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상징의 미학
- #성춘복론
#박영배
1. 시작하며
시인 #성춘복은 #신석초 의 추천으로 1959년 #현대문학에 #어항 속에서 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후 꾸준히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면서 #오지행(1966년), #복사꽃제(1984년), #네가 없는 이 하루는(1988), #길 하나와 나는(1990년), #혼자 부르는 노래(1995년), #마음의 불(2000년), #봉선화 꽃물(2009년), ##여든의 하루를 사는 법(2019년) 등 17권의 시집과 4권의 시조집을 상재하였다. #월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 한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예술원 전문위원과 #한국문인협회_ 이사장 을 역임하였다.
한 사람의 장구한 창작과정을 전반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단에 나온 후 60여 년의 긴 질곡의 세월을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줄곧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룬 성춘복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의 초기시의 경향은 섬세한 서정의 가락으로 내면세계에 깊이 천착하였고, 절제성과 더불어 지적인 표현이 두드러졌으며, 중․후기에 들어서는 내면화된 인생의 의미와 참신한 이미지의 조형에 주력하였다. 현대인이 가지는 번민과 고뇌를 지성적인 감각으로 조탁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시세계와 문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시인 성춘복의 문학적 면모와 시적 여정의 의미가 독자들에게 온전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여겨진다.1)
예술작품이 여러 규범들의 성층적인 체계로 이루어진다면 시는 기본적으로 언어와 작가의 의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시의 언어는 작가의 시적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이미저리(imagery)를 형성하고 시적 의미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한 시인에 대한 이해는 이미지의 분석에서 출발한다.2)) 이미지는 퇴적과 침식이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을 감각적 순간을 통해 직조해내는 정서적 복합체로서 작가의 시적 특성을 설명하는데 매우 유효할 뿐만 아니라,3) 시적 언어의 구조적 분석을 통해 시의 심층을 이루는 작가의 사상과 그 세계관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성춘복의 시에 나타난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적 과정, 즉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와 그 형식, 그리고 시편들을 관류하는 의식 등을 통해 그의 시적 특성과 세계관을 통시적 관점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2. 상실의 시대, 어둠의 빗장 벗기기
시인 성춘복의 시작 활동을 그 시대성과 시적 여정에 초점을 두어 구분해보면 60년대와 70년대가 그의 시학 초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시기는 정치적 혼란으로 야기된 사회적 황폐함과 불안정이 젊은 시인이던 그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60년대에 있어서 성춘복 시학의 골격은 대체적으로 시대성에 대한 갈등으로 드러난다. 이는 60년대 초의 4․19와 5․16이라는 큰 사건을 위시한 정치적․사회적 난기류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시인이 겪는 부정적 심상이며 간접적인 의미의 고발정신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시인의 시정은 시대의 암울함과 함께 그에 대한 개탄과 개선의 의지에 닿아 있는 것이다.4) 실제로 이 시기 시인이 상재한 제1시집 오지행, 제2시집 공원 파고다, 제3시집 산조에서는 공통적으로 시대적 상실에 의한 유폐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첫 시집 오지행에 실린 대표적인 시 몇 편을 살펴보자.
오지의
더욱 깊숙한
하늘은 둥글고
해 하나 중천에
떨어질 날이 없지만
빛으로 어두워진
내 눈은
사방이 무너져
황홀을 볼 수가 없다
빛이여
눈이 따가운 언제나의 대낮에
안락의 그림자를 흘려
어두움을 내리고
초라한 옷자락에도
선풍이 일어
고목도
바람의 갈대처럼
흔들게 하라
나그네여
가시일 줄 모르는
빛의 한복판
타오르는 오지에
내가 성장하듯
모든 것을 소생케 하고
빛을 거두어
나의 정원을 떠나게 하라.
- 「오지(奧地)에서」 전문
시편 「오지에서」에 흐르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몹시 어둡고 혼미하다. ‘오지’는 일반적으로 문명으로부터 격리된 지역으로서 갑갑하고 막막한 공간으로 풀이되는데, 이는 60년대의 시간적 공간의 피폐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적 자아는 ‘빛으로 어두워진 내 눈’이라든지 ‘어둠을 내려’ 달라든지, 또는 ‘빛을 거두어/ 나의 정원을 떠나게 하라’든지 하며 ‘빛’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언술에서 ‘오지의/ 더욱 깊숙한 하늘’에 ‘떨어질 날이 없’이 떠 있는 ‘해 하나’는 세상을 밝혀주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내 눈만 어둡게 만들어 ‘황홀을 볼 수가 없게’ 하는 것으로서 당시의 인습적이고 불가항력적인 피폐하고 어지러운 시대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화자는 ‘초라한 옷자락에도/ 선풍이 일어/ 고목도/ 바람의 갈대처럼/ 흔들’리는 몸짓으로 존재의 생존과 구원에 대한 희미한 의원을 내비치기도 한다.
시적 자아는 ‘빛’은 광명과 위안을 주기는커녕 자기를 괴롭히고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어둠’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희망을 둔다. ‘어둠’이 모든 것을 다 지워내어 순수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시인은 시대의 추악함과 순결함, 거짓됨과 순정함, 황폐함과 비옥함 등 서로 모순되는 공간 사이에 경계를 짓고 빛 대신 어둠을 세워 상태를 반전시키는 전략적 사유를 꾀한다. 고식적이고 관례적인 판단을 초탈하는 성춘복 시학의 지적 역동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
흐트러진 강줄기를 따라
하늘이 지쳐간다
- 중략 -
나를 떠나보내는 언덕엔
하늘과 땅 사이를 거슬려
허우적이며 가슴을 딛고 일어서는
내게만 들리는 저 소리는 무언가
- 중략 -
입김 가신 찬 동혈(洞血)을 지향하고
아픔을 참고 피를 쏟으며
나를 떠나보내는 강으로 이끌리어
되살아 오르는 게 아닌가
강 너머엔
강과 하늘로 어울린
또 하나의 내가 소리치며
짙은 어둠의 그림자로 비쳐 간다.
