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전북아동문학회 여름 세미나 주제 발표>
동심으로 일구는 마음 밭
아동문학가 박예분
1. 들어가며
‘나는 지금 누구인가’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이 정녕 온당한 것인가?’정도의 자기검열일 것이다.
나는 삶의 갈피마다 예기치 않게 출현하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매순간 끊임없이 사랑과 절망과 희망을 부둥켜안고 살았다. 그 결과 늘어난 나이테만큼 수용의 폭도 조금씩 넓혀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는 어릴 적 부모님께 받은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내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통해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동심은 내 삶에 최고의 선물로써 현실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 주었다.
다시 내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며 그 일이 온당한 것이냐고. 나는 좋은 동시를 찾아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과 함께 읽고 동심의 씨앗을 나누며 살고 있다.
누구나 성장과정에서‘동심의 세계’를 거쳐 왔기에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많고, 동심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사람들과 동시로 소통하며 서로서로 동심의 씨앗을 나누었다. 사랑의 씨앗, 양보의 씨앗, 배려의 씨앗, 나눔의 씨앗, 협동의 씨앗, 기쁨의 씨앗, 행복의 씨앗, 감사의 씨앗, 존중의 씨앗, 우정의 씨앗, 약속의 씨앗, 믿음의 씨앗, 정직의 씨앗, 희망의 씨앗, 겸손의 씨앗, 용기의 씨앗, 노력의 씨앗, 절제의 씨앗, 반성의 씨앗, 용서의 씨앗’생명의 씨앗, 평등의 씨앗, 봉사의 씨앗, 평화의 씨앗, 가치의 씨앗, 자신감의 씨앗, 어울림의 씨앗 등으로 마음 밭에 동심의 숲을 가꾸어가고 있다.
2.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
현대사회는 결혼, 부부관계, 자녀출산, 노부모부양에 대한 가족가치관의 변화로 다양한 가족형태를 이루고 있다. 결혼은 했지만 육아비용의 부담과 기혼 여성의 취업증가로 인해서 자발적으로 자녀를 낳지 않는 무자녀 가족(딩크족), 맞벌이 가족, 미혼모 가족, 독신 가족, 입양 가족, 재혼 가족, 한 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공동체 가족, 조손 가족, 결혼 이민자 가족 등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부모의 사랑과 적극적인 부모역할은 매우 어렵고 중요하다. 아동에게 부모의 적극적인 훈육과 대화와 지지가 필요하고, 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용기, 책임감, 협동심, 존경심, 배려심, 자기존중감’ 등의 기본적인 자질을 개발시켜주어야 한다. 하지만 가족형태의 다양화 속에서 결손가정의 아동들은 그를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상당수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살아도 부부의 불화로 심리적 불안감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이러한 아이들을 만나면 동시로 그들의 가슴을 노크한다.
작은 집
한 채뿐인데
많이도 산다.
암탉과 병아리 일곱 마리, 까만 염소 세 마리, 누렁이, 돼지 두 마리,
대추나무 두 그루, 석류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감나무,
참꽃마리, 양지꽃, 분꽃, 맨드라미, 채송화, 백일홍, 은방울, 굼벵이, 두꺼비,
지킴이 뱀, 생쥐, 굴뚝새
다 모여 살아도
시골 할아버지네 집엔
수십 년째
다투는 소리 한 번 없다.
- 유미희 「집 한 채에」 전문
내가 수업을 나가는 기관에는 한 부모 가족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가족관계를 물어보면 선뜻 답하기를 꺼려한다. 이럴 때 나는 아이들에게 시골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동시「집 한 채에」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내가 먼저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동거하는 것들에 대해 열거한다.
나는 오래된 한옥에 살고 있음을 밝히고, 개미, 바퀴벌레, 오줌벌레, 집게벌레, 지렁이, 콩벌레, 지네, 파리, 모기, 거미, 벌, 나비, 까치, 쥐, 들고양이, 토마토, 호박, 오이, 상추, 고추, 동백나무, 포도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감나무, 측백나무 등등 작은 생명부터 각 방의 사물들까지 공간 구석구석을 이동하며 줄기차게 늘어놓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금세 자신과 동거하는 가족의 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함께 하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즈음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 활짝 열기 위해“화장실에는 똥을 닦는 휴지와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벽에 발라놓은 십년 묵은 코딱지도 있다”고 하면 아이들은 웃음을 빵 터트린다. 그리고 아이들의 집에는 무엇이 있는지 묻기도 전에, 자기네 집에는 작은 풀꽃부터 커다란 장롱까지 아주아주 많다며 자랑스럽게 떠들어댄다.
