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6월 23일 작성.... 김흥수 화백이 그해 95살로 타계했네요. 김흥수 화백과 그의 43살 연하의 화가부인이 궁금하시다는 분이 계셔서~
6월 신록이 무성해지는 21일 셋째주 토요걷기는 서울 시내에서 평창동 일대 미술관까지 순례하는 코스였습니다. 물론 미술관 뿐 아니라 역사유적도 보고 녹음이 우거진 숲길까지 걷는 화려한 만찬 코스였습니다.
길이 길고 볼 것이 많아서일까요? 토요걷기 치고는 이른 시간인 아침 8시 시청역 3번출구에 모여 근처 성공회성당을 시작으로 정동 일대를 돌고 성곡미술관을 거쳐 인왕산숲길을 지나 부암동 환기미술관을 보고 백사실계곡을 지나 평창동 둘레길을 걷고 북악터널 입구의 가나아트센타까지 16km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수많은 미술관 뿐 아니라 인왕산 북악산 평창동 일대 북한산 둘레길까지 3개의 산과 인왕산 숲길, 백사실계곡, 세검정과 홍제천 등 시내와 계곡까지 문화와 역사와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길을 걸었습니다.
모처럼 문화와 예술 역사가 곁들인 길이라 그런지 50여분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날씨마저 선선해 걷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길이 좋고 볼 것이 많다한들 먼 길, 특히 평창동은 미술관 순례아닌 북한산둘레길 걷기 코스 같은 힘든 길이었음에도 중간탈출 하시는 분은 없다시피 하더군요.
새벽에 내린 소나기로 길이 정갈해진 시청역에 모여 덕수궁을 끼고 성공회성당을 먼저 둘러봅니다. 성공회는 영국국교회라고도 하며, 영국식 천주교, 신교중에는 가장 천주교에 가까운 종교이죠. 한국에선 교세가 약했지만 1922년 M.트롤로프 주교의 지도·감독 영국인 A.딕슨의 설계에 따라 영국성공회의 지원과 국내 신자들의 헌금으로 아래 공사가 착공, 로마네스크양식 건물로 1926년 부분 완공으로 헌당되었습니다.
성공회 서울대성당 본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멋진 건축물
이 건물 건축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원래의 '큰 십자가'형의 설계대로 못 짓고, 양쪽 날개와 아래쪽 일부를 뗀 채 '작은 일자형'으로 축소되는 바람에 '미완의 건물'이 되고 말았는데 1993년 신자들에 의해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자는 모금운동 등 복원계획이 있었지만 원 설계도가 없어 곤란함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영국 렉싱턴 지역의 박물관에서 원래의 설계도가 발견됨으로써, 1994년 8월 증축허가를 받고 원 설계도에 따라 1996년 5월에 축성식을 가짐으로써 원 형태의 건물이 된 것이죠. 완공된, 아름다운 양식의 성공회성당을 보면 건물보다 새삼 영국의 문화재에 관한 기록과 보관문화를 생각합니다.
성공회성당을 보고 덕수궁을 다시 돌아 정동길에서 바로 돈의문쪽으로 나갑니다. 원래대로 하면 배재학당 맞은편 서울시립미술관을 가야하는데 직진해서 일부코스는 생략했습니다. 정동을 나와 서울시립역사관을 지나 신문로길을 거쳐 성곡미술관으로 갑니다. 성곡미술관은 쌍용그룹 창시자 성곡 김성곤 회장(1913-1975)의 아호를 따서 만든 만큼 성곡을 기린 미술관으로 1995년 옛 자택 자리에 문을 열었죠. 미술관 입구에 그룹창업자 흉상을 세운 곳은 드물거나 없다시피 하죠. 그만큼 재벌 혹은 기업 이미지와 연관된 미술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곡 김성곤 쌍용그룹 창시자 흉상. 미술관이 그룹 창업자 흉상을 전면에 세운 것은 미술관 품격의 문제...