- 「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 부분
옛 대륙을 건너면
생생하게 흐르는 강 저쪽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멈추어 서
가냘픈 손으로도 가리킬 수 있는
피안의 꽃이 되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의 세계로
이 땅의 연속이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무지개며 별들의 신선한 꿈으로
빛나고 있는 강의 힘으로
노를 젓는다
- 중략 -
언제나 변함없는 강의 소리는
과거와 현재
이 불행한 비만의 강을 따라
영화의 꽃
미래와 함께
무딘 노(櫓)를 잡는다
끊임없이 풀려져 사라져가는
스스로를 안고
들끓는 소란의 옆
옛땅과 피안을 잇는
망각된 기억의 강을 탄다
희망과 저주의 산
그 속에 변함없이 살아간다.
- 「도강록(渡江錄)」 부분
60년대 시대적 상실감으로 침체와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성춘복 시학은 조금씩 그 허황함에서 벗어나려는 의욕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림자’, ‘고독’, ‘저주’ 등의 유폐의식으로 표현되는 이 어둡고 불안한 현실을 초월하려는 욕구는 이상적인 삶을 지향하는 새로운 자아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시적 자아는 ‘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에서’ 자기 내부로부터 ‘가슴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감지하며 서서히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입김 가신 찬 동혈을’ 마다하지 않고 ‘아픔을 참고 피를 쏟으며’ 현실과 맞서면서 인내해야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은 이제 시대의 암울함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과 함께 시대와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한다.
「도강록」에서 시인은 희망의 세상을 향한 속내를 더욱 적극적으로 내보인다. 직접 노를 저으며 ‘옛 땅과 피안을 잇는/ 망각된 강을’ 탄다. ‘영화의 꽃’인 ‘미래와 함께/ 무딘 노를 잡’고 고통의 현실을 넘으려고 한다. 시인은 「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강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시인에게 강은 삶과 죽음의 영역으로 흘러드는 유동적 공간으로서,5) 삶과 죽음 사이에 경계를 지으면서 고통의 이쪽 현실과 꿈의 저쪽 세계를 이어줌으로써 자아를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열쇠이자 진정한 자아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매개해주는 연결자의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편, 공원 파고다는 월탄문학상을 수상한 시집으로서 20연의 장시(長詩) 한 편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는 ‘파고다공원’이라는 상징적 공간, 즉 과거와 현재를 담보하는 역사적 공간을 설정하여 손녀, 노인, 팔려온 처녀 등 다양한 군상들을 불러내며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공원 파고다」의 공간적 배경이 된 ‘파고다공원’은 사적 제354호로서 오늘날의 탑골공원을 일컫는다. 파고다공원은 역사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은 곳이다. 무엇보다 파고다공원은 3․1운동의 중심공간이다. 그러나 1960년대 지금, 그곳이 꽃도 피지 않고, 나비도 날아오지 않는 ‘빈혈의 땅’이 되었다는 것은 결국 3․1정신이 훼손되었음을 시사한다. 정신의 쇠락을 공간의 황폐화로 은유하면서 3․1운동의 정신마저 퇴락한 60년대의 정신풍토를 시인은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여지선은 한국의 장시에 대한 한 연구에서 60년대에 발표된 대표적 장시 몇 편을 비교하면서, 「공원 파고다」는 전반적으로 허무주의 색채를 띠고 있으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6)
하늘만큼이나 한 열매의
나무에 다가설 때
위대한 발견자가 되지만
나는 어디에 있는가
디딜 수 없는 마당으로
떨어져 내리는 내용
창조(創造)와 더불어 숨져가서
나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다시 조그만 죽음이던 내가
동요(動搖) 가운데 앉아
무관심했던 주인을 찾을 때
메아리처럼 보였던 숨결
나의 피
나의 소생(蘇生)은
어디에 있는가
바람을 등지고
바람과 함께 이야기하며
바람을 부둥켜안고
다시 태어날 나의 뜻은
또 어디 있는가.
- 「전생(轉生)」 전문
성춘복은 70년대에 들어오면서 시대적 상실감에 대한 극복의 자세를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시인 자신도 “우리의 60년대는 매우 으스스했고 복잡함을 드러낸 듯 미묘함을 잔뜩 품고 있었다.”고 하면서,7)그러한 상황을 안고 태어난 시집 산조를 계기로 시대적 갈등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가령 「모닝커피」란 시편에서 ‘새벽은/ 솟는 것이 아니라/ 녹아 떨어진 검은 연기의/ 깊이로써 살아오른다’면서 새로운 날은 그냥 오지 않고 깊은 고뇌와 절망으로 나를 모두 태워버린 후에나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기구원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든가, 「출발」에서는 더는 참을 수 없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무거운 바다가 돌아온다면/ 즐겨 문을 밀고 나가/ 거꾸로 서서’라도 오랫동안 남몰래 지펴온 ‘세찬 뿌리의 불길을 뿜으’면서 반기려는 준비가 되어 있음도 보여준다.
