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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몸치의 댄스일기21 (강변에서 왈츠연습)
2003. 7. 31 목요일. 무더운 여름날씨
여름밤의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었다.
단체강습반에서 숙녀 분들로부터 잘 안된다고 핀잔 섞인 불만을 들은 동작들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견딜 수 없었다.
특히 콘트라첵 오버스웨이가 내 자신도 동작이 어색하고 어설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혼자 나름대로 맹연습을 했지만 제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는 상대가 있으면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걸 누구한테 한번 실험을 해볼까 궁리를 하다가 어느 동호회에서 알게 된 숙녀 한 분이 생각났다. 그분은 개인레슨도 벌써 몇 개월 받고 있는 상태라 어느 정도 왈츠의 기본과 몸이 되어 있었다.
그 분을 불러내서 단체강습에서 홀딩한 숙녀 분들에게 지적받은 콘트라첵과 오버스웨이 그리고 내 스스로가 좀 더 확실하고 정확하게 익히기 위해 요즘 최대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내추럴 스핀턴]을 한번 연습 겸 시험해보고 싶었다.
지난번에 한 번 그분과 연습을 한 적이 있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서 잘 안 되는 동작을 익히는 연습 상대가 되어 주겠다고 했었다.
그분한테 전화를 하니까 시간을 내줄 수 있다고 해서 저녁 7시쯤에 만나서 필라로 갔다. 필라는 9시까지 단체강습생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그 시간까지 구석에서 개별적인 왈츠 동작 연습을 하다가 단체강습이 끝난 시간 이후로 루틴을 연결하여 몇 번 하다보니까 시간이 10시가 넘어 버렸다.
물론 내가 연습한 콘트라첵 오버스웨이 동작들은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져 있어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내추럴 스핀턴은 상대편 숙녀가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만족스러웠다.
필라에서 나갈 시간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니까 여름밤의 무더운 공기로 숨이 막히는 듯 했다.
내가 필요해서 불러낸 숙녀분이라서 집까지는 내 차로 모셔다 드리는 게 당연한 예의일 테고. 그분의 집으로 바래다주러 가다보니 마침 한강을 건너서 근처였다.
한강 둔치에는 여름밤의 더위를 피해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난 연습에 대한 욕구도 해소되지 못한 상태였고 필라에서 문 닫을 시간만 아니었으면 더 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으로 나온 터라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그 숙녀 분께 오늘 나를 위해 연습 상대가 돼 주어서 고맙다는 명분으로 시간이 되면 한강변에 가서 음료수라도 하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하니까 쾌히 승낙했다.
뚝섬 근처의 한강 둔치로 내려가서 간단한 음료를 숙녀분께 권하고...
우리 기왕 연습하던 거 여기서 좀 더 해보고 가자고 내가 제안했다.
그 숙녀 분은 의외의 나의 제안에 어리둥절한지 말뜻을 못 알아듣고 나를 쳐다봤다.
한강둔치의 잔디밭에서 왈츠연습을 좀 더 하고 가자고 다시 한 번 설명을 하니까 그제야 그분은 내 뜻을 알아차린 듯 했지만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그분도 내가 왈츠에 광적으로 심취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환경과 정서로는 야외에서 자연스럽게 일반인이 댄스를 즐기는 분위기가 아닌 건 사실일 게다.
그런데 느닷없이 한강변에서 왈츠연습을 하자고 하니까 그 분이 황당해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숙녀 분은 정말 왈츠가 그렇게 좋으냐고 내게 물었다.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여건만 된다면 왈츠를 몇 날 며칠이고 밥도 먹지 않고 계속 왈츠만 추다가 기력이 다해서 그대로 죽는다면 가장 행복할 거라고. 그리고 난 정말 그러고 싶다고 하니까...
그 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내 제의를 받아주었다. 난 그것으로 신이 났다. 혼자서 한강변의 잔디밭에서 왈츠연습을 하기는 아무래도 좀 쑥스럽겠지만 홀딩 할 상대가 있으면 자연스러워 보일 테니까...
