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아라! 택시
이 홍사
세상에는 없다.
홀로 누운 홀아비가 제 아랫도리 주물럭거리듯이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게 세상에는 없는 모양이다. 택시를 시작하고 목표를 달성한 날은 겨우 어제 하루였다.
목표치를 달성했지만 어제도 곱게 넘어간 날은 아니었다. 출퇴근시간과 초저녁에만 일을 하고도 내가 정해놓은 액수를 벌었다. 나름대로 정해놓은 금액을 달성하고 나니 저녁 아홉시 경이었다. 룰루랄랄~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는데 집 부근에서 느긋하게 택시를 세우는 사내가 있었다. 뒷문을 열고 K시까지 얼마냐고 물었지만 어두워서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K시라면 바로 인근에 붙은 작은 도시였다. 장거리는 처음이기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왕복을 계산해서 사 만원을 불렀다. 사내는 말없이 뒷좌석에 타고 문을 닫았다. 나는 신나게 산업도로를 달렸다. K시 까지는 도로가 좋고 한산해서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K시 입구에 들어서면서 어디로 모시면 되냐고 뒷좌석에 대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없는 것이었다. 잠이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뒷좌석은 빈자리였다. 사내는 비싸다고 생각했던지 차를 타지 않고 뒷문을 쾅 닫은 것이었다. 나는 차 문 닫는 소리만 듣고 손님이 탄 줄 알고 달렸던 것이다. 화가 나기보다는 너털웃음이 나왔다. 손님이 탄 줄 알고 빈차로 K시까지 갔으니 역시 초보는 틀리는군, 하면서 실내등을 켜지 않은 죄로 좀 비싼 경험을 했다고 내 불찰을 관대하게 덮어주고 아쉬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되돌아 내려왔다.
오늘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럴 땐 예상이 살짝 빗나가도 좋으련만, 역전에는 이미 택시가 사오십 대 줄지어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택시들이 정차해 있는 줄, 맨 뒤에 택시를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택시 줄은 역 앞 승강장에서부터 민주약국 앞까지 늘어져 있었다. 내가 선 곳은 민주약국 앞이다. 앞차들이 빠지지 않는 한, 내 뒤에는 택시들이 서지 못한다. 바로 버스정류장이기기 때문에 그곳은 비워둬야 한다. 켜놓은 라디오에서는 오늘은 가끔 눈이 올 거라는 예보가 나오고 있었고 정말 눈이 오려는지 구름은 낮게 깔리어 도시하늘을 덮고 있었다. 날씨 탓인지 내 마음마저 우중충하고 지나다니는 행인이 눈에 띄게 줄었다.
KTX가 들어올 시간이 어지간히 되어 간다. 그러면 앞에 있는 차들이 술술 빠져나가겠지. 또 진눈개비라도 내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탈 것이다. 택시기사로서 초보인 나도 이젠 그 정도는 예측 가능하다.
택시를 시작한 지 오늘로서 꼭 나흘 째 되는 날이다.
나는 택시기사로서 체질이 아닌가 보다. 아니, 거꾸로 생각하면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인지 모르겠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그런 직업. 가만히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제 겨우 나흘 째 되는 날인데 아직은 단언하기 힘들겠다.
영업용 화물차를 경력이 삼 년 넘어서면 개인택시허가를 시청으로부터 받는 게 아니라 살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말에 나는 영업용 개별화물을 덜컥 사서 사 년이나 끌고 다녔다. 물론 무사고 경력이라야 한다. 일 톤 트럭으로 영업보다는 순전히 개인택시를 사기 위한 수단으로 자가용 삼아 끌고 다녔다. 결혼하기 전부터 다니던 전자 부품회사가 노조의 연중행사로 하던 거룩한 사명을 띤 파업을 바탕삼아 부도가 나고 개별화물을 시작했으니 정확히 따지자면 사 년이 좀 넘었다. 먼저 화물차 자격증을 따고, 화물차 영업교육을 받고 나서 중고차에 개별화물 넘버를 달린 차를 샀다. 화물차부터 사고 출퇴근하던 소형승용차를 폐차처분 했다. 그리고 오로지 화물차에 매달렸다.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명분상 백수였기에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받는 영업용 화물 운전자의 교육도 빠짐없이 받았다. 중고차가 나달나달해 질 때까지 끌고 다니다가 화물차를 처분했다. 차는 나달나달해도 개별화물의 넘버 값이 있어서 꽤나 받았다. 막상 개인택시 자격요건을 갖추고 택시를 사려니 마음이 달라졌다. 택시를 사는 것까지는 자신이 있었지만 택시 기사로서는 영 자신이 없었다.
