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이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유열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신앙을 가진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듣는 말이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고백은 분명 한마디 말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들은 연기하고 노래하며 자신에게 집중하고 몰입한다. 그 순간 자신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며 대중에게 박수를 요구한다. 그 박수는 다시 연예인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는 또 다음 무대를 위해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연예인이 있다. 하나님은 그의 노래를 통해 영광 받고 싶어 하신다. 오랜만에 대중 앞에 웃는 얼굴을 드러낸 가수 유열 씨를 지금 공감한다.
취재 김재원 정리 이승연 사진 한치문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다면요?
가장 싱그러운 초가을이에요. 욕심처럼 보이시겠지만 아직 열매가 덜 익었어요. ‘유열’이라는 열매가 어떻게 영글어 갈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난 다음에 주님께서 나를 빚으셔서 어떻게 쓰실지 기대하는 초가을을 보내고 있어요.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셨어요. 굳이 나오겠다, 결심하고 나온 게 아니라서 그런지,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적인 느낌인데요. 소환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그러니까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중 앞에 나오게 되었어요. 때마침 신곡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에 놀랄 뿐입니다.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선물처럼 불러주셔서 참 감사하네요. 제가
오랜만에 능동적으로 나타나서 알리고 다녀도 기쁜 일이겠지만, 이렇게 본의 아니게 부름 받아 자연스럽게 간증하고 다녀서 그런지 스스로도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희도 무척 반갑습니다. 신앙을 처음 가진 건 언제인가요?
중학교 때예요. 서울 은평구에서 초중고를 다녔어요. 친구 인도로 불광동에 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요. 친구들도, 말씀도 좋았어요.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연극도 했었죠. 신앙의 추억을 함께 쌓았던 그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 그러다가 공부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게 되었죠. 삼수 끝에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 3학년 때 대학가요제를 나갔어요. 그때 본선에만 오르게 해 달라는 소박한 기도를 정말 간절하게 올려드린 기억이 납니다. 기도 응답인지, 서울·경기 대표 6개 팀에 선발돼서 본선에 오르게 되었어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라는 곡이었죠.
그 곡을 지금 들어보면 노랫말이 꼭 CCM 같은 느낌이에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노랫말로 썼어요. 피아노 치는 친구에게 곡을 써 달라고 부탁하고, 그 친구 자취방에서 연습했어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서 그런지 본선만 나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대상을 받게 된 거죠. 큰 선물이었어요.
그 후로 8090 가수로서 최고의 삶을 사셨어요. 또 〈유열의 음악앨범〉 라디오 진행을 13년 동안 하셨고, 20년 가까이 연예인으로서 대중과 호흡하는 삶을 사셨죠.
대학가요제 대상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하나님께 받고 나서 그때부터 정말 바쁜 삶을 살았어요. 그때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까 마치 내 삶을 내가 관리한다고 착각했어요. 삶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거죠.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를 한두 번 빠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이 내 삶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여겼어요. 마음 한 편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과 기도는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샅바씨름’을 잘 못 했던 거 같아요. 창세기 32장에 야곱이 가족들과 에서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끝까지 씨름하다가 축복을 구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데요. 제가 그런 씨름을 제대로 못 했던 거죠. 최근 2년간 안식년 같은 시간을 가지면서 그 부분이 제일 큰 아쉬움으로 남더군요. 삶에서 마주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할 때마다 더 간절한 기도로 매달리면서 씨름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쉬워요. 대학가요제 때 기도하던 그 첫사랑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거죠.
라디오 진행 그만두실 즈음에는 어린이 뮤지컬을 기획하셔서 큰 인기를 끄셨잖아요.
때도 기도 많이 했어요. 작품은 좋게 나왔는데도 경영에는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기도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간절히 매달리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고,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지 못했죠. 바쁘게 다녔는데, 손에 잡히는 수확은 없었고요. 그때 건강에 이상이 찾아왔어요. 성대역기능이 나타났죠.
