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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쟁과 이순신
지 용 희(서강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Ⅰ. 경제전쟁과 이순신
머리말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가 하나의 촌락같이 느껴질 만큼 좁아져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말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지구촌의 시대를 반영하듯 경제에 관한 한 국경이라는 테두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며, 서로간에 차별 없는 경쟁이 허용되는 무한 경쟁 체제로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전쟁에서 우리는 국제경쟁력이 취약하여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외채에 허덕이다가 급기야 IMF의 구제금융까지 받게 되었다. 또한 많은 기업이 도산되고 실업자가 급증하였다. 이러한 난국을 하루 빨리 극복하기 위한 해답은 매우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백전백승을 한 이순신 장군에게서 찾을 수 있다.
무력전이든 경제전이든 전쟁은 전쟁이며,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원리도 마찬가지 인다. 이순신의 청렴결백과 높은 신뢰성, 겸허한 마음가짐에 따른 유비무환의 자세,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쉽, 용기와 결단, 거북선 개발과 같은 창의성, 철저한 기록정신, 뛰어난 정보활용능력과 전략 등은 오늘날 우리가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이순신을 벤처마킹 한다면 경제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투시하는 거울이라면, 역사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이순신을 통하여 우리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경제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는 세계 초일류 기업들과 외국에서는 물론 국내에서 본격적인 경제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전쟁 시대에 겹겹의 역경 속에서 백전백승한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은 우리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Ⅱ. 이순신 정신과 국제경쟁력.
1. 겸손과 유비무환의 정신
이순신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유비무환의 자세에 있다. 조정에서는 일본이 쳐들어온다 아니다라고 논란을 벌일 때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에 부임하자마자 철저하고 꼼꼼한 자세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임진왜란 전 우리나라는 오랜 동안의 평화로 군기는 해이해졌으며 적당주의가 판을 쳤다. 평화에 젖어 고된 훈련에 불평도 많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스스로 앞장 서 모범을 보임으로써 부하들을 감복시키고 고된 훈련을 이끌어 나갔다.
이순신이 활쏘기 연습을 하였던 한산도의 활터에 가 보아도 그의 완벽하고 치밀한 대비태세를 잘 알 수 있다. 화살로 적을 명중시키려면 적과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거리감각이 무디어져서 다른 배에 타고 있는 적을 정확히 겨냥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순신을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활쏘는 곳과 과녁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을 활터로 개발하였다. 이러한 활터는 이곳을 빼고는 우리나라에 없다고 한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에 철저히 대비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겸손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이순신은 수많은 싸움에서 전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라를 욕되게 했다. 오직 한번 죽는 일만 남았다”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세를 자졌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고 더욱 철저히 대비했을 것이다.
오만한 사람들은 임진왜란에 대한 대비랄 게 없었다. 임란 직전 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갔다 온 김성일(金誠一)은 “토요토미의 눈은 쥐와 같고 외모로 보나 언행으로 보나 하잘 것 없는 위인이니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면서 무시하는 듯한 말로 조정에 보고했다. 또한 막상 임란이 터지자 도망만 다녔다지만 전쟁 전에는 일본을 한칼에 무찌를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친 장수도 있었다.
오만과 자만이야말로 모든 전쟁이나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자만에 빠져든 사람은 어떠한 것이 문제인가를 파악하기는커녕 문제 자체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남이 문제를 지적해 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 치밀하고 철저한 대비를 할 수 없다. 세계 제일의 기업이라도 그 경영자나 종업원들이 자만에 빠지게 되면 곧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미국의 세계적 자동차회사인 GM의 경영자들은 한때 자만심 때문에 일본자동차의 경쟁력을 과소 평가 했다. 이러한 오만과 자만 때문에 일본자동차의 미국 진출에 소홀히 대비해 GM은 큰 손실을 보았다. “IBM이 가는 곳에 컴퓨터 산업이 있다”는 말이 있었듯이 세계 컴퓨터 산업을 선도하던 IBM도 한때 자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GM, IBM과 같은 세계 초일류기업의 경영자들이 자만에 빠져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무나 오랫동안 세계에서 일등을 하다 보니 인간 심리상 자만심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계 초일류 기업들도 자만을 경계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불평 많은 고객들을 우대하고 이들을 오히려 찾아 나서고 있다.