그럼 그 동안 화물차를 왜 끌고 다녔으며 택시면허는 왜 받아놓았는가?
스스로 질책하며 한동안 심리적 갈등을 겪은 끝에 정 안되면 좀 비싼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셈 치겠다는 생각이었다.
개인택시를 전시해놓고 파는 중고시장은 없다. 개인택시 조합에서 팔 사람이 있는지 암암리에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각 지자체마다 개인택시의 가격에 차이는 있지만 인구 사십만이 사는 도시에 개인택시 천사백 대와 회사택시 오백 대면 택시로는 과잉공급을 넘어서서 포화상태다. 그렇다고 찻값이 만만한 게 아니다. 생각하면 국산 승용차 중에서 제일 비싼 차가 바로 개인택시다. 또 돈만 있다고 함부로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파는 사람이 개인택시를 못 할 무슨 결격사유가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한다기보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이민을 간다거나 신체적으로 다시는 개인택시를 할 수 없는 사유를 만들어서 시청 교통행정과에 신고를 하고 살 사람을 선택해야하는데 살 사람도 마찬가지다. 택시기사 자격이 있어야 하고 택시기사나 사업용 차량의 경험이 삼 년 이상 있어야 하며 무사고라야 매매허가가 나온다. 아무튼 개인택시를 사서 이전하고 개인택시 조합에 가입하고 핸들을 잡기까지 서류철차에만 보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고 보면 내가 택시를 시작한지 꼭 나흘째라기보다는 벌써 한 달 가까이 걸린 셈이다. 아니다.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영업용화물차를 끌고 다닌 것까지 합치면 사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긴, 그런 것까지 다 따지자면 내가 택시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성장과정의 세월까지 합쳐야하는 것이니, 다 접어두고 택시 핸들을 잡을 날부터 따지자.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꼭 나흘째다. 나는 나흘 만에 산전수전 다 겪었다. 다 겪었다면 좀 과한 표현이고 앞으로 어떤 공중전이나 우주전이 펼쳐질지 모르나 나흘 만에 다른 사람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맛보았다는 말이 맞겠다.
사흘 전, 핸들을 잡은 첫 날은 마침 대입 수능을 치는 날이었다. 아침에 집에서 나갈 적에는 그저 시내나 한 바퀴 돌고 와서 아침을 먹겠다는 계산이었다. 말하자면 택시기사로서의 연습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선 길인데 동네 어귀를 빠져나가자 인도에서 내려와 차도 일 차선까지 나와서 차를 세우는 청년이 있었다. 손님을 태우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책가방을 든 것을 보니 교복은 입지 않았지만 고등학생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도로는 좀 한산한 편이었다.
-아저씨! 현구고등학교까지요. 빨리요.
학생은 앞좌석에 몸을 던지듯이 급하게 올라타며 말했다. 나는 이 도시가 면소재지일 때부터 사십 년이 넘게 살았기에 지리에는 꿰뚫고 있었다. 현구고등학교라면 도시의 저쪽 끝이다. 가는데 아무리 빨라도 신호를 받고 가려면 사십분은 걸리는 거리다. 첫 번째 신호를 받고 있는데 학생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재촉했다.
-아저씨! 중앙선 넘어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세요.
-그러다가 카메라에 한 방 찍히면 오늘 일당 다 날아가요
나이는 어리지만 손님이기에 말을 높여주었다.
-오늘은 괜찮아요. 저 앞에서 경찰이 수신호를 하고 있잖아요. 수능 치는 시간이 다 돼간단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그날이 수능을 치는 날이라는 게 생각났다. 정말로 사거리에는 경찰이 수신호를 하고 있었고 신호등은 점멸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중앙선을 넘었다. 경찰이 호각을 불며 다른 차를 세우고 내가 가는 방향으로 신호봉을 흔들었다. 나는 비상등을 켠 채로 달렸다. 다음 신호도 마찬가지로 경찰이 지키고 있다가 내 차부터 보내주었다. 신호를 무시하고 밀린 차들 사이로 종횡무진 달렸다. 달리다가 보니 택시미터기를 누르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학생이 하도 바쁘게 굴어서 미터기도 누르지 않았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학생은 주머니를 뒤져 만 원짜리 한 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요금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바쁜 수능생 하나 태워주는 좋은 일을 하고 싶었으나 택시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손님을 태우는 마수걸이라는 생각에 받아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나에게는 거스름돈으로 줄 잔돈마저 준비되지 않았다. 사거리 신호마다 경찰이 지키고 섰다가 내 차가 가면 다른 차를 막고 내 차를 우선으로 보내주었다. 아마도 무전으로 경찰들끼리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목적지인 수험장까지 가는 데는 이십분이 걸리지 않았고 신호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어휴! 씨발 오 분 남았네.
