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다 여행기 (1편 : 넙도를 찾아서...)
남해여행 D-1일 밤, 출발전 점검 번개팅 행사
♣ 얼마전 천주교 용산성당 묘지관리위원으로 위촉된 8명의 主님의 勇士들은 그 책임의 막중함을 통감하면서 불타는 결의를 다지고자 1박 2일 엠마오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 여행지는 사무총장인 임베드로(용산성당 제10구역장) 형제의 제의에 따라 그의 고향에서 가까운 그의 나우바리인 넙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넙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끝인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가야하는 완도군 노화읍 내리라는 주솔르 둔 소속된 작은 섬입니다.
♣ D-day-1. 저는 번개팅을 주선했습니다. 내일 아침 떠나는 역사적인 중요한 행사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되기에 사전 점검차원에서 용산전자상가 뒤편 ‘대월식당’으로 소집명을 하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낮. 퇴근시간 약 3시간을 앞두고 저는 고교동문회 후배(48회 이선빈)의 모친상 조문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모임장소를 갈 생각이었는데, 정작 금요일 오후 의정부 소재의 상가집을 다녀오는데 금요일 오후의 엄청난 교통장애로 인해, 모임을 주선해 놓은 주체자임에도 불구하고 저녁 9시쯔음에 모임 장소에 도착하는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지요. 흑~흑~흑~
♣ 야심한 밤 늦게 모임에 도착한 죄로 벌주도 엄청 마셨고, 발동이 걸린 탓으로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계속 악세리다만 밟았기에 밤 11시쯔음 각자 歸家하게 되었지요. 내일 새벽 멀리 여행을 떠나는 넘으로써 기본 상식을 벗어난 愚를 범한 것이지요.
목포행 고속철도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 용산역에 집결
♣ 2015. 4. 24(금) 아침 4시 50분, 우리 모임의 최연장자인 안토니오 형님께서 새벽에 모닝콜을 하셨습니다. 6시경에 용산역에서 목포로 출발하는 KTX(고속열차)를 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연식이 오래되신 탓으로 새벽잠이 없으신지? 아님 간밤에 거하게 한잔하는 모임을 주선한 탓으로 상기인이 늦잠을 잘까봐 걱정이 되셨는지? 하여간 그 덕분에 일찍 기상하여 옷을 주섬 주섬 갈아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 승용차를 용산전자상가의 회사 주차장에 세워놓고 천천히 걸어서 용산역으로 갔습니다만, 상기인이 제1착이었습니다. Am 5시20분 용산역 광장 앞에서 담배를 2대째 막 피울 무렵 우리 일행은 한명 두명 도착하더니 Am 5시 30분경 일행 8명 모두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된 시각 용산역 KTX 승차 출구 앞에 모였습니다.
♣ 우리 위원회의 사무총장인 임베드로 형제는 넙도의 친구(1박 할 숙소쥔장 겸 전복양식장 운영 대표)에게 전해 줄 양주를 무려 4박스나 준비해 갖고 왔기에 우리는 무거운 짐을 골고루 나루어 들고 마치 학창시절 봄 소풍가는 소년같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Am 6시 5분 고속열차에 탑승했고, 고속열차는 5분 후인 Am 6시 10분 목적지인 목포를 향하여 플렛홈을 빠져 나갔습니다.
♣ 목포행 KTX는 평일날인 이른 아침인 탓인지 승객이 많지 않아 마치 우리가 전세를 낸 특별열차 같은 착각이 들었지요. 우리 일행이 탄 KTX는 최신형의 객실이었습니다. 좌석 옆에는 스마트폰을 충전시키는 콘셑까지 설치되어 있었고, 방송을 듣는 헤드폰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너무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웠습니다. 고속철도가 괜히 고속철도가 아님을 알려나 주는듯, 객실 모니터에는 시속 285Km 이상으로 달리는 열차의 속도를 알리는 표식이 보였습니다.