IMF 구제금융이전에 우리는 지나치게 자만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 이제 우리도 만만한 고객만 상대하면서 자만에 빠져들면 안된다. 겸허한 자세로 까다로운 고객의 불평을 경청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혁신에 매진하여야 한다.
2. 기업가 정신
기업가(entrepreneur)란 없던 기업을 새로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기업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통을 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 만든 기업이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기업을 키워 나가지 않으면 안되다. 따라서 창업이 성공하려면 자금, 인재의 부족 등 없는 것이 많다고 하여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용기와 결단, 희생의 감수, 솔선수범의 자세, 끈질긴 추진력 등 기업가 정신은 필수적이다. *
기업가 정신이 없으면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고전경제학의 대가인 영국의 Alfred Marshall 은 산업사외에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업가 정신은 산업사회의 기사도 정신과 같다고 하였다. 일본 기업들의 강점 중 하나는 일본기업가들의 무사정신이라는 말도 있다.
이순신은 기업가는 아니었지만 기업가 정신의 진수(眞髓)를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은 상상하기도 힘든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찬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은 정말 악조건하에서 싸웠다. 칠전량 해전에서 일본수군에게 참패한 조선수군이 괴멸된 후에야 임금인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해 일본수군과 싸우도록 하였다. 한마디로 병사․배․무기․군량미 없이 홀몸으로 막강한 일본수군과 싸우라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같이 싸울 수군을 모집하기 위해 일본군의 추격을 무릅쓰고 이 고을 저 고을을 찾아 다녔다. 텅빈 관가의 창고를 뒤져 무기와 식량을 모으고, 칠전량에서 간신히 도망 나온 12척의 배를 찾아내 남해안을 휩쓸던 일본수군을 막을 태세를 갖추었다. 이런 와중에 조정은 12척의 배로는 도저히 2백척이 넘는 일본수군을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선조는 이순신에게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이순신은 임금을 안심시키고 적을 무찌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서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戰船)이 있으므로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면 적 수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선의 수가 적고 미미한 신하에 불과하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우를 얕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군사들의 사기저하도 심각한 문제였다. 막강한 일본수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군사들은 물론 장수들도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실제로 전쟁직전에 경상우수사 배설같이 도망간 장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제장과 부하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라고 하였다. 또 “한 명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만들 수 있다는”.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12척으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어 장수들도 도망가고 임금마저 전투를 포기하라고 명령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으므로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면 적의 진격을 막을 수 있다”.고 오히려 임금을 설득하고 겁에 질린 부하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죽을 각오로 앞장서서 싸워 명량대첩이라는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이러한 정신과 자세야말로 기업가 정신의 진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기업가 정신이란 자기가 갖고 있는 자금, 인력, 설비 등이 없거나 크게 부족하더라고 용기를 잃지 않고 경쟁기업을 압도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세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 소규모의 병력으로 일본의 대함대를 격파했듯이, 중소기업이라고 하여도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적절한 전략을 구사한다면 세계적인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없는 것만 탓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시설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그리고 배경이 없어서 할 일을 못한다고들 야단이다. 이런 자세로는 혁신을 할 수 없으며, 혹독한 경제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자세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지 않으면 안된다.
3. 신뢰재(信賴財)와 청렴결백
우리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괴멸된 후 다시 수군 통제사가 된 이순신에게 전함, 무기, 군량미 등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피난 가는 노인들까지도 이순신을 돕기 위하여 애를 썼다. 이순신은 “노인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주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강제로 권했다”라고 난중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이순신을 믿고 존경하였기 때문에 기꺼이 이순신을 따르고 도움을 주었다. 사실 이순신은 신뢰라는 재산을 많이 갖고 있다는 면에서는 정말 부자였다. 이순신이 주위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깨끗한 몸가짐이었다.