성곡 김성곤은 대구 옆 성주 출신으로 쌍용시멘트 등으로 부를 이룬 기업인이면서 대구 출신 박정희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권력 실세로 진입하는 등 3공시절 승승장구 합니다. 그러다 1971년 이른바 김종필 관련 항명파동으로 정치적으로 거세당하고 말년을 분노와 울분속에 술로 폭음하다 63세의 나이로 죽습니다. 성곡은 죽기 직전 아들인 김석원에게 “정치에는 절대 관여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후 성곡미술관은 전시 기획쪽에 나름 성과도 올렸지만 큐레이터였던 신정아씨가 2007년 학력위조 및 참여정부 고위관료와 스캔들에 휘말리고, 김석원 회장은 1996년 전두환 비자금 은닉으로 구설에 휘말리는 등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쌍용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성곡은 지하에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합니다.
성곡미술관을 지나 사직공원 쪽으로 해서 인왕산을 오릅니다. 황학정도 지나고 인왕산숲길을 통해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잠시 쉬고 단체사진도 찍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내려와 부암동 서울미술관을 들려 한국 미술관의 지평을 열었다는 환기미술관으로 갑니다. 서울미술관은 원래 1981년 현대미술사의 주요 흐름인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미술의 전위적 경향을 소개하고 한국 청년작가들의 실험적 작품을 전시하여 해외미술과 국내미술의 활발한 교류를 전개했던 국내 최초의 사설 미술관이지만 경영난으로 폐관, 지금은 다른데서 인수 대원군 별장인 석파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더군요.
환기미술관은 서양화가 김환기(1913-1974)를 기념하여 1992년 개관한 미술관으로 부인인 김향안이 설립, 3백여 평의 전시공간을 갖추고 김환기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상설전시장과 각종 기념전 및 기획전을 여는 기획전시장이 있습니다. 미술관 다운 미술관이죠.
김환기는 전난 신안 출신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미지가 걸러진 절제된 조형성과 한국적 시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회화의 정체성을 구현해냈다고 합니다. 파리 유학 중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도 가지 않았던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엔 화면 가득 푸른색을 많이 띄고 있는데 푸른색은 고국의 하늘과 바다의 색이고, 그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색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건물 사진을 따로 찍지 못해서~
환기미술관 본관 벽에 걸린 작품을 보니 문득 통영에서 활동한 전혁림 화가가 생각납니다. “가장 통영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며 통영을 사랑한, 예술가의 깊은 안목에서 나온 말이겠죠. 전혁림은 통영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청색 등 전통적 오방색을 주로 썼는데 바닷가 출신 화가들에게 청색(Blue)은 특별한가 봅니다.
통영 전혁림미술관. 살던 집을 사후 미술관으로 개조.
김환기 화백의 작품과 비슷하게 보이시나요? 2013. 10. 6. 사진
미술에 문외한이자 관심도 없는 저에게 환기미술관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 김환기 아닌 그의 부인 김향안 여사, 아니 변동림 여사에 대한 관심에서입니다. 김환기 화백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기까지는 아무래도 부인 김향안 여사의 전폭적인 지지와 내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죠.
김향안 여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묘한 인연이 보입니다. 지난번 서촌기행에서 잠시 소개했던, 한국 현대시의 이단아, 이상(김해경)의 첫 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여인이 바로 김향안 여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평생 가난과 궁핍에 고통받으면서도 여성에 대한 무절제 사랑과 집착으로 화제를 일으킨 사람인데 1935년 말 그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꼽추' 화가 구본웅의 소개로 구본웅 아버지 회사에 취직 경제적 안정을 취합니다. 이때 구본웅 화가의 배다른 형제인 변동림을 만나 동거부터 하고 얼마 후 정식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신혼도 잠시 3개월만에 이상은 문학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가고, 거기서 검거되고 건강을 해쳐 1937년 4월 17일 눈을 감습니다. 변동림은 이상이 위독하다 해서 동경으로 급히 가고 이상은 신혼 3개월만 함께 산 그녀의 품에 안겨 눈을 감죠.