그의 시대성 극복 의지는 「선경의 나무」, 「합죽선」, 「3월」 등 여러 시편에도 드러나고 있는데, 이러한 의식 내지 내적 지향은 위에 예시된 시편 「전생」에서 더욱 총체적․변증법적으로 구체화 된다. 이 시편에서 시적 자아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소생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으며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자기의 존재를 계속 확인해 나간다. 시인은 처절함과 애수를 곁들인 감상적 레토릭으로 호흡을 휘몰아치듯 몰고 감으로써 그 절박함의 심상을 강화한다. 그러나 죽음의 강을 건너야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에 대해 답을 던져 줄 존재는 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시적 자아는 ‘다시 태어날 나의 뜻은/ 또 어디에 있는가’라고 거듭 절규하면서 시대적 암울함에 절망하며 빌고 빌었던 ‘전생(轉生)’의 의지가 무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이처럼 다시 태어나고픈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60년대의 시간적 의미는 구원받을 수 없는 좌절의 낭떠러지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시인 성춘복은 이후 80년대 초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 권의 시집도 상재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깊이 침잠하게 된다. 여기에는 여전한 시대성에 의한 상실감이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시 쓰기에 대한 또 어떤 절망적 상황이 70년대의 그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음을 유추하게 만든다.
3. 서정의 알몸 드러내기 - 사유의 경계, 그 상처 위의 진술
1) 허무의식과 자아성찰
산조 이후 긴 공백기를 가진 성춘복은 제4시집 복사꽃제로 다시 모습을 내보인다. 그는 13년 만에 상재한 이 시집에서 ‘파고다공원’이라는 역사적 현장성을 ‘꽃의 축제’의 의미로 환치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파고다공원의 역사적 비극성과 그 아픔을 시인의 개인적 갈등과 대치하고 깊이 인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시대적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개인적 고통과 맞닿게 하여 시적 의미를 강화하는 것과 같은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8) 그의 시에서 서서히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기척으로서 고통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자신도 시집 복사꽃제의 상재와 관련하여 “시집을 갖지 못한 지난 기간 나는 가장 참담한 것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잊은 듯하다. 침체의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리는 한 작업으로서 복사꽃제에서는 서정적인 데에 바탕하여 사랑을 통한 자기구원을 꾀하면서 시의 구조적 측면과 언어 및 율격을 재조명하여 보고 싶은 나름의 노력을 시도하면서 사고의 분열로부터 다소나마 자신을 지키겠다는, 즉 시적 본연의 생태를 통하여 진솔과 윤기를 더하고 자아(自我) 및 대아(對我)의 관계를 정립하여 감동의 세계로 이르는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서는 바로 그 몫이라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시적 고뇌의 늪에서 헤어나고픈 심경을 숨기지 않는다.9)
묵은 잠을 일구는
밭은 숨소리가
말발굽으로 달린다
젖은 바닷바람과 함께
생애를 마감하고
거듭 시작을 보이는
매듭의 끝가지를 타고
꽃이 심한 기침을 해댄다
우리들의 마음보다 더 얕게
무릎으로 지쳐가는
바닷가 안개,
그 풋풋한 텃밭
한동안의 신기루,
어떤 불로도 지을 수 없는
빛의 한가운데
꽃은 튀어오른다
단숨의 재치로운 걸음으로
바다와 바람과 안개가
꽃을 밀어 올린다
복사꽃밭의 꽃을.
- 「복사꽃제(祭)」 전문
성춘복은 시집의 표제로 삼은 시편 「복사꽃제」에서 서정으로의 복귀를 꾀하면서 감동의 세계로 이르는 길을 찾으려는 의원을 드러낸다. 전체로는 서정적인 시어들과 율격으로 내면의 감성을 표현하면서 ‘생애를 마감하고/ 거듭 시작을 보이는/ 매듭의 끝가지를 타고/ 꽃이 심한 기침을 해댄다// 우리들의 마음보다 더 얕게/ 무릎으로 지쳐가는/ 바닷가 안개,/ 그 풋풋한 텃밭’이라며 나(자아)와 꽃(대아)의 관계를 설정해 놓고, ‘한동안의 신기루/ 어떤 불로도 지을 수 없는/ 빛의 한가운데/ 꽃은 튀어오른다’고 외치면서 황량함과 고통 속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최근 한 문예지와의 대담에서 ‘시를 왜 쓰는가,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올바른 방향은 어떠해야 되는가’에 대해 말하면서 복사꽃제 이후 확고하게 지켜오고 있는 자신의 이러한 서정적 시사상 내지 세계관의 일단을 내보이기도 했다.10)
시쓰기란 매우 개인적이고 고독한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잠재적인 것이 있게 마련이고, 또 시인이라는 고답적인 원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음이 없이 언어와 지역, 혹은 그 민족적 정체성까지 뛰어넘어 초월적인 자리에 새 삶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비로운 대체세계로 다시 새로운 우주를 일으키는 일을 우선에 놓습니다. 근대 이후 우리의 시가 실험성과 지나친 사회성 또는 압살하려고 드는 고집스런 시대성을 대변하는 일만으로도 다른 한켠으론 본질을 잃고 있다는 것에 무관하지 않습니다. 감성과 서정의 본질은 시인이 하고자하는 원망의 뜻과 그렇도록 구성한 시적 요소가 어떠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시의 논객들 역시 이런 관점에서 충분히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동원해 시를 읽어야 하고 또 비평해야 합니다. 한정 없이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 시단의 현실에서 더 이상의 언어적 직설성, 난잡성, 요설성, 추상성 등에 막연히 매료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학이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의 독특한 체험을 가지고 함축과 상징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멋대로의 언어를 멋대로의 독자가 확대 전파시키는 일은 현대시단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만일 잘못된 것이 있고, 옳지 않은 길을 향하는 인생이 있다면 그것을 아무리 음미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떤 값어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70년대의 혼란의 시기에 긴 침체에 들었던 성춘복 시학은 80년대 초반에 이르러 그토록 찾아 헤매던 빛의 줄기를 보게 된다. 그는 “이 시점에서 시란 무엇일까, 어떤 것이 시적인 것인가 하는 오랜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지금까지 침잠되고 응결되었던 시적 세계를 바깥으로 끌어내어 펼쳐보는 시험을 해보고 싶었고, 복사꽃제를 통하여 연가(戀歌)로서 그 일단의 막을 잡아 보려 했으며, 그런 노력을 계속하면서 어려움의 세계를 푸는 쉬운 시에의 한 지향으로 내 속의 것과 바깥을 이어보자는 셈을 통해 알몸을 심판받고 싶었다.”고 말하면서,11) ‘바깥세상’을 그 내면의 확신을 위한 정신적 공간으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그래, 그럴 듯 하데요
전생(前生)의 어디선가
한차례 꼭 만난 것 같은
카라카의 한 처녀
꽃레이 걸어주며
내 목 껴안고 입을 맞추데요
춤도 함께 추자기에
손 붙들어 세우고
있는 대로의 옷 벗어 팽개치며
맨발에 알몸 되어
잔디밭을 뒹굴다가
전생의 바로 그 길목쯤
빤히 내 눈 속 들여다보데요
까맣다 못해 파란 불길 도는
바다의 여신(女神)
분명 내 뒤를 야금야금 따라온
당신의 겉옷도 앗아 던져버리고
나와 더불어 누벼 다니게 하데요
그래, 그렇대요
수수만 년 붙어 다니다가
예까지 흘러들어
「구운몽」의 어느 대목
남과 남이 되어서
새까맣게 잊은 듯
우린 춤을 추었대요.