뚝섬 근처의 한강둔치로 내려가니까 많은 시민들이 이미 자리를 깔고 몰려 있었다.
사람이 좀 적고 잔디도 고른 곳을 찾아다니다 적당한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사각형의 플로어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실내에서 연습하던 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욕은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나와서 휴식을 취하는 야외 공공장소에서 왈츠 연습을 시도하려니까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런 감정은 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망설여졌고 상대 숙녀 분은 도저히 용기가 안 난다고 했다. 사람들이 날씨가 더우니까 웬 미친 ㄴ.ㄴ들이 나타났다고 할 것 아니냐며...
그래도 여기까지 내려와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기는 아무래도 억울한 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연습하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내추럴 스핀턴]이 머릿속에 맴돌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강한 욕구가 생기니까 나도 모르는 새로운 용기가 팽배해졌다.
난 다짜고짜 숙녀분의 손을 반강제적으로 잡아끌어 사람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잔디밭으로 들어갔다.
마지못해 숙녀분은 이끌려왔지만 영 마음은 내키지 않는 듯 했다.
난 윗도리도 벗지 않은 채 그냥 잔디밭 한 모퉁이에서 숙녀 분에게 홀딩 자세를 취하고 망설이는 숙녀를 재촉하여 내추럴 스핀턴 자세를 취하게 하고 동작을 연습해보았다.
그 동작의 자세를 그냥 하고만 있으니까 꼭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약간은 음란하거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걸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게다. 젊은이들이야 대중 앞에서도 그런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남의 눈이 의식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잔디가 고르고 매끄러워 보였지만 막상 들어와서 왈츠 스텝을 밟아 보니까 잔디밭은 불규칙하게 울퉁불퉁 했고 패여 있고 의외로 잔디가 마찰이 심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홀딩을 하고서 스텝을 넣어 보니까 그런대로 자세가 되었고 흉내는 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라이징이나 업동작은 바닥이 패이고 울퉁불퉁 해서 몹시 어려웠다.
몇 가지 세분된 각 동작을 연습하니까 숙녀분도 용기가 나는 듯. 내가 요구하는 대로 자세를 취해 주었고 오히려 숙녀 분께서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오히려 그쪽에서 자기가 안 되는 동작을 재차 삼차 연습을 요구해왔다.
각 동작을 분리하여 연습하다가 잔디밭을 플로어 삼아 루틴을 하기로 했다.
잔디밭에는 보안등이 환하게 켜져 있어 운치가 한결 있어 좋았다.
한강에 띄어진 선상 카페의 불빛도 휘황찬란하게 강물 위를 일렁이고 있었다.
내가 있는 멋 없는 멋 다 내가며 스타트 자세를 취했다. 멋을 내기 위해 양복 상의도 벗지 않는 채.
숙녀가 홀딩을 하고서 난 필라나 우리의 강습장에서처럼 언제나 연습하던 실내에서처럼 왈츠를 시작했다. 비록 음악은 없었지만...
실내처럼 푸쉬나 스텝이 매끄럽게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낭만과 멋이 있는 왈츠를 출 수 있었다.
드디어 첫 스타트를 하고서 기초 왈츠 루틴을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잔디밭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시민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거나 걷거나 어떤 사람들은 뒤로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가족단위 연인들 친구들끼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지나가다가 처음에는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지나치다가 어떤 사람은 낄낄 대는 것 같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면서 지나쳤다.
처음에 시작할 때가 망설여졌고 남들의 눈이 의식되었지 막상 해보니까 별것 아닌 것 같았다. 남들이 보건말건 상관없다는 용기도 생겨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면서 잘 안 되는 동작은 다시 멈춰서 수정해가면서 계속 반복했다. 한두 바퀴 돌고나면서부터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스타일이야 구겨지든 말든 어쩔 수 없이 양복 상의를 벗어서 나무에 걸쳐놓고 계속 계속 왈츠를 했다.
조금씩 자아도취에 젖어 들었고 상대방도 맛을 느낀 듯해서 난 멈출 수 없었다.
