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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이 아니었다.
"서 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던, '춤은 조갑녀'라 했다던 남원 사람들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2009년 7월 26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진 <노름마치뎐 3, 춤! 조갑녀>를 보고 왔다.
전통예술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진옥섭의 책 <노름마치>를 보고나서, 이 책에 나오는 예인들의 무대를 보고 싶었다. 이 시대 전무후무한 명인들과 만남. 방송에서 노름마치뎐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내 나음은 이미 예약당으로 가 있었다. 일찍 예악당으로 가니 진옥섭씨가 환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아준다.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고는 객석에 들어갔다. 만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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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이가 기획자인 진옥섭씨가 "출연자분들이 아직 다 안와서 공연이 좀 늦어진다"며 양해를 구한다.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웃고 있는데 "이 무대를 보면서 추임새를 넣고 함께 즐겨야 할 관객 여러분들이 출연자인데, 길이 막혀서 그런지 아직 못 오신 분들이 있는듯해서 시작을 조금 늦추고 있다."며 느스레를 떤다. 이윽고 " 첫 출연자가 승무를 출 강성민인데, 너무 오래 엎드려 있으면 일어나지 못한다"며 공연 시작을 알린다. 전무후무한, 기막힌 입담이다.
이번 무대는 뒤늦게 찾은 이 땅 최고의 춤꾼, 90을 바라보는 조갑녀(87세) 명인에게 바치는 헌정무대였다. 노구라 자신이 배우고 추었던 춤을 출 수 없었다. 다만 살풀이춤만 추셨다. 모든 춤을 다 셥렵하고나서 '춤이 나이고 내가 춤인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민살풀이 춤.
삼현육각 반주로 영산회상이 먖추어 강성민이 이매방류의 '승무'를 박경랑이 '교방춤'을 권명화가 '살풀이춤'을 이현자가 '태평무'를 추었다. 진옥섭의 말을 빌면 "털 하나 안들어가게 잘 짜여 진 우리시대 최고의 '시나위 드림팀'"을 이룬 쟁쟁한 잽이들이 모여 탱탱한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장구의 김청만, 아쟁의 박종선, 대금의 원장현, 거문고의 김무길, 피리의 한세현, 가야금의 박준호, 해금의 김성아. 또 가슴시리게 구음을 해준 정영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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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20여분의 전반 공연이 끝나고 장사익님이 '봄날은 간다'와 '동백 아가씨'를 즉석에서 불러주었다. 그의 구성진 목소리는 조갑녀 할머니의 일생을 처연하게 들려주고 이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나는 무릅을 탁 쳤다.
"몸속에 춤이 들어 있다"던 조갑녀 할머니는 일찍이 10살부터 타고난 춤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1934년 12살 나이로 승무로 판에 섰고, 남원에 명무가 났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1941년까지 춘향제 행사에서 승무, 검무와 살풀이춤을 추게 되어 남원 사람들간에 '춤은 조갑녀'라는 말이 생겼단다. 그러다 열아홉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족을 돌보기 위해 전북에서 세번째 가는 부자 정종식(한성물산(주)사장)의 부인으로, 12명의 어머니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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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여염집 여인으로 돌아간 후 1971년 광한루 내 완월정 완공 축하공연에서 승무릉 추었고, 1976년 춘향제 행사 때 살풀이춤을 춘 후 끝이였다. 진옥섭님이 1998년 제1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명무축제공연에 초대하려 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러다 10년이 지난 2007년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중 <어머니의 춤>에 85세의 나이로 무대에 섰다. 이후 '조갑녀류 민살풀이춤'이란 말이 생겨났고, 2008년 하이서울페스티벌 중 창덕궁에서 열린 '천년만세'에 한 번 더 출연했다. 2009년 7월 7일 남원국립국악원에서 당신은 민살풀이춤을, 딸 정명희씨는 승무를, 경희씨는 허튼춤을 추었다. 그리고 어제 7월 26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노름마치로 출연하여 민살풀이 춤을 추었다.
후반부에는 한량무의 일종인 '사풍정감'을 백경우가, 6박 장단의 도살풀이춤을 고집하는 이정희가 '도살풀이춤'을, 채상소고춤의 명인 김운태가 출연했다. 조갑녀 할머니는 노름마치로 출연했다. '노름마치'란 '놀다'의 놀음과 '마치다'의 마침이 결합된 말이다. 고수가 나와 한판 놀면 다음에 누가 나서는 것은 무의미하기에 결국 판을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고수중의 고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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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시간은 5분. '아무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이를 수 없는' 당신의 춤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객의 눈은 무대로 집중하고 있었다. 드림시나위팀의 시나위 연주가 시작되고, 올해 환갑을 지낸 안숙선님이 구성진 구음을 넣었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춤이 되는"그 경지를 보고 싶었다. 딸 정명희씨의 부축을 받으며 하얀 소복을 입고 돗자리에 선 당신. 굽은 허리, 빈 손으로 살풀이춤을 춘다. 한 팔을 든 채 가늘게 돌고, 손목과 팔꿈치를 살짝 비틀고, 살폿이 치맛자락을 올리는, 모두가 다 춤이다. 정말 그냥 서 있는 듯한데 춤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뒤 어지러우신지, 당신의 살풀이춤을 얼마 보여주지 못하고 들어가셨다. 미안한듯 아쉬운듯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들어가셨다. 못내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예악당 로비에서 전 출연진들이 나와 한바탕 판을 펼쳤다. 잠시 뒤 딸 명희씨의 부축을 받으며 로비에 등장, 발길을 떼지 못하는 관객들의 환호속에 전설이 될 당신의 살풀이춤을 추었다. 본 무대보다 더 활기찬 춤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모처럼 어머니가 환한 미소 뛰며 춤을 추자 딸 명희씨는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감동의 눈물이 밀려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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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게 행여 누가 될까봐, 춤을 그만 둔 뒤로는 머리와 가슴으로 춤을 추었다던 당신. 이걸 숨기고 사느라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던 당신.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안타까운 춤의 열정과 환희를 보았음인가. 정말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날들을 눈물을 지샌 당신에 대한 안쓰러움일까? 어머니에 대한 사랑때문일까. 누구보다도 딸 명희씨가 가장 기뻐했고,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고 있었다. 노 명인의 열정적인 무대. 어쩌면 당신과의 만남.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을 만나러 간 길이 아니었을까. 전무후무한, 다시 올 수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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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고유의 춤 .. 조갑녀 87세의 고령이신데 ..
대단 하시네요 동영상으로 접해도 감동 이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