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실업대란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정치권, 그것도 여권에서 조차도 실업대란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며 그 시기를 4∼6월로 본다고 했는데 이는 4월부터 30대 재벌 등 대기업들의 정리해고가 본격화되고, 전반기 취업시즌이 완전히 끝나기 때문입니다. 당초 이 기간의 총실업자수가 1백50만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4월의 마주막 주를 맞으며 살펴보면 6월까지 실업자 수가 2백만명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답니다.
여러분 "....구조단"이나 ".....봉사단"이라는 말 아시죠? 예를들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거나, 또는 태풍이 와서 한 지역을 싹쓸이 했다거나 할 때 재난을 당한 수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긴급히 만들어지는 봉사단이나 구조단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심리학 봉사단"이라는 봉사단이 긴급히 만들어졌다죠?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거나 현재 상담과 관계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결성된 봉사단입니다. 왜 이런 봉사단까지 만들어져야 했는지 특별히 설명을 드리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다 그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실직으로 좌절감에 빠진 가장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나서기로 했다는거죠. 한 가족당 3-4명만 치더라도 실직자 가족은 600-800만 명에 이릅니다. 이들에게 다가온 문 제는 비단 실직 문제만이 아닙니다. 가장이 용기를 잃고 가출을 하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엄마들도 아이들을 내 버려두고 집을 뛰쳐나가고... 아이들은 불량청소년으로 거리를 방황하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0일 한 신문에 자살 3명 (실직자2명, 사업자금 부족 1명,도봉구,노원구,강동구에 사는 사람), 21일 울산에서 실직자 자살. 17일 울산에서 사업실패 자살. 하루 이틀 사이에 신문에 기사가 난 것만도 이렇게 많으니 심리학 봉사단까지 만들어진다는 말이 그저 예사롭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올들어 하도 실직 가장의 자살소동이 많이 생겨나자, 자살소동 빈발을 우려한 서울시와 서울경찰청이 윤활유 1백77통을 한강대교에 칠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미끄러져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답니다. 그거 바르고 바로 뒷날이 21일 의류도매상을 하던 정모씨가 사업 실패와 약혼녀의 파혼에 삶을 포기하고 투신자살하기 위해 그 다리 아치 위에 올라가려다 윤활유에 미끄러져 올라가지 못하 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는 이야기도 신문에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의도에 본부를 두고 한강 서울구간 41㎞를 관할하는 한강수상구조대가 처리한 투신사건은 올해 21건. 작년 보다 2배 이상 두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이중 절반 이상인 11명이 사망했답니다.
한강고수부지를 관리하는 청원경찰들은 강물만 바라보는 중년남자가 있으면, 교대할 때 서로 인수인계까지 해가며 관찰한답니다. 혹시 뛰어들지 모르기 때문에. 물만 보거나, 시선이 불안한 남자 가 있으면 일단 말부터 건답니다.
한 청원경찰은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며칠 전 한분 낌새가 이상해 말을 걸었더니 금방 눈물부터 흘려요. 나이가 58센데 직장을 잃었대요. '사실죽으러 왔다'며 유서 봉투를 보여줍디다. 관심 보여주는 사 람이 있어 마음 돌린다며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어요."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다른 사람을 해치는 IMF형 범죄로 더욱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온갖 범죄가 만연해 가며, 살인등 극악한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우리 나라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제가 오늘의 현실을 표현해 볼까요? "너 죽고 나 죽자!" 너 죽고는 살인과 온갖 죄악을 행함이고, 나 죽자는 자살 하는 극단적인 삶의 도피 아닙니까? 그러니 너 죽고 나 죽자라는 말이 바로 오늘 이 나 라의 모습임에 틀림없지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요엘서 2장 앞 부분에 보면 작금의 우리 현실과 너무나도 흡사한 상황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2장 2절 -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 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난국을 잘 표현하고 있죠? 불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워버림과 같고, 황무지와 같이 변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12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 들립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옷을 찟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로 돌아오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돌아오라 부르시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셔서 돌아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폈던 재앙의 손을 거두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돌아오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사로서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 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얼마전 한 TV에서 "길 잃은 목자"라는 제목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한 목사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저는 그 방송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후 교계에 몰아닥친 파문이 얼마 나 큰지는 잘 압니다. 한기총등 교계에서는 범교단적 대책위까지 구성하여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여러 신문 지상에 넓은 광고 지면을 이용해서 시청거부 운동이니 그 TV에 나오는 광고 제품의 불매 운 동이니 떠들석하게 대책을 전개를 한다고 하는데 이게 대책을 잘 세운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길 잃은 목자"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어두운 현실이 바로 길 잃은 목자라는 제목에서 비롯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빛을 발해야 하는 교회가 빛을 잃었으니 어두워질 수 밖에요.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양의 몫이지 목자의 몫이 아니지 않습니까? 