학생은 교문 앞에서 차에서 내리며 시계를 보며 중얼거리고는 인사도 없이 차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고는 교문 안으로 뛰어 올라갔다. 내가 학생에게 해야 할 ‘시험 잘 쳐라’ 는 말은 입안에서 맴돌다 혀 밑에서 녹아 침으로 고였다. 나는 그 침을 꿀꺽 삼켰다.
교문 앞에서는 후배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징과 꽹과리 북을 들고 벌이던 응원전을 마치고 집기들을 거두고 있었다. 나는 학생이 뛰어 올라가는 걸 한동안 바라보다가 앞에 있는 경찰이 차를 빼라고 호각을 부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비상등을 끄고 교문 앞을 에워싸고 있던 인파사이로 조심스레 차를 빼서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나가서 마수걸이로 만원을 벌었다.
만원, 만원이라........ 생각하니 아내가 오전 내내 이불가게에 앉아서 여름 이불 하나 팔면 남는 이문이다. 아내는 중앙시장 입구에서 이십년이 넘게 이불 가게를 한다. 내가 용달을 할 적에 가장 많이 실은 짐이 바로 이불이다. 아내를 태우고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이불공장에서 공장도가격으로 한 차씩 싣고 오고 또 팔리는 이불도, 짐이 많으면 배달해주곤 했지만 이젠 이불을 배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날, 해장에 나가서 만원을 벌어보니 은근히 욕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회사택시 경우 사납금이 팔만 원이나 된다. 사납금 팔만 원이나 채우고 LPG값을 빼고 나머지는 택시 기사가 가진다. 그러나 내 차는 개인택시이므로 연료비만 빼면 나머지는 다 내 돈으로 굳는다. 회사 택시에 비하면 일을 반 만해도 먹고 살만하다. 나는 목표를 설정했다. 욕심내지 않고 연료비를 빼고 회사 택시들의 사납금만큼만 벌겠다고, 그 정도는 출근시간에 두어 시간 뛰고 낮에는 한 숨 자고 퇴근시간부터 초저녁에 손님이 많은 시간만 일하면 될 것이기에 자신만만했다. 생각하니 용달을 하는 동안은 순전히 아내의 이불가게 수입으로 살았다. 화물차는 명분이고 아내의 수입으로 살았으니 좀 미안하다기 보다는 이 고장 말로 하자면 좀 거시기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욕심 부려 사업한다고 설치지 말고 내 재산을 그대로 지키고 있기만 하면 네놈 평생 숟가락 쥐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게다.
장담했던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도시가 커지면서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짓던 과수원이 신도시 구획정리에 들어가면서 땅값이 튀고 그 보상금으로 아내가 하는 이불가게의 상가를 지었다. 상가에서 월세가 나오고 또 지금은 도시의 변두리가 되어 버린 곳에 있는 값이 오른 땅을 팔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먹고 살 수가 있겠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그런가? 있는 재산을 야금야금 뜯어먹으면서 백수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택시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버지의 훈수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장 안전한 사업,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지긋지긋한 노조에 걸려들 일이 없고 말아먹어도 본전이 되는 업을 한다고 찾은 것이 바로 개인택시였다.
어쨌거나 첫날 해장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고 와서 목표를 설정했다. 회사 사납금만큼만 벌겠다고, 목표를 설정해 준 그 만원, 얼마나 의미 있는 돈이었는지 첫날 번 그 돈은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였다.
