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유라시아 대륙에 관심을!
부산시가 ‘영어 상용도시’ 정책을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작전을 다소 바꾸어 ‘영어 하기 편한 도시’를 지향하겠단다. 그래서 타 시도에서 거의 모두 실패한 영어마을을 부산에서만 유독 대폭 늘리고, 3~5세의 유치원 아이들까지 영어 구사 능력을 키우겠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부산의 글로벌 도시 역량을 키우는 최선의 효율적인 길일까? 초·중등학교부터 몇십 년을 해도 잘되지 않는 영어회화, 그걸 단기간에 막대한 시 예산을 쏟아부어 강요한다고 택시 기사님들이 공항이나 페리 부둣가에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인공지능(AI)의 난무로 외국어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대학의 영어학과들도 입학생이 없어 죽을 맛이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삶은 북방으로 남방으로 계속 확장되어 나가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오직 영어에 올인하는 이런 퀴퀴한 국제화 전략이 과연 우리 부산의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4월에 전국에서 처음 설립된 북방 관련 공공법인인 우리 (사)유라시아 교육원은 북방 유라시아 대륙과 부산시민을 연결하는 종합 플랫폼이다. 주로 시민 국제교육과 다문화 자녀 교육, 외교관 초청행사, 북방 전문가 모임 등을 하고 있다. 올해도 수영구청과 부경대학교, 연산도서관, 부산 인문연대 등과 협력하여 부산시민의 유라시아 시민화에 앞장설 생각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20만 명 이상이나 되는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을 모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그 장점을 그대로 살려서 어떻게 국제인재로 만들까?’그런 고민을 많이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다문화 정책은 중앙이든 지방이든 상관없이 모두 이 학생들의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오직 기존의 한국 사회에 동화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어서, 세계 추세와 거꾸로 가기 때문이다.
아울러 2022년 7월에 (사)유라시아교육원 안에 창립된 ‘유라시아 포럼’을 활성화하여 대륙에 관심 있는 경제인, 학자, 외교관, 공무원, 청년 시민들을 일 년에 네 번 정도 한자리에 모을 작정이다.
우크라이나 복구 시장에 부산기업이 참여하는 문제, 동유럽 현지에서의 대학생 봉사단 운영 문제, 이민청 부산 유치 문제 등 현안을 놓고 발제와 토론도 하고 인적 자원을 네트워킹하자는 취지이다.
백 년 전의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사람들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만주와 시베리아, 심지어는 유럽까지 누볐다. 그때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너무 미국과 영어 타령만 하지 말고, 북방 유라시아에 대한 인식이 옛날만큼이라도 복원되어서 우리의 세계관에 다시 균형이 잡히길 기대해 본다. 그것이 부산의 글로벌 도시 역량을 키우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단조로움과 문화 편식, 그리고 국제관계의 편중은 도시의 생존과 발전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싱가포르와 상하이도 롤 모델로 좋지만, 해양과 함께 대륙을 같이 중시하며 우리 자신의 무게중심을 스스로 잡아 나가야 한다.
이재혁 /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 부산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