그 순간 아이들의‘기쁜 발견’의 기운을 몰아서「우리 집 한 채에」로 제목을 정해서 즐겁게 모방시를 쓰게 한다. 1연에는 함께 사는 사람, 2연에는 무생물, 3연에는 생물, 4연에는 ‘다 같이 모여 사는 우리 집은 o o o 이다’라고 정해주면 아주 쉽게 척척 잘 쓴다. 아이들은 각자 쓴 시를 통해 자신의 집에 대해서 아주 당당하게 발표를 한다.
다 같이 모여 사는 우리 집은 한 마디로 ‘좀 무겁다’ ‘시끌벅적 즐겁다 ’ ‘화목하다’ ‘행복하다’ ‘사랑종합선물세트이다 ’ ‘평화로운 꽃밭이다 ’ ‘백화점이다’ ‘평범하다 ’ 라고 표현하며 꿈을 키운다. 자신의 꿈이 친구들과 다르고, 부모가 바라지 않는 꿈일지라도 그들은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애벌레처럼 항상 꿈틀거린다.
집을 지고 다닌다고?
아니야, 난 지금
부릉부릉 차를 몰고 가는 거야
내 차는 캠핑카거든
걸음이 느리다고?
아니야, 난 지금
둘레둘레 세상 구경하느라 그런 거야
난 여행을 무척 좋아하거든.
- 민현숙 「달팽이가 말했어」 전문
달팽이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아주 느릿느릿 기어가는 것과 평생 동안 무거운 집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동시에 나오는 달팽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면, 우리의 짐작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달팽이가 등에 지고 다니는 집은 알고 보니 신나게 세계 일주하는 캠핑카이고, 거기다 느릿느릿 걷는 이유는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일부러 그런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설득력 있는 달팽이의 말에 ‘그렇구나!’마음에 느낌표를 찍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동시「달팽이가 말했어」를 읽은 아이들은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부족한 점들이 어쩌면 달팽이처럼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역발상을 하게 된다. 키가 작다고 걱정하던 아이는 앞으로 더욱 무럭무럭‘클 놈’이라고 별명을 짓고, 수업시간에 낙서를 좋아하는 아이는 나중에 틀림없이‘멋진 화가’가 될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말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을 하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나이만큼의 깊이로 무언가 생각하고 고민한다. 어떤 아이는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본다거나, 어떤 사물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계속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잠자리 한 마리
바위에 앉아
꼬리
바짝 치켜 올리고
바위를 들까?
지구를 들까?
- 설용수 「잠자리는 생각 중」 전문
손가락만한 잠자리가 어떻게 바위를 들고 지구를 들 수 있을까? 동심으로 길어 올린 시인의 상상력에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웃는다. 아이들에게 잠자리처럼 「나는 지금 생각 중」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자고 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여러 생각들을 담아냈다. 어떤 아이는 앉은 자리에서 눈을 꼭 감고 우주까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한 아이가 쓴 시를 보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엄마가 왜 자기를 버리고 떠났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버리고 간 것 같다고, 그래서 엄마가 자꾸만 미워진다고, 그 생각만 하면 더욱 슬프다고, 그게 아니면 왜 자기를 버리고 갔는지 모르겠다면서 오랫동안 엄마에 대해 깊이 고민해 온 흔적이 역력했다. 반면에 그런 엄마가 어쩔 땐 걱정이 되기도 한다는 아이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나는 그 아이에게 또 다른 동시를 보여줘야만 했다.
아기 매미 잘 자라라고
나무는 날마다 젖을 주었지요.
나무 젖을 먹고 자란 매미
날개 돋아 멀리 여행 떠날 때
나뭇가지에 제 허물 벗어 놓고
엄마나무라 표시해 두었지요.
