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러셨다
내가 철딱서니 없는 여자
여리고 연약한 여자
그래서 대책이 없는 여자이기도 한 것을 그리도 잘 아셨다
누군가 그랬지
하나님은 김 난영이 하나님이시냐구
그게 아니라 내 그릇이 그것 밖에 되지 않았든거다
첫 목회
폴딱폴딱 뛰어 다니는 계집아이처럼 그렇게 다녔다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런데도 목사안수 받은 뒤 첫 목회지인 교회를 떠날 때
일년 반만에 나가는 목사를 남자 집사님들이 이삿짐을 따라오셔서
딸래미 시집 보내는 것처럼 그렇게 정리해주고 가셨다
그리고
그 땅덩어리를 놓고 싸우는 교회에
남편의 본교회 목사님이 남편을 들이미셨다
이상하고 이상한 엘리스의 나라처럼 낯설고 무서운 곳이었다
교회가 분열했는데 나간 쪽이 아랫층 교육관을 점령하고
교회재산을 나누자고 민사재판을 걸고 끝없이 싸우고 있었다
합동측으로 나갔으면 당연히 통합측 교회를 떠나야는데
합동측에서는 아랫층에 목사를 파송시켰다
워낙 조치원역 앞에 있는 금싸라기 좋은 땅이었고 넓었다
목사관에도 사찰관에도 딱지가 붙어 들어갈 수 없고
우리는 집사님댁에서 살림을 차렸다
남편은 하나님의 교회를 놓고 재판이 뭐냐
다 주고 나가자 하니 어린게 간덩이가 부었나 얼마나 기가막혔을까?
그래서 땅싸움 하는 곳은 싫으니 후임자 모시라고 9개월만에 사임했다
아이를 유산하고 친정에서 쉬고 있는 동안
남편은 상의도 없이 턱 건물을 얻어놓았다
전혀 개발의 기미조차 없는 천안 변두리에 개척교회라니
말은 개척교회지만 쌀은 시댁에서 연탄값이나 공과금은 본교회에서 부담하니
칠십 년대 말임에도 굶는걸 몰랐다
남편은 전도는 안하고 밤낮 성전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고 성경만 읽고 있었다
그래..
공부만 한 목사를 재정비하고 준비시키는구나
일년 후
충북노회에 있는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왔다
부탁도 안했는데 아무래도 본교회 목사님이 걱정되시어 자리를 알아달라 하셨는지
오 개월된 어린 아들을 안고 따라간 교회
처음 가보는 수안보 길이 너무 산이 놓아
눈물이 터지터니 그칠줄을 모른다
너무 눈물이 나와 성전으로 먼저 달려가니
교인들은 기도많이 하는 사모가 왔다고 좋아한다
아부지 저 귀양살이 가는 감요?
울며 사흘이 되든 날
충성해라 시내로 옶겨주마 주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교회 역사이래 전성기를 누릴만큼 부흥시켜주셨고
겨우 삼년 육개월이었음에도 가장 오래 붙어있든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옮겨주시는 시내교회는?
십년 된 목사를 내쫓아 한 무리를 떼어 시내에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지었고
그 다음에 오신 목사님 잠시 다녀가신 뒤
우리의 전임자는 열심히 싸웠다
예배후 육박전을 벌려 병원에 실려갈 때
동네 사람들이 구경할 정도로 치열하게 목사패와 장로패가 싸웠다
그리고 또 한 무리를 떼어 겨우 교회에서 삼 백미터 되는 곳에 둥지를 틀었다
바로 다움 주에 부임한 우리
예배당에 기도를 하러 들어가면 어떤 힘에 밀려나와야 할 정도로
피폐해진 교회
동네 사람들은 저 목사는 언제 쫓겨가나 야심찬 눈초리를 보내는 교회
무조건 엎드렸다
성전에 철따라 이부자리를 갈아가며 무조건 엎드렸다
저 교회는 가지마라가 동네사람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교회였으니...
그런데
삼 년이 지나면서 늦게 오면 자리가 모자랐다
불란서식으로 된 성전이 비가 오면 새니
지붕을 고치기도 그렇고 예배당을 지었다 그 당시 대형교회가 없든 때
이백 오십평은 작은 평수가 아니었다
남편은 오로지 교육목회에 매달렸다
그리고 이십 년이란 줄넘기에 걸려 또 다시 만 십 팔년만에 보따리를 쌓고
들어온 교회는?
목회자 수명이 겨우 일 이년짜리인 모모 장로의 왕국이었다
면소재지에 아래위층 백평의 붉은 벽돌교회에 시작된 현장은
정말 이상한 나라였다
또 다시 무릎꿇고 열심히 기도했다
이번에는 지발 우리를 보내달라고..
끌어 안아라..
불쌍히 여겨라
간단 명료한 응답이 십 년의 세월이 되어간다
십 년이 되어가니 고맙게도 모모 장로가 우릴 쫓아내내 그려.
그날 너무너무 좋아 목삽겹살을 구워먹었다
그리고 잠잠히 엎드려 기다리라는 응답하나를 믿고
잠잠히 엎드려 기도했드니
드뎌 새로운 임지를 허락하셨다
그러면 이번의 임지는?
또 다시 우리앞에는 다른 십자가 기다리고 있겠지
또 다시 성전에 이브자리를 펴야하겠지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무릎으로 무릎으로 나아가야겠지
구데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는 말이 있다
우리네 목회자들
시골에서 사람기근 지갑기근에 시달리며
이 길이 사명이라고 걸어간다
한 보따리 돈을 들고 들어와
한 보따리 빚을 안고 나아감에도
아버지께서 맡긴 사명이니까...
오늘도
그냥 감사만 나온다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나는 가리
이 길은 생명의 길
그래 생명의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