환기미술관을 보면서 잠시 김향안, 아니 변동림 여사를 생각합니다. 꼽추 화가인 구본웅의 배다른 동생인 만큼 예술에 관심과 조예도 깊은 여인, 구본웅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불행한 가정사. 그에게 다가온 천재시인이자 종잡을 수 없는, 그러나 매력적인 인간 이상과의 아주 짧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김환기 화백과의 만남. 어쩌면 이 자체가 굴곡진 한국현대사를 압축한, 한국 여인의 전형같아 조금 더 환기미술관에 오래 있게 됐습니다.
환기미술관을 나와 산모퉁이 카페를 지나 백사실계곡으로 갑니다. 백사실 계곡은 백사 이항복 별장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길은 원래 “도심속의 비밀정원”으로 걷기 꾼들에게만 알려진 이른바 ‘족보있는 길’이었는데 1박2일로 알려지고, 최근에는 ‘인간의 조건’ 촬영장과 가까워 오히려 수난을 받는 곳입니다. 이런 백사실 계곡도 도심을 지나온 유유자적에게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 같네요. 도심속 명품 숲길에서 점심을 겸한 휴식을 취합니다.
도심속 비밀정원 같은 백사실 계곡. 여기를 지나면서 걸어온 길에 대한 피로를 풀고 원기회복,
세검정으로 평창동으로 떠납니다.
백사실계곡을 나오면 바로 세검정이자 평창동입구입니다. 세검정은 연산군의 폭정을 막기 위해 인조반정을 일으킨 군사들이 칼을 갈고 창의문으로 진격, 연산군을 쫒아낸 것에서 기인한 말입니다. 평창동 입구, 서울예고 밑 화정박물관을 지나 평창동을 한없이 올라가 한바퀴를 돕니다. 한참 걷다보니 미술관 순례길 아닌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있더군요. 그래도 50여 분이 묵묵히 걷습니다. 시청부터 걸어온 길이 좋았고, 평창동 미술관에 대한 기대감이 함께 어우러졌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미술관은 나오지 않고 한없이 걷습니다. 걷다보니 북한산 둘레길 5구간 명상길입구 표지도 보입니다. 그 순간, 조금 내려가면서 한 건물 건너 미술관이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평창동 북악터널 입구쪽,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길에 김종영미술관, 토탈미술관, 가나아트센터 등 평창동 미술관 3총사가 나란히 나옵니다. 오랜 걸음, 피곤한 다리를 끌고서도 작품 구경이 우선인가 봅니다. 부지런히 작품들을 구경합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없지만, 다른 분들은 열심히 감상하셔서 수준차를 절감해야 했습니다.
평창동에 미술관이 많은 이유는 이 지역이 80년대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면서, 성곡미술관 처럼 재벌가 사모님들의 문화활동으로 미술관이 각광받은 이유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사실 미술계에 밝은 사람 얘기로는 평창동은 전시 기획 연구(학예)가 주인 뮤지엄 보다 전시 판매에 더 강한 갤러리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부촌이라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크고, 미술품에 대한 정보가 빠른 지역이기도 하겠죠. 그런데 평창동 대부분은 갤러리라는 말보다는 뮤지엄이란 명칭을 쓰고 있더군요.
가나아트센터에서 토요걷기 여정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공지에는 영인문학관까지 가는 걸로 됐지만, 워낙 길게 걸었던 탓에 미술관 아닌 문학관은 생략가능한 곳으로 양해됐습니다. 다만 저는 온 김에 사진이나 남기기 위해 영인문학관까지 갔습니다.
강연 내용을 보니 이어령씨에 대한 재조명인데 극찬의 내용. 곁에 있던 분이 한마디 '용비어천가이구만'...