거친 지면과 잔디의 마찰력에 적응이 되어갔다. 밤이슬에 구두는 젖었지만 이젠 실내에서처럼 아주 여유롭게 루틴을 돌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가 연습하고 있던 잔디밭에 드러누워 있던 사람들은 물론 산책로를 따라 휴식을 즐기던 시민들 남녀노소가 잔디밭 울타리로 둘러놓은 끈 바깥에서 신기한 듯 재미있는 듯 호기심 어린 눈들이 수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문득 느꼈을 때 난 당황스럽기도 했고 쑥스럽고 창피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상대방 숙녀에게 살짝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 라고 알려 주었다.
숙녀 분은 벌써부터 그걸 알고 있었는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하던 대로 계속 해요. 여기서 그만두면 더 이상해져요." 라고 말했다.
나도 그럴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하던 짓거리를 멈출 수 없어 계속 진행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니까 내가 긴장되고 더 멋있게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몸은 더 어색해지고 오히려 처음보다 스텝이나 동작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연습을 하여 자신도 있고 쉬운 1번, 2번 루틴 위주로 했는데 사람들이 보니까 좀 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자신도 없는 3번 루틴을 하여 콘트라첵이나 오버스웨이 같은 걸로 사람들에게 으시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걸 연결했다.
한번은 대충 하고 넘어 갔는데 내가 좀 어색한 것 같고 잘 안된 것 같아서 욕심이 나서 다시 1번 루틴으로 돌아가지 않고 3번 루틴을 한 번 더 해볼 욕심으로 그걸로 바로 연결했다.
잔디밭 경계라인 바깥의 산책로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수근 대기도 하며 어린 아이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자주 박수도 쳐주었다. 그 덕분에 쑥스런 마음이 들면서도 은근히 신이 나기도 했다.
생각보다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이기 보다 신기해하며 구경거리로 여겼다.
그리고 가끔씩 그들끼리 수근 대는 소리가 우리의 귓전까지 들렸다.
어떤 사람은 "저게 뭐하는 거야?" 하기도 했고. "저거 왈츠 추는 거야. 멋있다." "저게 왈츠 맞아?"하는 말들도 내 귀에까지 들렸다.
이제 창피함이고 뭐고 보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좀더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왈츠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콘트라첵]이나 [오버스웨이] 같은 동작이 아무래도 멋있게 보일 것 같아서 난 의도적으로 3번 루틴을 택해서 그걸 숙녀에게 공연용으로 사용했다.
사실은 그 동작은 가장 최근에 배웠고 연습량도 부족했고 자신도 없는 상급동작이었다.
[콘트라첵] 동작이 왔을 때 난 드디어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뽐내기 위해 평소보다 더 신경 썼다.
필라에서와 잔디밭에서 처음 연습 시작할 때 그런대로 그 동작이 좀 된다고 자신하고 있던 터라 난 숙녀 분께 자꾸 뒤로 더 누우라고 여성의 상체를 뒤로 굽히라고 그 동작을 하면서 귓속말로 요구했다.
상대방 숙녀분도 내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상체를 한껏 펴서 뒤로 마음껏 눕혀갔다. 나름대로 머리 동작도 멋을 넣어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우아하게 돌리며...
그렇지만 둘 다 아직 그 동작은 서툰데다가 잔디밭도 바닥이 불규칙해서 울퉁불퉁. 숙녀가 뒤로 계속 넘어가니까 내가 갑자기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여성의 체중을 받쳐줄 힘이 딸리기 시작해서 난 "그만 하세요!"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막 그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올려는데...
때은 이미 늦어 버렸다.
"아이쿠!" 하고 내 입에서 비명이 터지는 순간 숙녀 분은 "어 어 어"를 몇 번 하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숙녀분의 상체를 껴안고 잡아당기려고 했지만 내 몸의 중심이 너무 앞으로 쏠려서 숙녀 분을 껴안은 자세로 그만 숙녀는 뒤로 난 숙녀를 껴안은 채로 매달려서 앞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내가 숙녀 분을 껴안은 채 덮치면 숙녀분이 다칠까봐서 넘어지는 순간에 옆으로 비켜선다고 몸을 비트는 바람에 숙녀의 몸 위로 정면으로 엎어지는 건 피할 수 있었다.