- 「하와이에서 추는 춤」 전문
참담과 황량함뿐이었던 저 다난한 시대에 방황과 배회로써 시적 갈등을 달랬던 시인은 복사꽃제라는 축제 한마당을 펼치면서 ‘사랑’과 ‘유년’과 ‘신앙’의 뿌리를 통하여 침체의 늪으로부터 자아를 구원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고, 제반 주관적인 아집과 그에 대한 정체를 탈하기 위해 마침내 바깥세상으로의 여정을 결단하게 된다. 이에 대해 하현식은 성춘복 시의 국수주의적 경계는 때로 모국을 결코 떠날 수 없는 자의 편견에 있다고 하는 골도니(Carlo Goldoni)의 언질을 연상케 만들고 있으나 이미 이국땅을 섭렵하면서까지 모국을 떠나지 못하는 이 시인의 사유는 바깥세상에서의 새로운 문명이나 상황의 발견에 따른 감동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세상을 통한 더욱 투철한 자아의 확인과 성찰에 결연되고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고 지적한다.12) 성춘복에게 바깥세상은 침몰하지 않고 회복을 가능케 하는 ‘나의 시정신’과 그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할 수 있는 우리 밖의 장소로서 진정한 시적 자아를 바라보게 해주는 기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제5시집 바깥세상에 띄우나니에 실린 「하와이에서 추는 춤」은 시인의 이러한 사유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전생, 인연, 만남 등과 같은 불교의 윤회의식으로 시작하는 시는 ‘구운몽의 어느 대목’으로 진하게 채색되어 있는 동양적 자아를 다시 확인하면서, ‘카라카의 처녀’, ‘파란 불길 도는 바다의 여신’조차도 ‘겉옷도 앗아 던져버리고/ 나와 더불어 누벼다니게’ 하면서 나의 ‘당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는 엑조티시즘(exoticism)을 무화하면서 이국적 정서나 정취에 탐닉하지 않고 시인의 무장되어 있는 정신이 밖에서도 짙게 발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진솔한 자기규명적 진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없느냐
누가 없느냐
- 중략 -
네가 달아난 길의 끝에서
성냥개비 마구 그어대며
어두운 내 눈 밝히듯
낯선 문 두드리나니
- 「빈 집을 향하여」 부분
눈 내려 막힌 길
구름 속을 헤매다가
낯선 집 흔드나니
- 중략 -
바람 불어 물살 일 듯
날 새면 풀솜 같고
길 밖은 저승이라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부름소리뿐이러니.
- 「문 앞에서」 부분
넋이려니
피 토하도록 마시는
술이려니
- 중략 -
손만 들어 올려도
가슴 밀어붙이는
아프고 쓰린 병
- 중략 -
보이지 않기에 설움 잊고
닿지 못하기에 살고 싶은
비굴의 내 욕심
이승을 달아나는 서글픔
내 넋이려니
어져, 살아가는 일이여.
- 「이승 벗어나」 부분
돌아가는 길은
가본 적 없는 낯선 곳
나이 먹은 사람이 우는
서글픔 짊어지고
그 깜깜의 속을
사랑의 사람아
나는 가고 있다
- 중략 -
애써 말린 그대의
꽃잎 하나에 감겨
탓하지 못할 마음이게
사랑아
내 그 길 눈감고 가마.