♣ 용산역을 막 빠져나간 고속철도는 불과 30여분만에 천안아산역을, Am 7시 오송역을 지났습니다. 고속열차 차장을 통해 따사로운 아침 봄햇살이 눈부셨고 차장 밖에 보이는 아름다운 농촌전경은 한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 옆자리에 앉은 고향인 목포인 임베드로 형제는 지난 4월 초순 호남선 KTX가 첫 개통을 한 이후, 벌써 수차례나 이 열차를 이용해 주말마다 고향을 다녀온 경험이 많은지라,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주요 지역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비롯하여 창밖의 전경들에 대해 자세히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만들어 주어 더욱 여행이 즐거웠습니다.
♣ 우리가 승차한 이 KTX는 오송에서부터 새로 뚫은 신철도였습니다. 옛날에는 호남선 열차가 대전을 경유하였는데, 지금은 오송에서 호남선이 갈라지게 된 것으로 시간을 엄청 단축한 것이지요.
♣ 용산역을 떠난지 1시간 15분만인 Am 7시 25분 “익산역(옛 이리역)”을 통과했습니다. 익산역사 앞에 세워진 ‘이리역 폭발희생자 추모비(1977년. 59명 사망. 1,158명 부상)“를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났습니다. 곧 이어 창밖에 펼쳐진 멋진 만경강과 넓디 넓은 보리밭의 김제평야, 전주까지 가는 벚꽃 길, 서해안고속도로로 질주하는 차량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 차창 밖에 펼쳐진 김제평야와 대형의 많은 정미소 건물들을 보면서 옆좌석에 앉은 임베드로 형제는 일제시대에 이 넓디 넓은 김제평야에서 생산된 쌀들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강제운송된 수탈의 본거지라며 마치 군대시절의 정훈장교처럼 열을 내며 애국심을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 부안을 지나면서, 잠시나마 오래전 핵폐기물 문제로 떠들썩했던 그 당시를 회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때 이곳 주민들을 현혹 시키던 정치세력의 문제점을 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곳 주민들이 그 당시 엄청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왜 놓쳤는지? 또 그때 반대한 것을 지금은 후회막심해 하는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습니다.
♣ Am 7시 45분, 정읍 내장산을 가르키는 이정표를 차창을 통해 보았고, 수없이 많은 터널들을 통과하면서 Am 7시 58분, 광주 송정역에 잠시 정차했습니다.
♣ 광주 송정역부터는 새로 신설된 철도가 아닌 옛날 구 철도로 KTX열차가 목포까지 간다고 합 니다. 그래서인지 고속철도가 제속력을 다내지 못하고 가끔 털꺼덩~! 털꺼덩~!하는 아픈 소리를 내는 것 같았습니다. Am 8시 10분 나주역을 경유하여 Am 8시 35분. 2시간 30여분만에 우리는 목적지인 목포역에 도착했습니다.
목포에서 렌트카를 빌려 해남 땅끝까지 달리다.
♣ 목포역에 도착한 우리는 위원회 사무총장 임베드로 형제가 미리예약해 놓은 렌트카 사업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새로 뽑은 신형 승합차를 렌트한 후 Am 8시55분 렌트한 승합차에 탑승해 목포 오거리에 위치한 ‘610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역과는 불과 5분도 안되는 거리였습니다.
♣ 목포역에서 식당까지 짧은 거리였지만 이동하면서 낡은 고아원 건물이 눈에 띄었고 또 아주 아주 허름한 역전주변의 여관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목포는 역전주변뿐만아니라 항구 주변에도 사창가가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정비되긴 했으나 아직도 타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건 항구에는 술집도 많으니깐요.
♣ 또 그의 말에 의하면, 목포에는 고아원이 유난히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호남선 열차의 종착역이 바로 목포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시절 그리고 열차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이는 무작정 마지막 종착지인 ‘목포’까지 와야만했으니깐요. 그런 탓인지 베드로 형제는 학창시절 자기 주변에도 그렇고 또 친구 중에도 고아가 많았다고 합니다.