- 박예분 「매미 허물」 전문
동시「매미 허물」을 읽고, 아이는 매미의 이야기가 자기와는 반대라고 말했다. 동시 속에서는 매미가 엄마나무에게 허물을 벗어놓고 멀리 여행을 떠났는데, 자기 집은 엄마가 입던 옷을 장롱 속에 그대로 걸어 놓고 떠났단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그건 어쩌면 엄마가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일지도 모른다”고 위로하자, 아이가“정말요?”하면서 눈을 반짝거렸다.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내가 그동안 엄마가 되어 줄게.”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모아 두었다가 나한테 하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엄마가 집에 다시 돌아오면 제가 아주 잘해줄 거예요.”하면서 친구들 틈을 비집고 쏙 들어간다. 아이들은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그 무엇도 친구들과 함께 나누며 성장한다.
강아지가 먹고 남긴
밥은
참새가 와서
먹고,
참새가 먹고 남긴
밥은
쥐가 와서 먹고,
쥐가 먹고 남긴
밥은
개미가 와서 물고 간다
쏠쏠쏠 물고 간다.
- 이상교 「남긴 밥」 전문
사람이 남긴 밥도 아니고, 강아지가 먹고 남긴 밥을 참새랑 쥐랑 개미떼들이 나눠먹는다. 인간의 잣대로 볼 때 참새나 쥐나 개미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그렇지만 강아지가 남긴 밥은 그들에게 생명을 연장시키는 귀한 먹을거리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에게 강아지가 남긴 밥은 어떤 의미일까, 서로 그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다. 동시 「남긴 밥」을 읽은 아이들은, 그동안 음식 귀한 줄 모르고 남기고 버린 것에 대해, 편식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밥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농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었고, 맛있는 것은 자기 입 속으로만 들어갔다고, 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음식을 귀하게 생각하고 함께 나눠먹도록 해야겠다고 말한다.
3.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
성숙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다양한 친밀감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얻은 사랑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는 독립감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모습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직하고 관대하게 인내하며 자신의 이성과 감정을 적절히 잘 표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에 늘 귀 기울이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랑의 기술은 부부관계를 비롯하여 부모자식 관계, 친구관계, 이성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도 해당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상대를 불신하거나, 무시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랑에 빠져 있거나, 상대에게 오만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 결국 사랑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가 간절하게 바라던 결혼일지라도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나면, 오히려 상대방의 결점과 약점이 더 많이 발견되어 이따금 실망과 좌절 또는 분노가 증가하기도 한다.
엄마는
기분이 울적할 때면
퍽퍽
빨래를 한다.
오늘도 엄마는
아빠와 말다툼을 하고
쌩쌩
세탁기를 돌렸다.
아빠 옷과 엄마 옷은
돌돌
껴안은 채
세탁기에서 나왔다.
- 김용삼 「세탁기」 전문
「세탁기」는 부모도 의견이나 생각이 다르면 다투기도 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하다. 부모가 자주 싸워서 대수롭지 않다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자기 방에서 꼼짝 안하는 아이들도 있다.
한 아이는 술에 취한 아빠가 엄마에게 폭행을 할 때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단다. 그래서 아버지를 똑같이 때려주고 싶은데 힘으로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서 속상하단다. 어쩔 때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서 감옥에 보내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그뿐 아니다.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나서 툭하면 집을 나간다는 아이,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목소리 큰 엄마가 이긴다는 아이, 엄마와 아빠가 다투면 괜히 자기들한테 신경질을 부린다는 아이, 엄마가 아빠와 싸우면 밥을 안차려준다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싸우면「세탁기」 속의 빨래처럼 돌돌 껴안고 얼른 화해하기를 소망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화해의 방법을 배운다. 어른들과 동시「세탁기」를 읽으면, 마치 자신들의 모습을 들킨 것 같다고 쑥스러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부모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점심밥 먹는 둥 마는 둥
바쁘게 산밭에 가서
어둑어둑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돌아온 어머니
“야야, 오늘 피곤하다.
말도 시키지 마라.”
말하기도 귀찮은 어머니
‘어머니,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몇 번이나 속에서 말이 나왔지만
쏙 들어가고, 쏙 들어갔습니다.