- 「심정적(心情的)」 부분
80년대 성춘복 시학에서 풍기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개인적 욕망에서 시작된 내적 성찰과 허무의식, 그리고 삶에 대한 간절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제7시집 네가 없는 이 하루는에서 두드러진다. 가령 시적 자아는 학정과 기아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난민이나 생사를 오가는 중환자처럼 삶에 대한 절실함으로 ‘낯선 문’을 두드리며 ‘누가 없느냐/ 누가 없느냐(「빈 집을 향하여」)’,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문 앞에서」)’고 부르짖는다든지, ‘보이지 않기에 설움 잊고/ 닿지 못하기에 살고 싶은/ 비굴의 내 욕심// 이승을 달아나는 서글픔/ 내 넋이려니/ 어져, 살아가는 일이여(「이승 벗어나」)’라며 깨닫게 된 자신의 어리석음을 서글퍼하면서, ‘깜깜한 속’인 그 ‘낯선 곳’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사랑의 사람아/ 나는 가고 있다//(중략)// 아 사랑아/ 내 그 길 눈감고 가마(「심정적」)’라고 소리치며 ‘가본 적 없는’ 거기로 향하고 있는 애끓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이 시기 성춘복의 시에는 집시의 자화상을 보여주면서, 성찰 뒤의 깊은 허무와 절망이 함축적으로 드러나며,13) 미지의 삶에 대한 심절함이 상징화된 외경의 뜻과 함께 짙은 호소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람이었네, 천둥이었네
가슴 깊은 모래펄을 쓸고 가는
가을밤의 폭풍이었네
고목 사이 손을 뻗으면
새 한 마리
슬퍼도 울지 않는 둥지였네
빗소리였네, 어둠이었네
뱃머릴 흔드는
사나운 흐름이었네
곤히 잠들었던 내 출항지
한 방울의 파문으로도
가라앉으려 하네
바람은 없었네, 어둠은 없었네
썰물과 밀물에 들고 날
나의 길은 없었네.
- 「폭풍의 노래」 전문
이 시기 성찰과 간절함의 정조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시편으로 제6시집 꽃잎 띄운 물 마신 듯과 제7시집에 동시에 실려 있는 「폭풍의 노래」를 들 수 있다. 시적 자아는 ‘바람과 천둥과 가을밤의 폭풍이었고, 슬퍼도 울지 않는 둥지였으며, 빗소리와 어둠과 사나운 흐름이었다’며 지난날을 술회하면서 ‘한 방울의 파문으로도 가라앉으려고 하는’ 지금의 자기 처지를 내보인다. 그러면서 마지막 연에서는 도리어 ‘바람도, 어둠도, 바람에 들고날 길도 없었다’고 하면서 앞의 말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적(知的) 뉘앙스를 많이 품고 있는 이 시는 어휘의 낭비 없이 절제가 두드러지며, 4연까지 내보인 강한 긍정을 마지막 연에서 슬며시 부정함으로써 과거에 품었던 의지를 되살리면서 동시에 생애의 허무함을 자각하고 각성하는 모습을 도출해내고 있다.14) 또한 과거지향으로 오늘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 대한 간절함을 반어적으로 끌어냄으로써 여운의 감동을 발산하는 서정의 참멋을 보여준다.
80년대는 성춘복에 있어서 연가(戀歌)를 통해 ‘시 쓰기의 오류’를 바로 잡으면서 서정으로 복귀하려는 자신과의 싸움을 뜨겁게 벌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통과 시대성 사이에 경계를 짓고 ‘언어 및 율격의 창출’이라는 발걸음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가는 ‘전략적 담넘기’를 시도한다. 이 기간에 상재한 복사꽃제, 바깥세상에 띄우나니, 꽃잎 띄운 물 마신 듯, 네가 없는 이 하루는 등 네 권의 시집 여기저기에서 ‘꽃’과 ‘미포(尾浦)’와 ‘바다’와 ‘바깥세상’과 ‘바람’과 ‘천둥’ 등과 같은 시어들이 이러한 의도를 상징적으로 표출한다.
2) 자기구원과 형식의 파행
자아의 성찰을 통해 시대성 극복을 위한 단초를 마련한 시인 성춘복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기회복’을 향하여 강한 집착을 보인다. 그는 이제 자신의 시 쓰기에 대해 “나의 주된 관심은 ‘너’와 ‘나’에 있으며, ‘너’는 내 존재의 의의를 새롭게 하고 오늘 나를 삶이게 일으켜 세워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없이는 나의 실존에 아무런 뜻도 값도 주어지지 않게 된다”고 하면서,15) 나의 새로운 너를 찾아가기 위한 구도의 먼 ‘길 떠남’을 시작한다.
바라보며 바라보며
보다가 숨소리 뜨거워지는
피리소리 아슴한 이승의 덤불
너의 나라로 가리
- 「먼 나라」 부분
봄물 같은 파도가 일렁이는
녹둣빛 바다를 보기 위해
난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 중략 -
카이저와 크레오파트라 가(街)가 얽어대는
낯선 전차길 위
두 마리의 당나귀가 끄는 낡은 마차 앞에서
나는 소리쳐 물었다
“바다 너머 내 고향은,
내가 갈 곳은 어디냐”
- 「알렉산드리아 가는 길」 부분
오, 시여, 시인이여
어둠이여, 칠흑 같은 죽음이여
비로소 굳어버린 무덤이여, 돌조각이여
예까지 나를 이끈 헛됨들이여.
- 「보들레르의 무덤 앞에서」 부분
시인의 길 떠남은 제8시집 길 하나와 나는, 제9시집 그리운 죄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리고 제10시집 혼자 부르는 노래에서 구체화된다. 위의 시편들에서 보여주듯이 시적 자아는 길 떠남의 여정에서 ‘먼 나라’인 ‘너의 나라’로 가면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내 고향을 물으며 애타게 미래의 처소를 찾기도 하고, 보들레르의 무덤 앞에서는 주검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욕망의 헛됨을 한숨으로 탄식하기도 하지만, ‘길은 늘 비어 있어/ 빈 길을 나는 채우며 간다// 어린 날로부터 걸음마를/ 걸음마는 다시 달음질로/ 그래서 나는 낯선 길을 찾아 나선다//(중략)// 쉰도 넘어 예순 가까이/ 그 다음도 열심히 찾아다닐 이 길/ 마음터로 깔아놓은 내 자리이다’라고 하면서(「길로 나서며」), 이 낯선 길의 떠남이 자신을 찾기 위한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술은 시에서 일인칭 시적 자아인 ‘나’로 구체화됨으로써16) 자기구원을 향한 강한 열망으로 발현된다.