잔디밭 라인 바깥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어어." 하면서 놀라 비명을 질렀다.
엎어지자마자 그래도 내가 금방 일어나서 숙녀분이 다치지 않았나 신사도를 발휘하여 내가 일으켜 주려고 하니까 그 분이 스스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잡아 주었다.
우리는 잔디밭에 일어나 앉았지만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서 멍하니 둘이 쳐다보다가 사람들이 웅성대는 걸 의식하니까 창피한 마음부터 들었다.
잔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엉덩이가 밤이슬에 축축함을 느꼈다.
넘어질 때 3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자기 부인과 아이들과 온 사람이 잔디밭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우리 곁에 와서 괜찮으냐며 걱정해주고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 분의 도움으로 내가 먼저 일어나서 숙녀 분을 내가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경황이 없어서 모르다가 막상 숙녀분이 일어나고 보니까 등 뒤에 풀이 묻어있었다. 축축하게 블라우스와 입고 있던 바지가 젖은 듯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양복 상의는 다행히 벗어두었지만 입고 있던 와이셔츠며 바지가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툭툭 털고 견디는 수밖에...
사람들 보는데서 폼 한번 잡아보려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싶은 생각만 들어서 난 무지하게 창피하고 쪽 팔려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오히려 숙녀 분은 나하고는 반대로 그런 걸 의식 않는 듯 그냥 툭툭 엉덩이를 털었다.
난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궁리에 몰두하는데...
우리를 일으켜준 젊은 남자가 "정말 멋있게 잘하시던데요. 왈츠를 오래 하셨나 보죠?" 하고 웃으며 말을 먼저 걸었다.
그리고 갑자기 잔디밭 바깥 산책로를 따라 구경하던 사람들 중 몇몇이 박수까지 쳐주었다.
난 일어나서도 창피한 마음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잔디밭의 경계로 둘러놓은 라인 밑으로 네댓 살 되는 여자 아이가 무언가를 들고 우리 곁으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우리를 일으켜준 남자의 아이인 듯 했다.
고사리 손에는 캔 커피와 음료가 들려 있었다. 잔디밭 바깥에서 젊은 엄마가 우리에게 주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우리를 일으켜 준 남자가 "아저씨 아주머니께 드려."라고 하니까 아기가 우리에게 들고 온 음료를 내밀었다.
난 고맙다는 마음보다 어색한 내 행동을 피할 길이 없어 그걸 얼른 받아서 커피는 숙녀에게 건네고 난 다른 캔 음료를 까서 벌컥벌컥 마셨다.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와 남자는 어느새 잔디밭 라인 바깥으로 나가서 엄마와 가족끼리 함께 우리를 지켜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제야 난 고맙다는 표시로 아이에게 오른손을 들어서 살짝 흔들어 보이며 웃어 주었다.
"다시 한 번 해봐요. 너무 멋있어요."
그 아이의 엄마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 몰려있던 일부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어쨌든 그게 앵콜 신청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서 창피는 당했지만 도움도 얻었고 음료까지 얻어 마신 마당이라 그냥 그 자리를 떠나기도 뭣하고 예의도 아닐 테고...
마시던 음료수 캔을 잔디밭 한 쪽에 내가 가져다 놓으니까 아까 캔을 가져다 준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아기에게 무어라고 하니까 아이가 경계로 둘러놓은 노끝 밑으로 기어 들어와서 빈 캔 두 개를 도로 가져갔다.
어차피 그냥 그 자리를 피하는 것조차 더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일 건 뻔하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오기도 생겼고 다시 한 번 실수를 만회해보겠다는 심정으로 둘이서 홀딩 자세를 취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어디서 몰려 왔는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잔디밭 가운데 있고 경계 바깥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혹은 아예 잔디밭 경계 노끈에 붙어 서서 구경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잔디밭 안쪽에서 자리를 깔고 있던 가족들과 사람들도 앉은 채로 우리 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스타트 동작을 취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이제 정말 공연이라도 보는 듯 박수를 쳐주었다.
