫자로 서로를 구분합니다. 오늘날은 주민등록 뿐 아니라, 병원 진로 카드, 은행 통장이나 카드, 여권 등등 모든 곳에서 숫자로 그 사람을 구별합니다. 이렇게 그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임을 구분하게 해 주는 숫자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베리칩이 왜 주목을 받고 있습니까?
베리칩은 13단위의 숫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개인번호를 부여해 주고도 남는 넉넉한 숫자 단위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것으로 전 인류에게 개인 번호를 부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렇게 해서 각 개인에게 부여되는 ‘짐승의 수가 곧 그 사람의 수’ 라고 합니다.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 수는 666’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해 보면 ‘짐승의 수는’ ‘짐승이 숫자를 부여하여 다스리고 통치하는 각 사람의 수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 짐승의 표는 각 사람에게 숫자를 부여하게 되는 표이며,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하면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짐승의 표는 결국 통치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우리가 주민등록 번호를 받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국정부가 주는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숫자에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짐승의 표는 신분을 확인해 주는 신분증 역할과 함께 그 신분증을 발급해 준 나라의 백성이라는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를 받는 다는 것은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짐승이 통치하는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래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짐승의 통치와 다스림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중간 정리 )))
지금까지 우리는 짐승의 표가 가지고 있게 될 4가지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첫째, 모든 사람으로 받게 하는 것, 둘째,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게 하는 것, 셋째, 화폐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미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넷째, 신분과 신원을 확인해 주는 것은 장차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면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기능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 기능이 이미 베리칩 안에 다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성경이 오리라고 예언하고 있는 짐승이 아직 역사상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에 대한 이 네 번째 특징은, 그 짐승이 실재로 역사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때에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나와 있는 제품들 중에서 짐승의 표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베리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짐승이 역사에 등장하는 때가 언제라고 합니까?
인류 역사가 마지막 한 이래(7년)를 남겨 두고 있을 때 등장을 해서, 후 3년 반이 시작될 그 시점에 그 본색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가보면 우리는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Ⅲ. 우리의 판단과 결단
그렇다면 성경이 짐승이 표를 받으면 지옥 간다고 하고 있고, 또 짐승의 표에 대해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일까요? 아직은 베리칩이 짐승의 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짐승의 표가 될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가진 베리칩을 받지 않고 기다려 보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일가요? 베리칩이 아직 짐승의 표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 받고 보는 것이 더 지혜로운 행동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혹시 베리칩이 아닌 다른 제품이나 다른 이름을 가진 다른 제품이 나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날 한국교회 안의 주된 논쟁
요즘 한국교회 안에서 짐승 표와 관련하여 주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말씀은 계시록 14:9-12절입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라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이 인내가 여기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짐승의 표를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될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고, 둘째, 그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베리칩을 받을 때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리칩이 아무리 짐승표가 될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하여도, 지금은 베리칩을 받아도 괜찮다고 합니다. 지금은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연세중앙교회의 윤석전 목사님입니다. 윤석전 목사님은 사람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믿음이지, 무슨 표를 받고 안 받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베리칩은 짐승의 표도 아니라고 합니다. 성경에 어디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한 곳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대로 믿어야지 성경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은 전에 지로번호가 짐승의 수라더니 지금은 지로를 다 쓰고 있고, 켬퓨터가 짐승이라더니 지금은 컴퓨터를 다 쓰고 있고, 그 후 바코드가 짐승이 숫자라더니 지금 바코드가 아니면 거래가 안 되며, 사람의 체내 이식용 마이크로칩인 베리칩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짐승에게 경배 하지 않고 베리칩을 받을지라도, 우리는 베리칩을 받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짐승 표를 받게 될 그 시대 성도들이 ‘인내하면서’ 지켜야 할 신앙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인내가 여기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 계시록은 왜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 강조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성경적인 증거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다 이단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4:12) 그런데 그 가졌다고 하는 믿음 그 얻었다고 하는 구원의 진위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삶으로 확증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씀드리면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실상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네 행함을 통해 그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보이라.’고도 하였고, 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아담의 경우
아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창조된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지켜 행하며 살아야 할 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선악과를 통해서 아담이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사는 믿음에 설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살 것인가? 하는 시험을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자기가 스스로 주인이 되는 불신앙적인 삶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어서, 아담은 죄인이 되었고, 또 죄의 저주 아래서 살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경우
유대인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 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유대인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믿고 지켜 행하며 살 때입니다. 이 때 그 언약은 유효한 것입니다.
만약 유대인들 중에서 그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믿음으로 지켜 행하며 살지 않을 때는 어떻게 됩니다. 그 언약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출애굽기 19장에서 맺은 그 언약은 파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이 파기된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그 언약은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유대인으로 태어났을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 순종하여 살면서, 그 주신 언약에 신실할 때에는 개인과 국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주신 계명에 불순종하므로, 그 주신 언약을 파기하였을 때는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이렇게 언약 백성이라고 다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경우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받지만,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바른 믿음인가? 바른 믿음이 아닌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느냐? 불순종하는 삶을 사느냐? 하는 삶을 통해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말의 때 성도들에게 주신 계명에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옛 언약 안에 들어갔듯이, 우리들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 새 언약 안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언약 안에 들어갔으며 언약 안에 들어간 사람처럼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맺은 언약이 유효하고, 믿음이 없어서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 그 불순종 안에서 그 맺은 언약이 파기되는 것입니다. 언약의 파기는 곧 멸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짐승의 표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받아야 되겠습니까? 받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이제 이 결정은 여러분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제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Ⅳ. 결 론
아담은 하나님도 알고 그 주신 말씀도 알고 있었지만,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조상들에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고 그 주신 계명을 버림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종말 시대 성도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함께)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만 강조하고, 하나님이 경계로 주신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이 말씀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의 영혼을 책임 맡고 있는 책임 있는 영적 지도자라면 신중하게 성도들을 가르쳐야지, 신중하지 못하여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것들 중에서 짐승의 표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베리칩을 받아도 괜찮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요.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확률이 전무한 곳입니다. 만약 지옥에서 다시 회개하고 나올 확률이 100만 분의 1이라도 있다면 그런 요행을 바라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지옥도 참고 견뎌볼 만 한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한 번 들어가면 그곳에서 영원히 고통하며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바른 신앙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것이 짐승의 표가 될 확률이 100 분의 1, 1,000분의 1, 10,000분의 1, 정도만 된다고 해도, 우리는 지옥에 안가기 위해서 그것을 받지 않고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일 것입니다. 한 번 지옥에 들어가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확률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앞으로 신중하게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짐승의 표가 될 가능성을 전부 가지고 있는 베리칩을 위험을 무릅쓰고 받을 것인가? 아니면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성경 말씀처럼 인내하며 기다릴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제가 오늘 이 주일 아침에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에 대해 설교하는 이유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곧 베리칩이나 혹은 다른 무엇을 받도록 강요하는 시대가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오면 여러분은 오늘 우리가 나눈 이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시면서, 믿음으로,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