첫날 아침에 그렇게 한탕을 하고 아침을 먹고는 아내에게 있는 잔돈을 탈탈 털어서 조끼주머니에 넣고 선글라스를 챙기고 본격적으로 택시기사노릇을 하겠다고 나갔다. 한 사나흘 하고 나니 지금은 좀 무던해졌지만 첫날, 택시를 끌고 나가니 길에 보이는 게 택시뿐이었다. 널린 게 택시였고 마주치는 차가 택시뿐인 것처럼 보였다. 길가에서 기다리는 손님은 마주치기가 어려울 거 같아서 역전으로 왔었다. 세상에! 역전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과장을 좀 보태서 오십 대는 넘겠다. 예전에는 대수롭잖게 보아오던 모습이었다. 그 뒤에 서서 두 시간을 기다려도 손님하나 태우기가 어려울 거 같아 버스터미널 쪽으로 갔다. 거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어느 곳이나 손님이 택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거기도 틀렸다는 생각에 대형 아파트단지가 밀집해있는 동네로 갔다. 그곳에는 차를 세우지도 않았다. 대여섯 대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기사들은 아예 차에서 내려 잡담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상황이 저런데 회사 택시들은 사납금을 어떻게 채우는지 의문이 일 정도였다. 거기서는 안 되겠다 싶어 종합병원으로 갔다. 병원에도 택시가 줄을 서 있었다. 손님이 없으면 찾아다녀야지 생각하며 무작정 두 시간을 넘게 끌고 다니다 보니 연료비가 걱정이었다.
그 날 태운 손님은 길가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 셋이 고작이었다. 그날 번 돈으로 연료를 넣어보니 어쩌면 그렇게 꼭 맞아 떨어지는지. 이거 이러다가 진짜로 자가용 삼아서 타고 다녀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먹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저녁에 들어가서 생각하니 다른 택시들은 어떻게 손님을 태우는가? 그것이 궁금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저녁을 먹고 택시를 끌고 역전으로 나왔다. 마찬가지로 택시가 사오십 대는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그 맨 뒤에 줄을 서서 무작정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기가 막힌 상황을 발견했다. 발견한 게 아니라 터득했다. 한 삼십분 기다리니 앞에 서 있던 차들이 술술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기차가 한 대 들어오면 적어도 삼사십 대는 손님을 태우는 것이었다.
옛날 말에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하고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이 가장 보기 좋다고 했는데 택시를 해보니 앞에 서 있던 차가 술술 빠져 나가는 것이 그렇게 보기 좋았다. 가만히 보니 택시 기사들은 기차시간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어느 시간대에 들어오는 기차가 택시손님이 많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관찰한 결과 KTX가 들어오는 시간에 앞에 있는 택시가 자장 잘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 작은 도시에는 하루에 KTX가 세 번 선다. 왕복 여섯 번. 그 시간대에는 앞에 택시가 몽땅 다 빠져 나간다. 나는 당장 역으로 가서 기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안내소에 가서 역에서 발행한 작은 시간표를 받아서 그 시간을 달달 외웠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름대로 스케줄을 세웠다. 택시란 게 길에서 세우면 손님을 태워야하는데 딱 맞아떨어지기야 하겠는가만 그래도 대충 어디를 돌아서 어느 시간대에 어디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도사렸다. 계획이란 항상 빗나가게 마련인 모양이다. 다음날 내 택시의 동선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빠졌다.
기차 시간에 맞추어 역전까지 가는 것은 좋았으나 거기서 태운 손님은 전혀 예상 밖의 손님이었다. 그 손님이란 작자는 이십 몇 년 전의 친구 셋을 알거지로 만들어 놓고 종적을 감춘 중학교 동기 최치구다. 녀석이 친구들 입에 오르내린 것은 남녀 공학이었던 중학교 동기와 결혼 했는데 처갓집 재산을 결혼 삼 년 만에 탕진을 하고 더 빨아먹을 건더기가 없자 교묘하고 비열한 수법으로 동기생이었던 마누라를 학대하여 자살의 길로 몰아넣고 사라진 작자였다. 중국으로 날았다는 설도 있고 목포 어디에선가 새살림을 차렸다는 풍문도 있었다. 그가 역 광장에 걸어 나올 때 나는 그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내가 그를 한눈에 알아본 건 그의 걸음걸이였다. 팔자걸음, 다른 것은 다 바꿔도 걸음걸이는 고칠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 저거 최치구 아니가? 하는 소리가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최치구가 틀림없었다. 아무튼 그로 인해 제 아내는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이다가 자살했고 또 한 친구는 농약을 마시고 헛간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피해를 당한 다른 친구들은 그 타격으로 지금은 어느 도시로 흘러 들어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친구들 사이에도 화젯거리로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최치구가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의 손을 잡고 역 광장을 가로 질러 하필이면 내 차의 뒷좌석에 오르는 것이었다. 데리고 오는 꼬마는 잘 보면 일찍 본 손자로 보이고 잘못 보면 늦게 둔 아들로 착각할 정도로 그가 데리고 다니기에 어정쩡한 나이대의 아이였다. 나는 그에게 불알 차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알은 체 하고 싶지가 않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최치구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선글라스가 아니더라도 뒤통수만 보고는 알아보지 못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입에 올리기 싫지만 말이 났으니 뱉고 가자. 