있는 대로 구멍을 내어도
몸뚱이는 모자라
발꿈치를 돋우고 목 뽑아
냅다 소리를 칩니다
궁
상
각
치
우
겨울은 너무도 쉽게 와서
등걸마다 눈바람
가쁜 숨소리에 옷고름 터져
그만 알몸이 됩니다
우
치
각
상
궁.
- 「퉁소」 전문
나는 바람에 실려가는
⏴ 구름
너는
푸르다 못해 물들어버린
하늘 ⏴⏴
오늘
너는 들판으로 나앉고
나는 당국화의 목놓은 가을이 되거니.
- 「오늘 나는」 전문
90년대 성춘복 시학에서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종래의 글쓰기 방법과 시적 양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열망은 주로 제11시집 헤적이기 > 해작이기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시인은 여기서 스스로 ‘파행’이라고 부르는 ‘시형식의 풀어헤침과 변형’이라는 파격적인 시도를 통하여 자아의 회복과 진정한 비상을 위한 바람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피카소가 스케치한 그의 연인 테레즈 발터의 뜨개질하는 모습, 그 그림 속에 마구 난도질한 직선과 곡선의 연속체가 수십 년 뒤에 시로 쓴 커밍스(Edward E. Cummings)의 퍼즐로 연출된 것을 예로 들면서, 복잡하고 난해한 추상화도 선 대신에 몇 단어로 형상화하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고 말한다.17) 즉, 한결같이 간단한 선과 언어의 조직은 철저하게 단순화하였기 때문에 어려운듯하나 이해의 끈만 잡으면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커밍스의 시는 네모반듯한 사각의 공간 속에 단어 몇을 수직으로 나열하여 마치 글자가 떨어져 내리는(하나의 상태로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단어들은 하나(one), 외로움 (loneliness), 홀로인 나(I-ness)라는 뜻을 지니지만, 실은 엄청난 철학이 내포되어 있어 큰 놀라움이 된다. 이 놀라움은 천둥의 시각적(빛, 번쩍임)인 것이 번개의 청각적(소리)인 것으로 바뀌어 엄청난 표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위에 예시된 시편 「퉁소」에서 시적 자아는 자신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발꿈치를 돋우고 목 뽑아/ 냅다 소리를’ 치며 드러내보지만, ‘너무도 쉽게’ 반복되는 겨울과 같은 혹독함으로 그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결국 알몸뿐인 자신만을 보게 된다. 시인은 그런 삶의 공허함을 ‘퉁소소리’로 상징화하여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회화적인 표현주의는 자족적 언어에 갇혀 폐쇄적 완결성에 안주하는 서정시의 미학주의와는 달리 완결된 전체성을 어그러뜨려 흘러내리거나 빠져나오거나 파고드는 사물의 경계를 드러내 사물과 주체의 외부를 향한 시선을 열어둠으로써18) 시적 상징의 효과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시인의 이와 같은 실험은 「실족」, 「록키산의 온천욕」, 「아내를 돌려보내며」 등 대부분의 시편으로 이어진다.
시편 「오늘 나는」에서는 빈 사각 형태의 도상기호를 사용하여 가시적인 ‘빈자리’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시적 상상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언술의 시각적 효과를 고조시킨다. 빈자리로 묘사된 구름과 하늘은 형용할 수 없이 변화무상한 자연계의 모습으로 여기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은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인은 시에 이 빈자리를 들여놓음으로써 이것이 자신의 이상적 공간임을 암시하면서 일반적인 시의 표현방법을 일탈하는 모습으로 현실의 어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성춘복은 자신의 이러한 ‘형식의 파행’ 의도와 관련하여 “참으로 많은 무너져 내림, 떨어져 내림, 터져버림, 그리고 낡고 삭아 자신이 허물어져 버린다는 허망조차 잊고 사는 까막기억들, 그 이유를 바깥으로만 돌리고 있는 큰소리들에 앞서 우리들의 정신구조에다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고 토로하고 있다.19) 이에 대해 배영애는 현대의 시인들은 규격화되고 조직화된 세계에 도전하게 되고 세계의 감추어진 추악함과 무질서, 그리고 자기 내면의 추악함이나 모순을 스스로 폭로하려 할 때 탈승화의 시적 장치가 필요하게 된다고 하면서,20) 성춘복의 경우에도 종전과는 다른 그림과 도상기호, 시행의 일탈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노력을 보게 되지만 이러한 시형식의 변이가 사회적 모순이나 부정적 인식, 또는 고발정신을 표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정신적 깊이와 인간의 구속적인 삶의 테두리에서 날아오르기 위한 노력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한다.21)
한편, 시형식의 풀어헤침은 작금의 글쓰기 사고와 그 방식에서 벗어나 언어의 낭비를 막고 시적 깊이를 더하려는 하나의 전략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제12시집 혼자 사는 집에서 나타난다. 가령 시편 「죽음」에서는 시적 자아가 살아온 삶이 네모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공간 속의 삶은 소망으로 살아있는 꿈과 뒤집힌 죽음으로의 꿈이 엉켜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들 꿈 사이에 단단히 못질을 해놓음으로써 다시는 헛된 꿈들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실의 복잡한 삶에 묻혀 살아온 시인은 이렇게 단순한 그림과 도상기호를 이용해 그 삶을 ‘깡그리 다져/ 반듯하고 단단하게 꾸민/ 다음 아주 천연한 잠을 청’하면서 죽음으로 익어가는 삶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며 이제는 죽음조차도 초월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시인의 이런 심상은 둥근 원으로 묘사하고 있는 시편 「꿈」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4. 편안과 안도의 길
90년대에 극심한 내면적 방황과 시형식의 파행적 실험을 거치면서 풀어헤침의 경지를 체험한 성춘복 시학은 이제 ‘알몸의 나무’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사유와 함께 인생과 삶에 대한 관조의 시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결코
좋은 것만 얻어
가질 수도 없는
황당함이라니.
