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장동복란왕녀태실비,옛원주역급수탑,김제갑충렬탑.학성동벽화골목
일시: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장소:강원도 원주시 태장동복란왕녀태실비,옛원주역 금수탑,김제갑충렬탑,학성동벽화골목
* 태장동 복란왕녀 태실비
하얀 눈 속에 왕녀의 태가 묻혔던 무덤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태봉산이었는데, 그 산 이름도 태가 묻혀서 그렇게 불렀고, 이곳 지명이 원주시 태장동인데 그 지명도 태가 묻혔던 곳이라서 그렇게 지었다. 원주시 태장동 왕녀복란 태실비는 성종 7년에 낳은 딸 태를 묻었던 곳이다. 출생 연대로 보아 연산군의 이복 여동생인듯 하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자손이 태어나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태를 묻었다. 이곳 태실비는 1982년 11월 3일 강원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원주시 태장2동 우성 제2차 아파트단지인데 1992년 신축공사를 하다가 이 유적을 발견했다. 그래서 지금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이때 발굴한 토기와 돌함 등 유물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오늘 아주 의미 깊은 역사의 한 장면 속에 내가 서 있음에 흐뭇하다.
* 옛원주역 급수탑
이곳은 몇 번 왔던 곳인데 하얀 눈이 쌓인 겨울에 오니 그 분위기가 새롭다. 원주역 급수탑은 1942년에 중앙선을 운행하던 증기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50년대에 와서 디젤기관차로 바뀌면서 기능이 상실된 시설이다. 그런데 그 유적이 옛원주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 김제갑 충렬탑
원주목사를 지낸 김제갑이라는 분을 안 것은 최근이다. 원주의 유적에 대하여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김제갑은 본관이 안동이고, 고려 명장 김방겸 후손이다. 조선 명종 때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조선 선조 때 충청도관찰사를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원주목사였다. 그때 왜군이 관동지방을 휩쓴 뒤에 원주를 침공해왔다. 그는 가족과 주민을 이끌고 경내의 요새인 영원산성으로 들어가 방어에 임하였다. 그러나 요새만을 믿고 따로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가, 산성의 허점을 틈탄 왜군의 공격으로 결국 성이 함락되었다. 그때 부인 이씨, 아들 김시백과 함께 순절하였다. 조정에서 그 충절을 기려 1592년 이조판서 겸 경연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의금부 성균관 춘추관사를 추증하였다. 원주의 충렬사,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1966년에 강원도 애국유족부활위원회에 의하여 원주역 광장에 충렬비가 세워졌다. 1711년 숙종 37년에는 문숙(文肅)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오늘 옛원주역 앞에 있는 김제갑 충렬탑을 탐방한 것은 참 뜻깊은 일이다.
* 학성동 벽화 골목
옛원주역에서 가까운 학성동의 허름한 골목 담벽에 그려진 벽화다. 좁은 골목에 양편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며, 내려오며 감상했다. 이런 글귀도 누군가 적어놓았다. The life is lived when tiny changes occur -Tolstoy- 내가 해석하기로는 삶은 변화가 있을 때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뜻인듯 하다. 톨스토이 명언이다. 학성동은 옛원주역이 있는 곳인데 원주역이 이전하면서 더욱 낙후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벽화라도 있어 삶들이 찾아와주니 다행스런 일이다. 봉편 여인숙이 눈길을 끈다. 옛스런 풍경들이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