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너 얼마 받아먹었어?"
문제는, 김연아가 착용했다고 해서 그것을 또 사서 입거나 걸치는 속내.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따르겠지만, 심각한 문제다. 스타의 의상을 표절해서 "예쁘게"라는 대리만족에 나서고자 하는 속내는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방증이다. 나아가, '나'를 찾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나'에 대한 자신감이 부재하거나 찾을 생각이 없는 이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전체성을 강조하면서 스포츠 등에 몰입해 폭력적인 전체주의에 기대게 된다.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 부추겨 온갖 병리적 현상을 유발하는 언론의 자화상. 이는 한국 사회의 망국병이다.
감히 김연아 안티카페를 만들어?
'김연아 안티카페'에 대한 반응 역시 한국 사회의 망국병을 드러낸다. 한두번 있던 일은 아니다. 특정인이나 특정한 사물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싫은 사람도 있다. 이유없이 싫을수도 있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못마땅해 싫을 수도 있다. 좋아함이 있다면 싫어함도 있다. 싫어함 역시 보장받아야 한다.
물론, '김연아 안티카페'의 수준도 저급했다. 감정적 싫어함이야 그럴 수 있는 일지만, 공개적인 공간에서 싫어함을 표출하려면 주변 이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기본적인 상식이 있다. 상식이 부재된 안티카페, 제 풀에 꺾일 날이 온다. 굳이 껶어도 상관없다. 여론이 될 능력도 없으며 수도 부족하다. 그냥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첨벙첨벙 놀게 놔두면 된다.
문제는, "감히 김연아 안티를 하느냐"고 나서는 '얼굴 없는 김연아 팬'들의 폭력적인 반응이다. 이 역시 한국 사회의 망국병이다. 나와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저급함을 문제삼으면서 그보다 더한 저급함을 일삼는다. 온갖 욕설은 기본이며 살해 협박 역시 뒤따른다. 실제로 실천할 담력들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런 말들을 꺼리낌없이 내뱉는 현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의 특성과 인간의 '악',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전체주의 등이 모두 뒤엉킨 악순환이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영웅이니 싫어해서는 안된다"는 심리적 기제가 뒤따른다. 이 심리적 기제가 깔리는 배경은 "김연아는 국위선양에 이바지한 영웅"이라는 것이다. 스포츠 영웅들을 비판하면 '매국노' 등의 표현 활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일부 누리꾼들이 떠오른다.
언론은 '충격' '경악' 등의 표현을 빌어가며 이들의 폭력성을 부추긴다. 당연히 조회수 대박을 통한 광고 수입 증대를 위해서다. 이런 현상들은 늘상 반복된다.
김연아 현상 속 느껴지는 한국 사회의 전체주의
전체주의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전체를 강조하면서 전체와 다른 소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다. 한국 사회는 그렇듯 전체주의를 잠재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전체주의의 근원은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이 콤플렉스는 치유될 길이 없다. 언론은 자기 살고자 언론 스스로의 공익적 가치를 저버린지 오래이며, 언론과 정치권, 콤플렉스에 허우적거리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뒤엉켜 이상한 현상들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김연아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박태환인가, 또다른 '국위선양 스포츠 스타'인가. 이 악순환 속에서 한국사회의 암세포는 그렇게 커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