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25일(화) 아가 1:12-2:7 찬송 379장
12.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13.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16.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17.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7.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개역 개정)
- 두 연인의 사랑의 교창(交唱) -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번갈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교창 형식은
본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본문은 이러한 교창 형식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부분으로서,
서로 만나 밀회의 기쁨을 만끽하는 두 연인,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심경이 교창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자를 중심으로 본문을 세분해 보면,
솔로몬의 노래가 1:15과 2:2에 그리고 술람미 여인의 노래가
1:12-14, 16, 17과 2:1, 3-7에 각각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본문에서 두 연인은 번갈아가며 상대방에 대한
자신들의 사랑과 그로 인한 기쁨을 고백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편 이러한 두 사람의 노래,
곧 연인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두 여인은 서로를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들을 비유하여
최상의 찬사를 보냄으로써 상대방을 향한 사랑과 그로 인한 희열이
얼마나 가슴 벅차게 솟아오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먼저 몰약 향주머니와 고벨화에 비유하여
남성다운 외모와 고결한 성품 등 그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장점들을 제시한 후(1:13-14)
이어 사과나무에 비유함으로써 그의 장점들이 그녀 자신에게도
말할 수없이 큰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증거하고 있다.(2:3)
이처럼 술람미 여인은 모든 사람들이 긍정할 수밖에 없는
솔로몬의 장점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에게 있어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밝히는 것으로
표현의 중점을 변화시킴으로써 사랑의 표현,
궁극적으로는 그를 향한 사랑이 성숙하여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둘째, 술람미 여인이 가진 여성적 매력과 솔로몬의 남성적인 매력,
솔로몬을 비유한 고벨화의 정적인 이미지와
술람미 여인을 비유한 비둘기의 동적 이미지 등
다양하고도 선명한 대조 기법은 인간이 가진 그 어떤 언어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의 가치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셋째, 본문에서 배경이나 혹은 두 사람에 대한 비유로 나타나고 있는
각종 자연물들은 두 사람의 지극히 순수하고도 기쁨이 넘치는
사랑을 전달하는 훌륭한 촉매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교창 가운데 수많은 동식물들의 이름이 등장할 때에
우리는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자 하는
젊은 두 여인의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
① 진실한 사랑이 가득 담신 눈은 상대가 가진 온갖 장점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신비한 매력까지도 발견할 수 있게 한다.(골2:2)
②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상징하는 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는
보다 구체적인 사랑의 증거들이 교환될 때 더욱 깊고 친밀하게 유지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속에
순간순간 특정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그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편
구체적인 감사와 찬양 그리고 헌신의 행위들을 통해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요일3:13-24)
2절)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여기서 가시나무는 원래 그 어근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찌르다’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땔감의 용도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무가치한 나무이다.
때문에 성경에서는 가시나무가 악과 폐허(호2:6; 9:6), 혹은 불신앙(사32:13-15)이나
거짓 선지자(마7:15,16)를 비유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즉 솔로몬은 자신을 골짜기의 백합화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말한
술람미의 노래를 받으면서 자신을 낮추는 술람미 여인을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로 표현함으로써
그녀의 고결함과 아름다움을 한층 더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틴 루터는 본문을 주해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들에 핀 꽃이라고 한 말은 옳다.
우리는 진실로 그리스도의 꽃이다. 그러나 너희는 들으라
우리는 실로 가시밭 속의 꽃이라는 사실을!’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는 이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양(마10:16),
가시와 찔레 또는 전갈 가운데 던져진 존재(겔2:6),
바산의 힘센 소나 사자 같은 짐승 속에 처한 존재와 같지만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를 발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가시밭 속의 백합화와 같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첫째는 아무리 우리 주변의 가시밭이 무성하더라도 결코 이에 동화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풍조가 아무리 변하고 강하게 교회를 흔들려 해도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도록 전심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롬12:2)
둘째로 세상의 가시가 찌를수록 우리는 백합화처럼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이 한쪽 뺨을 때리면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뺨도 돌려대는 온유함이 있어야 하며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마5:38-44)
흔히 세상에서 평화와 자비의 종교라 불리는 불교에서는
부처를 따르는 불자들을 가리켜 연꽃에 비유하곤 한다.
왜냐하면 연꽃은 진흙 속에 있되 그에 오염되지 않고
언제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교에서는 진정 깨달은 자는 아무리 주변이 더럽고 악해도
항상 연꽃처럼 그에 물들지 않고
언제나 청정한 모습으로 향기를 날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철학과 종교가 이러할진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사람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는 자도
그토록 청정한 연꽃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입은 우리들은 이보다 더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욱 악하고 험해진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실망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세상이 그러할수록 우리는 더욱 진리와 성령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주변에 향기를 발하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더 풍성히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고후2:14-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