영인문학관은 전 문화부장관이자 이대 교수였던 이어령과 그의 아내 건국대 교수였던 강인숙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한국 문학자들의 서신이나 친필원고 등 자료를 보관한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어령씨의 문학관, 김수영 시인과의 참여 순수 문학논쟁에서 보여준 (한국적)예술지상주의와 체제순응적인 성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어령씨 하면 항상 주류 제도권, 체제내 지식인이란 생각만 남아서 호감이 없지만, 그의 부인과 함께 한국 문학의 자료를 모아놓은 영인문학관 자체는 휼륭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가는 길에 김흥수미술관이 보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쓸쓸하고 문을 닫은 느낌이라 사진을 찍을려다 찍지도 않았습니다. 글을 쓸려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보니 김흥수 화백이 지난 6월 9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더군요. 그의 43년 연하의 아내인 장현수 화가는 2년 전 사별했습니다. 결혼 전 말이 많았지만 젊은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면서 명예회복(?)을 한 것 같습니다. 김흥수 화백은 부인과 사별하고 경제적 문제로 미술관도 처분했더군요. 그래서인지 김흥수미술관이 정상적으로 안보인 것 같습니다. ‘김흥수미술관’ 이름만 남았는데 사진이나 찍을 걸 후회가 큽니다.
미술관 순례는 미술관 뿐 아니라 역사유적도 숲길도 함께한 멋진 길, 문화와 예술과 역사와 그리고 수다 한가득 풍성한 길이었습니다. 이런 길에 많은 분들이, 특히 가입 후 첫걸음으로 많이 나오신 것은 그만큼 문화적 수요가 높고, 그것을 누리고 향유할 분들이 많다는 반증이겠지요. 앞으로 이런 고품격, 문화가 충만한 길도 많이 열어주고 많은 분들이 더 많이 참가하는 길을 기대해 봅니다. 물론 걷는 것 자체가 최고인, 여타의 길도 그 자체로도 훌륭합니다.
다음 좋은 길에서 뵙겠습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시청앞 노란리본 물결...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다짐 외에는...
성공회 서울대성당 본당 건물 전면. 나무에 가려져있지만 몇 안남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입니다.
성당 내 사제관. 한옥식입니다.
성당 내 유월민주항쟁진원지. 1987년 이한열열사, 유월항쟁, 그리고 629를 이끌어낸 숨가뻣던 역사의 현장
이곳은 예전 세실레스토랑. 2000년 참여연대 느티나무 카페가 생기기 전 87년부터 2000년 까지
굵직한 시국 관련 기자회견등이 수시로 열렸던, 시국의 풍향계 같은 곳.
덕수궁 입구 대한문
세월의 무게, 역사의 더께를 확인하는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뒤 작품이라 한 컷.
정동길에 있는 이영훈시비... 새벽 비가 적시고 간 길이라 이영훈 생각이 더 절실...
제가 좋아하는 정동길입니다.
경희궁 입구 흥화문. 옛 서울고등학교 정문 자리.
여길 보면 동물원옆 미술관 아닌 박물관 옆 미술관이 떠오릅니다. 바로 밑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죠.
경희궁에서 기상대 쪽 올라가는 길에 있는 도심 한가운데 명품 숲길.
경희궁 모습
서울역사박물관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 홍제동 유물이라 기념으로...
구세군회관 건물. 건축사적으로 역사적 유적이라... 사진은 측면입니다.
성곡미술관입니다. 미술관 보다는 신정아로 더 알려진 곳.
야외조각전시장입니다. 예전에는 개방한 곳인데 점심시간 때 자주 산책을 가곤 했는데 아마 2009년부터 입장료를 받더군요. 이 안에 의미있는 조각품이 몇 있는데, 직원이 못들어가게 해서 못찍었습니다. 성곡미술관 꽤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데 75년 타계전 김성곤 회장의 개인집입니다. 당시 김성곤 회장의 위세를 알 수 있는 규모입니다.
사직공원 옆 인왕산 숲길 올라가기 직전의 황학정, 활터입니다.
인왕스카이웨이~ 혹은 인왕산숲길입니다. 김신조 사태로 93년 개방,
그동안 그나마 보존이 잘되어 있는 길과 숲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부근 '서시정'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따서 정자 이름으로 만든 서시정인데
참 밋밋하고 종로구청 사람들의 개성없음이... 차라리 인왕정이라고나 하지...
윤동주 시인의 언덕 표지석입니다.