내가 군에 갔다 오니 최치구는 벌써 결혼식을 올리고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군에 있을 때 최치구가 나에게 면회를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이 따라온 여자, 중학교 동기생 여자가 있었는데 제대하고 오니 그녀와 신혼을 즐기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나와 너무나 가까운 여자였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때 최치구의 직업은 금융업이었다. 이름이 좋아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라 금융업이었다. 뒤에 들은 말이지만 최치구의 머리에서 나온 사기수법은 아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최치구는 뛰는 놈이었고 그 뒤에 나는 놈이 버티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펀드의 형식이었다. 일단 가까운 사람에게 돈을 빌린다. 듣기 좋은 말로 금융업의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자를 십오 프로로 쳐서 매달 빠지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때 은행이자가 겨우 육 프로였으니 촌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냐 싶었으리라. 그게 소문이 나니 너도나도 농협의 싼 이자로 대출해주는 돈과 영농자금 명목으로 빌린 돈을 계속 재투자해 나갔다. 최치구는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돈을 받지 않았다. 처갓집 돈부터 시작해서 친분이 두터운 사람 돈만 투자에 응해주었다. 소문이 나자 그곳에 끼이지 못한 동네 사람들은 커미션을 주고 투자자로 끼이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러나 최치구는 출처가 분명치 않은 돈은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명성과 주가를 높여 갔다. 급기야 동네 사람들은 땅을 잡히고 빌린 돈을 싸들고 최치구의 처가로 찾아오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누구 돈인지 알아보고 골라가면서 받아 갔다. 그건 최치구의 판단이 아니고 최대주주에게 투자자로서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목이었다. 수법은 철저했고 위장술은 능숙했다. 최치구는 처가에 돈을 싸들고 오는 작자의 돈을 절대 받지 말라고 엄포를 놓을 지경이었으니 상황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후문에는 최치구가 두목이 아니고 행동파에 불과했으며 결국 부도를 내고 날아버릴 적에는 최치구도 그 시기를 몰랐으며 그에게 떨어진 돈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는 풍문이 한동안 채권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어쨌거나 최치구로 인하여 그의 아내와 친구 하나가 자살을 했고 그 당시의 금액으로 십억 이상이면 한 동네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그 장본인을 내 택시에 태웠다. 기분이 묘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차를 출발시키면서 내가 룸미러를 힐끔 보고 물었다.
-봉평동으로 갑시다.
이미 예상했던 대답이다. 봉평동이면 지금은 도시의 변두리가 되어버린 최치구의 고향마을이다. 봉평동은 강 건너에 있는 마을인데 공단이 들어온다고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나는 가타부타 말없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봉평동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최치구가 예상하는 옛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봉평동으로 가는 동안 최치구는 옆에 앉은 아이에게 여기가 아빠의 고향이며 옛날에는 여기와 저기가 논과 밭이었고 저기 강에서 썰매를 탔으며 어떤 추억이 서린 곳이라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떠들어대던 최치구도 봉평동에 닿자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옛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여기 저기 산을 깎아내는 중장비들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고소한 깨소금 맛을 느꼈다.
-너무 많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구나. 저기 저 산 밑에 마을이 있었어. 아빠가 태어난 곳이지. 참 많이 변했구나.
어림잡아 아이에게 자신이 태어난 마을이 있었던 자리를 휘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신곡면 상당리로 가자고 주문을 했다. 신곡면 상당리라면 최치구와 무슨 연고가 있는지 나도 몰랐다. 어쨌거나 신곡면 상당리로 차를 몰았다. 신곡면 상당리라면 한 삼십 분 걸리는 마을인데 그곳에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나는 최치구가 나에게 무슨 말인가 걸어와서 나를 알아볼까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최치구는 택시 운전사에게는 필요한 말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꼬맹이 아들에게만 신경을 썼다. 역시 나를 몰라보는 것이다. 그렇다. 몰라볼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상당리 입구에 들어서자 동네로 가지 말고 들길을 따라 저쪽 산자락 쪽으로 가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적지를 일러주었다. 나는 추수가 끝난 들길을 따라 최치구가 말하는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차를 세웠다.
