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혼란의 시대 ..... 망하고 말 것인가
한국은 사회 갈등지수 세계 3위의 고도 갈등사회로서 마약이 판치는 맥시코와 팔레스타인과 분쟁하는 이스라엘 다음이라고 합니다. 여당과 야당, 정부와 의사협회, 보수와 진보, 기업과 노동자, 여성과 남성, 기성세대와 신세대, 거기에디 지역걸등까지 온 나라가 온통 갈등으로 들끓어 거의 전쟁수준입니다.
지구촌에는 다민족 다인종으로 구성된 국가들이 많은데 그들 국가보다도 우리는 단일민족이고 황색 단일인종 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갈등지수가 현저히 높습니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그리고 그 해결의 실마리는 없는 것인지 짧은 글을 통하여 근원적인 해결 방향을 생각하여보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원인이 고도 압축성장이 그 배경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서구가 300년의 세월에 걸쳐서 갈등에 따른 투쟁과 희생으로 일구어낸 근대화를 우리는 불과 몇십년의 단기간에 이루어 낸 부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에 와서 과거만을 탓할 수는 없고 어떻게 하든지 압축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의 근원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보고 그 해법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냉정히 보면 우리는 갈등을 부추기고 싸우는 법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방법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주장만 하고 먼저 화해하고자 하는 순간 패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갈등이 고도화할수록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아져서 그나마 이루어 놓은 풍요로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고도갈등을 타개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일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풍요로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어떤 역사를 살아왔으며 어떤 가치관의 흐름 속에서 왔는가를 되돌아보고 청산되지 못한 민족 감정과 그 의식 구조가 어떻게 꼬여왔는가를 알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 시대 이 나라 백성의 50%가 노비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비를 제외한 나머지 반의 반 이상은 상민으로 양반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반의반인 겨우 25% 정도가 양반이고 또 그 양반의 반은 여성인데 그 당시 여성은 사회진출의 길이 막혔을 뿐 아니라 인권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전체 인구의 12% 정도만이 소위 양반으로 그나마 인간 대접받으며 살다가 일제 36년의 강점기의 세월을 맞았습니다.
일제(日帝)는 자기들의 선진화된 신문물을 강제로 집행하여 단발령(斷髮令)을 내리고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에게도 신학문을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며 조선의 계급사회는 강제로 해체되었습니다. 강제로 해체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 조직구성원 쌍방의 자발적인 동의가 없었다는 것이고 당연히 내면적인 가치구조의 순리적인 변화 없이 갈등의 구조가 잠재하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해방을 맞았으나 그 감격도 잠시 6.25의 참상을 맞아 이 나라는 초토화되었습니다....전쟁이 끝나고 아직도 왕정 시대의 절대권력에 익숙한 이 나라에 자유 민주주의가 국민의 삶속에 들어왔습니다. 일제에 의한 강제적인 계급사회의 타파가 국민의 마음속에 아직 자리 잡기도 전에 평등과 자유 그리고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든 것입니다.
나라가 독립하였으나 자유와 평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을 누리려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도 못한 체…. 12% 정도의 극소수의 소위 양반 출신들 외의 90% 가까운 백성의 불만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도출되었습니다. 일종의 한풀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일차적인 갈등과 혼란이 시기라고 불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만과 설움을 토해낸다고 한들 먹을 것이 없는 절대 빈곤 속에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걸출한 군인 출신들에 의하여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라는 구호 아래 하나로 뭉쳐 한 방향으로만 집중하여 죽기 살기로 40여 년을 달렸습니다. 다른 것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부 젊은이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절대 빈곤의 해결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그 당시에는 힘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방향으로 힘을 결집하여 하나가 된 결과는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세게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불과 40여 년 만에 국제 표준화 기구(ISO)에 등록된 249개의 국가 중에서 상위 10위권에 올라서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낸 것이지요. 이러한 기적은 세계 역사에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아로부터 해방되고 여유롭고 풍요로운 물질세계를 누리게 된 지점에서 지금까지 보류되었던 심각한 이차적인 갈등과 혼란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흔히들 한국의 문화를 한(恨)의 문화라고 합니다. 한(恨)이라는 것은 외압에 눌려 억지로 참고 견디며 생겨나는 원통한 감정입니다. 이 한의 감정이 역사를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여 분출구를 찾고 있었는데…. 때 마침 서구에서 불어온 개인의 존엄과 인권확장까지 겹쳐 그 정체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혼란의 정체는 무엇인가…. 각 민족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말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의 종교적 특성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자기 존재와 삶의 목적을 생각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촌의 대부분 국가는 나라의 종다수를 차지하는 지배종교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서구국가들은 기독교가 지배종교인데……. 이를태면 미국은 개신교가 이탈리아는 가톨릭이 그 나라의 지배종교입니다, 인도는 힌두교이고 중동국가들은 대부분 이슬람교가 지배종교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종교 사회로서 불교 유교 기독교 천도교 등이 골고루 분포되어서 절대우위를 차지하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종교 간의 극한 대립이 없이 대체로 서로 포용하면서 잘 지내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배종교가 없다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사상체계를 지배하는 지배적인 가치 체계가 없다는 이야기이고 혼란이 극으로 치달아도 다종교 사회는 그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기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그동안 우리나라의 주된 가치 기준은 유교였습니다. 