♣ 도심 속에서 이런저런 낡은 건물을 보노라니 화재꺼리가 자연히 이상한 내용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만 역전에서 걸어서도 5분이 안되는 곳에 위치한 왕년에 무지 유명했다는 목포 5거리에서 하차한 우리는 이미 예약해 놓은 610 식당에 입장했습니다.
♣ 이곳 목포 5거리는 목포의 구도심의 중심지로 옛날에는 목포에서 가장 번화街 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목포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탓으로 개발되지 않은 낡은 건물이 많은 비교적 한가한 지역이었습니다만, 어떻든 061 식당에 입장하자마자 우리는 차려진 음식상에 그만 입을 딱 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식당에 입장한 시각은 Am 9시였습니다. 모두가 이른 새벽 집을 나선 탓으로 아침밥을 굶은터라 위의 상다리가 부셔질 정도로 많이 차려진 음식에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 이 610 식당은 우리 위원회 임베드로 형제의 친구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서 미리 예약을 해 놓은터라 우리는 입장하자마자 숱가락을 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안주가 좋아서 아침부터 우선 한잔해야만 했습니다.
♣ 암만 생각해도 왜 061로 식당이름을 지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한참 고심 끝에 아~! 바로 이곳 목포의 지역 전화번호를 뜻하는 것이라는 걸 둔하게도 뒤늦게 인지했습니다.
♣ 그리고 식당 쥔장께서는 밥상 곁에 앉아 마치 아들이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이것도 먹어보라~! 저것도 먹어보라~!”면서 계속 권했습니다. 정말 진짜 엄마 같은 그런 마음이셨습니다.
♣ 강원도 촌놈으로서는 처음 맛보는 “감태(해초류), 국파래국, 가시리국, 바위옷(해초류) 등의 반찬들”이 의외로 맛깔스러웠고 아주 깔끔해서 자꾸만 젓가락이 처음보는 반찬쪽으로 갔습니다.
해남 땅끝마을를 향하여...
♣ 아침식사를 마치고 Am 9시 35분, 우리일행은 렌트한 승용차에 탑승해 해남의 땅끝마을로 향했습니다. 아침부터 약주를 한잔한 탓으로 약간 알딸딸한 기분이었지만, 우정과 사랑이 넘치는 소중한 형제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더욱 즐겁고 기뻤습니다.
♣ 저는 운전하는 임베드로 형제 옆좌석에 앉아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특이한 것들을 스마트폰에 담았고 자기 고향지역이라서 계속 지형설명을 하는 그의 이야기를 메모하였지요. 그는 운전 솜씨도 아주 능숙했지만, 하여간 최고의 1급 관광 가이드였습니다.
♣ 우리의 승합차는 목포 신시가지를 경유하여 대불공단(자유무역공단), 자동차 그랑프리경기장을 지나 긴 방파제 뚝길을 내달렸습니다. 도로의 이정표에는 “왕인박사유적지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도 보였습니다.
♣ 그리고 왕인박사유적지로 들어가는 그 길목의 안내 표지판에는 “용산”이라는 지역명이 게시되어 있었는데, 서울 용산에 거주지를 둔 우리 일행들은 이곳 지명을 보면서 더욱 정겨움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이곳도 “龍의 형상을 지닌 山”이라는 뜻의 龍山이라고 이름지어진 것 같았습니다.
♣ 목포의 061식당을 출발한지 약 30여분만인 Am 10시 15분, 우리 일행은 긴 벚꽃터널같은 가로수를 지나 “왕인박사 유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왕인박사유적지에는 평일 금요일 오전이라서인지 관광객은 없었으나, 어느 도심지 초등학교에서 견학을 온 아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자연학습을 왔나봅니다.
왕인박사 유적지 견학
♣ 왕인박사유적지는 월출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명소였습니다. 백제 시대에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가서 학문을 전했다는 흔적과 자료들을 보관한 전시관도 있었으나 우리는 왕인박사유적지를 답사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몸담지 못하고 약 30여분만에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쉽기만했습니다.