씻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
금세 잠이 든 어머니 머리맡에
빨간 카네이션도 잠들었습니다.
- 서정홍 「어버이날」 전문
동시「어버이날」을 읽을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두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이다. 2009년도에 최명희 문학관에서 6개월간 ‘동시사랑’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어버이날」만 읽으면 눈물을 흘리고 만단다.
그가 지금까지 읽은 좋은 동시는 2천여 편이 넘는다. 그 많은 동시 중에 그가 「어버이날」만 읽으면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아마도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의 무조건적인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닐까 싶다.
부모자식 간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듯이, 그가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결혼해서 살아보니 가없는 부모의 은혜가 어떠한 것임을 피부 깊숙이 깨달았단다. 그럼에도 그 마음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자주 찾아뵙지 못함이 늘 죄스러웠던 것이다.
동시「어버이날」은‘부모’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면서 평생 감내했을 부모님의 '삶의 고통’에 한없이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세상 부모들은 자기가 받은 만큼 제 자식사랑에 온 힘을 쏟는 것인지도 모른다.
꾸물꾸물 기어가기는
굼벵이가 1등이고
깡충깡충 달리기는
토끼가 1등이고
빙빙 하늘 날기는
솔개가 1등이고
데굴데굴 도토리 굴리기는
다람쥐가 1등이다.
자기가 가진 재주
친구들 앞에서 맘껏 뽐내는
동물학교 시험 성적은
누구나 1등이다.
- 박예분 「동물학교 시험」 전문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두 1등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로는 어려운 이야기이다. 시험성적으로 1등에서 꼴찌까지 등수를 매겨 놓고, 그를 바탕으로 상급학교에 진학 시키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태어난 아이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늘 헉헉댄다. 그것도 모자라 엄마가 뒤에서 등을 떠밀며 빨리 달리라고 재촉하니, 아이들은 자기 삶의 호흡조절도 맘대로 못한다.
아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꾸준히 자기계발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교육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부모자식 간에 시험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실망감을 쌓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1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의 국제비교'를 주제로 벌인 설문 결과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게 나왔다.
아울러 우리나라 초교 4학년은 '행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가족’을 꼽은 학생이 54.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건강∙ 자유∙ 친구∙ 성적∙ 돈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가족은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돈’이라고 답한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어른들이 할 일이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아이들을 꾸지람보다 칭찬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할 것이다. 칭찬으로 얻은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아동으로써 권리와 책임을 적절하게 수행해 나가도록 도울 것이다.
입학해서 처음 받은
칭찬 스티커 두 개
선생님께서 내 이마에
착착 붙여 주셨다
엄마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계단도 단숨에 오르고
반짝반짝 스티커
떨어질까 조심하고
집으로 가는 길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멀까.
- 박예분 「칭찬 스티커」전문
아이에게 관심을 제대로 가진 부모라면, 최소한 자기 아이의 잠재력은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비록 눈에 드러나는 성과가 낮더라도, 아이가 용기를 갖고 노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들녘의 잡초가 아니라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아야하는 귀한존재이다. 가정에서부터 존중을 받고 자라 온 아이들은 밖에서도 타인을 존중할 줄 알고 진실 된 사랑도 할 줄 안다.
은행 담벼락에
종이상자를 접착테이프로 이어 붙여
겨우겨우 칼바람을 막은
조그만 집.
참깨, 콩, 팥, 마늘, 생강 따위를
맨땅에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가
주인이다.
사 주는 사람도 없는데
종일 좁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콜록콜록 기침을 하던 할머니
오늘은 종이상자집이 텅 비었다.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일까
핼쑥한 할머니 얼굴 떠올라
자꾸자꾸만 뒤돌아보며 걷는다.
- 박예분 「종이상자집」전문
동시「종이상자집」을 읽은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가 비슷하게 “할머니가 몹시 불쌍하다”고 말한다. 혼자 살아서 불쌍하고, 돈이 없어서 불쌍하고, 자식이 없어서 불쌍하고, 집도 없어서 종이상자로 만든 집에 사는 게 더욱 불쌍하단다. 나는 이런 어린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힘이 없어진 노인들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는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 종이상자집 앞에 늘어놓을 보따리를 꾸리기도 한다. 아직 두 다리가 건강한 것에 감사하며, 자식이 있고 돈이 있고 집이 있어도 그렇게 남은 세월을 하루하루 지워간다.