유교는 조선왕조 500년을 거치면서 억불숭유정책에 힘입어 조선의 거의 절대가치였습니다. 불교가 인간 내면의 깨달음을 중시하였다면 유교는 인(仁)과 예(禮)를 바탕으로 인간 외면의 행위를 중시하였는데 이것은 모든 인간 생활의 전체 틀이며 사회관계의 행동규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교의 치명적인 약점이 토론문화의 부재입니다. 군신유의이고 부자유친이고 장유유서의 시회애서 규칙은 이미 정하여져 있어서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음 자체가 진리이고 선이어서 그 앞에 감히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가치구조에서 토론한다는 자체가 성립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 유고 도교 등의 교리들은 나름대로 상당한 근거와 고급스러운 도덕과 윤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인간 중심이 된 인본주의 구조이어서 상대적인 가치 체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유교의 경우 상대에 따라 행동 양식이 달라집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당연히 다르지요. 장유유서의 개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남자를 대하는 것과 여자를 대하는 것도 다릅니다. 남존여비의 개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사람을 차별하게 되는 것이 당연시되어 갈등의 불씨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교 사상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노인은 꼰대로 천대의 대상이 되었고 더는 혈족을 중히 여기는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한번 지아비는 평생 지아비가 아닙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혼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나 이제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당연한 선택사항이 되었습니다. 유교적인 입장에서는 완전히 개판이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범죄행위가 있으면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공공장소에는 얼굴 들고 다니지도 못하였으나 요즈음은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노출되고도 당당하고…. 그 당당하고 뻔뻔함을 많은 사람이 지지해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무어라고 설명할 것입니까, 유교의 이상주의가 더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유교 사상은 거추장스러운 꼰대 사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禮)를 중시하는 인간의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정의와 공의가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진화론적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상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중세 16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대량생산의 풍요로운 물질사회가 도래하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서구사회의 주된 가치 이념은 카톨릭의 신본주의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카톨릭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여 부패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때마침 불어닥친 물질 풍요의 시대를 맞아 하나님 중심의 사회 구도가 인간 본위의 열풍으로 뒤덮혔습니다. 소위 계몽주의가 대두되고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부르짖게 되고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주체성을 중시하는 이런 사상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을 흔들었습니다. 진화론이 발표되고 인간사회는 무궁무진하게 유도피아를 향하여 진화할 수 있음을 예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은 거기까지였습니다…. 20세기 초에 터진 세게 1차 2차 대전은 인간의 꿈을 산산조각내고 말았습니다. 인간 자체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없다는 것을 인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 지구촌은 가치 기준의 혼란에 휩싸여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의 혼란이나 지구촌의 혼란이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 혼란이 일어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진화론적 사고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갈등 해결의 첫걸음은 이러한 진화론적 사고의 틀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들은 날로 험악해지는 우리 사회에 그나마 유교 도덕률이 있기에 버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이렇게 불의한 것인가 하고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세상이 이렇게 잔인하고 불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정의나 불의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만약에 세상이 온통 불의로만 가득 찼고, 내가 온통 불의 속에 젖어 있다면 그 불의를 불의로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불의하다고 느꼈다면 내가 최소한도 정의를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의를 알지 못하면 불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그 정의는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런 정의에 대한 감각은 인간과 자연을 초월한 창조주에게서 온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은 너무나 감각적이고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를 거부하는 태도가 모든 혼란의 주범입니다.
우주에 사는 우리가 우주 전체에 정말 아무런 원리와 의미가 없다면 "우주에 의미가 없다"라는 그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보다 절대 진리를 소망하고 그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이고 당연한 길입니다. 상대적인 틀 속에서는 자기가 왕이 되고 싶은 인간의 권력욕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창조주를 인정하고 마음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인간은 겸손해질 수 있고 그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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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 : 25)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라 (로마서 1: 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