목자는 길 잃고 헤매는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자들인데 목자가 먼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어찌 세상이 어두워 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저는 TV 방송국이 그런 방송을 내 보낸 것을 잘했다고 두둔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 목사님이 잘못했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자들이 먼저 회개하며 돌아와야 할 때 입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며, 어두워져만 가는 세상을 향해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할 때입니다. 떠들썩하게 나팔 불고 다닐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상황과 같이 세상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조롱과 손가락질 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함을 요 엘 선지자는 들려 주었습니다. 2장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이렇게 울며 기도해야 할 때랍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은혜로운 하나님께서는 회복시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게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18절 봅니다. 그 때에, 여기서 말하는 그 때가 언제입니까? 세상이 온통 빛을 잃고 "너 죽고 나 죽자"고 막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 제사장들부터 울며 부르짖고, 백성들도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때. 바로 그 때를 말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엄청난 어려움을 직면해 있어도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 을 받으면 그 모든 문제들은 해결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중심이 뜨거우십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활활 타고 계십니다. 뜨거우십니다. 화끈 화끈거리신답니다.
여기 "중심이 뜨겁다"는 표현은 "큰 열심과 강한 질투를 나타내는 히브리 원문이 사용되었습니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는 질투의 마음을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조롱받고 잘못되는 것을 참을 수 없으셔서 화끈거리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런 정열적인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돌아서기만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지 않습니까? 이제는 돌아서야 합니 다.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다고 했는데 자기 땅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땅은 그냥 사람이 사는 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말하며 그 땅이라는 표현은 곧 선택, 언약, 약속,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향해, 그리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분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긍휼히 여김을 받 을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은 후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제가 목회 초년 시절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목사 안수를 받았던 교회는 서울 왕십리에 있는 왕십리중앙교회였습니다. 올해 90주년을 맞이한 역사가 있는 교회죠.
얼마전 그 교회가 참 빛된 모습을 보였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가 있는데 한국에 와서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심장병이 걸려 죽어가고 있는 아들이 파키스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안타까운 말을 듣게 되었답니다. 빈손으로 돌아가서 그 아들을 품에 안고 죽어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교회는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긍휼히 여겼습니다. 이 엄청난 IMF 앞에서 그 교회라고 재정이 남아 돌았겠습니까?
그러나 당회와 온 교우들이 용기를 내고 한마음이 되어 그 파키스탄 노동자의 아들을 서울로 데리고 와서 서울대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뒷바라지를 다했답니다. 수술을 받을 때는 온 교우들이 합심하여 기도하였고, 하나님께 그 어린 아이를 위해 부르짖었답니다. 성도들이 돌아가며 병실에 있는 그 아이를 찾아가서 하루 빨리 회복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답니다.
회복하고 퇴원한 아들 샤미르를 앉고 그 파키스탄 노동자는 어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강제 출국시키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만에서 3만명 정도 된다죠? 그동안 우리나라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어렵고 힘든 일은 누구도 안하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그 자리를 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받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이었었음이니라"(출22:21)
그러나 인권도 무시된 채 짓밟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갖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임금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앉고 쫓겨가는 그들의 울부짖음을 어찌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 현실 속에서 샤미르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의 손길을 편 모습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빛을 발하는 교회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성령의 은총을 부어주실 것을요.
그 약속을 19절 말씀에 해 주셨잖아요.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북편 군대를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
군대처럼 밀려오는 IMF의 위험을 몰아내신답니다. 큰 일을 행하신답니다. 그리고 흡족히 채워주신답니다. 성경에서 특히 구약성경에서 "곡식과 새 포도주"라는 표현은 물질적 인 복을 이야기 할 때 사용되는 관용적이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주시겠답니다. 그로 인하여 흡족하게 하시겠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소망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너 죽고 나죽자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을 베불고 나 누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긍휼히 여김을 받고, 부어 주시는 은총으로 흡족하게 되는 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