2000년에 전체인구의 7%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던 우리나라는 2020년경에는 노인인구비율이 14.4%에 달해 고령사회로, 2026년경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개인주의와 양성평등적 가족가치관의 변화로 싱글족 및 독거노인들의 1인 가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외로움’이다.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것, 벽과 마주하면서 언어를 잃어간다는 것, 그것은 바로 무서운 치매(알츠하이머)의 지름길이다. 어른들이 먼저「종이상자집」속에 나오는 아이처럼 주위의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길을 가다 엄마를 만나면 반가운 것처럼 이웃에 사는 노인도 그렇게 대해야한다. 현재 노인들의 모습은 곧 우리들이 겪게 될 미래이기 때문이다.
봉지에 담아도
모과 향기는 새어 나온다.
모과를 꺼내도
모과 향기는
봉지 속에 남는다.
- 전병호「모과」전문
모과처럼 마음 씀이 변함없는 사람,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마음의 기울기를 공평하게 하는 사람, 자신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내 보이는 사람, 그렇게 마음을 열고 사람인(人)자의 뜻을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함께할 때 이 사회는 더욱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사람의 체온이 따뜻한 이유는 그 안에 따뜻한 마음이 흐르기 때문이리라.
4. 동심의 씨앗을 나누는 사람들
동시는 어린이들을 위해 어른이 지은 시다. 그만큼 주 독자층이 어린이지만 어른들도 함께 동시를 읽을 필요성이 있다. 속도전쟁에 쫓겨 사는 어른들이 ‘동시’라는 순수문학을 접하면서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하고, 어린이들의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차원에서 한국동시문학회는 2004년도에 동시읽는어머니모임(약칭 ‘동시모’)을 발족하여 전국에 각 지부를 두고 좋은 동시를 함께 나누고 있다. 전주에서도 2005년도 7월에 첫모임을 갖고 회원들과 함께 동시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있다. 어른들이 먼저 좋은 동시를 찾아서 읽고, 가정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가족. 이웃에게 동심을 전한다.
나는 한국도서관협회 지원으로 최명희문학관에서(2009 ~2010년) 파견작가로 활동하면서 동시 읽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2009년도에는 「동시사랑」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총 26강, 매주 3시간씩 60차에 걸쳐) 문삼석 시인 외 152명의 동시 작품 1346편을 뽑아 수강생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며 창작까지 이끌어갔다. 2010년에도 최명희문학관에서 「너의 동심, 나의 동심」을 6개월간 진행했고, 연말에는 가족 동시 낭송회 및 동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수강생과 그 가족들이 동시를 쓴 시인들에게 직접 감사의 엽서를 써서 보내고, 엽서를 받은 시인들이 답장과 함께 저자의 사인이 담긴 책을 보내 줌으로써 작가와 독자가 동심으로 교감하였다.
2009년 4월부터 전주 mbc 라디오 방송 ‘여성시대’에서 매주 일요일에 새로 나온 동시집을 비롯하여 좋은 동시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2011년도 3월부터 전주시립도서관 시민대학 프로그램에서 ‘아동문학교육 및 창작지도’를 통해 수강생들과 동시를 읽고, 그밖에 각 학교 및 교육기관의 문학 강연이나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자리에서는 꼭 동시로 소통하며 동심의 씨앗을 나누고 있다.
2009년도에 최명희문학관에서 동시 읽는 프로그램「동시사랑」을 수강했던 이경옥 (현직 초등학교교사)씨가 전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초등교육상담을 전공하며,『학교 부적응 아동에 대한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의 효과』로 석사학위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동시사랑」수업을 통해, 다양한 좋은 동시를 접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이를 곧바로 만수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나누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씩, 퇴근하면서 교실 칠판에 동시를 써 놓았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학교에 온 아이들이 칠판에 적힌 동시를 자연스럽게 낭독하며 암기하고, 그날 일기장에는 동시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2010년도에 그는 독서치료가 자아존중감을 향상시키고 학교생활적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선행 연구를 쫓아, 동시를 독서 치료의 자료로 선정하여 학교 부적응 아동을 대상으로 상담에 적극 활용하였다. 그가 학교 부적응 아동들에게 동시를 활용하여 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학교 부적응 아동의 자아존중감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학교생활 적응에 필요한 하위영역인 학업적, 사회적 자아존중감 향상에 영향을 주었고, 가정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동시’를 활용한 것이 내담자의 자기개방에 효과적으로 작용하여 가정적 자아존중감이 높게 나타났다.
