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단출한 하루를 보냈다.
가끔은 빈틈 많은 생활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대량 세탁이 가능한 기계 말고
조물조물 손을 써야 하는 빨래나
밥과 물과 김치만으로 차려진 밥상,
바닥에 누워 늘어지게 자는 낮잠이 아니라
볕이드는 책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는 쪽잠이 더 온전하게
느껴지는 건 다 부족함 때문이다.
생활을 알뜰하게 하는 사람은...
늘 부지런하고 애쓰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때론 나태하고 더러 힘쓰지 않고 살려는 사람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자는 것이
실용적인 소모라고 우리는 자주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육상화를 신고 파워-워킹 하며 열량을 떠올리기보다
슬리퍼를 끌고 슬렁슬렁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뱃살을 쓰다듬는 저녁 산책은...
얼마나 ‘소모적이지’ 못한 일인가.
그러나...그런 행위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의
여백은 본받을 만한 것이다.
저녁이면 혼자가 되어...
산책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런 사람은...
‘매사 과하게 사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런 소리는 꼭 혼자서 듣게 된다.
홀로된다는 것은 참으로 오묘해서
지금껏 누구와도 대화해보지 않은
‘나’를 불쑥 내 앞에 꺼내놓게 된다.
그때 나와 마주한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기도 하다
잘 먹고 잘살아야지 애쓰며 나로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복잡하고 무거운
내가 된 건 아닌지,
과식과 과음으로 점철된 생활을 되돌려보는 나는
그전의 나보다 조금 더 가벼워진 나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일은
무게를 더하는 일처럼 보이나...
오히려 무게를 더는 일이다.
진리는 무겁지 않고 가볍다.
떠오르고 흔들리고 날아간다.
산책 중에 과하게 기쁨이 넘친 하루와
과하게 슬픔이 넘친 하루를
조율하며 체지방을 소모하는 대신....
생각의 과부하를 조절하는 이에게서
들려오는 느린 콧소리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생기롭다.
*시인 김현의 <저녁엔 산책을 > 중에서...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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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좋은글
< 한가로운 일상속의 행복 > .....
푸른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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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
24.05.05 09:3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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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낮이면 혼자가 되어..
산책길을 걸으며 나를 다스립니다^^
나를 풍족하게 만드는 소소한 즐거움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죠~
맑은 하루도 되십시요
네 여유로운 하루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