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권원숙 작성일 : 2024.03.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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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사 지 : 운현궁
일 정 : 2024.03.07 09:30
만난 곳 : 안국역 4번 출구
참석자 : 황규선, 권원숙, 김금복, 김노운, 송호출, 안성희, 오관석, 임영순, 천광철, 최윤희, 한혜련,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멋진 운니동 기와집, 서울시 정도600주년을 기념하여 보수공사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한 서운관 앞 얕은 고개 이름인 운현을 붙인 운현궁!
흥선대원군의 사저이자 그의 둘째아들 명복이 임금에 즉위하기까지 살았던 잠저입니다.(26대 고종)
절정기에는 1만 여평의 대지에 대문이 4개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해방 이후 분리 매각되어 현재는 2100여평에 사랑채인 노안당, 고종과 명성왕후가 가례를 올렸던 노락당 , 안채 살림집인 이로당과 그외 부속 시설 등만 남았습니다.
( 노안당 )
논어의 공야장편에 나오는 '노자안지'에서 따온 것으로 노인이 편안하다는 뜻이며, 추사의 글싸를 집자한 것,
대원군은 이곳에서 실권을 쥐고 정치 개혁을 했던 곳임과 동시에 유패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 노락당 )
노인이 즐겁다는 뜻이며 현판은 고종때 조일수호조규를 맡았던 전권대사 신헌이 쓴 글씨입니다 고종과 명성왕후의가례 때 고종이 친영례를 했던 곳으로 현재에도 이곳 운현궁에서 예약을 받아 전통혼례를 합니다.
( 이로당 )
현판: 노인을 받든다 는뜻으로
부대부인 민씨가 1898년 1월 사망, 예장청을 설치하여 장례 준비를 하던 중 한 달여 뒤 대원군도 사망하여 부부합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또한 이곳 운현궁 건축은 이로당에서 노안당까지 복도각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 관 )
송정 사랑터에 세워진 양관으로 일제강점기 왕족을 회유하기 세워진 것으로 해방 이후 1948년 덕성학원에 매각 분리되었고 드라마 도깨비(공유),궁 촬영지 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