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비밀 속 클림트를 만나다
3월 초, 한가람 미술관 클림트전에 다녀왔다.
부대낌 없이 비교적 쾌적한 기분으로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회를 통해 클림트란 인물에 대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된, 뜻 깊고 값진 시간이었다.
전시회를 다녀와서 그날 밤, 나는 존 말코비치가 열연했던 영화 '클림트'를 보았다.
영화는 그의 작품 만큼이나 난해하고 어려워서 이해하기 매우 곤혹스러웠으나
영화 전체의 분위기, 색감, 공기로 클림트라는 인물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는 있었다.
영화 클림트 (Klimt, 2006)
"과도한 아름다움은 부족한 것보다 나쁘다고 했"던 클림트(존 말코비치 분)의 멘트가 기억에 남았던 영화!
전시장 한 부분에는 흔히 ‘베토벤 프리즈’라고 부르는 클림트의 대형 벽화가 재현돼 있다.
1902년 장식 위주의 상징적 화풍을 추구한 빈의 분리파(제체시온) 예술가들이 악성 베토벤을 화두로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 천장 삼면을 메웠던 벽화들을 복원한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화두로 그린
이 벽화 아래를 지나는 길은 마치 악몽과 환희가 엇갈리는 꿈길을 걷는 듯했다.
연약한 알몸의 세 인간들이 황금기사의 보호를 받는 ‘행복의 열망’이 들머리 측면에,
맞은편 가운데에 질병·광기·방종·음란 같은 악덕을 형상화한 ‘적의 무리들',
곧 괴물 티푀우스와 그의 세 딸 고르고네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른 측면에 세상의 희망과 환희를 알몸 남녀의 굳센 포옹으로 상징화한
‘세상을 향한 입맞춤’이 이어진다. 빈의 분리파 기념관에 장식한 이 프리즈는 다른 동료 건축가·디자이너의
공예 작품과 한 덩어리가 되어 총체적 예술의 걸작으로 남았다. 리드미컬하게 세 장면 사이를 잇는
천녀들의 율동, 육감적 포옹으로 드러낸 구원의 메시지…. 세기말 빈의 음악 거장 구스타프 말러의 잔영이 클림트의 작품 위로 몽실거린다.
인간을 구원하는 첫 벽면의 황금기사는 분명한 말러의 모습이다.
말러는 프리즈 전시가 시작된 날 현장에서 베토벤 합창 교향곡 9번 연주를 지휘했다고 한다.
마지막 4악장인 실러의 환희의 송가가 클림트의 이미지가 되어 물결치는 전시장에서
제체시온의 기수들은 세기말의 열락에 휩싸였을 터다. 말러 교향곡을 시각적으로 옮기면 클림트의 그림이 된다.
관능의 향기가 심연에서 피어오르는 교향곡 3번은 클림트의 여체화에, 감미로운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는
풍경화에 걸맞는다(클림트는 말러의 부인 알마 신들러의 첫 연인이기도 했다).
베토벤 프리즈 '세상을 향한 입맞춤' 우측, 1901~2
베토벤 프리즈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클림트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던 작품이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중 환희의 송가가 베토벤 프리즈 전시 공간 안에서 작품과 함께 부유하고 있었다.
이 작품의 원작은 비엔나 분리파 전당 지하공간에 있다는데...
베토벤 프리즈 원작 앞에 서서 환희의 송가를 듣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구쳤다.
작년 1월 유럽 여행 중, 비엔나 분리파 전당 앞을 그냥 지나친 게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자리잡았다.
원작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아쉬움을 이 곳에서 카피로나마 9번 교향곡과 함께 감상했던 그 시간, 정말 좋았다.
베토벤 프리즈는 사진이나 설명만으로 상상하기엔 역부족, 작품 앞에 서서 직접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찬란한 금빛속에서 빛나는 세상을 향한 입맞춤을 직접 만나서 느껴야 하리라.
베토벤 프리즈가 설치되어 있는 비엔나 분리파 전당 전경. 매년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
클림트가 베토벤 심포니 9번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베토벤 프리즈는 후에 분리파 전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베토벤 프리즈에는 클림트의 예술적 고민들과 신념 그리고 니체 등으로부터 나온 철학적 이상들이 모두 녹아 있다. 클림트의 궁극적인 신념은
세상의 어떠한 역경과 악한 일들도 예술의 힘으로 극복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며 이 작품을 통해 그러한 신념과 믿음을 표출했다.
아름다움 뿐 아니라 실용성까지 겸비한 작품들을 생산했던 '비엔나 분리파'는 토탈 아트를 지향했다고 한다.
캄머성 공원의 산책로, 1912, 캔버스에 유화, 110cm x 110cm, 벨베데레 미술관, 비엔나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모네'가 떠올랐다.
캄머성 공원의 산책로가 모네의 여러 작품위에 오버랩 되는 느낌이었다.
클림트가 이토록 빛나는 아름다운 색채를 써서 완성한 풍경화도 있었구나, 가장 탐나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다시 보기 위해 거꾸로 돌아서 다시 감상하면서 오래도록 캄머성 공원에서의 산책 시간을 늦출 정도로...
아테제의 리트버그, 1914, 캔버스에 유화, 110cm x 110cm, 짤츠부르크 현대미술관 루페티눔, 짤츠부르크
클림트의 작품 중 25%가 풍경화라는 점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그의 풍경화는 그의 천재적인 색채감과 세심한 붓터치, 그만의 독특한 공간 해석을 한 눈에 만날 수 있다.
그의 풍경화는 특별하다. 그 이유는 오페라 망원경의 성질을 이용해서 2차원적이고 평면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기 때문.
