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이를 키우는 일상생활 속에서 복지관, 재활기관, 병원을 다니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자연히 만나는 사람들도 장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치료사 등이고, 결혼 전에 가졌던 인간관계는 점차 축소되어 갑니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에 형성되었던 사람들과는 공통의 화제도 줄고, 자연스럽게 소외되어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과의 만남에서조차 제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각자 다른 장애를 가졌기에 서로가 갖지 못한 면을 부러워하다 못해 시기하는 사람들, 같은 학교 도움반을 다니면서 자신과 자식의 이익만 챙기는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제 마음을 다스리고 현명하게 행동해야할 지 막막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서 저는 존재하지 않고 “무슨 장애를 가진 누구의 엄마”로 느낄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
박정희 동료상담원
아이가 장애를 지니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를 위해 교육기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을 다니게 되면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같은 아픔을 가진 어머니들끼리 더 몰입하게 됩니다. 비슷한 또래의 장애아동이기에 상처를 보듬어 주며 만남이 시작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이 관계는 변해갑니다. 장애의 종류와 개개인의 차이에 따라 점차 태도가 변해가고, 자신과 아이의 이익 앞에서는 동료 부모를 배신하는 모습까지 보게 되면 그 순간에는 정말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도 이르게 됩니다.
힘든 현실 앞에서 장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이 사회가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우리 어머니들 또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며 하루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무엇보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장애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상대방 자녀의 장애에 따른 신체 활동이나 지적 능력의 차이를 이해하며 상처가 되는 말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먼저 생각해주는 것이 비장애인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보다 더 쉽고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성임 동료상담원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의 대화 내용이 많았지만, 결혼 후에는 아이의 치료교육 때문에 바쁘니 마음의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지요.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안에 쌓인 울분, 절망 등 갖가지 감정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친구의 말 한마디에 괜히 서운 해 지기도 합니다. 어느날 전화 통화를 하던 친구가 ‘너하고 통화 할 때는 나도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데 너는 예민하게 반응 한다.’, ‘너만 더 힘들잖아. 사람마다 가정에는 여러 가지 걱정 근심거리가 있는데 너만 근심, 걱정 다 짊어지고 가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친구의 눈에 비친 모습이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교회, 복지관, 부모회 등에서 하는 부모교육프로그램에 참가했고,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가 중증 장애라서 더 힘들게 통합교육을 하다 보니 학급 담임교사, 도움반 교사, 학부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발전하는 다른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기도 했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는 다른 어머니들을 부러워하면서 지금의 힘든 모습만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때는 우리 아이만 생각했고, 저만 힘들다고 생각했지 다른 이의 배려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자신을 되돌아 볼 여유를 갖고, 주위의 도움도 받으면서, 용기를 내어 우리 아이를 바라볼 때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인간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박문희 동료상담원
장애 아이의 어머니로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반복된 생활 안에서 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면서 자신의 존재는 상실되어 가고, 아이의 뒷바라지에 점점 지쳐가기 쉽습니다. 거기에 장애 아이를 키우는 다른 어머니들의 견제와 여러 가지 말들에 휘둘리다 보면 몸과 마음에 상처로 남아 더욱 힘이 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나 어머니로서 이기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내가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다보면 점차 좋아질 것입니다. 또한 아이의 치료와 교육의 시기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존재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가 그늘지면 아이에게도 바로 전염이 됩니다. 내가 건강해야 가족도 있고, 아이의 어머니도 될 수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여 아이는 남편이나 주변 사람에게 잠시 맡겨두고 여행을 다녀온다든지, 가까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전부를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없으면 과감히 버리세요. 그래야 마음의 부담을 덜고서 건강히,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임규완 동료상담원
장애 아이를 키우다보면 다른 어머니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금방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종종 서로 상처를 받으며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어머니들끼리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더 힘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왜 어머니들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 해결책도 자연히 떠오르지 않을까요?
우선은 우리 아이들이 치료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면 어머니들 사이의 경쟁의식이나 시기심 같은 것도 줄어들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또한 장애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 집안일에 장애아동의 형제자매를 키우는 일까지 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건 더욱 힘들죠. 자연히 오해가 발생할 소지도 많고, 작은 일에도 민감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서열의식이 타인을 늘 경쟁상대로 보게 하고, 내 아이가 무엇을 더 잘하고, 특수학급에서 몇 번째로 상태가 좋은지가 어머니들의 주요 관심대상이 되곤 합니다. 상담 사례 중에는 심지어 학교에서 ‘상태가 심해보이는 어떤 장애아동 때문에 나머지 장애아동들이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를 장애아동의 어머니들이 다른 어머니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상처를 준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권유하는 학교의 주장에 다른 장애아동의 어머니들이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나 몰라라 하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도 들리곤 합니다.
서열의식이 쉽게 바뀔 수는 없지만,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장애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열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라면 우리 장애 아이들은 근본적으로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만일 장애아동의 어머니들이 서열의식을 뿌리 깊이 가지고 있다면 아이를 수용, 통합하기 힘들 것입니다.
일등부터 차례로 늘어놓기보다는 부족해도 모두 ‘함께’하는 모습을 장애아동 어머니들이 앞장서서 가꿔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예전에도 몰랐던, 그러나 이제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진정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부모동료상담원 문의 : 상담지도팀(02-440-5844)
출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웹진 성지 08.11호 중에서)
첫댓글 참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