노래하는 사람에게 성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엄청난 시련이잖아요.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왔는데, 좋다는 병원을 다 다녀도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성대역기능은 성대가 반대로 반응하는 거예요. 숨을 들이마시면 성대가 열려야 하는데 닫히는 거죠. 천천히 호흡할 때는 괜찮은데, 급해지면 바람 새는 소리가 나면서 숨이 제대로 안 쉬어져요. 신기하게도 잘 때는 너무 편하게 잔다고 하더라고요. 일상에서는 잘못된 의식이 나를 제어하나 싶었어요. 의학적으로는 거꾸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하니까요. 의사는 불치라고는 이야기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질 수 있다고 하더군요. 결국 아내의 말을 듣고 회사를 휴업했어요. 아내는 저 사람 저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대요.
부인께서 많이 걱정하셨겠어요.
모든 것에는 깨진 틈이 있기 마련이고 오히려 빛은 그 틈에서 들어오더라고요. 호흡 곤란까지 오니까 ‘저 사람에게는 쉬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라고 생각한 거죠. 저는 위험성을 몰랐는데, 아내 눈에는 보였던 거예요. 아내는 저더러 무슨 일이든지 잘 하려고 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다 괜찮다고 한다고, 속으로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말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하더군요. “제발 화 좀 내 봐!” 저는 눈물도 없고 화도 없었거든요. 그런 제가 안쓰러웠던 모양이에요. 아내의 강력한 권유로 온전한 쉼을 갖게 되었어요. 마침 아들에게도 좋은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고요. 늦게 얻은 아이라서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키우는데요. 학교 가기 전에 스트레스 없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곳에서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이 된다고 해서 제주도에서 집을 빌려 한 달쯤 살러 갔다가 너무 좋아서 1년을 머물다 올라왔죠.
제주에서의 1년.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일인데요. 소중한 시간을 보내셨겠네요.
저한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노모가 계시니까요. 그래도 자주 올라와 찾아뵙기로 하고 일단 저의 건강과 마음을 치유하기로 했죠. 아내도 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끼고 있었고요. 모든 걸 내려놓고 온전한 쉼의 시간을 갖다 보니, 왜 내가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였는지, 덮어 두었던 상처가 드러나더군요. 마음 한편에 대충 덮어 둔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팠던 시간들, 사춘기 때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마음의 벽을 쌓았던 시간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어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밖으로 다닐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함부로 대하셨고,
두 분 사이가 안 좋다 보니 저는 외롭게 방치됐고, 저마저 어머니 편에 서면서 아버지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고…, 이런 상처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가정 형편마저 어렵다 보니 중학교 때부터 제가 직접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거든요. 아버지를 더 원망하게 된 거죠. 제주도에서 살면서 아들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아빠, 오늘은 뭐 하고 놀까?” 라고 묻는데, 그 질문이 저를 너무 아프게 하더군요. 저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내가 힘들 때 아버지는 늘 밖에 있었고,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저는 저대로 외로운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그 아픔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도 쓰고, 못다 한 말씀도 드리고, 용서도 구하고, 그런 일들을 마치 일종의 의식처럼 하루하루 치러냈어요. 그랬더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면서 치유가 이루어졌군요. 그 시절부터 ‘나는 늘 괜찮아야 해, 나는 무슨 일이든 잘 해야 하고, 화를 내면 안 돼’라는 무의식이 있었나 보네요.