자연과 주변 공간의 완벽한 조화, 두터운 물감 사용, 밝고 가벼운 다양한 색채에 점묘법까지 접목된 작품으로
특히 아테제 호숫가에 위치한 리치버그는 클림트가 종종 휴식을 취하러 가던 곳으로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었던 곳으로
리치버그를 그린 작품은 리츠버그 사진엽서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누워 있는 소녀의 얼굴(부르크테아터에서 상연한 셰익스피어 연극을 위한 습작), 1887년경, 종이에 검은 색연필
누워있는 남자의 얼굴 (부르크테아터에서 상연한 셰익스피어 연극을 위한 습작)
1887년경, 종이 위의 검은 색연필, 44.8x31.4cm, 알베르티나, 비엔나
유디트1, 1901, 벨베데레 미술관 아담과 이브, 1917, 벨베데레 미술관
'유디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작품이 작았으나 액자는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익히 알려진 여러 작품들은 철저한 보관차원에서 이중 액자로 제작되어 있는 것이 많았다.
은 물고기 (물의 요정) Water Nymphs (Silverfish) , 1901/2년 비 온후 닭이 있는 성 아가다 정원, 1898년
창백한 얼굴, 1903년, 캔버스에 유화
마리 브로이니크의 초상, 1894년경, 캔버스에 유화
금세 손을 뻗어 올릴 것 같을 정도로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피부빛, 온기가 느껴지는 얼굴 표정을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본 작품.
미술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짝인, 딸 아이와 함께 했던 황금빛 비밀 속 클림트 전은
내게 클림트란 인물을 탐색하기에 충분했던 작품 감상으로 진정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자료 및 작품 출처 ▶
그림을 알아 간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자신과의
진지한 대화인 것 같다고 말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의 말에 공감했지요. 가끔 평창동 가나 갤러리를 가면
꼭 미술관이 제게 상담자 역할을 해주는 듯 싶더군요.
그곳에다 무거웠던 마음의 짐들을 잠시 내려두고 위로받고 오곤 합니다.
꼭 그림 뿐만이 아니라 미술관의 공기와 느낌도 저는 좋아합니다.
텅빈 미술관을 혼자 전세 낸 듯 거니노라면 충만한 행복감이 밀려오지요.
야외 무대 나무 계단에 곧잘 누워서 쏟아지는 햇살을 두 손으로 가리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곤 하는데 제가 참 좋아하는 시간이지요.
클림트 전 관람료는 16,000원 입니다.
그동안 다녀왔던 전시회에 비해 좀 쎈 관람료였지만
관람료가 결코 아깝지 않은 전시회란 느낌이었습니다.
클림트, 그의 아름다운 풍경화와 몽환적인 작품 세계에 잠시 빠져 들고 싶다면
잠시 우면산의 봄 공기도 쐴 겸, 서초동 한가람 미술관으로 발걸음 옮겨보세요.
첫댓글 화가들도 유행을 타요. 요즘은 클림트의 계절~~이 봄이 가기 전에 한가람에 가셔서 그와 연애 한번 빠져보세요~~ 저 위 사진속에 딸은 제딸아니예요. 모다 통째로 잠시 빌려온거유.
몽환적인 그림 잘 감상하였습니다 .
다재자능함과 유머가 넘치는 데다 미인이신 전해주님... 카페에 올려주시는 글과 그림 잘 보고 있어요...^^ 댓글 감사!
댕큐 !
마리브로이니크의 초상(맨 아래 작품)은 저도 순간적으로 사진인줄 알았습니다. 대단한 작품세계 자알 감상했습니다. 좋은 정보 자료 감솨~~~아! 맨 아랫사진의 오른족에 손 들고 서 있는 분도 무척 사실적....-_-''(농담이 너무 썰렁했나 ㅎㅎ)
썰렁한 농담이 잘 어울리시는 분이신데요 뭘~ ^^ 글 올려놓고 댓글 기다릴 때 잘 챙겨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의외로 소심쟁이거든요 ^^ 힘이 나네요.
좋은 그림과 정보 고맙습니다. 루시아님
선한 눈빛, 웃는 동안, 인기 만점 샘님~~! 인사동 박씨 물고온 집이던가요? 동둥주에 파전, 수제비 먹으며 요란스레 떠들던...거의 탐욕에 가깝던 그 먹성과 건강이 그립습니다. 참 따뜻하고 순수한 시절이었는데요...잘 지내시지요?
그립네요
수채화를 저렇게 잔잔하면서도 몽환적으로 그리고프다~~그런데 물론 뜻대로 될리가 없을 것이고~~그렇게 부러워만 하다가 끝날게다. 그래도 욕심난다. 인생이 그런가벼. 순수한 사람은 대개가 정신병원으로 가건만.. 그는 잘 살아 남았다. 클림트.
오랫만이세요~~^^ 반갑습니다. < 이 뭣고>애독했었어요.매번 감사히 잘 읽고 또 제게 많은 위로와 보탬이 되었었지요...클림트를 난 잘몰라요. 그냥 뛰어난 재능이 주는 선물을 즐기고파요.그들의 고독과 아픔도 공유하면서 위로도 받고요.왜냐면요. 저는 그런 남다른 재능이 없다는 걸 이미 눈치채버렸거든요. 그러니 질투심도 사라져버리더군요~^^ 항상 건강하시길...!
클림트의 그림에 덧붙인 해설과 루시아님의 느낌 글로 감상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클림트 영화를 보지 못해 섭섭하네요. 덕분에 베토벤 프리즈를 잘 감상했습니다.
클림트 풍경화가 새로웠어요. 키스 등의 작품은 눈에 익었지만 풍경화들은 또 다른 세계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