♣ 왕인박사유적지내에는 나이지긋하신 어르신 한분이 관광안내를 하고 계셨습니다. 눈치가 8단인 우리 인솔자인 임베드로 형제는 제빨리 그분에게 안내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랬더니만 그분은 총알같이 달려와 나름대로 열심히 왕인박사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이곳 관광지를 침을 튕겨가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 관광 안내를 맡으신 그분은 아마도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만 우리 일행과 연배가 비슷한 분이라서인지 많이 조심스러워하셨습니다. 만약 어린이와 특히 부녀회원들의 관광안내를 맡았다면 더욱 신나셨을텐데...
♣ 안내를 하시면서 약간 횡설수설하는 것은, 비교적 나이가 많이든 우리에게 관광안내가 잘 먹혀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스런 표정도 보였던 바, 왕년에 한때 교관으로 활동한 바 있는 상기인으로서는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어떻든 무보수로 봉사하시는 분이라 그저 고맙기만했습니다.
♣ 관광안내를 맡으신 그분 왈(曰), “여러분이 여성분들이라면, 제가 약간의 재미있는 유모어와 淫談悖說을 썩어가면서 더 잘 설명을 할텐데, 많이 미안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얼마나 웃음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분 덕분에 우리는 멋지게 단체사진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 더 머물면서 많은 것을 보고 싶었지만,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야하기에 Am 10시 50분, 아쉬움을 뒤로한채 우리 일행은 왕인박사유적지를 떠나 해남군 땅끝마을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땅끝마을로 가는 길목의 전경들...
♣ 다음 목적지은 땅끝마을로 향하는 도중, 시간이 허락되면 잠시라도 해남두륜산 도립공원과 또 그 아래에 위치한 천년고찰인 '대흥사'에 들릴 예정으로 하고 왕인박사유적지를 떠났습니다만, 아무래도 뱃시간을 놓치면 알될 것 같아 승합차 안에서 토의한 결과 다수의 의견에 따라 그냥 땅끝마을 선착장으로 내리 쏘기로 했지요.
♣ 해남으로 가는 길가에는 유채꽃밭들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의 들판은 농사준비에 바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파란 보리밭도 아름다웠고, 해변가의 소나무 숲도 아름다웠습니다. 이렇든 차창 밖의 전원 풍경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땅끝마을의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 왕인박사유적지를 출발한지 30여분만인 Am 11시 45분, 우리 일행은 넙도로 가는 배가 출항하는 해남 땅끝마을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땅끝마을의 풍경
♣ 이곳 땅끝마을은 오래전 가족들과 여름휴가차와 또 회사 직원들과 그리고 자전거 투어를 하기위해 보길도를 갈 때 3번 방문한 바 있기에 이곳 땅끝마을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수년이 흘렀기에 주변의 건물들 일부와 땅끝마을 입구에 잘 조성된 공원단지 등이 새롭게 느껴졌을 뿐이었습니다.
♣ 우리나라 최남단의 땅끝마을은 누구나가 항상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오래 오래 기억하고자 우리 일행은 땅끝마을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원처럼 잘 조성되어있는 땅끝 마을 해변가의 해상공원과 트래킹 코스(삼남길)는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시간만 허락되었다면 걷고 싶은 코스였습니다.
♣ 숱한 비바람과 태풍을 견디며 인고의 세월, 수백년 자리를 지켜온 해송과 각종 이름모를 고목들의 그 아름다운 자태와 끈질긴 생명력은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넙도행 여객선에 승선
♣ 우리 일행은 땅끝마을 주변을 관람한 후, 낮 12시 30분 드디어 기다리던 목적지인 넙도로 향하는 배에 승선하였습니다.
♣ 땅끝마을에서 넙도까지 가는 여객선은 하루에 1편임으로 이 배를 놓치면 우리는 다음날 넙도로 가야만 하기에, 인접지인 그 두류산 도립공원에서 케이블을 타는 것과 또 신라시대의 천년고찰로 유명한 대흥사 관람도 마다하고 이 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