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지난 9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유죄 판결이 확정됐던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특별사면 대상자로 선정했다. 대법원에서 김 전 구청장의 유죄 확정판결이 나왔던 게 지난 5월 18일인데, 유죄 확정으로부터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아 사면‧복권을 하겠다는 것이다. 사법부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공공연히 불복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 전 구청장을 서둘러 사면‧복권하려는 목적은 빤하다. 오는 10월 11일에 치러지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길을 터주자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상 징역형이 확정되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데, 사면·복권이 되면 바로 출마가 가능해진다. 특별사면을 통해 선거 출마가 가능해지면 김 전 구청장은 재출마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오는 10월 보궐선거는 서울 강서구청장 하나뿐이며, 김 전 구청장 자신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해임됐기 때문에 다시 치르게 된 선거이다. 김 전 구청장과 그를 후보자로 공천한 국민의힘이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과 당사자는 반성과 자숙은커녕 특별사면 꼼수까지 동원하여 재출마 꿍꿍이수작을 부리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우롱이자 민심에 염장을 지르는 무도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은 김 전 구청장이 공익제보자라고 주장한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CBS> 라디오에 출연해 “공익제보로 그렇게 심할 정도(당선무효형)로 처벌되는 게 마땅한가”라며 “이런 상황에서 후보를 안 내는 건 전적으로 우리가 (김 전 구청장이 유죄라는 걸) 수용한다는 얘기”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우리 지도부에서 만약에 그런(무공천) 생각을 한다면 옳지 않은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김태우 전 구청장은 공익신고자인가? 그는 2018년 11월 초 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신분으로 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직접 방문해 수사 내용을 캐묻고 수사 서류 열람을 요구했으며, 특수수사과장과 저녁 식사 약속을 잡으려고도 했다. 그가 개입하려 했던 경찰 수사는 자신의 ‘스폰서’로 알려진 건설업자 최두영 회장에 대한 수사였다. 그는 수사 개입의 비위가 적발돼 원소속이었던 검찰로 원대복귀 처분돼 대검의 감찰을 받게 되었다. 대검의 감찰을 통해 추가 개인 비리들이 속속 드러났는데, 골프 등 향응 수수는 물론이고 피감기관에 대한 부적절한 인사 압력까지 확인되었다. 청와대 근무 당시 자신의 감찰 대상이던 과기부에 5급직 채용을 요청해 셀프 영전하려 했던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공직자로서 파렴치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구청장의 ‘공익제보’란 경찰 수사 개입을 비롯하여 자신의 온갖 비리들이 드러나 처벌을 받을 궁지에 몰리자 자기 보신의 차원에서 했던 것이지 결코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제보가 아니었다. 법원도 판결문에서 “폭로 동기나 목적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피고인의 누설 동기에 의심스러운 사정이 엿보이고, 객관적 사실에 추측을 더해 진실인 양 언론에 제보했다”고 판시했다. 개인 비리로 감찰을 받게 되자 폭로에 나서는 등 동기가 불순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사안이 중대하고 범행 동기도 좋지 않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공익신고자’란 자기가 주장하고 우긴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공익신고자보호법’이라는 법률의 규정에 따라 정해진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제2조 2항에서 ‘공익신고 관련으로 금품이나 특혜를 요구하거나 그 밖에 부정한 목적으로 신고를 한 경우’ 공익신고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김태우가 공무상 취득한 비밀을 언론에 누설한 것은 “부정한 목적으로 공익신고를 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공익신고가 아니다. 법원의 판결도 공익신고자 지위를 부인하고 있어 그는 공익신고자가 아니다. 그는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한낱 범법자에 불과할 뿐이다.
특별사면 대상을 심사하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며, 위원장을 포함해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은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하는 형식이므로 사실상 장관의 뜻대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특별사면 대상을 심사하고 선정할 수 있는 구조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 중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 장관이 대통령의 의중과 무관하게 사전 교감도 없이 특사 대상자를 선정했을 리 없고, 따라서 김 전 구청장의 사면‧복권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상 최악의 사면권 남용으로 기록될 ‘사면 농단’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법무부는 지난 7일 가석방심사위원회 회의를 열고 원 전 원장에 대해 가석방 적격 판정을 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말 신년 특별사면을 통해 감형을 시켜준 데 이어, 8개월 만에 한동훈 법무부가 가석방으로 풀어주는 것이다.
원 전 원장은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을 동원해 댓글 공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돼 2018년 4월 징역 4년을 확정받았다.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국기문란 사건이었다. 또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예산으로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한 혐의,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위 풍문을 확인하는 데 국고를 쓴 혐의,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 2억 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2021년 11월 징역 9년을 확정받았다. 그에 앞서 2016년 9월 건설업자에게 청탁받고 억대의 뇌물을 받은 개인 비리 혐의로도 징역 1년 2개월을 확정받아 복역 후 만기 출소하기도 했다.
원 전 원장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악질적인 짓만 골라 했던 최악의 인물로 전과 3범에 확정받은 형량만 총 징역 14년 2개월이다. 그런데도 원 전 원장은 지난해 말 윤 대통령의 특별사면 때 남은 형기 7년의 절반을 감형받는 특혜를 누렸고, 이번에는 한 장관의 가석방 특혜를 받아 풀려난다. 특혜에 특혜가 겹치고, 대통령의 ‘사면 농단’에 이어 법무부 장관의 ‘가석방 농단’까지, 무소불위의 권력남용이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전과 3범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가석방 허가율은 1.5%에 불과하다)
원 전 원장을 수사하고 기소한 당사자가 누구였던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었다. 2012년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원 전 원장을 수사하고 기소한 사람이 윤 대통령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윤 대통령은 2017~2018년 원 전 원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지휘했으며,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3차장 검사가 한 장관이었다. 원 전 원장을 구속 기소해 감옥에 보냈던 장본인들이 지금 와서 자기 손으로 그를 서둘러 풀어주는 것은 자가당착이요 자기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검사로 정치적 이력을 쌓고 권력을 잡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고 이제 권력자가 되었으니 풀어준다는 건가.
대통령의 ‘사면 농단’과 법무부 장관의 ‘가석방 농단’은 행정부가 사법부를 무력화하며 나아가 사법부의 독립을 부정하는 것으로 삼권분립의 헌법 원칙 위반이다. 삼권분립의 원리는 견제와 균형으로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해 국가권력의 민주적 작동을 지탱하는 원리이며 헌법에 명시돼 있는 원칙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배상 해법으로 대법 판결을 부정하더니, ‘사면 농단’과 ‘가석방 농단’도 서슴지 않는다. 검찰의 수사권 확대와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 등 시행령 통치를 통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더니, KBS 수신료 분리 징수도 심야‧새벽의 집회·시위 제한도 법 개정 없이 시행령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삼권분립의 위기, 대한민국 민주헌정질서의 중대한 위기이다. (2023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