난 속으론 좀 떨렸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봐주니까 알지 못할 용기가 솟았다.
평소 하던 대로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한 채 첫 스타트와 첫 내추럴턴은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된 듯 했다.
그 다음부터는 대충대충 이었지만 스텝도 틀리지 않고 연습하던 것처럼 잘 되었다.
1번 2번 루틴은 중간 중간에 엉터리도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그런 걸 알리는 없을 테니까, 우리는 얼렁뚱땅 넘기고 3번 루틴까지 넘어와서 아까 실수를 한 [콘트라첵]까지 왔다.
이번에는 또 실수를 할까봐서 아예 동작을 작게 하여 숙녀가 살짝 뒤로 굽혔고 나도 얼렁뚱땅 숙녀 분을 일으켜 세워서 넘어갔다.
그러니까 구경하던 사람들 틈에서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오버스웨이]에서 그럴 듯하게 하니까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때 기분은 들떴다.
마치 정식으로 시합이나 공연장에서 대중 앞에서 공연도중 관중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바퀴를 연습 삼아 대중들이 지켜보는데서 돌고 그냥 나오기도 쑥스러워서 각 동작의 연습 모션을 몇 번 취하고 있으니까 지나가다가 잠시 멈춘 사람들은 약간씩 흥미를 잃은 듯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하며 사람들이 흩어졌다.
그렇지만 계속 호기심어린 눈으로 우리 쪽을 지켜보며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자리를 뜨기도 민망스럽고 그냥 계속 있기도 뭐하고 내 심정이 좀 난처한 기분이었다.
내 예감에 그냥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나가면 틀림없이 누군가 호기심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아까 음료를 갖다 주고 일으켜준 가족들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그 사람들이 있는 반대쪽으로 숙녀 분을 이끌고 나왔다.
더 있으면 몇 사람 안 남아 있었지만 또 지나가던 사람들이 호기심이 들어서 몰려들고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차를 주차해둔 곳으로 도망치듯 나와서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서 차를 세우고 한강변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강가에서 마시며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하며 우리는 낄낄 거렸다.
한여름 밤은 점점 깊어 갔지만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우리는 왈츠 예비 매니아답게 계속 왈츠에 관한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화제로 대화에 지칠 줄 몰랐다.
지난번 보다 내가 기량이 놀랄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어서 숙녀분이 이젠 도저히 못 따라 가겠노라고 칭찬 겸 찬사를 보냈다.
사실 지난번에 동호회에서 연습할 때는 숙녀분이 나보다 기량이 훨씬 앞서는 것 같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난 요 몇 주 동안 내 스스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량이 향상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지켜본 모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내가 무조건 기초 베이직에 열중해서 연습을 많이 한 결과라는 평이었다.
그 숙녀 분은 자기가 키만 좀 맞출 수 있었으면 함께 연습도 하고 파트너로 기량을 쌓았으면 좋을 텐데 하며 키가 맞지 않는 게 아쉽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젠 내 기량이 자기를 앞서고 있으니 이제 키도 맞고 실력도 비슷한 사람을 찾아보라며 자기로 인해 내가 다른 파트너를 만들지 못하고 나에게 피해를 줄지 몰라서 신경 쓰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분 자신도 자기 키에 맞고 어울리는 파트너를 찾아야 된다며...
그 분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직까지는 내가 시험해보고 싶은 왈츠의 동작을 다른 사람은 편하게 대해주는 상대가 없는데 키 차이를 핑계로 숙녀 분들이 자꾸 나를 피해가려고 하니까 좀 슬픈 생각이 들었다.
난 누구든지 내가 사용해볼 동작을 받아줄 기량만 되면 붙잡고 연습해보고 싶은데 숙녀 분들의 공통된 요지는 자기는 내 상대가 아니라면서...