최치구는 뒷좌석에 실린 가방에서 소주와 종이컵 오징어 등속을 꺼내 비닐 봉투에 담더니 나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 산으로 난 오솔길로 올라갔다. 아마도 최치구 선산인 모양이었다. 나는 택시를 그 좁은 농로 삼거리에서 몇 번이나 수정하여 가까스로 돌렸다. 차를 돌려놓고 내려서 줄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이십 분 쯤 지나자 그가 산에서 내려왔다. 택시를 탄 그가 역으로 가자고 했다. 도둑고양이처럼 스며든 그의 귀향, 나는 역에서 그를 알아보는 순간부터 농로를 빠져 나올 때까지 기분이 우울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도 없는 그 농로에 녀석을 끌어내려 흠씬 패주거나 싹 죽여서 어디 끌어다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유는 무엇이냐? 나는 그에게 당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러나, 녀석에게 당해서 가산을 탕진하고 종내에는 친정의 눈총과 그의 학대로 자살의 길을 택한 중학교 동기생인 혜정이는 촌수로 따지자면 바로 내 재종고모가 되는 사람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쑥대밭이 된 집은 바로 나의 작은 집이다. 나는 그렇게 패 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역으로 향했다. 핸들을 잡은 손이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역에 도착하니 마지막 KTX가 들어올 시간이 다 되었다. 녀석은 내리면서 미터기를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택시비가 꽤 나왔군.
단 그 한마디만 하고는 택시비를 건네주었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택시비를 받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역 광장으로 향하는 녀석을 한숨을 푹 내쉬며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녀석은 꼬마에게 뭐라고 하고 역 광장에 세워놓고 내 차로 다시 다가와 조수석 유리를 두드리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목소리만 건너올 만큼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녀석은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한마디를 차 안으로 던져 넣었다.
-황태! 개인택시를 하시는군. 오늘 고마웠네.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농락당했다. 녀석은 진작부터 나를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꾸라지 같은 녀석에게 당했다. 이빨이 갈리고 치가 떨렸다. 내 이름 황명대에서 비롯된 어릴 적 별명인 황태가 그의 혀를 통해 거침없이 나왔다. 그리고는 제가 할 말은 다했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유히 역 광장으로 사라졌다. 빌어먹을....... 나는 핸들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치를 떨었으나 이미 늦었다. 저 혀를 잘라야 마땅할 녀석은 한 때 내 재종고모부였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끝났다. 나는 마지막 확인사살까지 당했다.
그 날은 더 일을 할 수가 없어 택시를 끌고 집으로 들어와 누웠다.
누워서 생각해도 이가 갈렸다. 나는 가끔 만나는 어릴 적 동기들 누구에게도 그를 보았다는 말을 하지 못 할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는 척하고 일이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어보고 내 궁금증을 해소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구는 그렇게 나를 농락하고 떠났다. 망할 놈의 택시, 내가 택시를 하지만 않았어도 최치구를 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었을 텐데....... 분풀이 할 데가 없어진 나는 그날 이 택시를 원망하고 있었다. 아니, 택시기사가 된 자신을 한탄하면서 안마시던 소주를 세 병이나 비웠다. 소주를 비우면서 그 녀석을 잊겠다고 내 차에 태우지 않았다고 최면을 걸 듯 다짐을 하고 머리를 비웠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꾸 떠오르는 나를 농락한 그 얼굴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개자식!
다음날은 잠이 일찍 깨었다. 그러나 술기운이 남아 누워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누워 있으니 잊고 있던 그 자식의 얼굴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차라리 일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개인택시들은 거의가 새벽운행을 하지 않는다. 사납금을 채워야하는 회사택시에게 그 시간대를 양보하는 차원이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해장운행을 나섰다. 그러나 나는 내 목표만 달성하면 바로 들어오겠다는 심산으로 나선 길이다. 역전으로 가다가 길가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 취객 하나를 태웠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인데 밤새 어디서 얼마나 마셨는지 만취상태였다. 그는 신평동 대우트린빌로 가자고 했다. 그리곤 차에 타자말자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졌다. 나는 대우트린빌까지 가서 손님을 깨웠다. 그 작자는 차창 밖을 휘 둘러 보더니 102동 앞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동 번호를 살펴가며 102동 앞으로 갔다. 그는 102동 앞에서 내려 집이 203호인데 택시비를 가져오겠다고 하고는 아파트 현관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십 분이 지나도 종무소식이다.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혹시나 했던 취객은 역시 택시비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나는 203호로 올라갔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 다시 잠이 들었나? 거칠게 문을 두드리자 204호의 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와 새벽부터 무슨 난리냐고 곱지 않은 눈길로 항의 했다. 택시비를 포기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해장 운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재수 옴 붙었다 싶어 차를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게 없었다. 얼어 죽을 취객 하나 집에 데려다 준, 불가에서 말하는 공덕을 쌓은 셈치고 마음을 접었다.