또한 이순신은 그의 상관이 자기와 친한 사람을 무리하게 승진시키려고 하자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여 저지시킨 적도 있다. 이러한 성품 탓으로 이순신은 윗사람에게는 미움을 사기도 했으나 부하들은 이순신을 진심으로 신뢰하였다.
이순신의 부하사랑도 남달랐다. 이순신은 장수로서의 품위가 없다고 모함을 받을 정도로 부하들과 한마음으로 같이 일하였다. 또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도 앞장을 섰다. 궁색한 사람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준 적도 있었다. 이러한 이순신의 따뜻한 보살핌과 인간애 때문에 이순신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순신은 오랫동안 쌓아 두었던 신뢰를 바탕으로 위급한 상황하에서도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화교상인들은 신용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사업에 실패한 상인에게는 자금을 모아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뢰야말로 가장 소중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를 잃으면 한 국가나 기업도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우리가 IMF 구제금융을 서둘러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도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우리를 불신하여 융자해준 자금을 긴급히 회수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500억불이 넘었지만 제2의 외환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어떤 계기로 외국인들이 우리를 또다시 불신하게 되면 냉혹하게 다시 자금을 회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불신이 팽배한 국가는 지하자원든 물질적 재산이 많다고 하여도 근본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없다. 신뢰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을 국민이 따를 리 없다. 불신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자가 사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 불신하게 되면 노사간의 협력이 잘 될 리가 없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개인간 또는 기업간 거래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든 계약서라 하여도 상대방의 기회주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으므로 신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학의 거래비용이론에서는 신뢰를 중요한 재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 투명성 부족 등으로 불신이 팽배해 있다. 국제투명성위원회가 지난해 밝힌 청렴도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 개발기회(OECD)회원국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해외뇌물 거래방지협약이 발효되고, 뇌물을 추방하기 위한 범세계적 차원의 다자간 협상인 부패라운드가 멀지 않은 장래에 시작될 전망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뇌물의 배격, 공사의 엄격한 구분, 정보의 공개와 투명성 제고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신뢰라는 재산을 계속 축적해 나가야 한다.
4. 지적재산과 기록정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 즉 지식이야말로 남을 이길 수 있는 무기 또는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 경영능력, 조직능력, 마케팅능력, 디자인 능력 등 지적재산은 기계․장비와 같은 물적 재산 보다 좋은 점이 많다. 물적 재산과는 달리. 지식은 계속 활용한다고 하여도 마멸되지 않는다. 또한 지적재산은 보관, 포장, 운송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이밖에도 세게 어느 나라든 기술 등 지적재산의 도입을 크게 환영하고 있으므로 뛰어 넘어야할 관세나 비관세 장벽도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좋은 지적재산을 갖고 있는 기업은 환경이 다르고 텃세가 심한 외국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요즈음 지식재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불리한 여건하에서도 세계 해전사상 유래가 없는 찬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무인이었지만 문인을 압도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순신은 평소 선비와 같은 모습으로 병서뿐만 아니라 사서오경 등 많은 책을 섭렵하였다. 이 결과 이순신은 병법은 물론 행정, 문학 등에서도 정통하였다. 이러한 점은 이순신이 남긴 수많은 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순신은 투철한 기록정신으로 소중한 지적재산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이순신은 7년에 걸친 왜란의 와중에서, 때로는 토사곽란(吐瀉癨亂)에 시달리면서도 일기를 써 <난중일기>를 남겼다. 난중일기에는 전쟁에 관련된 많은 기록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자료도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서도 전쟁상황을 생생하게 보고하였고, 이 자료들은 <임진장초>로 남아 있다. 때문에 우리는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임진왜란이 어떠하였으며 이순신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이겼는지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의 투철한 기록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고려자기를 세계에 자랑하지만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지금도 이를 똑같이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고려자기를 옛날에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기록을 소홀히 하여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기술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기술자가 나가 버리면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아주 못살았던 나라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많은 후진국들이 우리가 과거에 활용하였던 기술을 구매하기를 원하지만, 기록이 없어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치를 지식이나 기술을 기록으로 남기면 바로 국가와 후손들의 재산이 되는 데, 안타까운 일이다.