나도 이제 약간은 느껴지는 게 아무리 마음이 통해도 왈츠는 어느 정도 키가 맞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하고 각자의 기량을 펼칠 수 없고... 그래서 언젠가는 맞는 파트너가 있어야만 기술을 확인도 해볼 수 있고 제대로 된 왈츠를 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새벽으로 치닫는 시간임에도 왈츠 얘기로 지겨운 줄 모르다가 한강에 어리는 도시의 가로등 불빛과 차량 조명등은 더욱 황홀해 보였다.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아쉬운 밤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댄사모 댓글]
코크
모던의 꽃 ~~은 머니 머니 해도 왈츠죠,,,, 참고로 전 뚝섬유원지가 집이랍니다. 03.08.02 03:40
답글 Hera
ㅎㅎㅎ 강변마을님껜 두손 두발 다 들었시유~~~ ^^* 차제에 한강둔치 잔디밭에서 댄사모 '한여름 밤의 댄스파티'를 열어보심이 어떠하올지... 03.08.02 10:06
답글 cbmp
빨리 찬바람이 불어 더욱 멋진 왈츠 보고 싶네요...... 03.08.02 12:12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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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 11 다음카페 [사즐모]에 “예전글”이란 제목으로 재탕으로 올렸던 댓글.
댓글
두둥실 07.01.11 11:22 첫댓글
짝짝짝........
겨울나들이 07.01.11 11:25
청노루님에 열정에 열린 입이 닺혀 지질 않습니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에 왈츠고수가 되셨겠죠.. 저도 지금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그리 쉽지가 않네요... 1년 이상을 레슨을 받고 있지만 되는 게 없어요... 흐미~미치...
즐콩이 07.01.11 11:39
장문의 글을..... 한참을 읽고.....너무도 열심이신 청노루님이 어떤 분일까???하는 생각도 들고...... 한강둔치에 그분들 참 즐거우셨을 거라 생각되네요... .한여름 밤을 즐거움으로 만끽하게 해주신 두 분이 계셨으니....정말 대단한 열정이 아니면 감히 어떻게 하겠나요?...... 청노루.... (뛰어다니는 켕거루가 연상되넹ㅎㅎㅎ) 그 상대 여자분께 감사해야 겠군요..... 두 분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겨울나그네 07.01.11 11:46
언젠가 한번 읽어 본 글이지만 다시 읽어봐도 감동적이네요..... 무한한 박수 올려드립니다요....ㅎㅎ
바람돌 07.01.11 12:49
겨울나들이, 나그네 두 분 다 왈츠를 열심히 하시는 분 들이시네요...부럽습니다..언젠가는...
아제리아 07.01.11 13:10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나둥 배워야지. 아이구 부러워요. 벌써 배웠다는 사실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주 멋진 선수가되십시오.
숫돌 07.01.11 13:48
영화의 한 장면 같으네요. 대단한 열정이 느껴집니다...
목동 07.01.11 15:36
대단하십니다. 그져 부러울뿐.......
오빠오네 07.01.11 21:07
넘 아름답네요. 한편의 왈츠일기로 버려지기에는 아까버라.. 젊은 날의 왈츠.... 드라마의 한 장면 같으요...
이순신대장 07.01.11 22:41
잘하셨어요... 한강 좋쵸. 그렇게 넓은 플로어가 어딨어엽... 저도 가끔 한강에서 연습했었죠... 다들 말로는 스포츠댄스 건전하다그러면서 진정 자부심 있는 모습으로 한강에서 연습할 수 잇는 용기를 가진 분은 별로 없는 거같어요. 울나라 보다 더 늦게 시작한 중국은 공원에서 연습 마뉘 하던뎅...
이별없는세상 07.01.11 22:45
오우..!!! 넘 멋져요....상상만해도 황홀해요.!!!
보라매 07.01.11 23:21
나두 잔듸밭에서 왈츠함 해보고 싶네요 ㅎㅎㅋㅋㅎㅎㅋㅋ 역시 감동적인 글...왈츠 키가 맞아야 된다고들 합디다 !!
슬픈날의 왈츠 07.01.14 00:26
보라매님!....잔디밭에서 왈츠........절 불러주세요!.....슬픈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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