- 「인생에서 얻은 것」 전문
그 누구도 모르게
널 훔쳐보다가
들킨 듯
부끄러운 입맞춤
마른 가슴 적시는
간음(姦淫)의 어여쁨이사
두려움보담 눈이 더 부셔
늘 나는 이 봄을 운다.
- 「함께 숲을 보며」 전문
2000년대 성춘복의 시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면은 시가 짧아졌다는 것이다. 시인은 “나이 들면서 시는 짧아야 하고 감흥스러워야 한다고 늦게나마 깨달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데,22) 이는 본고에서는 제외되었지만 2000년 이후에 상재한 9권의 시집들 중 시조집이 4권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23)
위의 시편은 제13시집 마음의 불에 실려 있는 단시(短詩)들이다. 시편 「인생에서 얻은 것」에서 시적 자아는 ‘가질 수 없는/ 황당함’이라며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욕망의 부질없음을 반어적으로 담담하게 진술하면서 읽는 이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으며, 「함께 숲을 보며」에서는 봄으로 표현된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시어에 담아 노래하면서 어떤 의미로 받아 읽어도 감흥을 주는 상징성의 마력을 발산한다.
경주 외동리
박목월 시인의 도화꽃 피던 곳엔
눈썹 같은 달이 뜨고
음력 오월 초닷새
보문호 맑은 물살이
내 마음 헹궈내면
옛적 신라의 요석 공주
손톱마다 봉선화 꽃물 들여
간곡히 당부하는 말
내 마음의 고향은
이곳의 밤하늘
나를 더욱 밝히려 드네요.
- 「신라의 달밤」 전문
「신라의 달밤」은 시조집인 내 안 뜨거워와 같은 해에 상재한 제17시집 봉선화 꽃물에 실려 있는 시편이다. 외지에서 오랫동안 외롭고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나이 들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시적 자아는 ‘경주 외동리, 보문호 맑은 물살, 그곳의 밤하늘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는 거기를 그냥 고향이 아닌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면서 눈썹 같은 달이 뜨고 도화 꽃이 피는 그곳, “물을 청하니/ 팔모반상에 받쳐 들고 나오네/ 물그릇에/ 외면(外面)한 낭자의 모습// 반은 어둑한 산봉우리가 잠기고/ 다만 은은한 도화 한 그루/ 한 가지만 울넘으로/ 령(嶺)으로 뻗쳤네.”라고 노래하는, 바로 가슴 속에 깊숙이 심어놓아 둔 박목월의 「도화 한 가지」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내 마음의 고향은/ 이곳의 밤하늘/ 나를 더욱 밝히려’ 든다며 늦었지만 자신의 시의 고향을 ‘신라인과의 대화, 저승과의 대화, 저승의 모든 한국인, 우리네의 고향친구들, 또는 조상들의 얼과 화답하는’24) 그 시정신에 두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시인은 최근에 상재한 십삼월의 뜰에서도 「신라의 무덤 하나 일으키며」, 「쇳물」 등 여러 시편에서 그런 시정신의 고향의식을 언뜻언뜻 내비친다.
연사흘
금빛 탑 아래서
나도 어쩔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찬연한 종탑 아래
맨발이어야 극진하다기에
믿음의 내 가부좌는 공양이 되었고
얕은 담장 밑으로
한정없이 퍼담은 천성의
내 향방은 계속 이어지기 십상이어서
지금도 나는 꿈속
아무런 자락이라도 끌어안고
황금덩이가 되어야 한다는
아, 이 밤과 다음다음날도 또한
천방지축 낯선 길만 찾다가
노랗게 황금으로 물들고 싶은 소망이었습니다.
- 「미얀마의 황금기도」 전문
성춘복의 시에서 종교적 색채를 보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시적 자아가 지향하는 데로 인도하는 길잡이 또는 절대적 조언자로서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이 경우에 따라서는 하느님이기도 하고 부처님이 되기도 한다. 제20시집 13월의 뜰에 실려 있는 「미얀마의 황금기도」에서 시적 화자는 부처님 앞에 맨발로 예를 갖추면서 ‘어쩔 수 없는 꿈이었던, 지금도 꿈속에서조차 황금덩이가 되어야 한다는, 노랗게 물들고 싶은 소망’이 허황한 것이었음을 고백하며 욕망을 해체하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구원한다. 시인은 「말씀의 그분께」, 「노을빛」, 「나무의 꿈」 등 시편들에서도 이러한 자기구원 의원을 간곡하게 진술하고 있다.