기록은 일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지표를 만들 수 잇다. 만일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후세에 큰 문화적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음은 물론 자신의 전투에서도 혼란과 시행착오을 거듭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식의 꾸준한 기록에 의하여 축적되며 또한 널리 활용될 수 있다.
종업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록하여 모으면 회사의 지식은 많아진다. 어느 한 종업원이 나간다고 하여도 회사의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게 된다. 미국기업들은 생산, 판매, 구매, 인사, 재무, 회계 등 많은 업무의 처리방법을 자세히 기록한 지침서를 만들어 실제업무에 뿐만 아니라 종업원 교육용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또한 더 좋은 업무방법을 개발하면 이러한 지침서를 계속 개선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우리도 이제 자신만 알고 있는 지식을 숨길 것이 아니라 이를 기록하고 모아서 더 큰 용도를 위해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5. 창의성과 혁신의 추진
빨리 움직이는 과녁에 비하여 가만히 고정되어 있는 과녁은 맞추기가 쉽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있는 국가나 기업은 치열한 세게 경제전쟁시대에는 경쟁국가나 기업에게 곧 추월 당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을 통하여 남이 쉽게 겨냥하기 어려운 목표물로 변하여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제품 개발, 품질향상 및 원가절감을 위한 기술 혁신, 기업내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경영혁신, 새로운 판매방법을 활용하기 위한 마케팅 혁신, 기업내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혁신, 새로운 디자인을 활용하기 위한 디자인 혁신,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서비스 혁신 등은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다.
이순신은 배를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었지만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에 거북선과 같이 창의적이고 뛰어난 혁신제품의 설계와 제작을 주도하였다. 기술자도 아닌 이순신이 어떻게 거북선과 같은 탁월한 제품의 설계와 제작을 주도할 수 있었을까. 이는 누구보다도 이순신이 일본수군의 강점을 무력화시키고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전함 개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기술자들과 함께 창의성을 발휘하여 거북선의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결과라 하겠다.
일본군은 우리에게는 없는 조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칼싸움에는 능하였다. 이순신은 적의 강점인 조총을 무력화시키고, 적이 우리 배에 올라와 칼싸움을 할 기회를 봉쇄하기 위하여 배 위를 목판으로 덮은 거북선을 만들었다. 거북선의 목판 위에는 돛을 올리고 내리기 위한 좁은 십자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송곳을 꽂아 사방 어느 곳에서도 적군이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배 안에서는 밖을 엿볼 수 있는 반면에 밖에서는 배 안을 볼 수 없었고, 거북머리와 거북꼬리 부분, 배의 좌우에도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이 있어 적이 거북선을 포위하기 힘들었다. 그야 말로 거북선은 당시에는 획기적인 혁신제품이었다.
이순신이 거북선과 같은 혁신제품의 개발을 주도하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 기업, 대학 등 어떠한 조직체이든지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지도자나 책임자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Joseph Schumpeter가 지적하였듯이 혁신은 창조적 파괴(creativ destrution)를 수반하므로 반드시 기존의 것을 없애거나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책임자인 기업가나 경영자의 의지와 역할이 중요하다. 혁신 추진여부와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원배분은 이들에 의하여 좌우되기 때문이다.
혁신의 중요성에 대한 경영자들의 인식이 높아지고는 있으나, 아직도 이에 대한 전략적 의지(strategic intent)가 미흡하다. 한국경제가 이미 혁신주도단계로 진입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아직도 저임금나 규모의 경제에 의존한 저원가 전략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가나 경영자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혁신을 주도한다는 전략적 의지를 다져야 한다.