어제도 빈차로 K시까지 갔다 왔는데 오늘은 해장부터 취객하나가 남의 심사를 뒤틀어 놓았다. 해장부터 젊은 여자에게 욕이나 먹고 생각하니 오늘도 조짐이 좋지 않다. 조심해야겠다.
이 시간은 출퇴근 시간은 이미 지나고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이다. 나는 줄 끝, 민주약국 앞에서 KTX가 들어와 앞 차들이 술술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택시가 늘어선 길이로 보아 이번 열차가 들어오더라도 손님을 태울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 때 이게 웬 떡이냐 싶게 민주약국에서 나온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 택시의 앞문을 두드렸다.
여자는 좀 여느 손님과 달랐다. 앞문을 열고 나를 한참 살피더니 타도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기사를 골라가면서 탄다?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범죄형으로 생겼다면 절대 타지 않겠다는 그런 내심인가? 억지로 웃어 보이며 흔쾌히 타시라고 했다. 차들을 워낙 바짝바짝 붙여 놓았기에 중간에 끼인 차는 타고 싶어도 탈 수가 없는 실정이다. 앞에 늘어선 차들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맨 뒤에 서 있는 차에게 얻어걸리는 행운이었다. 역 앞 승강장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가서 맨 앞차를 타던가 아니면 맨 뒤에 서 있는 차를 탈 수밖에 없는 이치다. 바로 앞에 서 있는 택시에게 좀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차를 약간 후진 시켜 공단 쪽으로 출발 시켰다. 택시 손님은 대게가 여자 손님은 뒷좌석에 타고 남자 손님은 혼자일 때는 앞좌석에 탄다. 헌데 여자는 뒷좌석이 아닌 앞좌석에 타는 것이었다. 좀 당돌한 여자들은 그렇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잖게 여겼다.
-어디로 모실까요?
미터기를 누르며 손님에게 물었다. 차는 공단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헌데 여자는 좀 망설이는 투였다. 이 여자가 실연 당했나? 곁눈질로 여자를 살피는데 한참 있다가 한마디 했다.
-아저씨! 택시 하시면 피곤하시죠?
-아~ 예. 조금........
-저 오늘 시간 많거든요. 아저씨 가고 싶은 데로 가세요.
애교가 살짝 묻은 낭창한 목소리였다. 가고 싶은 데로 가라니. 좀 난감했다.
-집에만 계시면 우울증 걸리죠. 가끔 이렇게 드라이브하면서 바람을 쐬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나는 강변도로를 드라이브 삼아 한 바퀴 돌아올 요량으로 여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스타킹은 신었지만 허연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곳을 핸드백으로 가리고 있었다. 강변도로를 들어설 적에 여자는 무릎에 올려놓은 핸드백에서 약봉지를 꺼내더니 드링크와 약봉지를 꺼냈다. 약봉지를 뒤적이더니 피로회복제로 보이는 약을 꺼내 한 알은 까서 여자가 입에 털어 넣고 드링크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에게도 약을 한 알 건네며 드링크 뚜껑을 따서 내밀었다.
-피로 회복제예요. 드시죠.
-예 고맙습니다.
-같이 드라이브 한다고 택시비를 반만 드리겠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여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자가 주는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드링크제를 마셨다. 운전하면서 드링크를 다 마시자 여자가 빈병을 받아서 약봉지에 넣어 다시 핸드백에 넣었다.
-강변도로를 한 바퀴 돌아서 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저씨 마음대로 하세요. 아니 그러지 말고 강변도로를 따라 Y시로 내려가죠.
-그럴까요?
나는 여자가 시키는 대로 강변도로를 따라 Y시를 향했다. 나는 여자가 원하는 곳으로 태워주고 요금만 받으면 그만이다. 여자는 다소곳이 앉아 있다가 이따금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무슨 말인가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이는 있지만 갸름한 얼굴에 긴 목덜미를 지닌 그런대로 봐 줄만한 미모였다.
-음악을 틀어드릴까요?