부암동 서울미술관 가는 길에 있는 벽화와 글귀가 걷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 처럼 보이네요~
서울미술관인데... 외국인 관광버스 많이 드나들고... 석파정도 운영하고 아직 정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환기미술관입니다.
작품도 이름도 남긴 김환기 화백 보다 그 부인 김향안, 아니 변동림 여사를 더 생각해 봅니다.
언제가도 반가운 부암동, 그러나 저에게는 오래된 숙제가 있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승만에 의해 사형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이 살던 집을 찾는 것.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하겟다는 생각을 합니다.
카페 라 입니다. 이곳은 박노해 시인 사진전을 거의 연중 전시하는 곳이죠.
백사실계곡 가는 길 이정표이자 아이콘이 되버린 고진감래 표지입니다.
백사실계곡에서 가장 핫한 산모퉁이 카페입니다. 커피프린스1호점 배경이 되서 그런지 일본인도 많이 오는 곳. 어쩌면 백사실계곡 보다 더 유명해져서 배보다 배곱이 더 커진 현상, 산모퉁이카페입니다.
산모퉁이 카페가 좋은 점은 2층 테라스에서 전망이 좋다는 것이죠,
북악산 성곽길이 화창한 날이면 또렷하게 보입니다.
도심속 비밀정원이라는 백사실계곡 입구입니다. 시청부터 3시간 걸어온 피로가 한순간에 풀립니다.
백석동천. 해석은 분분하지만 백석은 북악산을, 동천은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란 뜻쯤 됩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내려오는데
이는 신선이 사는 땅이라는 뜻으로써 그 안에 들어서면 신선이 된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오늘 하루만큼은 신선이 된 것 같네요.
솟대입니다.
연못터입니다. 군데군데 나뉘어서 점심을 합니다.
별장터입니다.
다시 평창동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별서는 별장을 뜻하죠. 이항복별서터 어려운 말보다 이항복별장터 하면 좋을 것을... 신영동은 세검정입구입니다.
세검정 입구 홍제천입니다. 사진 오른쪽이 해체 철거된 신영상가 있던 자리이고
그 위 아득하게 보이는 산이 북한산, 그 밑자락 까지 걸어갑니다~~
평창동 입구, 서울예고 밑 화정박물관입니다.
평창동 어느 부자집 담에 걸려 있는 능소화. 능소화 꽃말이나 내용을 두고 알콩달콩한 대화가 오간 것 같네요~
미술관 순례 아닌 북한산 둘레길 코스로 바귀었습니다. 먼가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평창동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백사실계곡부터 아득하게 보였던 북한산이 손을 뻗치면 닿을 곳에...
이정표를 보니 미술관은 없고 북한산만,...
북한산 연화정사라는 곳입니다. 절은 높은데 있죠. 부처님이 평창동 일대를 내려보고 있어서...
시청부터 미술관 간다고 해서 왔는데 북한산 5구간 명상길이 웬말입니까~~
그래도 바로 미술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김종영미술관입니다.
힘들게 걸어오셨는데 작품 감상에 여념이 없습니다.
미술관 안에서 또다른 미술관이 보여 한 컷.
토탈미술관 서울분소입니다. 설립자 노준의 관장은 1976년 동숭동 토탈 갤러리에 이어 1984년 경기도 양주시 장흥유원지에 토탈야외미술관을 개관한 사립 미술관의 산증인으로서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을 수상한 분, 현대물 위주의 실험정신 가득한 곳이죠.
이 작품부터는 가나아트센터 전시작품입니다.
에일리언 같네요. 고무 등 폐타이어 등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미술관, 갤러리들이 많아서인지 보통 집들도 테라스를 저리 단장했네요.
영인문학관 전경. 이어령씨를 좋아하진 않지만 문학자료의 수집과 보존, 연구라는 문학관 취지에는 찬성합니다.
미술관 순례 코스는 여기서 마칩니다. 영인문학관 가는 길 보았던(만났던) 김흥수미술관을 안찍은 것이 후회되네요. 다음에 가게 되면 사진이라도 남겨야겠습니다.
첫댓글 주말에 걸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주말에 걸을수있기를 바래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