Ⅲ. 이순신과 경영전략
군사전략이든 경영전략이든 간에 전략의 기본은 같다. 또한 전략의 기본은 동양과 서양이 같으며,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2,500년 전에 쓰여진 손자병법(孫子兵法)이야 말로 영원한 새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극찬하고 있는 저명한 서양의 군사전략가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순신이 실제로 우리들에게 뚜렷하게 보여준 백전백승의 전략을 새롭게 그리고 진지하게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적이나 경쟁기업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기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 공략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환경을 면밀히 분석하고 자기의 강점과 약점은 물론 상대방의 강점과 약점도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손자병법>에서도 “상대방을 알고 자기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강조함으로써 정보의 수집은 물론 수집된 객관적인 평가를 중시하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의 기본에 충실하였다. 이순신은 물리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를 철저히 파악하였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 지휘관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현장답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명량대첩의 싸움터인 울돌목도 오래 전에 직접 답사하여 위급한 상황에서 적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지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수군 중에는 어부들이 많았고, 이들은 자기들의 생업터인 남해안의 지형과 조류를 미세한 부분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순신은 비록 지위가 낮은 어부들이었지만 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작전 수립에 활용하였다.
이순신은 적에 관한 정보도 다양하게 수집하였다. 정보원과 정탐선을 파견하여 적들의 규모와 이동 상황 등을 파악하였다. 적의 배에 포로로 잡혀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도 직접 자세히 듣고 적병의 동태를 분석하였다. 이같은 이순신의 정보중시전략은 정보화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더욱 요긴하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생생한 현장 정보의 수집과 활용은 물론 경영정보시스템(Managenment-ent Informa-
tion System :MIS)등 정보의 하부구조를 효율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순신은 지형․조류 등 자연환경과 우리 수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적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일본 수군은 칼싸움에 능해 일단 배 위에서 싸우면 그들이 유리했다. 또한 일본 수군은 조총을 가지고 있었으나 화포에는 미약했다. 이러한 강․약점을 파악한 이순신은 화포를 집중발사해 적선의 접근을 막으면서 이를 격침시켰다.
세계적인 대규모 기업들도 경쟁력 있는 부문만을 집중 육성하여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 기업들은 지나치게 많은 업종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기업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작다. 따라서 재벌기업이라고 하여도 전문분야를 선택해 그 분야에 자원과 노력을 집중 투입하는 초점전략을 구사하여야 한다.
이순신이 일본수군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빠른 기동력이었다. 그는 일본수군이 공격하기에 앞서 선제공격을 취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하고 적이 공격해올 틈을 봉쇄했다. 또한 신속한 함대 운용으로 적함대를 공격하자마자 바로 빠져 나오는 전략을 활용했다. 지금 기술과 시장 등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으므로 이순신이 보여준 기민성은 경제전쟁의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최근 환경이 급변하고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새로운 경영기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류에 휩쓸려 전략의 기본원리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 경영전략의 기본원리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유행처럼 바뀌는 경영기법을 뒤쫓는 것은 모래 위에 겉만 화려한 누각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렵고 급할수록 기본원리에 충실하여야 한다.
맺음말
이순신은 모략과 음해가 판치는 세상에서 세 번이나 자리에서 쫓겨났고 두 번씩이나 백의종군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이순신은 국가적 위기에서 온 몸을 다 바쳐 나라를 구하였지만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큰 수모를 당하였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세태는 지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이순신 같이 국민의 입장에서 윗사람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등 각계 각층에서 이러한 세태가 만연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거의 없을 것이다.
혹독한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정부, 기업 등 각계 각층에서 이순신 같이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순신이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큰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유성룡, 권율, 조헌, 이원익과 같이 자기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그를 적극 지원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자기와 가깝지 않고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온다고 하여도 강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감싸주는 용기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자기의 이익 때문에 훌륭한 사람을 모함하거나 내쫓는 데 앞장서거나 이러한 일에 함께 휩쓸리는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우리는 무엇이든 잘못되면 지도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도자만 탓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표권을 올바로 행사할 때 나쁜 사람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지도자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훌륭한 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좋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함으로써 그 기업의 경영자나 종업원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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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간만에 들어오니 샘이 많은 자료를 올려놓으셨네요 감사히 잘보고가요 많은 도움이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