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8층 빈폴키즈 매장.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티셔츠를 고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제 몸에 사이즈를 맞춰 보고 하는 폼새가 조카에게 사줄 요량인 듯싶지는 않다. 한참 동안 이 옷 저 옷 망설이던 그녀가 이내 맘을 정한 듯 티셔츠 한 장을 계산대로 가져간다. 애들 옷 파는 매장에서 다 큰 어른이 자기 옷을 산다는 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매장을 잘못 찾았나 싶어 다시 한 번 매장을 확인한다.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오는 ‘빈폴키즈’ 글자.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한지연(여ㆍ22) 씨는 “요즘 아동복이 크게 나와 몸에 맞는 데다 성인 매장보다 값도 싸고 디자인도 맘에 드는 게 많아 웬만하면 키즈 매장에서 옷을 산다”며 “심지어 키즈 매장에서 아이 옷과 자기 옷을 함께 구입하는 젊은 엄마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아빠와 엄마, 아이들이 한 브랜드를 입는 ‘패밀리’ 브랜드가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이른바 똑같은 브랜드의,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는 커플룩이 대접을 받고 있는 것. 최근엔 20, 30대 어른들이 패밀리 브랜드의 아동복을 찾고 있는 것도 이들 패밀리 브랜드의 호황을 이끌고 있다. 다 큰 어른이 아이 옷을 입는 꼴이다.
▶아이 옷을 입는 젊은 여성=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20, 30대의 젊은이들이 패밀리 브랜드의 아동복 매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실제 롯데백화점 본점 리바이스키즈 매장 고객 10명 중 4, 5명은 젊은 여성이다. 심지어 마니아층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사이즈의 아동복은 젊은 여성이 충분히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값이 싸기 때문이다. 패밀리 브랜드의 아동복은 어른 옷과 비교했을 때 디자인과 소재는 같지만 값은 20% 정도 저렴하다. 성인 티셔츠가 7만~8만원 한다면, 아동용 티셔츠는 5만~6만원 안팎이면 살 수 있다. 빈폴 매장에서 성인 티셔츠를 사는 것보다는 빈폴키즈 매장에서 구입하는 게 알뜰 쇼핑인 셈이다.
김백섭 신세계백화점 바이어는 “패밀리 브랜드의 아동복은 디자인은 갈수록 성인화되고 고급스러워지는 데다 가격도 싸다”며 “체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알뜰 여성 고객들 사이에선 아동복 매장에서 옷을 사입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똑같이…커플룩이 필수(?)=이뿐 아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패밀리 브랜드의 아동복을 자녀들에게 입히는 신세대 부모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아빠는 빈폴맨스, 엄마는 빈폴레이디스, 자녀는 빈폴키즈 식이다.
강효창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아동복 바이어는 “패밀리 브랜드의 아동복은 일반 전문 아동복 브랜드보다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내 아이에게도 입히려는 부모들이 많다”며 “올 상반기 매출만 27% 늘어나는 등 장사도 짭짤해 백화점마다 아동복 라인을 갖추고 있는 패밀리 브랜드의 입점을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8월 무역센터점에 처음 입점한 빈폴키즈 매장을 지난 2월 목동점과 미아점에 신규 입점시킨 데 이어 3월에는 신촌점에 ‘타미힐피거키즈’를 신규로 들여왔다. 이 백화점은 수도권 점포에만 있던 리바이스키즈를 울산점과 부산점 등 지방점으로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선 버버리와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들도 잇따라 키즈 매장을 오픈하며 패밀리 브랜드의 대열에 합류했다.