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공원 같이 어때?” 절친에게 전화가 왔다.
좋아하는 혜화역에서 가깝고 이화 벽화 거리와 성곽길도 걸을 수 있다. 공원에서 내려오면 쇼핑의 메카 동대문 야경까지 구경할 수 있다. 작년부터 한양도성 성곽길 도보 코스가 유행인데 아직 남산만 가봤다. 친구와 개성 넘치는 벽화 거리에서 몇 컷 찍고 낙산으로 향했다.
겨울이라 금새 해가 떨어진다. 오랜만에 노을을 보았다. 저멀리 붉게 주홍과 보라 빛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가 위로 되었다. 전에 ‘꽃보다 여행’이라는 프로에서 윤여정 배우가 ‘노을을 볼 때 마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고 한다. 저물어 가는 노을과 살날이 많지 않은 자기와 비슷해 ‘더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때부터 노을이 달리 보였다. 공원은 사방이 드넓게 펼쳐져 멀리서도 남산타워, 롯데타워와 북악산의 능선까지 희미하게 보였다. 공원까지 성곽길은 이어졌고 노을을 병풍삼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핸드폰에 이 순간을 저장했다. 노을이 지나간 자리에 곧 어둠이 물들었다. 약간 높은 산속이라 밤공기는 정신이 번쩍 들만큼 매서웠다. 어둑해진 길 사이로 비춰주는 가로등이 따듯하게 인도해 주었다. 추위도 잊은 채 허연 입김을 뿜으며 밀린 애기를 나누니 묵혔던 스트레스가 풀려 나간다. 뚜벅뚜벅 걷다보니 어느새 동대문에 도착했다.
친구와 흥인지문에 서있다. 그 마을 입구를 조용히 지켜주는 든든한 솟대처럼 고풍스런 건축은 어둠속에서도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흥인지문은 8개의 성곽중 ‘동쪽에 있는 문’이라하여 ‘동대문’이라 친숙하게 부르고 있다. 청계천을 따라오면 밀리오레와 같은 큰 복합상가들과 평화시장들이 빼곡빼곡 성냥갑처럼 끝없이 늘어져 있다.
세계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인 서울, 그중에서 동대문 새벽시장은 낮보다 밤이 화려하다. 새벽시장은 보통 밤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열리는데 주로 오전 1시부터 3시 사이가 가장 활기차다. 불꽃놀이를 보는듯한 오색빛 네온싸인들과 음악, 소규모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감성 라이브 공연과 댄서들의 신나는 춤을 보며 잠시 시름을 잊는다. 최신 대형 쇼핑몰과 잡화점에서 물건들을 구경하며 사는 사람들, 많은 차들의 행렬속에 가끔 울리는 경적들이 존재감을 알린다. 대로변에는 묵직한 짐들을 실고 나르는 화물차와 상인들, 수레에 물건을 싣는 사람들, 박스를 정리 하는 사람들, 포장마차에서 길거리 음식을 정겹게 먹는 사람들, 여기에 전국 도매상인들과 중국인, 외국인들까지 합세해 시끌벅적 하다. 오랜동안 밤낮으로 이어진 상권의 영향으로 삶의 현장 넘치는 곳이라 열기는 가라 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대문 시장은 UFO를 형상화한 2014년 완공된 초현대적인 디자인 플라자(DDP)를 중심으로 뒤편에는 도매 시장이 길 건너에는 대부분 소매 시장이 열리고 있다. 회색 디자인 플라자 주변 곳곳에서 오묘한 조명이 은은히 빛나고 있다. ‘영혼의 건축가’라 불리는 이락크 여성 출신 자하 하디르의 예술적인 건축이다.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지붕과 벽이 이음새 없이 이어지는 공간에 '동대문의 역동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약간 송도에 있는 트라이볼과 비슷한 구조이고 둘다 랜더마크이다. 두 곳다 좋아하는 곳이라 언젠가 글로 남기고 싶다. 디자인 플라자는 10번은 방문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한다. 2번이나 오후에 오다보니 1-2시간 밖에 못봐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다. 이 주변에 광장시장, 풍물시장, 동대문 역사공원과 종로5가도 가까이 있어 계속 찾고 싶다. 주변을 한 바퀴 돈후 뒤편 도매 건물로 향했다. 주로 20대를 겨냥한 옷들이 많았고 큰 건물 2개를 돌고나니 금방 체력이 방전 되었다. 친구는 파랑, 나는 보라색의 맘에 드는 경량 패딩을 득템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포장마차 쪽으로 걸었다. 길거리에는 유혹할 만한 음식들이 넘쳐났다. 국수와 김밥, 만두, 순대, 오뎅, 닭꼬치, 컵밥, 우동, 햄버거, 붕어빵 등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근한 잔치국수 파는 곳에 발이 멈쳤다. 맛난 국수는 차가워진 몸과 허기를 충분히 달래 주었다. 이제 근처 찜질방으로 향했다.
한옥식 24시간 찜질방은 전통과 현대미를 살려 기와 지붕과 방과 마루, 마당과 정자까지 아늑하며 편안했다. 전통적인 그림과 소품들, 장독대로 분위기를 살렸다. 공용 식사와 휴식공간, 샤워실과 따로 잠잘 수 있는 곳까지 잘 정돈돼 있다. 인기를 증명하듯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린 샤워후 바로 한옥 온돌방에 쓰러졌다. 바닥에서 전해오는 온기에 금방 피로가 풀렸다. “그래, 먼 곳 찾을 필요가 없구나, 천국이 따로 있나?”
이후, 힘든 발품을 판 만큼이나 멋진 원단을 싸게 살 수 있는 동대문을 몇 번 들렸다. 그땐 구입한 예쁜 실과 원단이 방 모퉁이에서 여태 겨울잠을 자고 있다. 입춘이 지난지 2주나 되었는데 아침에 살짝 눈이 내렸다. 겨울 여정이 아쉬운 듯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지만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다. 눈이 올 땐 근처 자유공원을 찾는다. 시계탑 주변과 내려가는 양쪽 가로수길이 맘에 들어 폰속에 저장했다. 잎은 없어도 힘차게 뻗어나간 무성한 가지들을 하얀 눈들이 솜처럼 감싸고 있다. 이제 봄이 오겠지, 잠자던 두 팔도 기지개 쭉쭉 펴보자!
첫댓글 단상은 짧은 생각이라 이것으로 했다가 산책으로 바꿨어요!
제목을 동대문의 추억, 동대문 산책, 그냥 산책, 공원중에 뭐가 나을지 모르겠어요!
동대문(에)라고 했다가 동대문(의) 로 고쳤는데 이것도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