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25장 포도제 전야에 미르다드가 실종되다.
포도제가 다가왔다. 스승을 포함한 우리 방주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온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성대한 축제 준비에 밤낮없이 바빴다. 스승은 힘을 아끼지 않고 너무나 열심히 일해서, 샤마담조차도 크게 만족한 듯 칭찬을 할 정도였다.
방주의 거대한 지하저장고는 깨끗이 쓸고 흰칠을 해야 했고, 그 저장고에 있는 커다란 포도주 병이나 술통도 깨끗이 닦아서 새 포도주가 들어갈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해야 했다. 한편 해마다 포도제에서는 전년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파는 일이 관례였기 때문에 지난해에 만든 포도주를 채워 넣은 수많은 병이나 술통은 손님이 맛을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아야 했다.
광대한 방주의 안뜰은 말끔히 정돈되었으며, 수백 개의 텐트와 가건물이 들어섰다. 꼬박 일주일간 계속되는 축제기간 동안, 순례자들이 숙박하거나 상인들이 자기 상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커다란 포도 짜는 기계는 수많은 주민들과 손님들이 당나귀나 노새, 낙타에 실어 방주에 갖고 온 엄청남 양의 포도를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대로 손질해 놓아야 했다. 식량을 모자라게 준비해 온 사람들이나 전혀 준비하지 않고 온 사람들에게 팔 수 있도록 막대한 양의 빵을 구워야 했고, 그 밖의 식량도 준비해 놓아야 했다.
포도제는 원래 추수감사절 같은 성격이었는데, 샤마담의 보기 드문 장사 수완과 재능 덕택에 기간이 일주일로 연장되면서 일종의 정기적인 시작으로 변했다. 이 축제 때는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모든 계층의 남녀가 모였으며, 그 숫자도 해마다 늘어났다. 왕자와 거지, 농민과 기술자, 이윤을 찾는 사람과 쾌락을 찾는 사람, 혹 또다른 것을 찾는 사람, 취객과 철저한 금욕주의자, 경건한 순례자들과 믿음 없는 무리들, 사원에서 온 사람과 술집에서 온 사람, 그들이 데려온 짐 운반용 가축...... . 이처럼 잡다한 대군중이 매년 두 번, 가을 포도제와 봄 방주제 때 고요한 알타 봉으로 밀어닥쳤다.
봄이든 가을이든 빈손으로 방주에 순례를 오는 자는 없었다. 어느 누구든 방주에 바칠 약간의 공물을 가져왔다. 그 공물은 포도송이나 나막신에서부터 진주나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 가지각색이었다. 모든 상인들에게는 매상의 1할이 세금으로 부과되었다.
축제의 개막일엔 포도송이가 드리워진 커다란 담 밑의 높은 연단 위에 앉아 있던 장로가 군중을 환영하고 축복하면서 사람들이 가져온 공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서 새 포도주의 첫 잔을 다 함께 마시는 것이 관례였다. 장로는 꼭지 부분이 긴 큰 표주박으로 자기 잔에 술을 붓고는, 그 표주박을 동행자의 한 사람에게 건넨다. 그 표주박은 그 뒤 많은 사람들을 돌다가, 비게 되면 다시 새 술을 붓는다. 전원이 잔을 채우면, 장로는 사람들에게 잔을 높이 쳐들면서 성스러운 포도의 찬가를 자기와 함께 부르자고 신호한다. 그 노래는 조상 노아와 그 가족이 처음으로 포도의 피를 맛보았을 때 불렀던 것이라 한다. 노래가 끝나면, 기쁨의 환성과 함께 잔을 비운 뒤 군중들은 제각기 다양한 상품이나 쾌락을 찾아서 흩어진다.
성스러운 포도의 찬가는 이러하다.
경이로운 뿌리는
보드라운 어린가지를 기르고
그 황금 열매를
신선한 포도주로 채운다.
성스러운 포도를 찬양하라!
수렁 속에서 좌초한
대홍수의 고아들이
자비로운 그 가지의 피를
맛보며 축복한다.
성스러운 포도를 찬양하라!
그대, 흙덩이의 포로들이여,
그대, 방랑하는 순례자여,
속죄와 구원의 길은
성스러운 그 식물 속에 있나니
그것은 포도, 포도, 포도!
축제가 열리기 전날 아침, 스승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 발견되었다. 일곱 사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으며, 이내 철저한 수색을 했다. 수색은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한 밤중에도 일곱 사람은 횃불과 등불을 들고 방주 안과 근교를 계속 뒤졌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샤마담은 크게 걱정하는 모습이었으며 완전히 어쩔 줄 모르는 듯한 기색이라서, 스승이 샤마담에 의해 실종되었다고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스승이 뭔가 사악한 소행에 의해 실종된 것은 분명했다.
성대한 축제가 시작되었지만, 슬픔에 찬 일곱 사람은 침묵을 지키면서 그림자가 움직이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군중들이 찬가를 부르고 술을 마신 뒤, 장로가 높은 연단에서 내려왔을 때, 군중의 소란과 웅성거림을 쓸어 버릴 정도의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우리는 미르다드가 보고 싶다. 미르다드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
그 목소리는 러스티디온의 목소리였다. 그는 스승이 자기에게 말하고 행한 모든 일을 널리 퍼뜨리는 이였다. 러스티디온의 외침은 재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며, 사람들이 스승을 열렬히 찾는 함성은 그 일대에 널리 퍼져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그 함성은 우리들 눈에 눈물이 넘치게 했으며, 우리들 목을 메이게 했다.
갑자기 소란이 가라앉았다. 거대한 정적이 군중을 덮었다. 우리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높은 연단에 선 스승이 침묵 속에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