이럴 때 여자에게 무슨 말인가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겨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요. 음악을 틀지 말고 재미있는 얘기 좀 해주세요.
-저는 말 주변이 없어서........
-택시를 하신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오늘로서 꼭 나흘쨉니다. 완전 초보죠.
-그랬군요. 그래서 그렇게 숙맥이군요. 눈치 없기는.......
힐책하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애교가 묻어 꽃가루처럼 풀풀 날리었다. 나는 좀 의아했다. 이 여자가 말로만 듣던 꽃뱀?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런 생각이 들켰는지 여자는 다음 말을 낭창하게 뱉어냈다.
-전 꽃뱀은 아니에요. 다만 남편이 해외 파견근무 나간 지 이년이 넘었어요. 오늘은 아저씨 마음대로 하세요. 절 가져도 좋구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아저씨! 형광등이에요? 절 가져도 좋다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흘렀다. 요염한 목소리였다. 나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여자의 혀로 만들어낸 헤비급 펀치에 맞아 하마터면 핸들을 놓칠 뻔 했다. 일이 요사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공중전이 기다리는 모양이다. Y시 외곽에는 모텔이 많이 들어섰다. 무인 모텔, 일실 일 차량 모텔, 하늘이 열리는 모텔, 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다. 그래서 Y시로 가자고 했구나. 내가 눈치 없는 형광등인가 의심하며 여자를 흘깃 보았다. 이젠 손님이 아닌 여자로 보였다. 여자! 옆 좌석에 앉은 여자의 벗은 몸을 상상하는데 어느새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먹은 약이 의심스러웠다. 하늘색 마름모꼴의 약은 아무래도 피로회복제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쓰이는 약이 틀림없다.
-좀 전에 주신 약이 피로회복제가 맞나요?
-왜요? 신체 어느 부위에 이상이 느껴지나요? 호호호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아저씨 이건 아무것도 묻지 않는 속칭 ‘묻지마’ 드라이브예요. 아셨죠? 더 이상은 묻지 마세요. 약효가 한 이틀은 갈 걸요. 나머지는 오늘 밤 사모님께 시주하세요.
말을 마친 여자는 요염하게 웃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한 손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내 아랫도리를 슬쩍 쓸어내렸다. 내 아랫도리는 이미 힘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는 무릎에 얹어놓은 핸드백을 뒤지더니 봉투를 하나 꺼내 내 무릎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오늘 택시비예요. 하루 택시비로는 충분할 거예요.
여자는 봉투를 운전하고 있는 내 무릎에 올려놓으며 또 힘이 실린 그 곳을 손등으로 툭 치고 지나갔다. 솔직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봉투는 의외로 두툼했다. 나는 봉투를 집어 택시 문에 붙어 있는 서랍에 넣었다. 택시가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말은 아무래도 수정해야 될 거 같다.
오늘은 아무래도 공중전이 펼쳐질 모양이다. 아니다. 공중전이 아니라 기도다. 나는 기도를 할 것이다. 앞으로 내 택시 사업이 잘 되도록 성스럽게, 아주 성(性)스럽게 기도를 할 것이다.
강변도로를 따라 내려올 적에 흩날리던 진눈개비가 Y시로 들어서자 함박눈이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은 아무래도 눈이 쌓여 미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돌아올 걱정은 잠시였다. 오로지 기도를 생각하며 달리는 한산한 Y시 외곽도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눈송이가 차창으로 흩날렸다. 와이퍼를 켜고 길을 밝혀 기도의 장소를 향한 내 택시는 거침이 없었다. 잠깐 사이에 외곽도로를 벗어나 들길로 들어섰다. 들길을 콘크리트로 포장이 깔끔하게 되어 있어 미끄럽지도 않았다. 저 멀리 들판너머로 보이는 조그맣게 보이는 무인 모텔이 여러 채 보이기 시작했다.
무인모텔은 셔터가 올려진 아무 방이나 주차를 하고 셔터를 스위치를 내리고 방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방문에 돈을 넣으면 방문이 저절로 열린다. 방바닥 아래 주차장을 하나씩 가진 모텔이다.
그 곳에서 신에게 바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기도를 마치고 나오면 그 뿐이다. 누구와도 마주칠 일이 없다. 무인모텔의 간판이 보이기 할 때 나는 가속페달에 힘을 주며 속으로 외쳤다. 날아라! 택시! 그렇게 외치는 내 눈에, 오늘 신의 제물이 될 여자의 벗은 몸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외치고 또 외쳤다. 날아라! 택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