지금 시인은 ‘편안과 안도의 길’ 위에 서려고 한다. 이 길은 복잡 미묘한 현실의 시각적, 물리적, 또는 정서적 관념까지 꿰뚫고 나와서 허식이나 장식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드러나는 시를 쓰는 일로서,25) 시인이 평생에 걸쳐 치열하게 추구해온 ‘시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여든의 문짝 열리고
난감하게도 활짝 펼쳐져서
늦어도 바쁜 걸음이어야 하는
저승이 코앞에 다가든다
그러나 니네들 그거 알랑가 몰라
밀양이며 양산, 울산 그리고 삼천포
거제며 창원, 김해 등
골짝도 먼 뭍과 그 물 건너
우리 마음의 고향을 쌓아 나가다가
이젠 땡! 땡! 땡! 서른세 번의 종소리
가슴앓이 셈법으로 여든 살 성(城) 쌓고
굳은살 옹이로 가슴을 치거늘
그 답답증에 눈은 침침하고
그 먹먹함에 귀는 막히고
팔다리 허리까지 시큰새큰
어떤 건지 니네들 알랑가 몰라
낡은 년(年)을 보내고 나면
종로 보신각에 콧방귀 뀌는 소리
아, 새년(年)맞이도 소망이 아니니
니네들 이 깜깜을 정말 알랑가 몰라
- 「갑오(甲午)의 종소리」 전문
60년대의 시대성에 대한 환멸과 갈등, 70년대의 좌절과 방황, 80년대와 90년대의 내적 성찰과 변화의 몸부림, 그리고 자기 확신을 위한 낯선 바깥세상으로의 장구한 여정에서 쉼 없이 넘나듦의 경계를 만들면서 걸러낸 짙은 상징성과 순수성으로 자기만의 서정을 창조해온 시인은 “이제는 꽤나 긴 세월이 흘러 창밖으로 보낸 시선도 설렘이 되고, 진작 버렸던 것도 떠남의 아쉬움으로 남아 헤아릴 도리가 없고, 우리라든가 시대라는 말 따위도 버렸으니, 자신의 삶이나 그런저런 자전적(自傳的)인 데로 시선이 옮아가는 것도 순리인 모양”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26)
그러면서도 시적 자아는 제21시집 여든의 하루를 사는 법에서 어느결에 앉혀놓은 또 하나의 경계 위에 스스로 보신각 종소리로 서서 ‘니네들 그거 알랑가 몰라’, ‘니네들 이 깜깜을 정말 알랑가 몰라’라고 하면서 먼 여행길에서 동행했거나, 잠시 만났거나, 의미 없이 부딪쳤거나, 스쳐지나간 모든 존재들에게 애틋한 눈빛으로 지나온 날들을 희롱하듯 말을 건네고 있다. 평생을 시가 되어 걸어오며 달관에 이른 노시인의 여유와 다정함이 ‘봄이 오는 길목’에 ‘벗은 나무로 서서’ 들렌 듯 푸르게 나부낀다.
5. 끝내며
이상에서 시인 성춘복의 시세계를 그 시적 특성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성춘복 시학은 시작 활동 초기의 극심한 시대적 갈등과 침체를 거친 후, 중기에는 서정으로의 복귀를 결행하면서 형식의 파행 및 길 떠남을 통해 욕망을 털어내며 자아성찰과 자기구원을 꾀하였고, 후기에 와서는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사유와 함께 관조적인 시세계를 구축하면서 자신의 시적 지향인 ‘편안과 안도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된다.
성춘복 시인은 최근 한 문학지에 실은 글에서, 자신의 전감각과 정신력과 지적인 장비로 무장한 완전한 인간, 즉 ‘옹근 사람’으로서 지(知)와 정(情)과 의(意)가 집약되어 원만하고 조화로운 품격을 지닐 때만이 시인은 창조적 위상으로 남다르게 되며 비록 시력을 상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달리 제공되는 감각기능에 의하여 작가적 소임을 훌륭히 소화해 낸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시란 다른 누군가의 내부에 자신과 비슷한 상태의 존재를 세우는 일로 자기 시의 목표를 세우고 추상화가 곧 단순화라는 다소의 특성을 갖고 다의적인 통찰을 통하여 진정한 삶의 동의어에까지 도달하고자 노력함으로써 복잡 미묘한 시각적․물리적 또는 정서적 관념까지 꿰뚫고 나와서 허식이나 장식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드러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데,27) 이는 몇몇 논문과 평론에서 공통적으로 다난한 시적 여정을 거친 성춘복 시학의 특성을 치밀한 감수성을 통한 시어의 상징성과 연상성, 그리고 정제된 순수성에 두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칸트(Immanuel Kant)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절충․통합하는 입장에서 인식의 성립 조건과 한계를 확정하고 형이상학적 현실을 비판한다. 그는 감성(感性)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오성(悟性)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는다면서 경험과 합리의 관계를 설명한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라는 것이다.28) 시인 성춘복은 이러한 감성과 오성이 통합된 선험적 인식을 바탕으로 전통과 시대성 사이에, 어둠과 밝음 사이에, 삶과 그 너머 사이에, 나와 너 사이에, 안의 나와 밖의 나 사이에 끊임없이 사유의 경계를 앉히고, 다양한 상징들을 불러들여 자아가 해체된 신비롭고 초월적인 대체세계로서 서정적 창조물을 생산해왔다고 할 수 있다. 성춘복의 시세계에는 이렇게 경계의식과 상징성으로 조탁되어 현현하는 서정의 순수미가 큰 강줄기로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시편 하나하나에서 그 고통스런 사유의 터널을 지나온 뒤의 진한 체취가 배어난다.
시인 성춘복에 대한 이런저런 호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주목되는 그의 많은 시편들이 아직 제대로 조명되고 있지 못한 측면이 있다. 뛰어난 시라고 평가는 하지만 그것이 ‘어째서’, ‘어떻게’ 뛰어난지에 대한 충분한 담론을 거치지 않고, 작품의 표층에 드러나 있거나 내포적인 서사만을 다루면서 시적 효과의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향후에는 시인 성춘복에 대한 작품 외적인 사정과 배경에 의지하기보다는, 작품의 구조와 문법과 독자로의 소통경로를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그 효과를 설명해내고, 하나의 시가 지니는 가치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논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