그렇죠.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좋은 어머니시지만,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해서 화가 있었던 거예요. 물론 어머니도 쉽지 않으셨겠죠. 그런데 제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어 보니, 양보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화가 나 있더라고요. 어머니를 사랑했으나 어머니를 향한 화도 크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를 찾아가 대화하며 덮어 두었던 아픔을 덜어냈죠. 한결 가벼워졌어요. 그렇게 쉬는 동안 “이게 뭐지?” 라는 것들이 드러나면서, 내가 내 삶의 주인처럼 여기고 지내면서, 정면 승부하지 못한 많은 감정들이 드러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죠. 그동안 기도한다고 했던, 예배한다고 했던 저의 신앙이 아주 얇은 종이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저 자신을 보게 된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기도 때 눈물이 터졌어요. 이틀 연속으로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늘 사랑한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때 제가 탕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스스로 집을 나왔고, 저를 위해 즐겼고, 아버지가 주신 걸 모르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착하게 살되 적당히 타협하려 했던 제가 보인 거죠. 어려움을 만나면 제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저를 본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아서 맺지 못한 열매가 보이더라고요. 무척 부끄러웠어요.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초가을을 보내며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난 후의 열매가 기대된다는 말씀이 그 말씀이었군요. 제주도에서 돌아와서 신앙이 한층 더 깊어지셨겠네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신안나 목사님이 성경 공부를 함께해 주셨고요. 제주도에서 올라와서 수원에 자리를 잡으면서 김요셉 목사님이 섬기시는 원천교회에 가게 되었어요. 작은 예배들, 그리고 목사님 말씀이 참 좋더군요. 포도원 모임, 성경 공부 모임을 부부가 함께 참여하면서 큰 은혜를 받고 있어요. 재미도 있고, 은혜도 있어요. 아내는 점점 울보가 되어 가는데요. 말씀만 들어도, 찬양만 불러도 저절로 뜨거운 눈물을 흘려요. 그런데 조금씩 회복하던 중에 지난 6월 폐렴을 앓게 됐어요.
성대역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폐렴까지 앓으셨군요.
조금 심하게 왔어요. 사흘 동안 열이 40도를 오갔죠. 아내가 잠도 못 자면서 저를 지켜봤어요. 그때 아내의 간증이 바로 이겁니다.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일에 눈뜨게 하시더래요. 모든 일이 감사하구나,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이 감사한 거구나, 당연한 것은 없구나, 라는 고백을 하더군요. 저도 제주도 생활 이후 지금까지 제일 크게 느낀 것은 ‘인생에 당연한 건 없다’라는 거예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이고, 은혜라는 걸 깊이 깨달았어요. 그저 늘 반복인 것 같은 삶 속에 선물이 숨겨져 있었더라고요. 지금은 가족 모두 함께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 때가 최고의 행복인 것을 잘 알고 있죠.
정말 지금 이 순간조차도 인생에 당연한 건 없습니다. 지금 건강은 괜찮으세요?
숨쉬기가 어려워지다 보니까 호흡도 당연한 게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이 목소리 좋다고 그러면 당연하게 여겼는데, 아니었어요. 노래 참 좋다고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여겼죠. 이 목소리가, 제 노래가 하나님이 주신 거라는 걸 깊게 느끼지 못했어요. 그리고 내 앞에 아내가 있잖아요. 아파 보니까 아내가 있다는 것을 왜 당연시 생각했을까 싶더군요. 엄청난 선물이더라고요. 아이도 마찬가지고요. 눈물로 기도하는 아내가 있다는 것이, 옆에서 손 꼭 잡고 기도하는 아들이 있다는 것이, 큰 소중함임을 알게 되었어요. 오히려 아내가 저더러 그래요. 자기를 믿음의 길로, 신앙의 길로 안내해 줘서 고맙다고요. 하하. 고난을 왜 위장된 축복이라고 하는지, 저도 아내도 깊이 깨달았어요.
사실, 성대역기능도, 폐렴도, 아직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세상으로 다시 내어놓은 셈인데요. 하나님의 섭리가 거기에도 있을까요?
지금도 약을 먹고 있어요. 폐렴도 아직 약간 남아 있고, 성대도 온전치 못하죠. 그래서 사람 많은 곳에는 가면 안 됩니다. 무리하면 안 되고요. 감기 걸리면 절대 안 되죠. 하나님이 건강해져서 나타나면 자만할까 봐 어린아이처럼 연약할 때 세상에 다시 내놓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이번에 내놓은 신곡, 〈내 하나뿐인 그대〉가 신앙고백인 셈이네요.