둘째,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학교 부적응 아동의 학교적응을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적응의 하위 영역인 학교교사, 학교친구, 학교수업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서, 교사를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담자들이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졌으며 수업태도도 양호해졌다.
셋째,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에서 문학의 한 영역인 동시를 독서자료로 활용한 것이 상담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낭송과 동시의 내용이 상담 분위기를 조성하여 내담자의 자기개방에 도움을 주었고 상담과정 및 상담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상담의 질을 높여 주었다.」
-『학교 부적응 아동에 대한 동시를 활용한 상담 프로그램의 효과』(2011,이경옥)
그가 상담프로그램에 동시를 선정하게 된 이유는 동시는 절제된 언어로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어서 상담과정에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상담프로그램에 활용한 동시는 주로 생활동시였다. 생활 동시 속에 아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문장들이 아동의 실생활에 그대로 전이되어 상담과정에서 활발한 상호작용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동시문학회와 전국 동시읽는모임은 올해 동시의 저변확대를 목적으로「제1회 가족과 함께하는 동시화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여는 것으로써, 좋은 동시를 통해 영상매체로 단절되었던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동심을 찾아주고, 어린이들에게 동시의 참맛을 느끼며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각 지부별로 예선을 치른 후, 수상을 한 대표작품을 전국대회에 올려z 본선 심사를 거쳐 시상할 예정이다.
또한 수상을 한 작품들은 각 지역의 형편에 따라 지역 도서관, 관공서 및 기업체, 학교, 문화시설 공간, 수도권 역사 등을 연중 순회 전시할 예정이다. 동시화 작품 전시를 원하는 단체나 기관은 한국동시문학회 카페 및 동시읽는모임 각 지부로 연락하여 전시회 일정을 맞추면 된다.
전북지역은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에서 9월 한 달 동안 전시하고, 10월부터 전주시립도서관 및 분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동시화 전시’를 원하는 전북지역의 단체나 기관은 동시읽는모임 전북지부장(박예분 yeboon@naver.com)에게 연락하면 된다.
5. 나오며
육당 최남선 선생이 18세 소년이었을 때, 기우는 국운을 오직 소년에게 기대하고자 1908년 11월 1일《소년》을 창간하였고, 취지는 "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랴 하면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교도하여라"라고 내세웠다.
창간 서시로 발표된 「海에게서 少年에게」는 조국이 기대할 이는 담(膽)이 크고, 순정한 소년배(少年輩)들임을 강조한 소년 찬양의 동시였다. 이로써 한국 현대문학이 아동문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에 한국동시문학회에서는 2008년 11월 1일을 시문학 최초의 동시 「海에게서 少年에게」발표 100주년의 날로써 '동시의 날'로 선포하고 동시의 역사 찾기와 동시문학 발전에 열정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나는 오늘도 가슴에 주섬주섬 좋은 동시들을 가득 담는다.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빛을 드리우는 동시, 자연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는 동시, 엉뚱한 상상력에 재미를 주는 동시, 영상을 보듯 이미지가 뚜렷한 동시, 발상의 전환으로 창의적인 동시, 정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동시,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 유쾌한 동시 등이 주를 이룬다.
백여 년 전 부터 지금까지 좋은 동시를 써온 수많은 시인들과 내 가슴에 동심의 씨앗을 뿌려 준 동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동시 덕분에 내 중년의 삶이 허투루 흐르지 않았고, 동시 덕분에 좋은 사람들의 기운을 맘껏 받으며 살고 있다. 동심의 씨앗들이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의 마음 밭에 잔잔히 뿌리내려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 모은다.
[출처] 동심으로 일구는 마음 밭/ 박예분|작성자 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