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절반 이상 분양철회·계약포기 ‘신음’
주택수요 없는데다 대부분 사업성도 부진
미분양물량만 급증…업계 사업 엄두 못내
주택수요 없는데다 대부분 사업성도 부진
미분양물량만 급증…업계 사업 엄두 못내
지방 재건축·재개발조합이 급증하는 현금청산자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조합과 업계 모두 현금청산을 줄이기 위한 ‘묘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사실상 대책이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또 ‘조합원 절반=현금청산’이 대세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분양신청을 했던 조합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계약체결을 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현금청산 비율은 60~70%에 이르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분양신청 않거나 철회하면 현금청산=〈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자, 분양신청을 철회한 자 또는 인가된 관리처분계획에 의해 분양대상에서 제외된 자는 현금으로 청산해야 한다.
조합에서는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분양신청을 받게 되는데 재개발의 경우 사업시행인가 고시일(재건축은 시공자와의 계약체결일)로부터 21일 이내에 분양신청을 공고하면 된다. 이때 개략적인 부담금 내역을 함께 통지해야 한다.
현금청산은 여러번에 걸쳐 나타나는데 우선 개략적인 부담금을 받아본 조합원이 도저히 감내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아예 분양신청을 하지 않게 된다. 곧바로 현금청산자가 된다. 또 분양신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분양신청 기간내에는 언제든지 철회가 가능하다. 이 역시 현금청산자가 된다. 관리처분을 인가받은 뒤 조합정관에서 정한 기일내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이 역시 현금청산자가 된다.
▲현금청산 왜 급증했나=서울·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재건축·재개발사업은 사업성이 뛰어난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서울·수도권과 마찬가지 규제를 적용을 받기 때문에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메리트가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기대해 볼 수 있는 게 입주 후 프리미엄인데 이마저 분양가상한제로 물거품이 됐고, 분양가 추가 인하 발표로 기대심리 또한 아예 사라졌다. 여기에 기존 주택시장의 수요도 없어 매매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금청산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 조합원도 늘고 있다. 현금청산이 늘 수밖에 없는 게 지방 재건축·재개발의 현주소인 셈이다.
부산의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아직까지 사업이 초기단계인 추진위에서는 사업지연이나 사업포기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건설업체에서도 현금청산에 따른 미분양이 우려되는 현장에 대해 자금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나마 관리처분이 임박한 단지들은 경기상황을 봐가며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금청산→미분양 증가 ‘악순환’=현금으로 청산한 조합원분은 나중에 일반분양으로 전환된다. 연일 미분양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마당에 현금청산으로 인한 일반분양까지 미분양으로 더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건설업체 임원은 “현재 전국적으로 미분양물량이 12만호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업계 자체 통계는 15만호 이상일 것”이라며 “미분양 물량이 줄어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현금청산으로 인한 물량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추진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현금청산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도 건설업체가 상당한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현금청산 때문에 부도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결국 건설사 입장에서는 현금청산이 많다면 차라리 기존 계약을 해제·해지하거나 아예 시장진입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소송 등 부작용 불가피=현금청산은 그에 해당하게 된 날부터 150일 이내에 현금으로 청산해야 한다. 이때 청산금액은 시장·군수가 추천하는 감정평가업체 2곳 이상에서 평가한 금액의 산술평균값을 기준으로 협의할 수 있다.
이때 감정평가액의 적정성 여부를 둘러싸고 소송이 벌어지게 된다. 현금청산자들은 감정평가금액을 높게 받아야 이익이다. 하지만 조합에서는 재건축·재개발 기대심리에 따른 사업단계별 프리미엄만 쏙 빼 먹는 현금청산자가 얄미울 수밖에 없다. 또 현금청산 금액에 대한 금융비용은 고스란히 분양을 받은 조합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게 된다.
현금청산 금액의 지급시기를 두고도 소송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현금청산 금액은 시공자가 보증을 서면 은행에서 조합에게 대출하는 게 통상이다. 시공자의 신용도에 따라 이자율은 물론 대출한도도 정해진다. 이때 현금청산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청산금액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해 갈등을 빚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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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자 모셔오기 ‘붐’
1대1 사업장 더 인기
■ 현금청산 급증 후폭풍
현금청산에 따른 부작용으로 지방 재건축·재개발에서 종전에는 없던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조합의 시공자 모셔 오기’가 일반화되는 추세이고, 시공자 입장에서는 일반분양이 없는 1:1 사업장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공자 모셔오기’ 열풍=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는 시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시공자가 없는 현장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구에서도 이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성구 P재건축조합은 사업시행인가를 받은지 1년이 넘었다. 사업시행인가를 받자마자 시공자 선정절차에 들어갔지만 입찰에 참여한 시공자가 없기 때문에 시공자를 직접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P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수성구는 그나마 사업성이 양호한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인데도 참여하는 시공자가 없다”며 “시공자 선정이 제때 이뤄졌다면 벌써 착공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같은 ‘시공자 모셔오기’ 행렬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대구, 부산, 전주, 광주 등의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그나마 한바탕 시공자 선정이 진행됐다. 하지만 재건축사업의 경우 시공자 선정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맞춰 시공자 모셔오기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특히 단독주택재건축은 앞날이 캄캄한 게 현실이다.
▲일반분양 없는 1:1 사업장 ‘관심’=현금청산에 대한 부담은 건설업체로 하여금 아예 일반분양 물량이 없는 사업장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종전에는 일반분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업성이 좋은 것으로 판단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걸림돌로 인식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 건설사 수주팀장은 “일반분양 수입으로 조합원의 부담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종전까지는 용적률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곳에 대해 수주활동을 벌였다”며 “하지만 이제는 일반분양 물량에 현금청산 물량까지 고스란히 미분양될 상황이기 때문에 정반대인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반분양이 없더라도 자체 분석결과 현금청산 비율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면 아예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공자 없는 사업장, 정비업체 자금압박 심해져=시공자를 선정하지 못한 조합에서는 정비업체에 대한 자금의존도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비업체 역시 시공자를 선정해 선정된 시공자로부터 용역대금을 지급받아야 하는데 계속해서 자금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건설업체의 부도위기처럼 정비업체도 자금지원 압박에 못이겨 줄도산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일부 정비업체들은 ‘기존 투입비용+α’에 자신의 사업장을 팔기 위한 영업도 서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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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활성화 정책 불신속에 사업일정도 조정
■ 조합·업계 반응
지방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재건축·재개발 활성화가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며 정부정책에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대구의 한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큰 꿈을 안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재건축·재개발이 각종 규제로 무너지게 생겼다”며 “들어간 비용을 감안하면 사업을 접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놓였다”고 한탄했다.
부산의 한 재개발조합 관계자도 “미분양을 고려하면 사업을 추진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뾰족한 대책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정부가 심각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는 분양경기를 봐 가며 사업일정을 조정해 나가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데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한 건설업체 사업관리팀장은 “분양일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고의로 사업을 지연시키는 일도 있다”며 “사업시행인가 단계까지는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시켜 놓고 추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서울·수도권에서는 지방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양극화 현상에 대한 지방 재건축·재개발 조합원들의 소외감이 불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수도권내 수주물량이 극히 적어 대형건설사들의 독차지가 예상되면서 건설업계 역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