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종 가리지 않고 급증하는 ‘선납 먹튀’
헬스장, 병원 등이 매년 거액의 회원권료나 치료비 등을 선납받은 뒤 돌연 폐업·잠적하는 이른바 ‘선납 먹튀’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 구제가 불가능할 때가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계약불이행·위약금 피해구제 신청 상위 10개 업종의 분쟁은 2021년 3436건에서 지난해 5209건으로 급증했다. 2년새 1.5배로 늘어난 것이다. 헬스장(2242건→3069건), 필라테스(612건→993건)는 물론이고 치과(18건→46건)나 피부과(56건→152건)도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선 미용실, 산후조리원, 영어유치원 등도 기습적으로 폐업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대구 수성구의 한 사우나 회원 80여 명은 잠적한 대표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지난달 9일에는 수도권의 대형 필라테스 업체가 폐업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 6년간 법적 대응에도 배상 못 받아
문제는 먹튀 피해를 당해도 구제가 어렵다는 점이다. 6년 전 두 자녀의 교정 치료를 위해 서울 강남구의 한 치과에 600만 원을 선납한 조모 씨(50)는 폐업 이후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했지만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했다. 조 씨는 2018년 8월 한국소비자원 분쟁 조정에서 환급 결정을 받아냈고, 이듬해 10월 민사소송에서도 승소했다. 하지만 치과 원장이 2020년 12월 파산 선고를 받으면서 배상을 전혀 받지 못했다.
만약 원장이 사기죄로 유죄가 확정되면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2월 1심 법원은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기망행위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뿐, 결코 피고인이 결백하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사기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파산 선고의 효력도 유지됐다. 조 씨는 지난달 10일 사기 등 혐의로 원장을 재차 고소했다. 하지만 11일 만에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경찰은 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 美 일부 주는 선납 기간·액수 제한
미국은 버지니아주 등 일부 주에 먹튀를 막는 제도가 있다. 폐업 30일 전 회원들에게 의무적으로 고지하거나 2년 치 이상 또는 총액의 50% 이상은 선납을 못 받게 하는 식이다.
다만 법조계에선 선납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보증보험 가입 등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법적 강제보단 정부 가이드라인이 적절해 보인다”며 “업주들도 자체적으로 보증보험에 들거나 공제조합을 만들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정주 법무법인 담정 변호사는 “갑작스럽게 대량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든가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경우 (선납을 하기 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