그렇죠. 앞서 말씀드린 성경 공부 모임에서 ‘다섯 손가락’의 가수 이두헌 씨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원래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성경 공부 모임을 통해 더 가까워진 거죠. 이두헌 씨가 곡을 잘 쓰거든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풍선〉, 〈새벽 기차〉 다 기억하시죠? 이두헌 씨가 요즘 또 찬양에 빠져서 성가곡을 많이 써요. 한 10곡쯤 준비한 모양이에요. 사실은 이번에 나온 신곡, 〈내 하나뿐인 그대〉는 이두헌 씨가 아내를 위해서 처음 쓴 곡인데, 신안나 목사님 아들 결혼식 때 제가 목사님과 함께 축가로 부르게 된 거예요. 그때 제가 이 곡에 반해서 달라고 졸랐죠. 이두헌 씨도 기꺼이 제게 주셨고요. 노랫말은 이두헌 씨가 쓰고, 신안나 목사님이 거들어 주셨는데요. 저한테 그대로 와 닿았어요. 특히 아내는 저에게 영적인 동역자예요. 우리가 서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서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돕는 배필의 관계이기 때문이에요. 좀 더 귀 기울여 줄 수 있고, 기다려 줄 수 있고, 말 너머에 메시지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세계를 하나님이 열어 주셨어요. 아내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죠.
사실 신곡을 발표하셨는데, 아직 소리가 회복되지 않으셔서 쉽지 않으시겠는데요.
그 부분도 감사의 조건인데요. 신기하게도 노래 부를 때가 되면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져요. 스승의 날 음악회 때도, 교회 예배 때도, 그 이후에 생방송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목이 안 좋은데, 이상하게 노래 부를 때는 좋아져요. 하나님이 이 노래를 듣기 원하시는구나 싶을 정도예요. 아내가 제 노래를 듣더니 오히려 처음 목소리를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이 노래는 이두헌 씨 고백에 따르면 ‘하늘이 허락한 진정한 감사와 눈물이 담긴 곡’입니다. 요즘 부부가 서로 영적인 파트너십을 회복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부의 사랑이 바로 서면 아이들이 바로 서거든요.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아픔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에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신 것이 참 감사한 일인데요. 하나님과는 어떻게 공감하세요?
하나님과 공감한다는 표현이 참 좋으면서도 상당한 경지처럼 느껴지는데요.
실은 하나님은 그동안 제게 고난을 통해 소리치셨어요. 노래하는 사람의 호흡을 거둬 가시면서까지 제게 말씀하고 싶으셨던 거죠.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랑해 왔다고 말이죠.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동안의 제 노래가, 제 호흡이, 제 말이, 아내가, 아들이, 아버지가, 어머니가 제 감사의 조건이었다는 것을요. 제주에서 이런 고백을 글로 쓴 적이 있어요. “하나님은 나를 나 자신에게 몰입된 상태로부터 벗어나 세상의 구원을 이루고 계신 하나님의 드넓은 자유 속으로 데리고 가셨다”라고요. 제 신앙고백입니다. 나에게 몰입했던 시선에서 벗어나니 하나님이 보이고, 이웃이 보이더라고요. 새롭게 눈을 뜨는 거죠. 그게 공감 아닐까요?
‘유열’이라는 인생 책의 다음 챕터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오늘 이 시간이 다음 챕터의 시작이네요. 일반 방송에서는 하지 못했던 하나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그동안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받았어요. 나누고 싶은데 어떤 방법으로 나를 써 주실지 궁금해요. 그게 기도 제목이에요. 우선 드는 생각은 간증의 자리, 찬양의 자리, 부르시는 곳에서 예배하고 싶고요. 내년에는 가스펠 음반도 내고 싶어요. 그밖에 뭘 하겠다는 건 아직 없어요. 아내하고 저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는 눈을 얻기를 바라고 있어요. 여러분도 기도해 주세요.
복음을 전하고 치유를 전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끝으로 「빛과소금」 독자들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해 주세요.
“그동안 덮어 두었던 아픔을 한 번 들여다보시겠습니까?” 그 아픔 속에 은혜가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 삶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